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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56)화 (1,156/1,192)

제1156화

사봉봉은 그의 규칙을 알고 있었다. 물건을 하사하는 건 기본적으로 사희가 처리하는 일이었다. 무엇을 하사했는지 그는 알지도 못했다. 사희에게 물어보아야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장신구를 그가 직접 조판처에서 골랐다고 하다니, 이건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사봉봉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좋아한다는 말도 싫다는 말도 하지 않자, 묵용린은 자신의 낯가죽이 한 꺼풀 벗겨진 듯했다.

무릇 그가 하사품을 내리면 누구나 반갑게 받으며 성은에 감사해했다. 그러나 사봉봉은 달랐다. 그는 이를 악물고 버티며 속으로 그녀에게 이런 남다른 점이 있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달랬다.

그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물었다.

“황후, 마음에 드시오?”

사봉봉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황제의 하사품을 누가 감히 싫어하겠는가?

“신첩, 마음에 듭니다.”

묵용린은 바로 이 말을 기다렸다. 그는 씩 웃더니, 장신구를 집어 들고 직접 사봉봉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손을 거두던 그가 그녀의 귓가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그녀의 귓불을 만졌다.

그는 진작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다. 매번 사봉봉이 고개를 숙일 때마다, 그녀의 작은 귓불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때로는 백옥처럼, 때로는 연지에 물들인 듯 붉게 달아오른 게 예뻤다. 그는 항상 손을 뻗어 그것을 만져 보고 싶었지만, 체면 때문에 머뭇거리기도 했고 또 딱히 기회도 없었다.

항상 부끄러웠지만 오늘은 뻔뻔하게 그 앙증맞은 귓불을 손가락 사이에 쥐고 만지작거렸다. 그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감촉이 의외로 부드러워서 감히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작은 덩어리에서 그는 도무지 손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짐짓 침착한 척하며 그녀의 귀걸이를 쳐다보았다.

“이 귀걸이도 예쁘긴 하지만 투명도가 좀 부족하고 색깔도 파랗지 않소. 내일 짐이 더 좋은 것으로 한 쌍 보내겠소.”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가 뭐라고 하는지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마치 길거리에서 원숭이를 괴롭히듯, 자신을 이렇게 마음대로 대하는 건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귀한 몸이던가. 위풍당당한 동월의 황후에게 감히 이렇게 무례하게 군다면 누구든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한 자는 다름이 아니라 황제이자 그녀의 부군이었다.

그녀는 겨우 참은 분노를 천천히 숨결에 섞어 내보냈다. 정말이지,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황제의 손이 귀를 타고 내려와 가녀린 목을 어루만지다가 어깨 위로 내려왔다. 그는 장신구를 훑어보는 척하더니, 조금 경박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황후가 이 머리 장식을 꽂으니 더 보기 좋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사봉봉은 손을 뻗어 묵용린의 팔을 밀어내고, 아무 말 없이 노기등등하게 걸어가 버렸다. 저게 무슨 황제란 말인가, 완전히 여인을 희롱하는 호색한이지! 도대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란 말인가!

사봉봉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힘을 조절하지 못했다. 묵용린은 그녀에게 떠밀려 비틀거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봉봉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창가로 다가갔다. 사봉봉은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빠르게 봉명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꼭 뒤에 귀신이라도 쫓아오는 것 같았다.

묵용린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가 이렇게 그녀를 좋아하고 아끼며 처음으로 마음을 써서 좋은 물건을 찾아 그녀에게 선물했는데, 사봉봉은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의 친밀함은 그녀를 화나게 만들 뿐이었다.

잠시 화가 끓었다가 절망이 밀려들었다. 그는 애처롭게 의자에 앉았다. 월규는 분명 낯짝을 두껍게 하기만 하면 사이가 가까워질 수 있다고 했다.

황제로서 이렇게 낯 두꺼운 짓을 하는 게 쉽겠는가? 그래도 그녀는 받아 주지 않았다. 도대체 그가 어떻게 해야 그녀는 그가 다가가는 걸 허락할까? 아, 정말 여자들이란…….

노기등등하여 봉명궁으로 돌아온 사봉봉은 아무 말도 없이 화장대 앞으로 가, 머리 장식을 뽑아서 탁자 위로 내던졌다.

“이것을 상자 제일 밑에 넣어 두거라!”

그녀는 자신이 굉장한 모욕을 당했다고 여겼다. 황제는 병이 채 낫지도 않았는데 그녀를 이렇게 희롱했다. 만약 정말로 그가 완치된다면 매일 그녀를 불러 희롱하는 건 아닐까……?

끔찍해서 더는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 * *

다행히도 사봉봉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중추절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모든 정력을 중추 연회에 쏟아부었다. 사봉봉이 입궁한 이래 처음으로 궁 안에서 큰 연회를 여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뜻대로 되지 않도록, 연회가 꼭 성공하길 원했다. 어쨌든 사가 상호는 아직도 의혹을 완전히 벗지 못했기에 그녀는 더욱더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공명정대하게 연회를 마치고 싶었다.

동월 백성들에게 중추절은 새해 첫날보다 더 성대한 명절이었다. 가을 하늘이 높고 공기가 상쾌한 가운데, 계화는 향기로웠으며 여기저기에서 풍성한 과실이 맺혔다.

남녀가 짝을 지어 등불놀이를 즐기고, 월병을 먹으며 토끼 인형을 샀다. 꽃등 아래에서는 놀이에 빠져서 돌아가는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 치정에 빠진 남녀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남길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중추절의 중요한 대목은 등불을 거는 것이었다. 평민에서 부자에 이르기까지, 고관대작에서부터 궁에 이르기까지 모두 등불 걸이에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궁중의 등불 걸이가 가장 귀하게 여겨졌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바로 궁문 앞 궁도에 걸려 있는 등불이었다.

평소에 이 궁도는 고관대작이나 궁중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일반 백성들은 모두 돌아서 피해 가야 했다.

하지만 중추절 밤은 달랐다. 그 궁도에 등불을 걸어 두면 누구나 와서 구경할 수 있었다.

올해는 등불에 꽤 정성을 쏟았다. 세우면 삼 층 높이인 풍차 모양 등불을 만들었는데, 맨 위에는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커다란 바퀴가, 각 칸에는 등불이 끼워져 있었다.

큰 바퀴는 작은 바퀴를 감쌌고 그렇게 겹겹이 쌓아 내려가면, 밑에는 진짜 물이 흘렀고 작은 다리도 있었다.

물속에는 비단잉어가 헤엄쳤는데 붉은 것도, 하얀 것도 있었다. 잉어들은 빛을 보면 기민하게 움직였다. 작은 다리 밑에 물이 흐르는 강남의 풍경을 본 뜬 것이었다.

그 바로 옆에는 아담한 강남 정원을 꾸며 놓았다.

백성들은 이런 등불을 보고 다들 신기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변을 돌며 한참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또, 어떤 이는 떡을 뜯어서 잉어에게 주었다. 홍백의 비단잉어가 앞다퉈 먹이를 먹겠다고 물보라를 일으켰고, 사람들은 그걸 보며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궁문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으로 가면,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색등이 세워져 있었다. 등 위에는 색 띠가 달려, 어느 가문의 등불인지 쓰여 있었다.

백성들은 등을 구경하며 저마다 평가를 내렸다.

거의 구경이 끝날 쯤엔 길가에 있는 혼돈餛飩 노점에서 혼돈을 먹으며, 어느 저택의 등불이 예쁘다며 의견을 나누곤 했다.

어떨 때는 의견이 갈려서, 자기 마음에 드는 등불을 위해 그릇을 떨어뜨리고 탁자를 치며 한바탕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궁궐 밖은 말할 것도 없고, 궁궐 안 또한 대단히 시끌벅적했다.

중추 연회는 관례에 따라 계화오에서 열렸다. 멀지 않은 곳에 계화림이 있어서 계화 향기가 공중에 가득했다. 낮에는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밤이 되니 향기가 더욱더 짙어졌다. 콧속으로 향이 깊이 파고든 탓에, 숨을 한 모금 들이마실 때마다 짙은 계화향이 났다.

삼 층 높이의 친수대는 부조화의 매력이 있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콸콸 들리고, 커다란 유리 꽃 잔이 반짝반짝 빛났다.

태명호 안에는 새로 만든 꽃배들이 떠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 숨었다가 색등으로 장식한 선체를 드러내는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손님들이 계속 입장했고, 궁녀와 태감은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황제와 황후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손님들은 다들 자유롭게 행동했다. 남녀 사이도 별로 꺼리지 않았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 통에 아주 시끌벅적했다.

묵용성은 이런 자리를 좋아해서 일찍부터 나와 있었다. 물론 사심도 있었다. 그는 그 가인이 만약 궁에 있다면 꼭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할 것이다.

종친 자제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던 그는 호수에 떠 있는 꽃배를 가리키며 강남 진회하秦淮河의 꽃배에 관해 이야기했다. 진회하의 꽃배는 기녀를 두고 영업하는 배라서 여기 있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니, 다들 감히 뭐라 말하지 못했다.

묵용성은 풍류를 즐기는 것이 몸에 배어서, 진회하에 있는 꽃배가 왜 부적절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부채를 든 채 고개를 가로저으며 요목조목 따져 말하자 다들 그저 웃기만 할 뿐, 감히 그의 말에 트집을 잡지는 못했다.

묵용성은 이렇게 남들보다 식견이 넓은 것처럼 자신을 치켜세워 주는 걸 좋아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목이 말라서 그는 소태감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몸을 돌렸을 때 계화림 쪽으로 낯익은 아름다운 그림자가 지나가는 걸 보았다. 요즘 그가 꿈에서도 그리워하는 가인이었다.

묵용성은 물도 마시지 않고, 쫓아오려는 소태감도 멀찍이 떼 놓은 채 가인을 쫓아갔다.

숙비는 그녀의 부친이자 우상인 송회宋繪처럼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으로, 궁에 들어와서도 총애를 다투거나 누구와도 파벌을 만들지 않았다.

그녀의 궁전은 이화전怡華殿이었다. 궁전 위치가 좀 외진 곳에 있어서 주위가 조용하고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녀는 조용한 곳을 좋아했고, 혼자 있는 것을 원했다.

입궁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그녀는 마치 잊힌 사람 같았다. 황제부터 황후까지, 다들 그녀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녀는 이화전에만 틀어박혀, 분수를 지키고 시비를 논할 일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편안하고 즐겁게 생활했다.

하지만 중추 연회에는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옅은 화장과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남의 주목을 받지 않기만을 바랐다.

연회장에 도착해서도 그녀는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지 않았다. 그저 어디 조용히 숨어서 연회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식사나 하고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제 막 계화 가지를 꺾어서 옷섶에 다는데, 웬 사내가 쏜살같이 다가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녀는 허둥거리며 은령을 바라봤다.

상전이 연약하면 아랫사람이 용맹스러운 법이었다. 은령은 당황하지 않고 실눈을 뜨고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마마, 겁내지 마세요. 그때 그 공자입니다.”

송교宋皎는 궁중에서 공자 한 분을 아는 게 다였다. 은령의 말에 그녀는 곧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고, 당황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곳에 서서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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