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0화
장 수의는 사방을 둘러보며 농담을 던졌다.
“그 두 곡조가 황상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 하사품도 받지 못했네요?”
하사품 따위는 지금 양 수의에겐 관심 밖이었다. 그녀는, 떠나기 전 황상께서 손가락을 살짝 건드린 게 도대체 무슨 의미였는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마치 수수께끼를 낸 것 같았는데 그녀가 너무 우둔한 탓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황상의 마음을 저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유 귀인이나 허 귀비였다면 황제의 의도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형님, 어찌 이리 울적해 보이세요?”
장 수의는 자신의 농담에 그녀가 웃기는커녕 오히려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이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혹시 황상께서…….”
양 수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황상께서 금방 아우님을 부를 거예요.”
장 수의는 믿지 않았다.
“전 형님처럼 고금을 잘 타는 것도 아니고 유 귀인처럼 바둑을 둘 줄도 모르는데, 황상께서 뭐 하러 저를 부르시겠어요?”
“아우님은 말솜씨가 좋으니, 대화를 통해 황상의 무료함을 달래기에 딱 좋을 거예요.”
장 수의는 그녀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고 유 귀인의 병세에 관해 말하려는데, 그녀를 모시는 소태감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말했다.
“마마, 사희 공공께서 황명을 전하러 오셨습니다!”
양 수의가 웃으며 말했다.
“봐요. 내 말이 맞죠?”
이야기할 겨를도 없이 장 수의는 황급히 소태감을 따라 자기 궁전으로 돌아갔다. 과연, 사희 공공이 그녀를 보더니 멀리서 예를 갖췄다.
“마마께 문안을 드립니다. 황상께서 승덕전으로 오셔서 황상의 곁을 지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장 수의는 양 수의의 말이 이렇게 맞아떨어질 줄 몰랐다. 향을 피우고 목욕까지 할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얼른 세수와 양치만 마쳤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은 뒤 화장을 고친 후, 급히 승덕전으로 향했다.
기다란 평상에 기대어 서책을 보던 묵용린은 밖에서 전하는 말을 들었지만, 고개도 들지 않았다. 바스락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장 수의가 무릎을 꿇고 예를 다한 뒤에야 그는 서책을 내려놓고 시선을 들었다. 원래는 직접 장 수의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왠지 귀찮아서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고개를 드시오.”
장 수의는 유 귀인보다 예쁘지는 않지만, 활발하고 쾌활한 매력이 있었다. 또한 담력도 커서 그녀는 황제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웃음을 띠며, 입가에도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 그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첩, 황상께 문안드립니다.”
“일어나시오.”
묵용린은 사람을 불러 의자를 내렸다.
“장 수의는 짐의 곁으로 가까이 오시오.”
장 수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까이 오라는 게 무슨 뜻이지?
그녀가 자리에 앉자 묵용린이 말했다.
“유 귀인은 시를 통달했으며 바둑을 둘 줄 알았고 양 수의는 어려서부터 악기를 배워 고금을 잘 타는데, 장 수의는 무엇을 잘하시오?”
장 수의의 부친은 태복사 마창협령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활발해서 부친을 따라 마창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황제의 물음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신첩의 부친은 태복사 마창협령입니다. 신첩은 어렸을 때부터 부친을 따라 마창을 돌아다녔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마경(馬經)은 대략 알고 있습니다.”
“오, 그렇다면 짐에게 들려 주시오.”
“황상, 왜 아침에 베어 온 풀을 말린 다음에서야 말에게 먹여야 하는지 아십니까?”
황제는 당연히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녀가 자문자답을 늘어놓았다.
“말은 풀에 맺혀 있는 이슬을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그녀가 이어서 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황상, 말이 어떤 콩깻묵을 가장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녹두 깻묵입니다. 콩은 곱게 갈수록 좋습니다. 그러면 말이 정말 맛있게 먹는데, 심지어 재채기를 할 정도로 좋아합니다.
좋은 말인지 아닌지는 우선 이빨을 봐야 합니다. 이빨이 단단하면 좋은 말입니다. 두 번째로는 발굽을 살펴야 합니다. 발굽 모양은 예쁜 게 좋고, 색은 검은색, 흰색, 노란색이 좋습니다. 갈기는 부드럽고 매끈한 게 좋은데, 갈기가 거칠고 건조한 말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뼈대가 큰 게 더 좋은 말입니다. 지구력으로 따지면 무거운 짐을 지고 천 리를 달릴 수 있는 조랑말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 동월은 북부에 사는 말이 남부에 사는 말보다 좋습니다. 남부에서 사는 말은 왜소하고 말랐습니다. 듣자니 영남 일대에서는 다들 소 대신 말로 밭을 갈고 있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건 못 한다고 합니다.
동월로 들여오는 말 중에는 몽달의 말이 최고입니다. 체격이 크고 지구력도 있어서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 오랫동안 먹이를 먹지 못해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 군마로 제격입니다.
아, 신첩이 황상의 말을 본 적이 있는데, 완월이라는 말이지요? 몸 전체가 흰 털로, 잡색이 하나도 섞이지 않았고 몸집도 커서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다는데 맞습니까, 황상?”
묵용린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고 하는데 짐도 시도해 본 적은 없소.”
“서역에 조야옥사자照夜玉獅子라는 말이 있는데,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신첩의 부친 말로는 그 말이 일품 중의 일품이라고 했습니다. 아쉽게도 신첩이 직접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묵용린은 장 수의와 교류가 가장 적었는데, 뜻밖에도 이 여인이 가장 특이했다. 대가문의 규수가 시와 가무는 싫어하고, 고금이나 서화를 즐기기는커녕 말을 좋아한다니?
그가 물었다.
“자주 마장에 다녔소?”
“네, 어릴 때부터 말을 보러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냄새가 싫지 않았소?”
“마장이 넓어서 냄새가 금방 흩어집니다. 신첩은 그곳의 냄새가 역겹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묵용린이 그녀를 시험했다.
“역사적으로 명마라 불리는 말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시오?”
장 수의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가장 유명한 건 역시 한혈보마汗血寶馬인 적토마입니다. 이 말은 온몸이 적색이며 영성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관공께서 돌아가신 후, 적토마는 식음을 전폐하고 스스로 죽었기 때문에 충의에 관한 미담으로 남았습니다.
또한 초패왕의 오치烏稚가 있습니다. 온몸이 검고 네 발굽만 하얀 이 말 역시 영성이 있었다 합니다. 초패왕이 어쩔 수 없이 강가에서 목을 베고 자결하자, 오치도 강으로 뛰어내려 주인을 따라갔습니다.
또 다른 명마로는 절영絕影이 있는데, 그 이름처럼 그림자보다 더 잘 달린다고 합니다…….”
묵용린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자, 그녀는 말을 하면 할수록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신이 나서 이런 말까지 했다.
“황상, 앞으로 신첩에게 무언가 상을 하사하시려면 말을 한 마리 주십시오. 신첩은 본가에 대추색 붉은 말이 있었습니다. 궁궐에도 말이 한 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묵용린은 이 여인이 생긴 건 반반하게 생겨서는, 욕심이 끝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한 것도 없으면서 그에게 하사품을 달라고 하질 않나, 게다가 또 말을 달라고 아예 지정까지 했다. 정숙한 궁궐을 위해 그조차 함부로 말을 타지 않는데, 꿈도 참 야무졌다. 그는 역시 황후가 좋았다. 황후는 도리를 알고 분수를 지켰으며 절대 이런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조금 가라앉은 얼굴로 아무 표정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황제의 안색을 본 장 수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심장이 철렁했다. 자신이 정도를 넘었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방금 전까지 했던 무엄한 짓을 멈추고 황망해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묵용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장 수의는 차분함이 좀 부족했다. 그가 약간 기분을 드러내니 이내 주눅이 들어 버렸다. 만약 황후였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황후는 담담함이 있었다. 설사 겁이 좀 났더라도, 결코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게 바로 한 나라의 국모가 갖춰야 할 기품이었다.
그는 묵인했다.
“그래, 짐이 허하겠소.”
그러자 장 수의는 얼른 웃으며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묵용린은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에게서 묵용청양의 모습을 발견했다. 묵용청양은 감정 변화가 어찌나 빠른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만약 황후였다면…….
그는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어째서 또 황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몇 번이나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황후가 정말 그리 좋은가? 그녀는 조금도 좋지 않았다. 그를 싫어했으며 껴안지도 못하게 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탁자를 세게 내리쳤고, 놀란 장 수의는 얼른 바닥에 엎드려 꿈쩍도 하지 못했다.
묵용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어나시오.”
일어난 장 수의는 앉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묵용린은 그제야 그녀를 부른 목적이 떠올랐다.
“손을 내밀어 보시오.”
장 수의는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묵용린은 그녀의 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가늘고 긴 사봉봉의 손이었다…….
장 수의는 한참 동안이나 손을 뻗고 있었지만 황제가 아무 행동도 보이지 않자, 더는 참을 수 없어서 그를 가볍게 불렀다.
“황상.”
정신을 차린 묵용린은 갑자기 흥이 깨져 버린 듯, 중지를 살짝 건드린 후 말했다.
“이만 물러가시오.”
* * *
양 수의와 마찬가지로, 장 수의도 궁전으로 돌아와 자기 손가락을 보며 깊은 사색에 빠졌다. 양 수의가 들어와서 조금 어리둥절해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우님, 멍하니 뭐 하고 있는 겁니까?”
그녀는 장 수의의 흉내를 내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우님의 입담도 황상을 사로잡지는 못했나 봅니다, 아무런 하사품도 없는 걸 보니!”
“누가 없다고 그래요?”
장 수의는 중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보이십니까? 황상께서 제 손가락에 암시를 내려서 안목을 넓혀 주셨어요. 이건 대단한 상이죠.”
양 수의는 살짝 몸을 숙이고 가볍게 그녀의 손가락을 건드렸다.
“이렇게 하신 거 맞아요?”
장 수의는 깜짝 놀랐다.
“혹시 형님도……?”
“저도 궁금해하던 참이에요. 황상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양 수의는 웃으며 말했다.
“아우님에게도 그렇게 할 줄은 몰랐군요.”
장 수의가 추측했다.
“궁중에 새로 생긴 예법이 아닐까요?”
양 수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예법이 어디 있어요? 더군다나 새로운 예법이 생겼다면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줘야죠. 이렇게 황상의 의도를 추측하게 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장 수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이상해요. 차라리 황후 마마께 가서 여쭤보는 건 어때요?”
양 수의가 대답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저도 요 며칠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해요. 황상께서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계속 봉명궁으로 가시다가 지금은 그러지 않으시고, 우리 자매를 불러 당신을 모시라고 하다니…….
우리같이 부족한 사람들이 감히 황상의 높은 뜻을 헤아릴 수 없으니, 황후 마마께 뜻을 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괜히 무심코 지나쳤다가 상전의 과녁이 되면 안 되잖아요.”
장 수의는 웃으며 말했다.
“어휴, 형님도 이렇게 조심스러울 때가 있군요. 다시 봤어요.”
“궁궐이잖아요. 군주를 모시는 건 호랑이와 같이 사는 것이라고 했으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죠.”
그리하여 두 사람은 봉명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