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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45)화 (1,145/1,192)

제1145화

금령은 급히 안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마마, 노 의정이 금화궁으로 갔습니다.”

허 귀비는 어리둥절했다.

“노 의정이 왜 금화궁에 갔단 말이냐?”

“듣기에 황후 마마께서 가라고 명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허 귀비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황후는 냉궁에 갇혀 있잖느냐? 어떻게 나왔다는 거냐?”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

금령도 어리둥절했지만, 지금은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방금 들은 소식을 단번에 쏟아 냈다.

“어쨌든 황후 마마께서는 지금 금화궁에 계십니다. 유 귀인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사람을 보내 노 의정을 청하신 듯합니다.

그리고 궁녀가 방금 알려 주었는데, 금천아가 바삐 승덕전으로 가는 걸 봤다고 합니다. 아마 황상을 모셔 오려는 것 같습니다.”

허 귀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는 건 유 귀인이 위독하다는 말이냐?”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금령은 이어서 말했다.

“지난번에 그녀에게 남은 시일이 얼마 없다고 했는데, 아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노 의정과 황후가 다 거기에 가 있으니 어떻게 하죠?”

허 귀비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두려울 게 뭐 있겠느냐? 우리는 황상을 기다렸다가 같이 가면 된다.”

금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소인은 궁녀를 보내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황상께서 나오시면 얼른 알리라고 하겠습니다. 마마께서 황상과 함께 가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우선 황상 곁에 자리를 잡고 금화궁에 함께 도착하는 것이 핑계를 대기에도 좋지요.”

황제를 만나기 위해 허 귀비는 특별히 옷을 갈아입고, 머리 손질을 한 뒤 진주화 두 송이를 꼽았다.

마침 궁녀가 들어와 아뢰자, 풍루를 걸치고 느긋하게 문밖으로 나선 그녀는 우연을 가장하여 황제의 앞을 막았다.

묵용린은 최근 허 귀비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난번 일도 줄곧 그녀와 결판을 내지 못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좌상의 체면을 봐서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 일은 정말로 따지고 보면 그도 체면이 깎이는 일이기 때문에 일단 그렇게 흐지부지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등장은 언제나 그에게 곤란했던 그때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가 또 달려들어 함부로 만질까 봐 짜증이 치밀었다.

예전에는 어느 구석이든 다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지내 보니 어디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반면에 어디든 다 마음에 안 들었던 사봉봉은 함께 지내다 보니까 어느 구석이든 다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사람은 정말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고, 오랜 시간 함께 있어야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있다.

허 귀비는 이런 황제의 의중을 당연히 알지 못한 채 그의 앞으로 다가와 예를 취했다.

“황상, 어딜 그렇게 서둘러 가십니까?”

묵용린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유 귀인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길래 짐이 가서 살펴보려던 중이오. 귀비는 후궁을 관장하면서 이런 상황도 모르고 있었소?”

그의 무뚝뚝한 말투에, 허 귀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미리 준비했던 말을 실수 없이 읊었다.

“유 귀인이 병이 났다는 건 신첩도 진작 알고 있었기에, 태의를 보내서 살피라고 했습니다. 태의의 말로는 유 귀인의 몸이 너무 약하니 먼저 적당한 약으로 몇 첩 처방한 뒤, 다시 상황을 보자고 했습니다.

한데 시중을 드는 아랫것들이 일을 그리 소홀히 할 줄 몰랐습니다. 시중도 제대로 들지 않은데다, 유 귀인의 병이 이렇게 위중해지고 나서야 신첩에게 알렸습니다.

신첩이 즉시 태의를 보냈지만, 태의는 유 귀인의 병세가 너무 위중해서 극약을 처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첩이 어찌 의술을 알겠습니까? 무조건 태의가 말한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을 먹고 유 귀인이 견디지 못해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신첩도 어찌할 바를 몰라 황상께 막 알리려던 참인데, 황후 마마께서 한발 앞서 행동하실 줄 몰랐습니다. 한데 황후 마마께서는 냉궁에 계시니 외출을 삼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언제 나오셨는지 모르고 있던 탓에, 신첩이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묵용린이 말했다.

“괜히 황후를 끌어들이지 마시오. 황후가 지금은 비록 냉궁에 있지만, 금족령을 내린 것은 아니오. 그러니 황후는 나오고 싶으면 마음대로 나올 수 있고, 또 그걸 일일이 누구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소. 그런 거에 신경 쓸 여유가 있거든 우선 유 귀인에게나 가 보시오.”

날카로운 꾸지람을 듣자, 허 귀비는 황망한 와중에 분노가 치미는 걸 겨우 감췄다. 하지만 황제와 금화궁에 같이 가려던 계획은 성공한 셈이었다.

그녀는 가는 도중에 황제에게 몇 마디 더 말을 건네서 자신을 위한 포석을 깔려고 했지만, 영십칠이 계속 그녀와 묵용린 사이를 가로막았다. 온몸으로 서늘한 한기를 내뿜는 그 때문에 그녀는 감히 다가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멀리 떨어져야 했다.

금화궁에 이르러 유 귀인의 모습을 본 묵용린은 깜짝 놀랐다. 지난번에 병든 유 귀인을 보러 왔을 때는 그래도 일어나서 그에게 하소연할 여력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경을 헤매는 지경이었다.

그는 노낙원에게 물었다.

“살릴 방도가 있겠는가?”

노낙원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묵용린은 방 안에 있는 아랫사람들을 둘러보며 노성을 터뜨렸다.

“다들 죽었느냐? 상전을 어찌 모신 것이냐! 멀쩡하던 사람이 어떻게 이 모양이 된 것이야!”

천자가 진노하니, 아랫사람들은 얼른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 틈을 타 허 귀비가 하명했다.

“여봐라! 이곳에 있는 노비들을 모두 끌고 가 하옥하고, 처결을 기다리게 하여라!”

그때였다.

“멈추거라.”

사봉봉이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소안자에게 말했다.

“자네가 전에 본궁에게 한 말을 황상께 다시 한번 말씀드리거라. 시시비비는 황상께서 다 헤아리실 것이다.”

소안자는 비록 허 귀비가 두려웠지만, 황제와 황후가 모두 있는 자리였기에 입을 열었다. 그의 상전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말하지 않는다면 죽음뿐이지만, 말을 하면 그래도 한 가닥의 희망은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유 귀인이 그동안 겪었던 일을 낱낱이 황제에게 아뢨다.

묵용린은 소안자의 말을 다 듣고도 말없이 깊은 사색에 빠졌다. 그의 안색이 깊은 물처럼 어두워졌다.

소안자의 말이 뜻하는 바는 허 귀비도 당연히 알아들었다. 그러나 황제 앞에서 감히 화를 낼 수는 없기에, 그녀는 단아한 자태를 유지한 채 차분한 말투로 일관했다.

“황상, 금화궁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신첩은 제일 먼저 태의를 보냈습니다. 태의가 어떻게 치료했는지는 신첩도 잘 모르고, 들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노낙원은 그녀의 말에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황상, 유 귀인께서 이리되신 건 소신 탓입니다. 소신이 간과했습니다. 의승들은 문진할 때마다 모든 것을 기록하는데, 소신이 살펴본 바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직접 오지 않았습니다. 소신이 진작 알아차렸더라면 유 귀인께서도 이런 지경이 되지는 않으셨을 텐데…….”

묵용린이 말했다.

“일어나게. 태의원 쪽을 철저히 조사하게. 의원은 부모의 마음으로 환자를 돌봐야 한다고 했네. 그런데 이건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해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한 자를 찾아내 즉시 처벌하게. 그리고…….”

몸을 돌려 허 귀비를 바라보는 묵용린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짐이 후궁을 대신 관리하라고 명했는데, 그대는 이게 후궁을 관리하는 거라고 생각하시오? 귀비, 정말 실망스럽소. 오늘부터 귀비는 벽요궁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마시오. 그리고 황후는 다시 봉명궁으로 돌아가 후궁을 관장하도록 하시오.”

그의 말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금천아였다. 비록 냉궁이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당연히 봉명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황제의 말에는 황후를 석방하겠다는 뜻이 매우 분명히 담겨 있었다. 황후에게 다시 후궁을 관장하라는 건 곧, 황제가 사가 상호의 결백함을 믿는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동시에 황제와 황후의 관계가 좀 더 진전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이건 금천아가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일이었다.

반면 사봉봉의 반응은 차분했고, 표정도 담담했다. 마치 후궁을 다시 관장하는 게 그리 기쁜 일인 것 같지 않았다.

허 귀비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황제가 이런 사소한 일로 자신에게 금족령을 내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사봉봉마저 냉궁에서 풀어 준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눈가에 물안개가 피어난 그녀는 애처롭게 묵용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상, 신첩이 따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묵용린의 첫 반응은 거부감이었다. 허 귀비와 단둘이 있을 때 당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곁눈으로 사봉봉이 살짝 미소 짓는 것을 보자 오기가 생겼다. 영십칠에게 눈짓을 보낸 묵용린은 편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 귀비는 황제가 묵인하자, 곧바로 그를 뒤따라갔다.

고요한 편전은 텅 비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영십칠은 비록 그들을 곁눈질하지는 않았지만, 한 손을 허리춤에 찬 칼자루에 얹은 채 언제든지 튀어나갈 수 있는 표범처럼 싸늘한 눈매를 드러냈다.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묵용린은 허 귀비와 거리를 둔 채 담담하게 말했다.

사이가 더욱더 소원해진 듯한 황제의 태도를 눈치채고, 허 귀비는 가슴 한 편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애원하듯 그를 불렀다.

“황상.”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끊겼을 때, 그녀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도 실이 끊어진 구슬처럼 또르르 떨어졌다.

그 모습에 묵용린은 확 짜증이 치밀었다. 그는 울며불며 칭얼거리는 여인이 정말 싫었다.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하면 될 것 아니던가? 황후는 그의 앞에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그녀처럼 강인한 사람은 분명 거의 울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만약 눈물을 흘린다면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허 귀비는 황제가 위로의 말을 건네길 기다리며 눈물이 가득한 눈을 들어 보였지만, 그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가 미리 준비한 대사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도저히 내뱉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할 수 없이 다시 한 번 불렀다.

“황상.”

정신을 차린 묵용린이 담담하게 물었다.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어서 말해 보시오. 듣고 있소.”

“신첩은 황상을 처음 뵈었을 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허 귀비는 눈시울을 붉힌 채 말했다.

“그 해, 신첩은 계례를 갓 치른 열다섯 살이었고, 정원 곁채에서 황상을 뵈었습니다. 당시 신첩은 황상의 신분을 몰랐습니다. 그저 귀한 공자 한 분을 만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지요.

신첩은 부끄러워서 감히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황상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슬쩍슬쩍 곁눈으로만 바라봤지만, 신첩의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묵용린은 뜬금없이 그녀가 옛날 기억을 떠올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귀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허 귀비는 묵용린의 무정함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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