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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36)화 (1,136/1,192)

제1136화

가소타는 사실대로 말하는 대신 금령을 가리키며 말했다.

“날 밀었으니, 사과해. 안 그럼 나도 밀 테니까.”

금령은 가소타가 어리다는 생각에 재차 타일렀다.

“우선 마마께 어딜 가는지 고하게. 그럼 나도 사과할 테니.”

“내가 왜 당신한테 왜 알려 줘야 돼?”

가소타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묵용청양에게 배운 대로 행동했다.

“어서 사과하래도!”

금령도 더는 참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언성을 높인단 말이냐. 뺨을 맞아야겠구나.”

그때 옆에서 누군가 끼어들었다.

“누구의 뺨을 때린단 말이냐?”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소타가 신이 난 얼굴로 달려갔다.

“황제 오라버니.”

묵용린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치진 않았느냐?”

금령과 허 귀비의 안색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보아하니, 황제가 방금 일어난 일을 전부 목격한 듯했다.

“괜찮아요.”

가소타가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그러는데, 제 몸이 워낙 단단해서 넘어져도 별로 안 아프대요.”

“바보 같긴, 땅이 이리 딱딱한데 어찌 아프지 않다고.”

묵용린이 그녀에게 찡긋하자, 가소타는 곧장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곤 엉덩이를 문지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야, 황제 오라버니께선 다 알아보셨군요. 사실 너무 아픕니다.”

허 귀비가 금령에게 눈짓을 보내자, 금령이 곧장 앞으로 다가왔다.

“가 소저, 소저께서 귀비 마마와 부딪치실까 봐, 소인이 급한 마음에 밀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묵용린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사과가 무슨 의미란 말이냐. 방금은 뺨을 맞아야겠다면서?”

금령이 창백해진 안색으로 무릎을 꿇었다.

“황상, 용서해 주십시오. 소인,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가 소저께서 먼저 귀비 마마께 부딪쳐서 그래서 소인이…….”

“소타는 무심결에 부딪친 것이다. 이 애가 귀비를 바닥에 밀친 것도 아닌데 어째서 넌 소타를 밀쳐 넘어뜨린 것이냐? 짐도 손을 대지 못하는 아이인데, 네가 감히 밀치다니?”

묵용린이 낮게 호통쳤다.

“뺨을 치거라!”

가소타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묵용린에게 물었다.

“제가요?”

“그럴 필요 없다. 괜히 네 손만 아프지.”

묵용린은 싸늘한 시선으로 허 귀비를 바라보았다.

허 귀비는 어쩔 수 없이 나이가 조금 많은 궁녀를 골라 금령의 뺨을 때리게 했다. 황제 앞에서 흉내만 낼 수는 없었기에 궁녀는 소리가 크게 울릴 만큼 힘껏 내리쳤고, 금령의 얼굴은 금세 부풀어 올랐다.

묵용린은 그제야 가소타를 데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허 귀비는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일개 신하의 딸에 불과하거늘, 귀비인 자신의 체면보다 더 신경 쓰다니. 이 화를 어찌 삭여야 한단 말인가?

묵용린이 가소타를 데리고 걸어가며 물었다.

“무슨 일로 입궁하였느냐?”

가소타는 아직 어렸지만 제법 똑똑했다. 황제와 황후의 사이가 좋지 않으니, 냉궁에 간다는 말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대신 헤헤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어요.”

“난청을 만나려면 승덕전으로 가야 하는데, 여긴 승덕전으로 가는 길이 아니잖느냐.”

가소타가 빠르게 눈동자를 돌리며 말했다.

“청양 언니부터 만나려고요.”

“요대궁으로 가는 길도 아니거늘.”

가소타가 말했다.

“이곳 경치가 좋아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묵용린이 결국 참지 못하고 꿀밤을 주었다.

“어려서부터 청양과 함께 어울려 지내더니, 능청꾸러기가 다 되었구나. 어서 말하거라. 어딜 가려 했느냐?”

가소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금언에게 황제와 황후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탓에 그녀 또한 사봉봉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황제 오라버니는 위용이 대단했다. 가난청에게 간혹 불평을 털어놓을 수는 있어도, 차마 황제에겐 그럴 수 없었다.

그녀가 말이 없자 묵용린도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계속 발걸음을 옮기던 그가 물었다.

“듣자니 요즘 매일같이 사부에 간다던데?”

가소타가 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다. 황제가 딱히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금언 오라버니가 갇혀 있어서 제가 보러 갔어요.”

“사금언과 사이가 좋구나?”

“그럼요.”

가소타가 퍽 어른스럽게 답했다.

“다들 친우잖아요.”

묵용린이 코를 만지작거리며 태연한 척 물었다.

“하면 그 애의 누이와도 친한 것이냐?”

“봉봉 언니요? 그럼요. 아주 친하죠.”

“봉봉이 좋으냐?”

“당연히 좋죠. 봉봉 언니가 저한테 얼마나 잘해 주는데요. 사가 상호에 갈 때마다 맛있는 걸 잔뜩 주거든요.”

“맛있는 걸 주면 좋은 것이냐?”

가소타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물론 그런 건 아니에요. 봉봉 언니는 저한테 맛있는 것도 주고, 잘 보살펴 주기도 하거든요. 저번에는 사부에 놀러 갔다가 다리를 다쳐서 무릎이 까졌는데 봉봉 언니가 직접 약까지 발라 주었어요.”

“사부에서 놀다 다쳤으니 당연히 그리 신경 써 줘야 하는 것 아니더냐?”

가소타가 황제를 흘기며 말했다.

“봉봉 언니는 누구한테든 다 잘해 줘요. 만나는 사람마다 활짝 웃어 주고 말도 따뜻하게 해 주고. 다들 언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것이다.”

그녀가 하는 말마다 황제가 반박하자, 가소타는 조금 짜증이 나서 발을 굴렀다.

“황제 오라버니, 대체 왜 봉봉 언니를 싫어하는 거예요? 왜 늘 언니를 업신여기냐고요.”

묵용린은 아무 말 없이 앞쪽을 가리켰다.

“네가 가려던 곳이다.”

가소타가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냉궁이었다. 그녀는 아직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었지만, 순식간에 가라앉히곤 넉살 좋게 웃었다.

“황제 오라버니, 제가 여길 오려 한다는 걸 어찌 아셨어요?”

“왜냐하면.”

묵용린이 그녀의 머리를 한 차례 가볍게 흔들었다.

“짐은 황제니까.”

요즘 들어 황제의 발길이 잦은 탓에 보초는 멀리서도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고, 문을 열어 황제가 들어가길 기다렸다.

금천아는 밖으로 나와 물을 뿌리다가 황제를 발견하고는 곧장 복도에 서서 목청을 높였다.

“소인, 황상을 뵙습니다.”

금천아의 말에 사봉봉이 서둘러 밖으로 나와 황제를 맞았다.

그녀가 아직 무릎을 굽히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예를 면했다.

“예를 갖출 것 없소. 어서 맛있는 걸 가져오라 하시오. 손님이 왔소.”

가소타가 황제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밝게 웃었다.

“봉봉 언니.”

묵용린이 그녀의 뒤통수에 꿀밤을 주며 말했다.

“황후라 불러야지.”

가소타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가 다시 제대로 황후에게 인사를 건넸다.

금천아는 간식과 과일을 가져와 상에 차려 두고는 가소타를 불렀다.

가소타는 먹는 걸 좋아해서, 맛있고 예쁜 음식이 차려지는 걸 본 순간부터 빨리 먹고 싶었다. 싱싱한 용안龍眼을 보자, 그녀는 두 눈을 번득였다. 용안은 진상품이라 평소에는 먹을 기회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가소타는 속내를 곧이곧대로 말하곤 했다.

“봉봉 언니한테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많을 줄 몰랐어요. 진짜 맛있네요.”

사봉봉이 묵용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상께 감사드리렴. 황상께서 보내 주신 거란다.”

민망했던 묵용린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에게 고마워할 거 없소. 황후가 이겨서 얻은 것이니, 황후 자신에게 고마워하시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가소타가 사봉봉에게 물었다.

“황후 마마, 무얼 이겼는데요?”

사봉봉이 웃으며 말했다.

“황상과 바둑을 두었는데, 내가 이길 때마다 좋은 것들을 보내 주셨지.”

“아, 그렇구나.”

가소타가 황제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 저희 오라버니도 아주 많이 이겼잖아요. 오라버니한테 주실 상은 저한테 주세요.”

묵용린이 웃으며 그녀의 손을 밀었다.

“상을 내리더라도 네 오라버니에게 주어야지, 왜 네게 준단 말이냐?”

사봉봉이 가소타에게 물었다.

“궁에는 무슨 일로 온 거야?”

가소타는 황제를 바라보더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묵용린이 물었다.

“무슨 일이길래 짐에겐 감추려는 것이냐?”

사봉봉이 말했다.

“황상께서 남도 아니시고, 할 말이 있거든 걱정 말고 해 보렴.”

가소타는 결국 솔직히 털어놓았다.

장명기와 사장풍의 일을 아직 모르고 있던 묵용린은 가소타가 하는 말에 적잖이 놀라, 가만히 앉아 침묵에 잠겼다.

가소타는 분위기가 가라앉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말을 마무리 지었다.

“황제 오라버니가 이 일로 화가 나서 황후 마마를 더 괴롭힐까 봐, 사 주인장이 저더러 보고 오라고 하셨어요.”

가소타가 말을 마치자, 묵용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서 사 주인장에게 전하거라. 사건이 명확히 밝혀지기 전엔 짐이.”

그가 시선을 들어 사봉봉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뒷말을 내뱉었다.

“황후를 괴롭힐 일은 없다고.”

가소타는 황제의 말은 번복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뛸 듯이 기뻤다.

“네, 돌아가서 꼭 전해 드릴게요.”

묵용린이 사봉봉에게 물었다.

“황후는 어찌 보시오?”

“분명 모함입니다. 부친께서 도성에 안 계셔서 대질을 할 수 없으니 이런 짓을 꾸민 것이지요.”

“사가 상호를 대신해 변명을 하는 것이오?”

“신첩은 그저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대체 누가 사가 상호에 그리 큰 원한을 가졌길래 집안을 이리 필사적으로 망가뜨리려 하는 것이오?”

“신첩도 모르겠습니다.”

사봉봉이 그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신첩이 아는 것이라고는, 사가 상호를 망가뜨려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자가 혐의도 가장 크다는 것입니다.”

묵용린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했다.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조심스레 뒤로 몸을 기울여 그녀와 거리를 벌린 뒤,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도 증상이 나타나다니. 그의 병세가 또다시 악화된 듯했다.

가소타는 싱싱한 용안을 한 보따리 얻어 사부로 돌아갔다.

그녀가 목청을 높여 사앵앵을 불렀다.

“숙모, 어서 나와 보세요. 봉봉 언니가 용안을 싸 줬어요.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사앵앵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용안을 바라보았다. 좀처럼 믿기지 않는 탓이었다.

“봉봉이 준 것이라고? 용안이 어디서 났길래?”

“황상께서 주셨대요.”

가소타는 용안을 쟁반에 덜어 놓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봉봉 언니가 지내는 곳이 좀 낡긴 했지만, 탁자도 그렇고 침상도 모두 새것이었어요. 그리고 방에 향도 피워 두었고요. 간식이랑 과일도 많았고 하루 세 끼는 전부 어선방에서 보내 준대요. 황상께선 봉봉 언니한테 아주 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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