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5화
소제갈이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 형, 지붕에 기와 두 장이 부서져 있습니다. 위쪽에서 내려온 게 틀림없어요.”
영안이 몸을 틀어 빠르게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 위를 한 바퀴 둘러본 그는 두 팔을 펼치며 다시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가 소제갈에게 물었다.
“네 생각엔 몇 명인 것 같으냐?”
“한 명요.”
소제갈이 말했다.
“대단한 사내가 한 짓인 듯합니다.”
영안이 고개를 저었다.
“난 여자일 것 같구나. 검이 너무 얇고 가벼워.”
그가 지붕을 가리키며 말했다.
“경공이 보통이 아닌 여인이다. 기와 두 장 말고는 다른 흔적이 전혀 없지. 만약 시간만 더 여유로웠다면 저 두 장도 깨지 않았을 거야. 기와를 깨든 안 깨든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여인이라고요?”
소제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대체 얼마나 엄청난 여인이라는 거예요?”
한참 동안 옆에서 침묵을 지키던 묵용청양이 입을 열었다.
“비화루에서 한 짓일까? 일부는 유가진에서 우리를 가로막고, 일부는 여기서 사람들을 죽이고.”
영안이 말했다.
“비화루의 암기를 찾진 못했지만 어쨌든 양쪽이 같은 조직원일 가능성이 커. 게다가 얇은 검도 여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무기 같고.”
오후가 되어서야 장부의 친척이 찾아와 시신을 살펴보았다. 시신 열다섯 구 중, 장명기의 부인은 없었다. 이는 장명기가 황금 도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가정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
영안은 수배령을 그려 성문 곳곳에 붙여 두었다. 또한 친척들의 묘사대로 장명기의 처자식 초상화를 그린 뒤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암암리에 찾기 시작했다.
* * *
영안은 입궁하여 황제를 찾아가 조사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묵용린은 침묵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장명기가 사가에 원한을 품은 게 있느냐?”
영안이 말했다.
“그건 아직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소신, 배후의 주모자가 줄곧 사가 상호에게 맞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가 은장의 풍파가 지나간 뒤 소신은 줄곧 그자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는 중이었습니다. 장명기의 경우, 사가 은장의 은표를 그리 많이 손에 넣을 만큼 재간이 좋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장명기가 주모자는 아니고 그저 주모자의 패일 뿐이다?”
“예.”
묵용린은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긋한 차향이 입 안을 감쌌다. 사앵앵이 보내온 차였다. 사앵앵을 떠올린 그는 잠시 넋을 놓은 채 생각에 잠겼다.
영안은 황제가 찻잔을 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황상, 더 분부하실 일이 없으시면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묵용린이 손을 내저었다.
“잠시, 듣자니 강호인들이 개입되어 있다던데 혹여나 청양이 함께 다니다 위험해지는 건 아니겠지? 영십구를 데리고 다니겠다고 약조는 하였다만, 짐은 그 애의 말을 믿을 수 없구나.”
영안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장공주 전하께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잘못되시거든 황상께서 신을 벌하여 주십시오.”
“그 정도까진 아니고.”
묵용린이 말했다.
“워낙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다 열정이 넘치는 아이라, 짐은 그 애가 후환을 예견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굴까 걱정이구나.”
“황상, 마음 놓으십시오. 소신이 장공주 전하 곁을 지키겠습니다.”
묵용린이 입꼬리를 슬쩍 올리더니 장난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번엔 그 애가 네 발목을 잡을 것 같지 않더냐?”
영안이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장공주 전하를 지키는 건 소신의 본분입니다!”
그는 힘찬 목소리로 씩씩하게 답했지만,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일어나거라.”
묵용린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청양에게 잘해 주고 청양도 네게 잘해 주는데, 짐에게 그런 요구를…….”
여기까지 뱉은 그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되었다. 나중에 그 애가 직접 알려 주라지.”
영안은 묵용린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황제가 더는 말을 잇지 않으니 예를 갖춰 인사를 올리곤 그만 물러났다.
황제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넌 줄곧 짐에게 배후에 있는 자가 드러날 때까지 침착하라고 말하지만, 짐은 더는 기다리고 싶지 않다.
장명기를 알아냈으니 그자의 단서로 조사를 이어 가거라. 누가 연루되든 망설이지 말고 곧장 짐에게 보고하거라.
짐의 황금을 훔친 것도 모자라, 입을 막고자 강호인과 내통하여 살인까지 저지르다니. 그게 누구든 짐이 가차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
“예, 황상.”
영안이 허리를 숙이며 대꾸했다.
“소신, 빠르게 사건을 해결하여 진범을 색출하겠습니다.”
“하면 지금 사가는 혐의를 벗은 것이냐?”
영안이 망설이며 대꾸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황상,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소신이 반드시 빠르게 사가 상호와 황후 마마의 결백을 증명하겠습니다.”
묵용린이 손을 내저었다.
“어서 가 보거라.”
‘짐은 네가 황후의 억울함을 씻어 주길 기다리마.’
* * *
사건을 계속 조사하다 보니 상황은 오히려 사가 상호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무관인 장명기는 사장풍이 서북에 가기 전까지 종종 그와 술자리를 즐겼고,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친분이 남달랐다. 저택을 수색하자 곳곳에서 엄청난 양의 사가 은장 은표가 발견되었다. 세어 보니 족히 이만 냥이 넘는 금액이었다.
은표와 함께 계약서 같은 것도 발견되었다. 두 사람의 뜻이 맞아 의형제를 맺으니, 함께 복을 누리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겠다는 내용이었다.
낙관은 ‘장소長嘯’와 ‘자현子玄’이, 위쪽에는 두 사람의 지장까지 찍혀 있었다. 명확하게 이름을 써 놓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친한 사람이라면 장소와 자현이 각각 사장풍과 장명기의 자字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머지않아 사앵앵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녀는 집 안에서 목이 터져라 사장풍의 욕을 퍼부었다. 대체 어떤 흉악한 놈과 어울렸기에 집안에 이리 큰 화를 불러온단 말인가.
흥분한 그녀는 낭랑한 목소리로 어찌나 빠르게 욕을 퍼붓는지, 마치 콩을 털 듯 끊임없이 욕을 내뱉었다.
사금언은 끼어들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운 상황이라, 그녀의 입이 바싹 마른 후에야 어렵사리 말을 건넸다.
“어머니, 어머니도 생각 좀 해 보세요. 그건 장부에서 찾아낸 거예요. 그들이 아버지를 모함하고 누명을 씌우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사앵앵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조금씩 냉정을 되찾았다.
“그래, 분명 누명을 씌우려는 모함일 테지. 네 아버지는 우리보다 더 구두쇠라 은자 이만 냥을 남에게 주었을 리 없다. 절대 그럴 리 없어. 한데 하필이면 저 먼 서북에 있으니 대질조차 할 수 없구나.”
“아버지께서 안 계시니까 저들이 이런 짓을 한 거예요.”
사금언이 말했다.
“다른 건 괜찮아도, 시간이 길어지면 누이가 궁에서 고초를 겪을 거예요.”
딸아이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사앵앵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도 연금이 되긴 했지만 적어도 집에 있었다. 먹는 것이나 시종들의 시중을 받는 건 전혀 걱정할 게 없었다.
냉궁이라는 곳에 직접 가 보진 않았으나, 대충 어떤 모습일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낡아빠진 건물에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얼마나 고통이 클까.
게다가 이제 후궁은 허 귀비의 손에 넘어갔다. 사봉봉이 애당초 허 귀비의 자리를 빼앗았으니 사봉봉을 향한 원한이 얼마나 크겠는가? 분명 사봉봉을 못살게 굴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사앵앵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사금언에게 말했다.
“방법을 생각해서 누이에게 찾아가 보거라. 만약 제대로 지내지 못하고 있거든, 이 어미는 이 모든 걸 포기하고 봉봉을 구해 올 것이다.”
사금언이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라고 무슨 방도가 있겠어요. 저 또한 죄인이라 문턱도 나설 수 없는걸요.”
사앵앵은 잠시 고민하다 눈망울을 반짝였다.
“소타, 소타에게 상황을 알아보라고 하자꾸나.”
가소타는 매일 사앵앵을 찾아왔으므로 이는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두말 않고 사앵앵의 부탁을 승낙하고는 곧장 궁으로 향했다.
사앵앵은 문 앞에 서서 가소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다시 안으로 돌아와 사금언에게 말했다.
“저리 착한 소타가 우리 며느리라면 좋겠구나.”
사금언이 눈을 희번덕였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전 싫으니까요.”
“소타가 왜 싫다는 거야. 어릴 때부터 늘 예쁨만 받고, 마음씨도 착하고, 남을 도울 줄 알지 않니. 아직도 부마가 되고 싶은 거라면 너야말로 꿈 깨라. 어림도 없으니까.”
사금언이 지지 않고 받아쳤다.
“청양이 왜 싫으신 거예요? 우리 집에 사달이 나니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얼마나 애써요. 그것도 모자라 사비까지 써 가며 도와주었잖아요. 이렇게 좋은 여인을 어디에서 찾는다고요?”
“이 어미도 청양이 좋은 여인이라는 건 잘 안다. 네가 부마가 되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라, 네가 부마로 적합하지 않다는 거야. 이 어미는 네가 공연히 헛물을 켤까 걱정이다. 소타가 얼마나 좋니. 얼굴도 동글동글한 게 복스럽지 않느냐.”
“어머니나 복을 누리며 사세요.”
사금언은 성을 내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 *
한편 가소타는 사금언 모자가 자신 때문에 언쟁을 벌인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책임감이 강한 소녀라, 입궁하자마자 빠르게 냉궁 쪽으로 걸어갔다.
서둘러 사봉봉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걸어가던 중, 그만 부주의로 누군가와 부딪치고 말았다.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를 힘껏 밀치며 소리쳤다.
“대체 뭐 하는 자냐? 눈을 어디에 달고 다니길래 감히 귀비 마마께 부딪쳐!”
가소타는 비틀거리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턴 뒤 맞은편에 선 자를 바라보며 화를 냈다.
“당신이 뭔데 날 밀쳐? 옷이 더러워졌으니 어머니한테 또 혼나겠네.”
허 귀비와 금령은 설마 자신들이 부딪친 이가 가소타였을 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 봤자 이품 관리의 천금인데, 아무리 체면이 높다 한들 귀비보다 높을까?
하지만 황제가 가씨 집안사람들을 유난히 중시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허 귀비도 소란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안색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가씨 집안의 천금인 듯한데, 맞는가?”
가소타는 그제야 자신이 부딪친 게 허 귀비라는 걸 알아차리고 서둘러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소녀가 귀비 마마께 부딪쳤군요.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마마.”
“괜찮네.”
허 귀비가 웃으며 말했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