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1화
이튿날, 눈덩이처럼 부풀려진 소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허 귀비가 유 귀인의 총애를 시기하여 황제를 독살하려 했다.’
금화궁에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양 수의는 웃으면서 장 수의에게 말했다.
“아우님이 맞혔네요. 허 귀비는 유 귀인을 시기해서 황상께 독을 먹인 거예요.”
장 수의가 말했다.
“귀비 마마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유 귀인을 시기하시면 유 귀인에게 독을 먹여야지, 왜 황상에게 독을 썼을까요?”
양 수의가 대답했다.
“유 귀인이 이렇게 병을 오래 앓는 걸 보면 진짜 귀비 마마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요.”
얼마 후, 이 괴상한 소문은 벽요궁에도 전해졌다.
어린 궁녀들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다가 허 귀비와 금령이 다가오자 이내 입을 다물었지만 당황한 기색까지 감추진 못했다.
금령은 그녀들이 이상한 표정을 짓자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
어린 궁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아닙니다…….”
금령은 눈썹을 찡그리며 엄한 말투로 소리쳤다.
“빨리 말하지 못해?”
호통 소리에 놀란 어린 궁녀 하나가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
“그게, 소문이 났습니다. 유 귀인이 계속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데, 그게 마마께서… 귀비 마마께서 독을 썼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금령과 허 귀비는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고, 금령은 화를 내며 어린 궁녀의 뺨을 때렸다.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다른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험담해도 네가 이렇게 같이 휘둘리면 되겠느냐? 우리 마마께서 어떤 분이신지도 모른단 말이냐?”
맞은 곳을 감싸 쥔 궁녀는 울분에 가득 찬 채 서 있었지만 감히 입을 열지는 못했다.
허 귀비가 내전에 들어가자, 금령은 얼른 문을 닫아걸었다.
“마마, 어떻게 이런 소문이 퍼질 수 있습니까? 설마…….”
허 귀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의 일 처리는 믿을 수 있어.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유 귀인은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이런 소문이 파다한 상황에 죽는다면, 어쩌면…….”
허 귀비는 방 안에서 몇 걸음 서성거리다가 눈빛을 번뜩였다.
“그럼 며칠 더 살게 하면 되지. 일단 지금 같은 상황은 피하고 다시 계획을 세우자꾸나.”
처음부터 끝까지 유 귀인은 그녀의 손 안에 든 바둑알일 뿐이었다. 유 귀인을 이용해서 사봉봉을 밀어내는 건 일거양득의 좋은 계략이었다. 유 귀인이 조금도 질투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빼어난 용모에, 좋은 가문과 높은 지위를 가진 그녀가 하찮은 귀인보다 못하다는 걸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허 귀비는 유 귀인에게 고육지책을 쓰도록 유도했다. 비록 사봉봉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유 귀인 스스로 몸이 상한 것도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지금 황후는 냉궁에 들어갔고, 그녀는 후궁을 손아귀에 쥐었다. 유 귀인의 목숨을 거두는 건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웠다. 다만 귀신도 모르게 처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야 그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이런 소문이 돌다니! 만약 유 귀인이 이런 상황에 죽는다면 그녀는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허 귀비는 창문 앞에 서서 유유히 탄식했다. 이리저리 다투어 쟁취한 남자가 겨우 부부간의 운우지정도 나눌 수 없는 사람이라니. 생각만 해도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원래는 자신이 용종만 먼저 잉태하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누구라도 용종을 잉태할 수 없었다.
‘사봉봉이 이 사실을 안다면 황후로서 분명 훨씬 더 타격을 입겠지.’
그녀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과 두 상자를 챙기거라. 본궁은 황후 마마를 뵈러 가야겠다.”
* * *
사봉봉은 입구에서 들어오는 허 귀비를 보며 조금 의아했다. 그녀는 허 귀비가 그날 이후로, 절대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항상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하기에 이번에도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귀비,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신첩이 오늘 한가해서 한번 뵈러 왔습니다. 이 다과는 벽요궁 주방에서 만든 겁니다. 숙수가 강남 사람입니다. 신첩이 기억하기로 마마께서는 어릴 때 강남에서 자라셨으니 마마의 입맛에 맞으실 것 같아서 챙겨 왔습니다.”
사봉봉은 웃으며 말했다.
“귀비, 세심하게 챙겨 주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귀비가 잘못 기억하는 게 있군요. 본궁은 어릴 때 서북에서 자랐습니다.”
허 귀비는 별로 개의치 않다는 듯, 금천아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넌 나가 있거라. 본궁이 황후 마마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
금천아는 마치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금령은 화가 치밀었지만, 금천아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몸도 자신의 두 배 정도로 굵어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허 귀비도 금천아를 자신의 말대로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저 궁녀는 완력이 세고 성질머리가 불같아서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듣자 하니 감히 황제에게까지 덤비려고 한다니, 자기 같은 귀비는 더욱더 안중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화를 내기보다는 현명하게 고개를 돌려 사봉봉을 바라보았다.
사봉봉은 그제야 금천아에게 말했다.
“문 앞에 가서 기다리거라. 귀비와 얘기를 나눠야겠으니까.”
금천아는 사실 허 귀비가 사봉봉에게 해를 가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연약함이 철철 넘치는 여인은 절대로 황후 마마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은 건, 단지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상전이 입을 열었으니 금천아는 당연히 마마의 명을 따라야 했다. 그녀는 금령과 함께 문밖까지 나가서 문을 닫았다.
사봉봉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의자에 앉았다.
“귀비, 할 말이 있으면 하시지요.”
허 귀비는 그런 낡은 의자에 앉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서서, 다른 한 사람은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건 말하는 기세부터 달라졌다.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궁 안 사람들은 모두 황상께서 황후 마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황후에 책립하셨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황후 마마께서 자리를 지키시려면 용종을 잉태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일 것입니다. 장차 아들을 낳는다면 태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황후 마마께 일생의 부귀영화를 안겨 줄 황자가 될 테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하늘은 당신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영원히 황상의 아이를 갖지 못할 겁니다.”
사봉봉은 허 귀비의 두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귀비,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요?”
허 귀비는 비웃듯 입가를 끌어올린 채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당신은 불구자에게 시집을 왔다는 겁니다.”
허 귀비가 냉궁까지 달려와서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고 가자, 사봉봉은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당연히 묵용린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그가 자신과 혼인한 목적도, 용종을 품게 하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굳이 허 귀비가 직접 달려와 이렇게 심각하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허 귀비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미간을 찡그리고 깊이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는 무의식중에 다과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는데, 맛이 그런대로 괜찮아서 하나 더 집어 먹었다.
금천아가 들어와서 이 광경을 보더니 깜짝 놀라 한걸음에 달려들어 그녀의 손을 누르며 물었다.
“마마, 이건 드시면 안 됩니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본 사봉봉은 우물거리며 물었다.
“왜?”
금천아는 조금 긴장한 채 대답했다.
“독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봉봉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허 귀비가 그렇게 어리석을까. 이렇게 달려와서 독을 쓴다고? 후환이 두렵지 않은가 보지?”
“허 귀비는 황상께도 감히 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마께 뭘 못 하겠어요.”
사봉봉은 어리둥절했다.
“어디서 들은 유언비어야?”
“유언비어라니요? 궁 안에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아침에 경화가 물건을 가져다주면서 소인에게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저희도 깜빡 속았을 거예요.”
사봉봉이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저께가 허 귀비의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상을 모시고 식사를 했는데 음식에 독을 탔다네요. 황상께선 그 자리에서 중독되셨고, 사희와 영십칠이 급하게 승덕전으로 모셔갔대요. 다행히 독이 강하지는 않아서 목숨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요. 또, 허 귀비가 황상께 맞아서 기절했었다고 들었어요.”
사봉봉은 깜짝 놀랐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렇다니까요? 지금 궁 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번에 황상께서 벽요궁에서 식사하시고 배탈이 났잖아요. 사실 그것 역시 허 귀비가 독을 쓴 거라고 했습니다.”
사봉봉은 아무 말 없이 다과 한 조각을 또 입에 넣었다.
못 먹게 말리려다 실패한 금천아는 투덜거렸다.
“마마, 제 말을 듣고도 왜 또 드십니까? 비록 독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여자가 가져온 건 드시지 마십시오.”
“독이 든 것도 아닌데 왜 먹으면 안 돼?”
사봉봉은 한 조각을 금천아에게 건네며 말했다.
“맛 좀 봐 봐. 정말 맛있어.”
금천아가 받지 않자 사봉봉은 아예 그녀의 입에 넣어 줬다.
금천아는 할 수 없이 입을 벌렸다.
‘어라, 정말 맛있잖아?’
이런 낡은 곳에서 지낸 뒤로, 하루 세 끼 외에 다과라고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이미 먹지 않는 건 물 건너갔으니, 금천아는 얼른 씹어 삼키고 또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마마, 허 귀비가 황상을 독살하려고 했다는데 왜 그녀를 잡아들이지 않은 걸까요? 정말 옛정이 깊어서 그런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정분이 목숨보다 중할까?”
사봉봉이 말했다.
“분명히 그런 일은 아예 없었을 거다. 황상을 모해한 죄는 구족을 멸하는 대역죄다. 허 귀비는 그렇게 미련하지 않아. 어떻게 독을 그렇게 연달아 쓰겠어?”
금천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왜 이렇게 괴상한 소문이 났죠?”
그러게, 왜 이렇게 괴상한 소문이 났지? 만약 사봉봉이 틀리지 않았다면 묵용린은 벽요궁에서 세 번이나 일을 당했다.
첫 번째는 대혼 첫날 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마상풍이라지만, 그건 그녀가 잘못해서 퍼진 소문이었다. 두 번째는 배탈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독극물 사건이 세 번째였다. 그녀가 알기로, 묵용린이 벽요궁에 간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주 문제가 생긴단 말인가?
그녀는 오늘 허 귀비의 그 확신에 찬 얼굴을 떠올렸다. 허 귀비는 그녀에게 장담하듯 말했다.
“당신은 영원히 황상의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겁니다.”
묵용린이 그녀를 미워하지 않아도 그녀는 아이를 품을 수 없는데… 어린 황제는 그녀를 무서워해서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을 텐데…….
순간, 어떤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