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9화
사봉봉도 허리를 굽히고 조각 맞추기를 살펴보았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조각 맞추기는 아주 정교하게 꾸며져 있었다. 테두리마다 무늬를 새겼고, 밑부분에는 흐릿한 암문이 그려져 있었다. 큰 대나무 상자의 뚜껑을 열자, 작은 대나무 조각들이 가지런하게 담겨 있었고 은은한 대나무 향이 풍겨 왔다.
그녀는 작은 대나무 조각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감탄을 내뱉었다.
“정말 잘 만들었구나.”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사희는 정중하게 물건을 소개한 후, 자리를 떠났다.
승덕전으로 돌아오니, 황제가 구련환을 풀고 있었다. 황제는 구련환을 보고 사봉봉에게 조각그림 맞추기를 보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등불 밑에서 서책을 보며 눈을 비비는 것보다 다른 걸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더 나았다.
사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묵용린은 구련환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물건은 가져다줬느냐?”
“네, 소인이 직접 가져다드렸는데, 마마께서 무척 기뻐하시고 손을 놓지 못하셨습니다.”
묵용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잠시 후에도 뒷말이 들리지 않자, 그는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황후가 뭐라고 하더냐?”
“마마께서는 황상께 감사하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게 다냐?”
사희가 대답했다.
“아, 네, 그렇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면? 뭐라고 해야 하지?
잠시 침묵했던 묵용린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앞으로 황후 쪽에 하루 세 끼를 네가 직접 가져다주거라.”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치고도 물러나지 않은 사희는 고개를 들어 황제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묵용린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어쨌든 아직은 황후인데, 짐이 그녀를 너무 가혹하게 대우한다는 험담이 들리면 안 되지.”
사희는 아무 말 없이 한쪽으로 물러나며 생각했다.
‘황상, 굳이 변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후 마마께서 고생하는 걸 못 보겠어서 그러시는 걸 소인이 모르겠습니까?’
* * *
묵용린은 남쪽 창문 아래에 앉아서 서책을 읽고 있었지만, 정신은 딴 데 팔려 있었다.
곁눈으로 사희가 그를 여러 번 힐끔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서책을 덮으며 고개를 들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
사희는 몸을 숙이며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황상께 아룁니다, 오늘은 귀비 마마의 생신입니다.”
묵용린은 건성건성 대답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창고에 가서 적당한 물건을 골라 보내면 되지 않느냐?”
사희가 그를 일깨웠다.
“황상, 예년에는 귀비 마마께서 아직 입궐하지 않으셨었으니 사람만 보내어 작은 선물을 건네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궁궐 안에 함께 계시니 황상께서 찾아가지 않으신다면 아무래도…….”
묵용린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짐이 꼭 다녀와야 할 것 같으냐?”
“황상께서 얼굴을 보이시고 함께 식사라도 하는 것이 어떤 선물보다 귀비 마마를 기쁘게 할 겁니다.”
사희는 황제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덧붙였다.
“좌상 대인께서도 오늘 사람을 시켜 벽요궁으로 물건을 보내셨습니다.”
묵용린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창고에서 귀비에게 줄 물건을 골라 와라, 짐이 다녀오겠다.”
사희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소인,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 * *
벽요궁에서는 허 귀비가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특별히 아주 예쁘게 단장했다.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높게 틀어 올려 비선계를 만들었고, 꼬리를 펼친 공작 모양의 화려한 보요를 꽂았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금색 수술이 찰랑거렸다.
그리고 귓가에 비단으로 만든 큰 모란꽃까지 꽂으니 귀티가 넘치고 아름다웠다. 거기에 눈썹은 살짝 높게 그리고 눈가에는 금가루를 뿌렸다. 미간에는 자줏빛 모란 화전을 그려 넣어, 머리에 꽂은 비단 모란꽃과 어우러졌다.
부귀를 뜻하여 꽃 중의 왕이라는 모란과 흔들거리는 공작 보요까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녀가 황후라고 착각할 지경이었다.
금령이 화색을 띠며 문밖에서 뛰어들어 왔다.
“마마께 아룁니다. 사희 공공이 말하길, 잠시 후에 황상께서 오신답니다.”
허 귀비는 기쁜 얼굴로 분부했다.
“어서, 준비는 다 되었느냐? 황상께서는 오신다고 하면 금방 나타나신다.”
금령이 웃으며 말했다.
“마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녀의 일 처리는 항상 신중했다. 길목에 사람을 파견하여 지키고 있으니, 황제가 나타나면 바로 달려와 알릴 것이다.
덕분에 황제가 문으로 들어섰을 때, 식탁에 차려 놓은 음식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상태였다. 보아하니, 때를 딱 맞춘 것 같았다.
허 귀비가 마중 나와 공손히 예를 취했다. 그날 그녀가 노발대발하며 자리를 떠난 뒤, 황제가 자발적으로 그녀를 찾아 주지는 않을 거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바로 이틀 뒤가 그녀의 생일이었다. 사희에게 언질까지 한 끝에, 황제는 오늘 그녀의 궁으로 오게 되었다.
“신첩, 황상께 문안드립니다.”
그녀는 방긋방긋 웃으며 예를 취했다.
묵용린은 팔을 뻗어 일어나라는 손짓을 했다.
“예를 면하오. 오늘은 귀비의 생일이지 않소. 짐이 하마터면 잊을 뻔했소.”
그는 고개를 돌려 사희를 불렀다.
사희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허 귀비에게 전달했다.
“이건 황상께서 마마께 드리는 양지백옥 송자관음送子觀音(아이를 점지해 주는 관음)입니다.”
어안이 벙벙했던 허 귀비는 얼른 표정을 바꾸며 선물을 받아 들었다.
“감사드립니다, 황상. 관음이 참 보기 좋습니다. 신첩, 이 관음상을 모셔 놓고 관음보살께서 황상을 보우하시길 성심성의껏 빌겠습니다.”
묵용린은 한 번도 이런 선물에 신경 쓰지 않았다. 매년 허 귀비에게 보내는 물건은 사희가 전부 도맡아 처리했고, 나중에 사희가 그에게 알려 주면 그뿐이었다. 매년 조금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그런데 올해는 어째서…….
그는 사희를 힐끔 쳐다봤다.
사희는 허리를 구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도 좀 지나쳤다는 것을 알았지만, 남의 것을 받았고 어쨌든 한번 도와줬으니 이제는 깔끔하게 정산되었다 여기면 된다.
허 귀비는 송자관음이 사희가 마음대로 선택한 선물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황제를 향해 교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걸 본 묵용린은 소름이 돋아서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황상, 어서 앉으십시오.”
허 귀비는 앞으로 다가와 묵용린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영십칠이 끼어들어서 그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녀는 화가 나 남몰래 이를 갈았지만, 영십칠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황제는 홀로 탁자로 걸어갔고, 그녀도 그만 자리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황제와 함께 앉는 자리였기에 그녀는 그와 가까이 앉으려 했지만, 묵용린은 손을 뻗어 반대편을 가리켰다.
“귀비는 저기에 앉으시오.”
허 귀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직접 황제에게 술을 따라 주려 했고, 이번에는 묵용린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 마시며 덕담을 건넸다. 그 덕분에 허 귀비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비록 묵용린과 왕래가 많지는 않지만, 젊은 황제가 남녀 간의 다정한 대화를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감히 방자하게 굴 수 없어서 점잖고 단정한 태도와 가벼운 주제로 황제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말이 많지 않았고, 묵용린은 말이 더 없었다. 이따금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 대부분은 침묵에 잠겼다.
허 귀비는 그런 그의 모습이 이미 익숙했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술이 세 순배쯤 돌자, 그녀의 볼에 홍조가 띠었다. 또한 눈가는 붉어졌으며 눈빛도 살짝 흐려졌다.
뺨을 받친 채 황제를 바라보며 그녀가 물었다.
“황상, 신첩이 예쁘지 않습니까?”
묵용린도 이번에는 살짝 취기가 올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쁘오.”
“그런데 황상께서는 왜 신첩을 자주 찾아오지 않으십니까?”
“짐은 많이 바쁘오.”
“신첩이 입궁하기 전에는 그래도 제법 자주 용안을 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첩이 궁에 들어오니 오히려 황상을 뵙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혹시 신첩이 못생겨졌기 때문입니까?”
그녀의 눈가에 뿌연 물기가 차올랐다. 그녀는 눈을 깜빡거리며 묵용린을 바라보더니 취중진담을 하듯이 물었다.
“황상, 말씀 좀 해 보십시오.”
묵용린은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음, 귀비가 예전과 좀 달라지기는 했소. 하지만 못생겨진 건 아니오.”
“그럼 더 예뻐졌습니까?”
묵용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쁘고 못생긴 것과는 무관하오.”
“그럼 뭐가 달라졌습니까?”
허 귀비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번에 새로 만든 의상은 가슴 부분에 복숭아 모양으로 구멍을 낸 것이었는데, 그녀가 탁자에 기대자 깊은 가슴골이 두드러졌다.
그런데 그것은 묵용린의 시선을 전혀 끌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에 꽂힌 공작 보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귀비 머리에 달린 장식이 공작새요?”
“네, 파란 보석으로 장식한 공작입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묵용린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짐은 봉황인 줄 알았소.”
허 귀비가 흐느끼듯 입을 열었다.
“신첩, 입궁하기 전에는 황상께서 신첩에게 봉황을 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묵용린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귀비, 많이 취했소.”
“신첩은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황제에게 한 잔 더 술을 따랐다.
“오늘은 신첩의 생일입니다. 신첩은 아무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황상께서 신첩과 술을 통쾌하게 마셔 주시면 그것으로 족하옵니다.”
묵용린이 말했다.
“알겠소. 그럼 이 술잔을 비우고 짐은 그만 일어나겠소.”
허 귀비는 그가 술을 입에 털어 넣는 걸 바라보았고, 그가 탁자를 짚고 일어서자 얼른 따라 일어나 그의 행동을 가만히 주시했다.
방 안에 있던 아랫사람들은 이미 금령에 의해 밖으로 물러났고, 영십칠도 사희에게 끌려 밖으로 나갔다. 영십칠은 나가기 싫었지만, 사희가 그의 귓가에 한마디 하니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황상께서 낫기를 바라지 않는 것인가?”
영십칠은 침묵했다. 황제의 은밀한 병증은 그들의 근심거리였다. 귀비 마마든 황후 마마든 황제를 고칠 수만 있다면 추후에 어떠한 벌도 달게 받을 것이다.
묵용린은 일어설 때, 머리가 어질어질해 탁자를 짚고 잠시 서 있다가 말했다.
“귀비, 짐은 그만 가겠소.”
가만히 서 있던 허 귀비는 문 쪽으로 가는 그를 보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뒤에서 그를 껴안으며 소리쳤다.
“황상, 가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