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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20)화 (1,120/1,192)

제1120화

허 귀비는 소식을 듣고 벌떡 일어섰다.

“황후가 진짜 냉궁에 갔다고?”

금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마마, 이미 냉궁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듣자니 금천아만 데리고 갔다더군요.”

허 귀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황후에게도 오늘 같은 날이 오는구나.”

“그런데.”

금령이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사가 상호에는 아무 일도 없고, 사 주인장도 자기 저택에서 금족령이 내려졌을 뿐, 하옥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허 귀비의 입가에 떠올랐던 웃음기가 순간 사라졌다. 그녀는 잠시 고풍스러운 선반에 놓인 청자 화병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황상께서는 아직도 황후에게 미련이 남으셨구나.”

그때 어린 궁녀가 들어와 아뢰었다.

“마마, 왕 대총관이 왔습니다.”

허 귀비는 궁녀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내 엄지와 중지를 모아 다소곳한 손 모양으로 가볍게 찻잔을 쥐고는 찻잎을 살살 걷어 내며, 곁눈으로 왕장량이 들어오는 것을 살폈다.

왕장량이 예를 취하자, 허 귀비가 예를 풀라고 하며 물었다.

“대총관이 여긴 무슨 일로 오셨는가?”

“소인, 황상의 뜻을 전하러 왔습니다.”

왕장량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황후께서 중궁의 자리를 잠시 비우셨으니, 현재 후궁의 대소사를 처리하실 분이 없습니다. 황상께서는 귀비 마마께서 후궁 업무를 잠시 맡아 주셨으면 하십니다.”

허 귀비는 가볍게 웃었다.

“덕도 부족하고 능력도 미약한 본궁이 어찌 그런 대업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황상께서는 마마께서 현행의 규율대로 관리하시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허 귀비는 잠시 침묵했다. 현행의 규율이라는 건 황후가 궁비를 절약하기 위해 만든 새로운 규율이었다. 즉, 황제의 뜻은 그녀에게 착실히 규율대로만 집행하고 굳이 뭘 고치거나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였다.

짧은 순간 그녀는 마음속으로 계산을 끝마쳤다.

“황상의 뜻이 그러하다면, 본궁은 마땅히 명에 따를 걸세. 대총관께서 이리 직접 와서 전해 주시다니 참으로 고맙네.”

왕장량이 웃으며 말했다.

“황상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하는 것이 소인의 일인 것을요.”

허 귀비는 황제의 측근에게 줄곧 공손하게 대했다. 금령에게 눈짓으로 왕장량에게 은자 한 주머니를 전하라 명했고, 재삼 사양하던 그는 결국 감사 인사를 올리고 은 주머니를 받아 갔다.

금령이 싱글벙글 웃었다.

“마마, 정말 잘되었어요. 이제 후궁을 마마께서 장관하시니, 저희가 뭐든 할 수 있잖아요.”

허 귀비가 아랫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물었다.

“뭘 하고 싶으냐?”

금령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냉궁은 절대로 좋은 곳이 아니죠. 그렇게 차갑고 습한 곳에서 살면 안 아플 수가 없어요. 어쩌면 저희가…….”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허 귀비의 표정은 다양하게 바뀌었다.

금령의 말을 다 듣고 난 뒤, 그녀는 일어나서 방 안을 서성거렸다.

“그건 너무 극단적인 방법이고 티가 많이 난다. 황상께서는 우둔한 분이 아니시니 분명 알아채실 거다.”

“황상께서는 원래 황후 마마를 좋아하지 않으시잖아요? 알아차리셔도 상관없지 않아요?”

허 귀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가 상호가 무너지지 않으면 황상께서는 그 장사꾼 여자를 건드릴 수 없으실 거다.”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도 사가 상호가 망하지 않을까요?”

금령이 덧붙였다.

“사 주인장은 간도 크지, 어떻게 감히 조정의 황금을 빼돌릴 수 있어요?”

허 귀비는 창가에 서서 옅은 잿빛 연기가 온 천지에 자욱한 것처럼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 걸 바라보았다. 그녀가 나직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얼른 그 일에 대한 조사가 끝나서 사실로 밝혀져야 해.”

사실로 밝혀지기만 하면 사가 상호의 돈은 자연스럽게 국고로 몰수될 것이고, 황제의 수중에는 아무리 써도 다 쓰지 못할 자금이 생긴다. 그렇게 된다면 사봉봉은 더 이상 이용할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 * *

승덕전 안, 묵용린은 뒷짐을 진 채 창가에 서서 넋을 놓고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

그는 운명이 참 기구하다고 여겼다. 막 사봉봉에 대한 선입견을 깨닫고 생각을 바꾸자마자, 사가는 돌연 엄청난 대죄를 저질렀다. 비록 사건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조정의 황금이 사가 상호의 은장에서 발견되었다는 건 이미 뒤집을 수 없는 확실한 증거였다.

사건이 사실로 밝혀지면, 사가의 모든 식솔은 하옥되고 사가 상호의 재산은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국고에 몰수될 것이다. 태상황도 더는 사봉봉과 부부로 지내는 것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사가를 뿌리째 뽑아 버린다면, 그가 가장 싫어하는 두 여자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도 돈을 받기 위해 구차하게 어떤 일에 동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건 아주 좋은 기회였다. 사봉봉을 폐위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가 원하던 대로 허설령을 황후로 책립할 수도 있을 터…….

“황상.”

가난청이 뒤에서 조용히 그를 불렀다.

묵용린이 고개를 돌렸다.

“어딜 갔었느냐?”

“집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한번 다녀가라고.”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가난청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큰일이 벌어졌으니 어머니께서도 당연히 아시게 되었지요. 어머니 생각에 가 대인은 믿을 수 없다며 제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사앵앵 모녀를 위해 사정을 봐 달라는 것이냐?”

가난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궁에서 황후 마마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묵용린은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외간 남자인 네게 황후를 돌봐 달라고?”

가난청은 비록 황제가 그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대하지만 어떤 일은 그가 개입하는 걸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황상,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저의 어머니께서 급한 마음에 그리 말씀하신 겁니다. 이런 일에 어찌 소신이 나설 수 있겠습니까? 청양 전하와…….”

가난청은 원래 성 전하가 있다고 말하려고 하다가 황제의 눈치를 보며 급하게 말을 바꿨다.

“월규 고고가 계시는데, 황후 마마께서 어찌 고생을 하시겠습니까?”

묵용린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냉궁에 살면서도 고생을 안 하면? 홍복을 누리기라도 한단 말이냐?”

가난청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소신이 영안에게 들으니, 이번 사건은 아직 의문점이 좀 있지만 황금을 되찾았으니 의문점을 규명해 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건의 전후 상황을 명백히 밝히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너도 사 주인장이 한 짓이 아니라고 믿느냐?”

가난청이 칼같이 대답했다.

“소신은 사 주인장 짓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사가 상호의 은장에서 조정의 황금이 나왔다. 이건 어찌 설명할 것이냐?”

“은장에 있던 사람들을 조사해야 합니다.”

* * *

그렇게 똑똑한 영안이 어찌 은장 사람들을 조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겠는가? 그러나 아직도 조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연달아 두 명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은장에서 일한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하는데 인원이 부족한 걸 발견했다. 사는 곳을 찾아가 보니, 침상에 누운 채 이미 숨이 끊어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 게 처벌이 두려워서 음독자살을 한 것 같았다.

죽은 두 사람은 모두 은장의 보초병이었다. 은장은 견물생심을 경계하기 때문에 고정된 보초를 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다시 조를 짜서 돌아가며 당직을 선다. 죽은 두 보초병은 같은 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에 보초를 섰고, 앞뒤로 교대하는 관계였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모두 황금을 발견한 은장에서 보초를 선 적이 있었다. 금고 안에 있던 황금은 매일 한 번씩 확인했는데, 수량만 맞으면 굳이 그걸 뒤집어서 보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만약 누군가 황금을 바꿔치기했다면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범인은 바로 이런 허점을 악용하여 감쪽같이 남원의 황금을 사가 상호의 은장에 옮겨 놓았던 것이다.

황금이 뒤바뀐 게 그 보초들의 짓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그들이 죽은 게 매우 의심스러웠다.

영안이 추측하기로, 아마 배후에 있는 주모자의 진짜 목적은 사가 상호의 황금을 훔치는 것이리라. 남원 황금은 밑부분에 명문이 있어서 쓸 수 없으니 사가 상호의 황금으로 바꾸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사가에 누명을 씌울 수도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의 좋은 방법이었다.

사가 상호를 사지로 몰아가는 걸 보면, 이번 사건의 배후는 분명 사가와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니 사가와 갈등이 있었던 사람만 찾아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배후의 주모자는 어쩌면 순전히 돈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을 수도 있다. 사가 상호만이 그런 막강한 재력이 있으니 그 많은 황금을 단번에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영안이 안에서 깊은 사색에 빠져있을 때, 판등 무리는 뜰에서 묵용청양에 대해 수군거리고 있었다.

산응이 물었다.

“대장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어떻게 황상을 직접 만나러 갈 수 있지?”

판등도 입을 열었다.

“맞아, 나도 수상하다고 생각해. 그녀는 안 형과 죽마고우이고 가 대인하고도 친해. 분명히 조정 대신의 천금일 텐데, 대장은 아버지가 땅 부자라고 했어. 그런데 단순한 땅 부자의 딸이 입궁해서 황상을 만날 수 있어? 그게 가능해?”

소마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대장이 사 주인장을 두둔하는 걸 보면 대장과 사가의 관계도 좋은 것 같아. 게다가 대장의 부친이 땅 부자면 두 가문 사이엔 사업적으로 왕래가 있었을 거야. 사 주인장의 딸은 황후가 되었고, 황후라는 뒷배가 있으니 대장이 입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지…….”

소제갈은 쯧쯧 하고 혀를 차며 그들에게 손가락질했다.

“너희들이 그러고도 환경문 사람이냐? 눈썰미들하고는! 소마의 말대로 대장이 입궁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그런다고 황상이 만나 줄까? 그리고 황후 마마는 냉궁에 갇혔는데, 누가 황후 마마의 친우를 신경 써?”

산응이 반문했다.

“그럼, 도대체 대장은 뭐 하는 사람이야?”

“대장이 우리와 이렇게 오래 지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판등이 재촉했다.

“뭘 알고 있는지 얼른 말해 봐. 왜 뜸을 들여?”

소제갈이 엄지만 펴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늘 아래서 제일 센 사람이 누구야?”

“당연히 황상이시지!”

“황상 다음에는?”

“그건 좌상과 우상, 그리고 양 대학사 등 일품 대신들이지.”

“멍청한 놈들! 당금의 황상 말고도 장공주 전하와 황자 전하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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