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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18)화 (1,118/1,192)

제1118화

묵용청양은 마치 청이각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영안과 안월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데, 안월의 눈이 유난히 촉촉했다. 두 볼은 복숭아처럼 발그레한 게 너무 예뻐 눈을 뗄 수 없었다. 영안은 술잔을 들고 멍하니 안월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 속엔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는 한쪽에 서서 씁쓸한 속을 달랬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듣지 못했고 그녀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둘이서 담소를 나누기 바빴다.

그녀는 속상한 마음을 안고 돌아섰다. 그때, 탁자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녀로 바뀌었다.

영안은 술잔을 손에 든 채 여전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그의 눈길에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아기 토끼가 깡충거리며 그녀의 가슴에 부딪치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다.

영안이 그녀의 술잔에 자신의 술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청양, 합환주 한잔할까?”

그녀는 기이한 그의 말에,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붉은색 혼례복을 입고 있었고, 고개를 들어 방을 살펴보니 장롱 위에 팔뚝만큼 굵은 붉은색 화촉이 타오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붉은색 희자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으며 모든 물건은 전부 다 새것이었다.

영안은 신랑 예복을 입고 머리에는 예모를 썼는데, 모자에는 붉은색 꽃송이까지 끼워져 있었다.

그녀의 귀에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이내 술잔을 들고 영안과 팔을 교차하여 단번에 술을 들이켰다.

술잔을 내려놓은 영안이 그녀에게 말했다.

“늦었으니 그만 자자.”

그녀는 웃으며 알겠다고 답했고, 영안은 그녀를 데리고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함께 침상에 뒤엉켜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그의 모습은 조금씩 흐릿해졌다…….

묵용청양은 별안간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자신의 침상 장막이 눈에 들어오자, 멍하니 장막을 바라보며 조금 전 꾼 꿈을 떠올렸다.

그녀가 미친 것이란 말인가? 영안과 혼인하는 꿈을 꾸다니? 게다가 합방까지…….

이상한 꿈을 꿔서 괜히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녀는 아침 일찍 출궁하는 대신 궁 안에서 꾸물거렸다. 어쩐지 영안을 보러 가기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궁에 틀어박혀 있는 건 정말 너무 무료했다. 그녀는 결국 느릿느릿 처소 밖으로 나갔다.

막 봉명궁을 지날 때, 며칠 동안 사봉봉을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사봉봉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복도에서 새 모이를 주는 중이었다. 묵용청양이 다가오자 그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바쁘신 분께서 어찌 시간이 나셔서 이리 와 주셨습니까?”

묵용청양이 고개를 저으며 계단을 올랐다.

“바쁘긴요. 사건에 진전이 하나도 없는걸요.”

사봉봉이 물었다.

“어째서 진전이 없는 겁니까? 황금이 임안성에 있다면서요?”

묵용청양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임안성이 이렇게나 큰데, 어찌 찾겠어요?”

사봉봉이 입을 열려는데 누군가 다가와 문안 인사를 건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유 귀인이었다. 유 귀인은 봉명궁에서 뺨을 맞은 이후로 두 번 다시 제 발로 찾아오지 않았건만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사봉봉은 유 귀인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아직 병색이 다 가시지 않은 모습에 안부를 물었다.

“유 귀인, 안색이 그리 좋지 않네요. 몸이 아직 불편한 겁니까?”

유 귀인은 황후가 자신을 상대해 주자, 계단을 올라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묵용청양에게도 인사를 건넨 뒤 입을 열었다.

“신첩, 지난번에 병이 난 이후로 몸이 계속 이 모양입니다.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지요. 이러다 곧 나아지겠지요. 그보다 신첩, 방금 마마와 전하께서 황금에 대해 얘기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신첩에게 황금을 찾을 좋은 방도가 있습니다.”

묵용청양은 황금을 찾는 일이 가장 시급했기에 서둘러 유 귀인에게 물었다.

“어서 말해 봐요. 무슨 방법인데요?”

유 귀인이 말했다.

“그렇게 많은 황금은 어디에 두어도 안전하지 않지요. 게다가 눈에 잘 띌 겁니다. 눈에도 잘 띄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밖에 없지요.”

묵용청양이 물었다.

“그게 어딘데요?”

유 귀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은장입니다.”

묵용청양이 눈을 번득였다.

“왜 은장을 생각하지 못 했을까?”

묵용청양은 단숨에 환경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영안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어디 갔냐고 물으니 다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묵용청양은 곧장 그들의 미소에 담긴 속뜻을 알아채고 속으로 화를 삭였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또 청이각을 찾아갔단 말인가.

그녀는 화를 억누르며 청이각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문 앞에서 점원이 그녀를 막아섰다. 여인 홀로 이런 곳에 오면 싸움을 걸거나 따지러 온 것이라고 여기기 쉬웠다.

묵용청양은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자신이 온 이유를 설명했다. 싸우는 게 겁나진 않았지만, 이런 곳에서 싸우는 건 조금 떳떳하지 못했다. 특히 어젯밤 그런 꿈까지 꾸고 나니 괜히 뒤가 켕겼다. 만약 상황이 긴박하지만 않았다면 그녀도 여기까지 찾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때, 안에 있던 다른 점원이 고개를 내밀더니, 묵용청양을 알아보고 곧장 손짓했다.

“제가 안월 아가씨와 영 공자를 찾아 드리겠습니다.”

그 점원은 묵용청양에 대한 인상이 퍽 깊었다. 영안이 데려왔던 걸 보았으니, 그는 곧장 그녀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묵용청양은 영안이 어디에 있을지 알고 있었기에 점원이 길을 안내하기도 전에 곧장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뒤따라오던 점원은 그 모습에 괜히 긴장이 돼서 그녀를 쫓아 계단을 올랐다. 정말 그녀가 싸움을 걸러 온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문 앞에 도착한 묵용청양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안월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문을 밀어 안으로 들어가니, 영안이 난간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차를 마시고 있던 그는 사람이 들어온 걸 알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묵용청양은 안월에게 시선을 옮겨 인사를 건넸다.

“방해해서 미안해요. 영안한테 볼일이 좀 있어서요.”

안월이 입을 모으며 웃었다.

“방해라니요. 얘기 나누세요. 저는 내려가서 차를 더 가져올게요.”

그녀는 속 깊은 아내처럼 고개를 숙인 채 묵용청양 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조용히 문을 닫아 주었다. 흠잡을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영안은 아무 말 없이 담담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묵용청양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언짢았다.

“사건 조사 중인데 여긴 왜 왔어?”

“답답해서 차나 한잔하러 왔지.”

“여기서 차 마시면 답답한 게 나아지니?”

묵용청양은 자신이 말해 놓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안월이 곁에 있으니 아무래도 답답한 게 한결 나아지겠지.

“무슨 일로 찾아왔어?”

“나가서 얘기해.”

사실 그녀는 영안이 싫다고 할 것 같아서 그와 실랑이를 벌일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군소리 없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올라오는 안월과 마주쳤다. 그녀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시게요?”

“응, 갈게.”

영안은 멈춰 서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며 몸을 틀어 그녀를 지나쳤다.

묵용청양은 영안의 표정까지 보진 못했지만, 어쩐지 안월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쌀쌀맞다고 느껴졌다. 그녀가 옆에 있어서 그런 걸까? 민망했던 그녀는 안월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영안을 뒤따라 나갔다.

밖으로 나온 영안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말해 봐. 무슨 일이야?”

“황금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생각해 냈어. 그렇게 많은 황금은 어디에 둬도 안전하지 않잖아. 눈에도 쉽게 띄고. 오직 은장만이 눈에 띄지 않게 보관할 수 있어. 그래서 내 생각엔 대형 은장을 조사해야 할 것 같아.”

영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멀지 않은 곳에 은장이 하나 있었기에 그는 묵용청양을 데리고 은장으로 향했다.

요패를 꺼낸 그가 은장 관리인에게 환경문에서 사건 조사차 방문했다고 말하자, 관리인은 두 사람을 창고로 안내했다. 이 은장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보관하고 있던 황금도 많지 않았다. 도둑맞은 황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은 수였고 명문銘文(금석 따위에 새겨 놓은 글)도 달랐기에 두 사람은 창고 안을 한번 훑어본 뒤 밖으로 나갔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묵용청양은 더욱 자신이 생겼다. 어쨌든 이곳은 처음 방문한 은장이고, 임안성에만 크고 작은 은장이 스무 곳이 넘으니 분명 뭐라도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영안은 혹 은장을 일일이 조사하다가 상대의 경계심을 키울까 봐 여기서 조사를 중단했다. 우선 환경문으로 돌아가 인력을 모은 뒤 한꺼번에 조사할 계획이었다.

그날, 환경문의 모든 인력이 총출동하여 각 은장으로 파견되었다.

오후가 되자, 마침내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산응의 조가 잃어버린 황금을 찾았다는 것이다.

남원에서 오는 황금은 아랫부분에 동월의 것과는 다른 명문을 새겨 넣었다. 하지만 명문이 워낙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어디에서 온 황금인지 알아내기 힘들었다. 육안으로 볼 땐 동월의 것과 다른 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환경문에서 명문의 차이점을 쉽게 판별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덕에 마침내 도둑맞은 황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소식을 들은 영안과 묵용청양은 깜짝 놀랐다. 황금을 찾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황금을 찾은 곳이 사가 상호의 은장이기 때문이었다.

사가 상호의 은장에서 도둑맞은 황금이 발견되었다는 건, 설마 사앵앵이 이 일의 배후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사앵앵은 황후의 어머니인데 어찌…….

묵용청양은 사앵앵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지만, 사가 상호의 은장은 임안에서 가장 컸다. 게다가 그 안에 잃어버린 황금 두 상자가 놓여 있었다. 황금 아랫부분의 명문을 하얀 종이 위에 찍어 보니 남원에서 온 게 확실했다.

또 사가 상호의 다른 은장 두 곳에서도 각각 남은 두 상자의 황금이 발견되었다. 증거가 확실하니, 사앵앵이 시인을 하든 하지 않든 그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황금을 찾았지만, 영안과 묵용청양은 기쁘긴커녕 찝찝하기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리니, 어쩐지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황후는 물론 동월의 최고 갑부인 황상皇商까지 연루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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