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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17)화 (1,117/1,192)

제1117화

묵용청양이 영안에게 제안했다.

“비화루가 강호 조직이라면 강호에서 찾으면 되지.”

영안이 물었다.

“강호가 어딘데?”

묵용청양이 산응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호가 어딘데?”

산응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강호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있지요.”

모든 이들이 할 말을 잃었다.

단서를 찾을 실마리가 없자, 산응이 그들을 데리고 강호의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을 찾아갔다.

그는 성이 곽씨라서 강호인들은 그를 곽 서생이라 불렀다. 누가 서생 아니랄까 봐 정말 유생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네모난 두건을 썼고, 청색 장포를 걸친 채 손에는 부채까지 들고 있었다. 얼핏 보면 의젓한 학자 같았다.

“비화루에 관해 물으러 오셨군요.”

그가 미소를 지은 채 부채질을 했다.

“비화루가 여러분들의 물건에 손을 댔습니까? 아님 물건을 강탈해 달라고 청하려는 건가요?”

영안이 물었다.

“비화루가 일을 대신해 줍니까?”

“물론이지요.”

곽 서생이 말했다.

“강호의 사람들은 칼에 묻은 피를 핥아 먹으며 생계를 이어 갑니다. 돈이 되는 거라면 살인에 방화에 약탈까지, 못 하는 게 없지요.”

묵용청양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의 말에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당장 비화루를 잡아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영안의 태도는 달랐다.

“비화루에게 일을 맡기고 싶습니다. 곽 서생께서 전달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곽 서생이 연신 손사래를 쳤다.

“저는 비화루와 아무런 친분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말을 소문낼 수는 있지요. 미리 말해 두겠는데, 비화루의 값은 결코 싸지 않습니다.”

묵용청양이 호기롭게 손을 내저었다.

“일만 잘 처리하면 됩니다. 은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곽 서생이 그들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무얼 하시는 분들입니까?”

영안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꾸했다.

“남북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곽 서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우선 돌아가서 소식을 기다리십시오. 만약 비화루의 사람이 일을 맡고자 한다면 여러분을 찾아갈 겁니다.”

* * *

묵용청양은 비화루에 속한 사람은 분명 흉악하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을 찾아온 사람은 준수한 청년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말씨도 고상하고 예의까지 갖췄다. 전혀 흉포한 짓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가 웃으며 공수를 하더니 자신이 온 이유를 밝혔다.

“여러분께서 비화루를 찾으신다던데, 무슨 일을 맡기려 하십니까?”

영안이 그자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비화루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묵용청양과 나머지 일행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비화루는 신비한 조직이라 하지 않았던가. 한데 이리 대놓고 인정하다니, 무림 내 정의의 협객들이 두렵지 않단 말인가?

영안이 물었다.

“얼마 전 조정의 황금을 도둑맞았네. 당신들이 한 짓인가?”

“그렇습니다.”

그자는 여전히 웃으며 대꾸했다. 긴장을 했다거나 경계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신들이 훔친 건가, 아님 누군가 당신들에게 훔치라고 한 건가?”

그자가 웃으며 대꾸했다.

“비화루의 소식은 은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법이지요.”

“값이 얼마인가?”

“백 냥에 소식 하나입니다. 알려 드릴 수 있는 소식이 있고, 그럴 수 없는 소식도 있습니다.”

영안이 판등에게 턱을 까딱하자, 판등이 품에서 은표 묶음을 꺼냈다. 전부 다 백 냥짜리 소액 은표였다.

“방금 그 물음에 답해 주게.”

“누군가 돈을 지불하고 우리에게 강탈하라고 시켰습니다.”

“그게 누구인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황금은 어디에 있지?”

“임안성에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나?”

“임무를 완성하고 거래를 마쳤으니 그다음 일은 비화루와 상관없습니다.”

영안이 잠시 침묵하다 판등에게 말했다.

“계산해.”

두 질문에 답했을 뿐인데, 판등은 은표 두 장을 건넸다. 그자는 은표를 받아 들고 예를 갖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꼭 능숙한 장사꾼 같았다.

영안이 또다시 물었다.

“만약 우리가 돈을 지불한다면, 그 황금을 다시 빼앗아 올 수도 있나?”

그자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비화루는 돈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습니다. 이쪽저쪽에서 모두 돈을 받는 건 하지 않습니다.”

영안은 더 물을 게 없는지 공수를 하며 인사했다.

“그럼 이만.”

묵용청양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돌리는 그를 바라보며 초조해했다. 비화루 사람이 찾아오면 어쨌든 한바탕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자는 고작 두 질문에 답하곤 이백 냥이나 벌어 갔다.

그녀가 영안을 휙 밀치며 물었다.

“어떻게 저자를 놓아 줄 수 있어?”

영안이 반문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

“붙잡아서 배후에 누가 있는지 실토하게 했어야지!”

“비화루는 소문이 좋지 않지만, 그들의 고용주를 팔아먹진 않아. 그들의 의리이자 강호인의 의리이기도 하지. 우리도 강호에 들어온 이상, 강호의 규율대로 일을 처리해야 해. 만약 저자를 감금하면 일이 더 번거로워진다고.”

그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황금이 임안성에 있다고 하니, 그만 돌아가자. 우선 황금부터 찾은 뒤에 그 배후를 찾아야 해. 비화루는 조직의 상황부터 정확히 파악한 다음에 없애도 늦지 않아.”

결국 영안 일행은 임안성으로 돌아왔다.

임안성은 매우 번화한 곳이라 오가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이렇게 큰 도성에서 어떻게 황금을 찾아낸단 말인가?

거리를 이틀 동안이나 돌아다녔지만, 영안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산응에게 다시 한번 곽 서생을 찾아가 보라고 분부했다. 비화루 사람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게 다리를 놓아 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곽 서생은 산응을 쌀쌀맞게 맞이했다. 그들이 자신을 속였다며, 조정 관료면서 장사꾼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강호인들은 그 누구도 조정과 왕래하려 하지 않으니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한들 비화루에서도 다시는 그들을 만나려 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결국 사건은 여기서 또다시 멈추었고 다들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사 진행 상황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호위병들의 시체를 찾아냈고, 시체를 통해 비화루의 존재를 알아냈다. 그 비화루를 통해 사건의 배후에 누군가 다른 인물이 있다는 것과 황금이 임안성에 있다는 사실까지 도달했다. 며칠 만에 많은 걸 알아냈으니 제법 훌륭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 이후로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영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비화루를 처단하는 게 우선이란 말인가? 누가 이 일을 지시했는지 고문하여 불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강호의 반을 피로 물들여야 할지도 몰랐다. 그가 차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과 비용, 인력, 물자 등이 필요하게 되리라.

* * *

묵용청양은 모처럼 만에 궁에 일찍 돌아왔다. 그녀가 입궁할 때도 날은 아직 저물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두 팔을 흔들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묵용린은 어선을 든 뒤 밖에서 소화를 시키는 중이었는데, 저 멀리 묵용청양이 쏜살같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미간을 찌푸린 그가 사희더러 묵용청양을 불러오라고 분부했다.

묵용청양이 가까이 다가와 배시시 웃었다.

“황형, 불렀어요?”

묵용린이 말했다.

“짐을 보고도 예도 갖추지 않는 것이냐?”

묵용청양은 괜한 그의 허세가 제일 짜증 났다. 그녀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생각 중이라서 황형을 못 봤어요.”

“먹고 노는 것 외에 네가 또 생각할 게 뭐가 있단 말이야?”

“무시하지 마세요. 전 지금 환경문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잖아요. 당연히 사건에 대한 생각 중이었죠.”

그녀의 말에 묵용린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되어가고 있느냐? 짐의 황금은 언제쯤 찾아올 수 있는 것이야?”

“지금 조사 중이에요. 사실 우리가 실력이 워낙 대단해서, 며칠 만에 누군가 배후에서 황금을 강탈했다는 것과 황금이 지금 임안성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나중에 성문을 닫고 샅샅이 조사해 보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언제쯤 찾을 수 있는 것인데?”

“황형, 왜 그렇게 조급해하세요. 당장 쓸 돈이 없는 것도 아니시잖아요.”

“짐이 빚을 졌단 말이다. 빚을 갚기만 기다리고 있던 중이고.”

“지금 황수한테 빌린 돈 말하는 거죠?”

묵용청양이 웃으며 말했다.

“식구끼린데 황수가 그 정도도 안 봐주겠어요?”

묵용린이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짐이 왜 봐 달라고 해야 한단 말이냐? 짐이 갚지 못할까 봐? 영안에게 빨리 사건을 해결해서 짐의 황금을 찾아오라고 전하거라.”

“황형, 사건을 해결하라고 하면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줄 아세요? 여기에 의존해야 한다고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게다가 사방으로 단서를 찾으러 돌아다녀야 하고요.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저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괜찮지만, 영안한텐 재촉하지 마세요. 며칠 동안 한숨도 못 자고 조사 중이니까요. 아침에 보면 눈 밑이 얼마나 거무튀튀한지 몰라요.”

“이런, 그래서 마음이 아픈 것이냐?”

“벗끼리 관심 좀 가져 주는 게 뭐 어때서요?”

묵용린이 고의로 그녀를 놀렸다.

“영안은 신경 써 줄 사람이 따로 있는데, 네가 그리해 줄 필요 있겠느냐?”

“그게 뭐 어떻다고요. 부인은 부인이고 벗은 벗이죠. 혼인을 한다고 해서 벗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묵용청양은 황형이 이런 말을 할 때면 정말 듣기 싫었다.

“그만 갈래요.”

묵용린은 누이가 급히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바보 같은 것, 영안을 좋아하면서 본인의 마음을 아직도 모르는구나.”

묵용청양은 곧장 요대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마음이 답답해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목욕을 한 뒤, 성난 마음을 뒤로한 채 서둘러 잠을 청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산굴에서 있었던 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영안이 그녀를 팔로 꽉 감싸 안았던 일……. 그녀는 미칠 듯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아무리 좋은 벗이라고 해도 이런 행동은 조금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눈을 뜨고 침상 장막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영안은 안월도 이렇게 안아 주었을까? 서로를 껴안고 입도 맞추었을까?

그녀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을 때의 농밀한 모습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가 바로 천하에서 서로를 가장 아끼는 부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얼떨결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는 모습을 몇 번이나 목격했는데, 어떤 땐 그녀의 면전에서 대놓고 그러기도 했다. 그녀는 민망하지 않았지만, 늘 어머니가 난처해하곤 했다.

영안도 안월과 단둘이 있을 땐 그런 모습일까? 청이각 별실에서 문을 닫고 장막을 내리고, 아무 거리낌 없이 서로를 다정하게 대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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