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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15)화 (1,115/1,192)

제1115화

묵용청양은 입을 삐죽거리며 재미없다는 듯 자리를 떴다. 다시 그녀만의 보물들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때, 소제갈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부터 저러고 있던데, 대체 무얼 하는 것이란 말인가?

호기심이 동한 묵용청양은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녀가 소제갈에게 물었다.

“소제갈, 뭘 보는 거야?”

소제갈이 언덕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좀 보세요.”

묵용청양이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모래자갈이잖아. 이상할 게 없는데?”

“이건 새로 지면에 드러난 모래자갈이에요.”

묵용청양이 다시 유심히 살폈다.

“다른 곳이랑 차이점을 못 느끼겠는데?”

소제갈이 손을 뻗어 지면을 쓸자 자잘한 모래자갈이 하천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묵용청양도 그제야 다른 점을 알아챌 수 있었다. 새로 드러났다는 모래자갈은 알갱이가 더 컸고 색도 조금 노랬다. 하지만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곳도 이렇지 않아?”

소제갈이 웃으며 설명했다.

“안쪽은 당연히 똑같죠. 다른 건 표층에 있는 모래자갈이에요. 정상적인 곳이라면 표층이 이렇게 쉽게 쓸리지 않아요. 지금 이 모래자갈은 누군가 일부러 흔적을 가리기 위해 뿌린 거예요.”

그때, 영안이 언덕에서 내려와 모두를 불러 모았다. 그가 언덕 아래의 개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산응과 소제갈은 개천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시신이 있는지 찾아보거라.”

묵용청양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누구의 시신?”

소제갈이 답했다.

“당연히 황금을 호송하던 자들의 시신이겠지요.”

그가 영안에게 물었다.

“안 형도 범인이 개천으로 도망쳤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영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대략 이 개천이 시작점인 듯하다. 아래로 흐를수록 폭이 더 넓어지지. 이동하기에도, 물건을 옮기기에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물살이 모든 흔적을 덮어 줄 테니까. 만약 범인이 정말 이곳에서부터 도망쳤다면 실마리도 이곳에서 끊겼을 것이다.”

소제갈이 방금까지 보고 있던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범인은 분명 저곳으로 내려갔어요. 저쪽 비탈에 갈라진 흔적이 있거든요.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은폐했죠. 강호의 수법이에요.”

영안이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가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면 더욱더 내려가서 살펴봐야겠구나.”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서 가거라.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아오고. 여긴 느낌이 영 괴상한 게 오래 머물 만한 곳은 아니다.”

묵용청양이 물었다.

“괴상할 게 뭐 있어? 그냥 좀 외곽 지역일 뿐이잖아?”

영안이 고개를 저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냥 직감이 그래.”

별안간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음침하고 으스스한 날씨에 묵용청양은 등골이 오싹했다. 그녀는 팔을 뻗어 영안의 팔을 감싸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귀신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영안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슬쩍 팔을 빼냈다. 이내 그녀의 이마를 툭 밀치며 말했다.

“담이 그렇게 크면서, 귀신은 무서워하네?”

묵용청양이 말했다.

“귀신을 이기진 못하잖아.”

옆에 있던 판등이 웃으며 몸을 들썩거렸다. 늘 조용하기만 하던 소어조차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덕분에 묵용청양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두려움도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산응과 소제갈을 기다리는 동안, 소어는 나무 아래에 앉아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그는 늘 슬픈 곡조를 연주했다. 황량한 경치마저 어우러지니 더 슬프게 느껴졌다.

묵용청양은 아까 주웠던 돌을 만지작거리며 무릎에 얼굴을 괴고 나지막이 영안에게 물었다.

“소어는 꼭 사연이 있는 애 같아. 뭔지 알아?”

영안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하지 마.”

“있단 말이네?”

묵용청양은 영안의 부릅뜬 눈은 무시한 채, 넉살 좋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나도 알려 줘.”

점점 가까워지는 그 능글맞은 얼굴에, 영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는 정말 그를 남으로 여기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갈 때쯤 산응과 소제갈이 돌아왔다.

그들은 개천을 따라 멀리까지 가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물살에 모든 흔적이 떠내려간 듯했다.

이미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영안은 이들을 데리고 역참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자, 모두들 마음이 무거웠다. 실마리를 찾지 못하였으니 아무런 의논도 할 수 없었기에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그들이 묵는 곳은 유가진이라는 곳으로, 황금 호위대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이틀 전 호위대는 그들이 묵는 역참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다음날 아침 출발 전에 여정을 시작한다는 문서를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그다음 역참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호위대와 황금을 실은 마차가 함께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 두 역참을 오가는 데에는 이틀이 걸리니, 그 정도 시간이면 범인이 황금을 빼돌린 흔적을 지우고도 남았다.

다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기에 아예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부터 먹었다.

영안은 다시 한 번 더 역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심문했다. 어제 역참으로 돌아온 뒤에도 사람들을 심문했었는데, 결과는 역시나 똑같았다.

호위대는 저녁 무렵에 마을에 도착했다고 했다. 매 여정마다 미리 문서를 발송해야 그다음 역참에서 문서를 받고 방을 정리하는 등 준비할 수 있었다.

호위대는 총 열두 명이었다. 바쁜 여정 탓에 매우 피곤했던 그들은 저녁을 먹고 네 상자에 달하는 황금을 방 안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세 사람이 한 방에 묵으며 황금 상자를 하나씩 지켰다.

무사히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열두 명의 호위대는 역참에서 아침을 먹고 황금 상자를 다시 마차에 옮긴 뒤 길을 재촉했다. 모든 게 지극히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음 역참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그제야 호위대와 황금이 감쪽같이 사라진 걸 알게 되었다.

영안은 호위대가 묵었던 방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뒤 방을 청소했기 때문에 그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영안은 판등에게 건량을 준비하라고 분부한 뒤, 모두를 이끌고 어제 갔던 곳으로 향했다.

그들이 도달한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골짜기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은 마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이번엔 모두 개천을 따라 걸어갔다.

한 시진 가까이 걸었을 때, 영안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 세우더니 그 자리에 서서 깊은 고민에 잠겼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표정이 굳어 있었다. 산응과 판등은 산골짜기 양옆으로 돌출된 커다란 바위 위로 뛰어 올라갔고, 소어는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소제갈은 개천 옆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묵용청양만 영문을 알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녀가 입을 열려는데, 소제갈이 손을 흔들며 조용히 하라는 뜻을 내비쳤다. 소제갈이 이렇게 진지한 모습은 극히 드물었기에 그녀는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영안이 침묵을 깼다.

“소어, 한 곡조 불어 봐.”

소어가 허리춤에 끼워 뒀던 피리를 꺼내 입가로 가져갔다.

잠시 뒤, 피리 소리가 산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묵용청양은 더 의아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다들 한가롭게 소어의 피리 연주나 듣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다들 정신을 집중한 채 그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영안은 눈까지 감은 게, 연주에 적잖이 심취한 모습이었다.

곡조는 매우 처연했다. 거기에 바람까지 으스스하게 불어오니, 묵용청양은 또다시 어제처럼 등골이 오싹했다.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영안 옆에 섰다.

영안은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며 알쏭달쏭한 두 글자만 내뱉었다.

“저기.”

저기라니, 뭐가 저기란 말인가?

산응과 판등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와 영안과 같은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겠죠?”

묵용청양이 물었다.

“저기가 뭐 어쨌다고? 대체 무슨 말이야?”

영안이 그녀를 흘기며 말했다.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하지. 넌 아직 정원 외 수습 관원이니까.”

“그럼 네가 좀 알려 줘.”

산응이 대신 설명해 주었다.

“여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그때, 소제갈이 팔로 그를 치며 말했다.

“안 형이 설명하게 내버려 둬.”

영안이 묵용청양에게 말했다.

“어디가 이상한지 발견했어?”

묵용청양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딱히 잘못된 건 없어 보이는데?”

“오는 동안 우린 계속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 하지만 여긴 아니지.”

“새소리가 안 나는 게 이상해? 그냥 우리가 새를 못 만난 것뿐이잖아.”

“새소리가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이 숲엔 아예 새가 없어. 안 그럼 우리가 숲에 들어선 순간, 분명 새들이 놀라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거야. 이게 바로 여기가 이상한 곳이라는 첫 번째 이유야.

두 번째는, 이곳의 바람이 이상해. 소어한테 피리를 불라고 한 건 피리 소리가 골짜기의 바람을 따라 퍼질 테니까 그걸 확인하려는 거였어.

들어 보니, 바람이 한곳으로 쏠렸어. 그곳에 바람을 흡입하는 게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지. 무엇이 바람을 빨아들이게 했을까? 가장 대표적인 건 산굴이지. 그것도 아주 큰 산굴.”

묵용청양이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러니까 저쪽에 커다란 산굴이 있단 말이지!”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자, 영안이 그녀를 잡아끌었다.

“내 옆에 바짝 붙어서 따라와.”

묵용청양이 물었다.

“왜?”

“네 실력이 제일 달리니까.”

묵용청양은 성을 내며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작은 주먹은 영안이 가볍게 움켜쥐었다. 영안은 움켜쥔 손을 풀 생각이 없는지 그 상태로 그녀와 함께 걸어갔다.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네가 십구를 데려왔다면 나도 신경 안 썼을 거야.”

묵용청양이 입을 삐죽거리며 대꾸했다.

“그 자식은 너무 융통성이 없어. 산응이 자꾸 십구랑 맞서려는데 정말 싸움이라도 날까 봐 무섭단 말이야.”

앞서가던 소제갈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모습에 속으로 웃음을 삼킨 그는 다른 동료들을 이끌고 더욱 빨리 앞으로 걸어갔다.

묵용청양은 처음엔 별생각 없었지만, 조금씩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조금 당황한 그녀는 손을 치마에 문질렀다.

“엄청 덥다. 손에 땀이 나네.”

영안도 조금 부자연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날씨가 너무 덥다.”

아무리 더운 날씨라고 해도 숲속은 이상하리만치 음산했다. 바람이 휙휙 불어오는 게, 덥다는 말도 조금은 억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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