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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13)화 (1,113/1,192)

제1113화

묵용린은 사희의 보고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황후가 정말 그리하였다고?”

“예, 양 귀인과 장 귀인의 은자가 모두 봉명궁으로 갔습니다.”

묵용린이 탁자를 내리치며 버럭 호통을 쳤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돈 욕심에 정신이 나간 것이란 말인가? 무려 황후라는 자가, 품계로 장사를 하다니. 동월의 율법을 뭘로 보고? 혹여나 소문이라도 나면 다들 턱이 빠져라 웃어 댈 것 아니더냐?”

가난청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외숙부가 관직을 사고판 일로 소송을 당했는데 이번엔 황후 마마께서 품계를 사고팔다니, 어찌 같은 방향으로 간단 말인가?

“황상.”

그가 타일렀다.

“아마 마마께서 그리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마마를 찾아가 사정을 제대로 파악해 보시지요.”

묵용린은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며 싸늘하게 말했다.

“어떤 이유든 이 과오를 덮을 순 없다. 이번엔 짐이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가 사희에게 분부했다.

“황후를 불러오너라. 뭐라 하는지 들어 봐야겠으니.”

황후가 도착하자, 가난청은 일부러 자리를 비켜 주었다. 혹여나 황제가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 앞에서 황후에게 욕을 퍼붓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난처해지기 때문이었다.

사봉봉도 황제가 그녀를 무슨 일로 불렀는지 예측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체했다.

“황상, 어쩐 일로 신첩을 부르셨는지요. 분부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묵용린이 묵직하게 코웃음을 쳤다.

“아주 대단한 일을 하였던데, 짐이 꼭 말해야 알겠소?”

사봉봉이 웃으며 말했다.

“신첩이 후비들의 품계를 사고판 것 때문에 그러시지요?”

“지금 웃음이 나온단 말이오?”

“황상.”

사봉봉이 탁자 앞으로 두 발짝 걸어갔다.

묵용린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영십칠이 방 안에 없으니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치솟는 분노로 버텼다. 이번엔 반드시 황제로서의 존엄을 지켜야 했다.

“조정 관료와 달리, 후궁 비빈들의 유일한 임무는 황상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신첩, 황상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칠품 귀인과 육품 수의修儀가 황상을 모시는 데 있어서 다른 점이 있습니까? 설마 그들이 승계한다고 더는 황상을 섬기지 않는단 말입니까?”

“…….”

섬긴다는 말이 귀에 너무 거슬렸다. 하지만 사봉봉의 말이 옳았다. 품계에 무슨 변화가 생기든 황후를 포함한 후궁의 모든 여인들은 그를 깍듯이 공경해야 했다.

그는 대답할 수 없어 가만히 침묵만 지켰다.

사봉봉이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황상, 신첩이 이리하는 것은 황상을 위해서입니다.”

“하면 이 돈으로…….”

“당연히 국고를 채우기 위한 돈이지요.”

묵용린의 안색이 조금 누그러졌다.

“황후가 고심한다는 건 짐도 아오. 하나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어쨌든 듣기 좋은 얘긴…….”

“신첩이 한 일인데, 황상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황상께서는 모르는 척하십시오.”

묵용린은 안색이 조금 더 누그러지더니 약간의 웃음기를 보였다.

‘황후는… 역시 제법 괜찮은 사람이구나.’

그는 그녀를 힐난하려고 많은 말을 생각해 두었는데, 보아하니 이젠 필요 없을 듯했다.

그가 목청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짐에 대한 황후의 충성은 짐도 알고 있소. 이번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엔 아니 되오.”

사봉봉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황상, 신첩은 이 방법이야말로 확실하게 돈을 버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입궁한 후비 중 집안이 넉넉하지 않은 여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차라리 신첩에게 이 일로 장사를 하게 해 주십시오. 앞으로 동월의 국고에 은자가 부족하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묵용린이 주저하며 말했다.

“이게 괜찮단 말이오?”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사봉봉이 말했다.

“지금은 인원이 별로 없으니 괜찮으시다면 황상께서 수녀 선발을 앞당겨 주십시오. 그땐 많은 이들이 입궁하는 만큼 수입 역시 아주 쏠쏠할 것입니다.”

“…….”

지금 있는 후궁의 몇 명도 감당할 수 없는데, 만약 수십 수백 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면 그때도 그의 병을 계속 감출 수 있을까…….

그가 고개를 저었다.

“대혼 후 삼 년이 지나야 선발할 수 있소. 이건 대대로 내려오는 제도이니 바꿔선 안 되오.”

“하면 대대적인 선발 대신 세 귀인처럼 조금씩 조금씩 들여 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

묵용린은 더는 이 얘기를 이어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황후, 짐이 말했듯이 이 일은 이번까지요. 다음은 없소.”

사봉봉은 성공한 상인으로서, 관찰력이 유난히 뛰어났다. 조금 전 그녀의 말에 묵용린은 분명 마음이 동한 것 같았지만, 무언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듯 보였다. 그녀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황제가 더는 말을 이어 가지 않으려 하자 그녀 또한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살짝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예, 황상, 알겠습니다.”

* * *

허 귀비는 황제가 품계를 사고판 일로 황후를 문책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유 귀인이 엉엉 울며 그녀를 찾아왔다.

“마마, 저 좀 도와주시어요.”

유 귀인은 소매로 입을 가리며 흐느꼈다.

“양 귀인과 장 귀인은 이제 수의가 되어서는 제게 방을 옮기라고 야단입니다. 만약 황상께서 품계를 높여 주신 거라면 이 아우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 돈으로 산 자리가 아닙니까…….”

허 귀비는 싸늘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눈물 콧물을 훌쩍거리는 유 귀인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더 성이 났다.

“본궁에게 울며 하소연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황상께 얘기해 보시지요.”

유 귀인은 경악한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처량한 눈빛으로 허 귀비를 바라보았다. 길쭉한 속눈썹 끝에 영롱한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허 귀비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하, 참 어여쁘게도 우는구나.’

“그럼 이렇게 하지요.”

허 귀비가 말했다.

“본궁이 승덕전에 함께 가 주겠습니다. 황후께서 하신 일은 분명 조금… 귀인에게 불공평한 처사이니까요. 귀인의 부친께선 국자감 감승이시니 수중에 가진 게 하나도 없을 거라는 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다고요. 귀인이 어찌 나머지 두 귀인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황후는 상인입니다. 물론 상인 때의 습관을 입궁한 뒤에도 버리지 못했지만, 어쨌든 황후잖습니까. 황상 말고는 누가 황후를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유 귀인은 묵용린이 무서웠다. 그를 찾아가자는 말에 조금 위축되었지만, 허 귀비와 함께라면 조금은 자신 있었다. 더구나 이번 일은 분명 황후가 잘못 처리하지 않았던가.

결국 허 귀비와 유 귀인은 시종들을 데리고 승덕전으로 향했다.

* * *

사희는 저 멀리 궁녀들이 누군가를 에워싸고 다가오는 모습에, 곧장 허 귀비라는 걸 알아차렸다. 허 귀비는 궁 안을 돌아다닐 때마다 황후보다 더 많은 이들을 이끌고 돌아다녔다.

그는 서둘러 황제에게 고했다.

“황상께 아룁니다, 귀비 마마와 유 귀인이 오셨습니다.”

묵용린은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던 구련환을 상주서 밑에 끼워 놓고 골치가 아프다는 듯 말했다.

“분명 황후의 일로 온 것이겠지.”

왕장량이 말했다.

“황상께서 만나고 싶지 않으시면 소인이 나가서 사양해 보겠습니다.”

“그럴 거 없다. 안으로 들여보내거라. 어차피 조만간 해야 할 말이다.”

그가 찻잔을 들어 차를 몇 모금 들이켜는 사이, 허 귀비와 유 귀인이 안으로 들어와 예를 갖췄다.

묵용린은 예를 면한 뒤, 유 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궁금한 일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걸 보니, 그의 앞에서 한바탕 울음이라도 터뜨릴 작정이란 말인가?

허 귀비는 황제가 유 귀인을 바라보자, 목청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황상께 아룁니다. 오늘 신첩이 황상을 찾아온 것은, 유 귀인을 대신해 불공평한 처사를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황상께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황후 마마께서…….”

묵용린이 손을 저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 일은 이미 짐이 황후에게 물어보았소.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짐과 약조했소.”

“…….”

허 귀비는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다라고?

그녀는 유 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유 귀인은 곧장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오열했다.

“황상, 부디 신첩의 억울함을 헤아려 주십시오. 흑흑, 양 수의와 장 수의가 신첩에게 거처를 옮기라며 압박하고 있습니다. 신첩이 따르지 않자, 그들은 신첩에게 욕을 퍼부었습니다. 흑흑… 어찌나 상스러운 욕을 하는지, 신첩, 정말 죽고 싶습니다…….”

묵용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리 사소한 일에 죽고 싶다고 말하다니, 나약해 빠졌구나.’

“황후가 후궁을 관장하니, 오품 이하 후비의 승계와 좌천은 모두 황후에게 그 권리가 있소. 솔직히 황후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 수도 없소. 두 귀인이 감사와 공경의 의미로 황후에게 은자를 준 것이니 이는 그들의 사적인 일이 아니오? 짐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오.

또한 거처를 옮기는 것은 귀인의 신분이 그들보다 일급 더 낮으니 응당 그리해야 하는 일이오. 욕설을 퍼부은 일은 후궁의 불화와 관련된 것이니, 이런 일은 황후에게 처리해 달라고 하시오. 그래도 억울한 일이 있거든 황후를 찾아가 얘기해 보시오.”

유 귀인은 그 말에 얼굴의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허 귀비를 바라보았다. 허 귀비가 몇 마디 얹어 주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었다.

허 귀비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말투를 듣자 하니, 대놓고 황후를 감싸고 있었다. 대체 황제가 언제부터 황후를 저리 옹호했단 말인가?

별안간 그녀는 무언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치솟았다…….

* * *

올해는 날씨가 조금 이상했다. 물이 불어나는 시기가 자꾸만 늦어지더니 북쪽 지역에서 대규모 가뭄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어마어마한 양의 구호 은자가 국고에서 빠져 나갔고, 국가 재정이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묵용린은 그때 가난청의 말을 듣지 않고 일찌감치 북쪽 국경에 십만 냥을 보낸 게 후회되었다. 만약 아직 그 십만 냥이 수중에 있었다면 적어도 급한 불은 끌 수 있었을 텐데.

지금 그의 책상에 쌓인 상주서들은 전부 돈을 보내 달라는 내용뿐이었다. 그는 정말 골치가 아팠다.

수심이 깊은 그의 모습에 왕장량이 물었다.

“황상께 아룁니다, 황후 마마를 찾아가 상의해 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왕장량이 말하지 않아도 묵용린 또한 사봉봉을 찾아가고 싶었다. 어쨌든 사봉봉을 들인 건 사가 상호의 돈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자 체면이 깎이는 기분이었다. 뭐랄까, 마치 남편이 밖에서 돈을 다 써 버리고 집에 돌아와 부인이 어렵사리 모아 둔 은자를 가져가는 것 같달까.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찾아가기도 전에 사봉봉이 먼저 그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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