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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12)화 (1,112/1,192)

제1112화

“영안이 정말 기녀를 좋아한다고?”

“네. 제가 직접 만나 보았는데, 정말 괜찮은 여인이었어요.

기홍 고고한테도 슬쩍 떠봤어요. 고고랑 영 대인은 부귀한 아가씨는 바라지도 않고, 깨끗한 집안사람이기만 하면 된대요. 그래서 영안이 난처할까 봐 이렇게 황형을 찾아온 거예요.”

황제가 물었다.

“넌 어릴 때부터 영안과 함께 자라지 않았느냐. 이제 영안에게 좋아하는 여인이 생겼는데, 괴롭지 않으냐?”

“그게 왜 괴로워요?”

묵용청양이 어색하게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기쁘죠.”

황제는 그녀를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선 돌아가거라. 이 일은 짐이 좀 더 고민해 보마.”

황제가 완강히 거절하지 않자, 묵용청양은 희망을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얌전히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묵용청양이 떠난 뒤에도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황제는 한참 뒤에야 쓴웃음을 지었다.

“바보 같은 녀석.”

그는 다시 구련환을 들고 만지작거렸다.

그때, 사희가 들어와 그를 재촉했다.

“황상께 아룁니다. 시간이 늦었사옵니다. 이제 그만 침소에 드시지요.”

황제는 구련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내저었다.

은색 작은 고리가 달그락거리며 줄곧 마찰음을 냈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결국 같은 곳에서 막혔다. 그러던 중 구석에 놓인 서양 괘종이 시간을 알렸다.

또다시 같은 곳에서 실패하자, 황제는 화가 나 구련환을 탁자에 내던졌다.

책상 한쪽에 높게 쌓인 상주서를 힐끔 보니, 속에서 더 천불이 났다. 구련환을 풀어 보겠다고 연달아 사흘 밤을 지새운 탓에 상주서는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내일 가난청이 찾아오면 분명 그를 원망할 터.

성실하고 영명한 황제가 되어야 하는데, 어찌 좋아하는 것에만 빠져 뜻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게 다 사봉봉 탓이었다. 그녀가 구련환을 빌려주는 바람에 이렇게 깊게 빠지고 만 것이다…….

황제는 잠시 고민하다 황후의 잘못을 적는 책자를 꺼내어 이 일을 적었다.

* * *

이튿날 조회를 마친 뒤, 서재를 찾은 가난청은 역시나 원망을 토로했다.

“황상, 어찌 상주서가 줄지를 않았습니까? 대체 계속 무얼 하신 겁니까?”

황제는 못 들을 척 목청을 가다듬으며 화제를 돌렸다.

“오늘 조회 때 짐이 은자 십만 냥을 북쪽 국경으로 보내기로 한 것에 별다른 의견은 없느냐?”

가난청이 말했다.

“북쪽 지역은 형편이 좋지 않아 매년 겨울을 나는 게 무척이나 어렵지요. 장병들은 새로운 솜옷과 모포뿐만 아니라 월동을 위한 식량도 더 많이 필요할 겁니다. 게다가 장군들의 급료까지 합치면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소신 생각으로는 아직 때가 이른 듯합니다. 종종 시간을 끄는 게 필요할 때도 있지요. 소신은 겨울이 되어 그쪽에서 또다시 돈을 보내 달라는 상주서를 쓸까 걱정입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도 맞다. 하지만 짐은 북쪽 지역에 강력한 군대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지금은 몽달과 동월이 우호적인 관계이지만, 그건 몽달의 태상황이 계속 살아 있을 때의 얘기니까. 태상황이 세상을 뜨면 몽달에 있는 짐의 외숙부가 어떤 태도로 나올지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

짐은 언제든 전쟁에 응할 수 있도록 북쪽 장병들의 생활필수품과 모든 군수품을 확보해야 한다. 돈은…….”

그가 웃으며 말했다.

“돈을 잘 버는 황후가 있는데, 뭘 그리 걱정하느냐?”

가난청이 웃으며 말했다.

“황상, 이젠 황후 마마를 매우 믿으시는 듯합니다.”

“짐은 황후의 수완을 믿는다. 황후가 올린 상주서를 읽어 보았는데, 제법 훌륭하더구나. 짐은 재능만 있다면 등용하는 사람이 아니더냐. 황후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그 공적까지 지울 생각은 없다. 짐은 머지않아 황후가 국고를 풍족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 * *

사봉봉은 탁자 앞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 묵용청양이 다녀갔는데, 무심결에 그녀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봉봉, 가 대인한테 들었는데 황형이 북쪽 국경에 은자 십만 냥을 보낼 거래요. 지난번 봉봉이 곽도에게서 되찾아 온 그 십만 냥 아닐까요? 이런 속도면, 봉봉이 돈을 모으는 것보다 황형이 쓰는 게 더 빠르겠어요.”

그녀가 되찾아 온 것이든 아니든, 묵용린은 기개가 넘치는 황제라서 그의 붓질 한 번에 무려 십만 냥이 국고에서 빠져나갔다.

그녀는 사가 상호가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편, 금천아는 그녀에게 다른 얘길 해 주었다. 금천아 역시 묵용청양에게 들은 소식이었다.

가 대인의 큰처남, 그러니까 녹하의 친오라버니가 말단 벼슬을 맡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낮은 관직을 사고팔도록 사주를 받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낮은 서기 같은 벼슬 따위였다.

머리가 나쁜 녹하의 오라버니는 그만 서기 자리 하나를 두 사람에게 팔았고, 결국 부윤의 앞까지 가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녹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거의 초주검이 되었고, 그대로 먼지떨이를 집어 든 채 오라버니를 찾아 관아로 뛰어갔다고 했다.

가 대인은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했고, 좋은 인맥 덕분에 일이 더 커지지 않을 수 있었다. 받았던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것은 물론 배상까지 더 해 주고, 사과도 했다.

이쯤이면 끝낼 법도 한데 녹하는 물러서지 않고 부윤을 압박해 오라버니를 관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금천아가 말했다.

“쯧쯧. 마마, 녹하 고고는 정말 대의를 위해서라면 가족이라도 돌보지 않는 성격이네요.”

사봉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하 고고는 원래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니까. 게다가 황상과도 정이 두터우니 황상 얼굴에 먹칠하는 게 가장 싫으셨겠지. 본궁은 고고가 그리한 게 전혀 놀랍지 않구나.”

“요즘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하는군요.”

“보잘것없는 서기를 은자 오백에 팔 수 있다니, 제법 남는 장사구나.”

사봉봉은 별안간 눈을 번뜩이며 경화에게 물었다.

“본궁이 기억하기론 후궁에서 오품 이하의 승계는 본궁의 의지懿旨만 있으면 가능하다던데 그게 정말이느냐?”

경화가 말했다.

“예, 마마. 동월 율법에 따라 정오품 이하의 궁비는 마마께서 의지를 내리시기만 하면 품계를 승계할 수 있습니다.”

금천아가 눈치챘다는 얼굴로 물었다.

“마마, 가 대인의 처남처럼 품계를 사고파시려는 겁니까?”

사봉봉이 말했다.

“후궁의 여인들은 조정에 참여하지 않으니 품계가 조금 높아졌다 해도 겉만 번지르르할 뿐, 그리 실용적이지 않지. 황상께서 이 일에 관여하지 않으시는 데다 본궁도 본궁을 위해서가 아닌, 황상을 위해 그리하려는 것이다.”

금천아는 맹목적으로 그녀를 숭배했다.

“마마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분명 그러한 것입니다.”

“하면 동태를 살펴보거라. 직접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 * *

궁 안은 어마어마하게 넓지만, 소문은 매우 빠르게 전해졌다.

한 시진도 채 되지 않아 후궁 각 처소의 안주인들이 이 소식을 접했다.

허 귀비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녀가 금령에게 물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고, 정말 봉명궁에서 전해진 소식이 맞더냐?”

“마마, 확실합니다. 소인이 보기에 황후 마마께서 돈독이 단단히 오르신 듯합니다. 하다 하다 이젠 이런 방법까지 생각해 내시다니, 황상께서 아시면 아마 뼈도 못 추릴 텐데요.”

허 귀비가 냉소를 지었다.

“누가 장사꾼 아니랄까 봐, 황후에 올라도 온몸에서 돈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마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희는 그저 재미난 구경거리만 기다리면 됩니다.”

* * *

금화궁의 양 귀인과 장 귀인은 조용히 속닥거렸다.

“아우님, 이 소식이 진짜일까요? 황후 마마께서 정말…….”

장 귀인이 턱을 괸 채 진지하게 말했다.

“지난번 황후 마마께서 내무부 곽도 대인에게서 은자를 받아 낸 방식을 보니, 황후 마마께서는 은자에 흥미가 지대하신 듯해요. 어쨌든 황후 마마께선 입궁 전에 상인이셨으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죠. 상인 눈엔 돈밖에 안 보인다는 말도 있으니 이 소식은 아마 정말일 거예요.

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시도는 해 봐야겠어요. 종육품이라도 얻게 되면 나쁘지 않으니까요. 형님 생각은 어때요?”

양 귀인이 탄식했다.

“황후 마마께서 궁비를 줄이시느라 매달 받던 은자도 삭감되었는데, 어디서 돈을 구하겠어요?”

장 귀인이 그녀를 흘기며 말했다.

“형님도 참, 궁에서 받는 은자가 몇 푼이나 된다고요. 궁에 들어올 때 댁에서 은자를 주었을 거 아니에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요?”

양 귀인이 멋쩍게 웃었다.

“물론 조금 있긴 하지만 많진 않아요. 아마 아우님보다 적을 거예요.”

장 귀인이 말했다.

“뭐 하러 걱정하세요. 부족하시거든 제가 조금 메워 드릴게요. 우리가 어떤 사이예요, 제가 올라간다고 해서 형님이 뒤처질 수는 없죠.”

그녀가 주전을 가리키며 입을 삐죽거렸다.

“형님과 제 품계가 높아진 뒤에도 저분이 잘난 체 하며 으스대는지 어디 한번 보자고요. 그땐 누가 주전에 머물지도 알 수 없는 일이죠.”

“지금은 귀비 마마한테 붙으려 하던데요. 그날 황상께서 벽요궁에 들러 차를 드실 때에도 귀비 마마가 불러 주었다고…….”

“그게 뭐 어쨌다고요. 저분이 귀비 마마한테 붙으면, 우린 황후 마마께 붙으면 되잖아요? 부친께서 그러셨어요, 사람이든 귀신이든 저마다의 길이 있으니 자신이 어떻게 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요.”

두 사람은 잠시 더 의논하다 의견을 통일하고는 함께 봉명궁으로 향했다.

* * *

반 시진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봉명궁에서 나왔다.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했다.

얼마 뒤, 장 귀인 처소의 소태감 둘이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봉명궁을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금천아는 보따리에 싸인 번쩍이는 금원보金元寶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돈 버는 게 이리 쉽다니요. 장 귀인은 정말 돈이 많은가 봅니다.”

사봉봉이 말했다.

“장 귀인의 부친은 태복사 마창협령이지. 별로 높지 않은 관직이지만, 벌이는 아주 좋으니 당연히 은자가 넉넉할 것이다. 양 귀인의 부친은 태상사 박사라 아마 장 귀인보단 조금 덜할 테고.”

금천아가 물었다.

“그럼 유 귀인은요? 돈이 없어서 오지 않는 것일까요?”

“유 귀인의 부친은 국자감 감승이니, 아마 유 귀인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만큼 생각도 많을 테지. 게다가 귀비와 가까이 지내고 있으니 아마 본궁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금천아가 콧방귀를 뀌었다.

“유 귀인이 은자를 얼마나 많이 갖고 오든, 그자에게는 승계를 해 주지 마십시오. 제까짓 게 뭔데!”

경화는 조금 걱정스러웠다.

“마마, 이렇게 하다 황상 귀에 들어가면 어찌합니까?”

금천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마마께서 다 생각이 있으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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