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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100)화 (1,100/1,192)

제1100화

묵용청양이 계란찜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던 사봉봉은 계란찜을 한 숟가락 떠 그녀의 그릇에 덜어 주었다.

묵용청양은 금방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황수는 나를 제일 예뻐해.”

옆에 있던 묵용성도 한 마디 덧붙였다.

“황수, 저도 좀 예뻐해 주세요.”

그 말에 묵용린은 순간 입속에 있던 국물을 뿜었다. 그는 묵용성이 밥상머리 앞에서 저렇게 역겨운 말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다들 묵용린을 이상하게 볼 뿐, 묵용성의 행동은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황제는 혼란스러웠다. 이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고 하는지…….

월규가 급히 수건을 들고 묵용린의 입가를 닦으며 물었다.

“황상, 사레가 들었습니까?”

묵용린은 사봉봉이 묵용성에게도 계란찜을 한 숟가락 떠 주는 걸 보았다.

“그래요, 황수가 전하도 예뻐해 드릴게요.”

그가 놀라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그때 월규가 한 마디 덧붙였다.

“마마, 황상도 예뻐해 주셔야죠.”

어찌 월규 고고까지 이런단 말인가…….

사봉봉은 묵용린을 보며 빙긋 웃더니 계란찜을 한 숟가락 떠 그에게 덜어 주었다.

“황상께서도 계란찜을 좋아하셨습니까?”

그는 달고 부드러운 계란찜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건 묵용성 같은 사람이나 즐겨 먹는 거였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그의 눈에 계란찜이 맛있어 보였다.

식사가 끝나자 시종들이 차를 내왔다.

묵용청양의 주도로 묵용성과 사봉봉은 여전히 열띤 대화를 이어갔고, 묵용린은 또 고립되었다.

그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감추면서 가난청을 그리워했다. 가난청이야말로 묵용린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친구였다. 청양과 성아는 그의 눈엔 영원히 어린아이로 보일 테니 그들과의 대화에 흥미를 느낄 일도 없었다. 그런데 사봉봉은 저들과 어떻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거지?

차를 마신 후, 황후는 오래 머물지 않고 일어났다.

묵용린은 차가운 눈빛으로 황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들어올 때부터 예를 취하며 인사할 때까지 그에게 다른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건 왠지 그녀가 자신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히! 자신은 황제인데!

사봉봉이 떠나자마자 묵용성도 일어났다.

하지만 묵용린은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묵용성을 바라보았다.

묵용성이 잘못 느낀 게 아니라면 황제는 분명 냉소를 짓고 있었다. 황제의 입가가 살짝 휘어지고 자신에게 냉랭한 눈빛을 보이니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궁궐 밖에 떠도는 소문이 황형의 귀에까지 들어가 자신을 혼내려는 걸까?

황제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다시 좀 앉아 보거라.”

묵용성은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황형, 신제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묵용린은 자신의 찻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나이가 적지 않으니 이제 혼사를 의논할 때가 되었다.”

묵용성은 벌떡 일어났다.

“황형! 싫습니다.”

“왜?”

“저는 아직 어립니다. 이제 열여섯이에요!”

“지금 당장 혼인하라는 게 아니라 혼처를 미리 정해 놓자는 말이다. 네가 바깥에서 엉뚱한 짓거리를 하지 못하게.”

묵용성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투덜거렸다.

“제가 무슨 엉뚱한 짓을 한다고 그러십니까?”

옆에 앉아 있던 묵용청양이 누나 노릇을 한답시고 말했다.

“황형,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괜히 뭇 여인들을 희롱하지 못하도록 구속할 필요가 있어요.”

감히 황제에게는 말대꾸를 하지 못했지만 묵용청양은 두렵지 않았기에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누가 뭇 여인들을 희롱한다는 거야! 너나 잘해! 온종일 남자들 틈에 틀어박혀서 부끄러울 줄도 모르고! 진짜 단속해야 할 사람은 너야!”

묵용청양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이게 감히 황저篁姐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어?”

이제 누나보다 머리 하나 큰 묵용성은 목을 꼿꼿이 세웠다.

“때리려면 때려 봐! 누가 무섭대?”

그는 지난번 패배를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다. 분명 그녀보다 키도 컸고 무술 수련도 많이 했는데… 지난번처럼 지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바깥에서 돌아온 월규는 두 전하가 소란을 피우는 걸 발견했다.

“아이고! 왜 소매는 걷어붙이고 그러세요. 서로 싸우지 마세요…….”

묵용린이 말했다.

“고고, 이리 와서 앉으시게. 저 아이들은 상관하지 말고… 맘껏 싸우라고 내버려 두게.”

월규는 황제 곁으로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왜 싸우는 걸 내버려 두세요? 성 전하께서 또 당하실 거예요.”

“당하라고 내버려 두는 거네.”

묵용린이 말했다.

“온종일 궁을 비우고 육황숙을 따라 기루나 돌아다니는 걸 짐이 모르는 줄 아는가? 청양에게 혼나는 것도 나쁘지 않네.”

그 말을 듣자 말리기 어려웠다. 성 전하께서 밖에서 무얼 하고 다니는지 황제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남동생이라고는 묵용성 한 명밖에 없기에 그를 총애했다.

때때로 월규는 성 전하가 비뚤어질까 봐 걱정스럽다고 했지만, 묵용린은 태후께서 성아는 부귀한 왕야가 되길 원하신다며 오히려 그녀를 설득했다. 그는 자기 동생이 하는 일이니 본인이 다 알고 있으며 성아는 절대 삐뚤어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혼내려 한단 말인가?

두 남매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최근에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묵용청양은 싸움이 시작되자 투지가 끓어올랐다. 결국 묵용성이 방 안을 도망 다닐 정도로 그를 패 버렸다.

도망 다니던 묵용성은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 했다. 지난번 싸움에서는 황형이 때맞춰 달려왔기 때문에 처참한 패배는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놈의 누나가 마치 닭을 때려죽일 듯이 달려드니 그로서는 도저히 반격할 방법이 없었다. 좁은 실내 어디에 숨을 곳이 있겠는가.

묵용성은 몇 바퀴를 뛰어다니다가 묵용린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얼른 그의 뒤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황형은 발을 들어 올리고 있었고 묵용성은 발에 걸려 넘어져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묵용청양은 그대로 그의 등에 털썩 주저앉더니 그의 목을 압박했다.

묵용린이 말했다.

“눈이 거꾸로 달린 것이냐? 왜 내 다리로 달려드는 것이냐?”

청양에게 깔려서 대답도 하지 못한 묵용성은 머리를 감싸 안고 주먹질을 받아 내야 했다.

사실 월규는 황제가 일부러 발을 뻗어 성 전하를 넘어뜨리는 걸 보았다. 그녀는 의아했다. 성 전하께서 폐하께 용서받지 못할 과오를 저지르셨나?

때리다 지친 묵용청양은 일어나서 손바닥을 털었다. 그녀는 문득 기분이 상쾌해졌음을 느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나면 속이 후련해졌다.

묵용성도 달빛처럼 하얀 장포를 털고 머리칼을 정돈하면서 황제를 원망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황형, 제가 괴롭힘을 당하는데 어찌 보고만 계십니까?”

묵용린은 느릿느릿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앞으로 이 황형은 너희들의 사이에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

“에?”

묵용성은 입을 쩍 벌렸다.

“황형, 그럼 전 앞으로 계속 이렇게 맞고 살라는 말입니까?”

“사내가 되어서 여인도 이기지 못하면서… 그런 말이 나오느냐?”

묵용린이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무술 수련이나 열심히 하거라.”

묵용성은 고개를 푹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용린은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짜증이 났다. 감히 이런 꼴로 황수를 탐해?

“둘 다 처소로 돌아가거라!”

묵용성은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참지 못한 채 자리를 떴다.

묵용청양 역시 제 처소로 돌아가려는데 문득 묵용린이 그녀를 불렀다.

“넌 나와 함께 서재로 가자. 너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묵용청양은 기뻐서 팔짝팔짝 뛰며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서재까지 가서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분명 중요한 일이었다. 황형이 그녀에게 중요한 소임을 맡기려는 건가?

서재에 들어서자 왕장량이 문을 걸어 잠갔다.

묵용청양은 잔뜩 기대에 차서 얼른 물었다.

“황형, 저에게 할 말이 뭐예요?”

묵용린이 서안 뒤에 앉으며 물었다.

“성아가 혹시 사봉봉을 좋아하느냐?”

깜짝 놀란 묵용청양은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황형, 어떻게 아셨어요?”

묵용청양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 같아 얼른 입을 가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묵용린은 차분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물었다.

“그렇게 고개를 가로젓는 건 무슨 뜻이냐?”

묵용청양은 어떻게 해야 말실수를 수습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런데 황형이 또 입을 열었다.

“비록 넌 짐의 누이동생이지만… 군왕을 기만하는 죄는 무거우니 똑바로 생각하여 말하거라.”

묵용청양은 황형이 사봉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아가 사봉봉을 좋아하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만, 황형 혼자만 모르고 있었을 뿐.

그녀는 오래 망설이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성아는 봉봉을 좋아해요. 하지만 황형은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봉봉이 성아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성아를 단순히 동생으로만 여겨요. 이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묵용린은 어리둥절했다.

“다들 알고 있다고?”

“네! 아버지, 어머니, 월규 고고 그리고 가 대인…….”

묵용청양은 손가락으로 한 명씩 꼽으며 헤아려 보는데 도저히 다 셀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세는 걸 포기하고 한 마디로 요약했다.

“황형을 제외하고 모두가 다 알고 있어요.”

“…….”

그렇다는 건… 모두들 그가 자기 동생이 좋아하는 여자를 빼앗아 대혼을 했다고 생각한다는 거 아닌가?

묵용린은 한참 침묵에 빠져 있다가 누이동생에게 물었다.

“네가 느끼기에 사봉봉이 성아를 좋아하지 않는 건 확실하느냐?”

“확실하고 또 분명해요.”

묵용청양이 말했다.

“성아도 알아요. 그렇지 않았으면 황형과 혼인할 때 녀석이 난리를 쳤을 거예요.”

묵용린은 문득 대혼 소식을 듣고 달려온 묵용성을 떠올렸다. 그때는 단순히 동생이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이런 진실이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그때, 성아의 마음속에는 거대한 파도가 몰아쳤으리라. 그런데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묵용린이 오랫동안 말이 없자 묵용청양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황형, 혹시 마음에 담아 두는 건 아니죠?”

묵용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하지만 짐이 일찍 알았다면 사봉봉을 성아에게 시집보냈을 것이다.”

“그건 안 돼요. 황형.”

묵용청양이 말했다.

“봉봉은 성아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녀는 짐도 싫어했지만, 짐과 혼인하지 않았느냐?”

“그건 황형이 강요한 거잖아요.”

“짐은 성아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최소한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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