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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081)화 (1,081/1,192)

제1081화

소제갈이 영안에게 물었다.

“안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영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척홍이 두 명일 가능성은 없을까? 사평에 한 명, 통녕에 한 명.”

그의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일척홍이 두 명이라고요? 안 형,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영안이 설명했다.

“첫째, 시집갈 처녀에서 어린 과부로 대상이 바뀌었고, 둘째는…….”

그는 통녕의 지도를 펼쳐놓고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가리켰다.

“통녕에서 일어난 사건은 모두 도시 서쪽에서 일어났어. 이 일대는 빈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집이 좁고, 식구도 많지 않지. 또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어 범행을 저지르는 데 용이해.”

그는 다시 사평의 지도를 펼쳤다.

“그러나 사평의 경우는 달라. 두 건은 서쪽에서, 두 건은 동쪽에서 벌어졌지. 사평에 있는 일척홍은 빈부의 구분이 없다. 부유한 자들이 사는 곳, 심지어 호위가 있어도 상관하지 않았지. 만약 이것이 한 사람의 소행이라면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다들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영안의 분석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 두 명의 일척홍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길래? 만약 정말로 두 명의 일척홍이 존재한다면, 세 번째 일척홍이 있는 건 아닐까? 분석하면 할수록 의문점도 많아지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현부에서 객잔으로 돌아올 때, 묵용청양은 평소와는 달리 침묵에 빠졌다.

판등과 산응은 그런 그녀가 낯설기만 했다. 마치 무슨 계략을 꾸미는 것 같아서 두 사람은 자꾸만 그녀를 관찰하게 됐다.

과연, 객잔에 이르자 묵용청양은 점원에게 방으로 술과 안주를 가져다 달라고 하더니 판등과 산응을 불러서 말했다.

“우리 야식 먹으면서 의논을 좀 해 보자.”

판등은 곧장 경계심을 드러냈다.

“무슨 의논요?”

산응은 청옥 주전자에 담긴 술을 보며 심호흡을 하더니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말해 봐요. 대장, 무슨 일이에요?”

묵용청양은 판등을 끌어다 앉히며 다독였다.

“뭘 그렇게 긴장해? 내가 너희들에게 나쁜 짓을 하라고 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두 사람에게 술을 따라 주더니 자신의 잔도 채웠다. 그녀는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 이 술잔을 비우고, 우리 힘을 합쳐서 일척홍을 잡자!”

그녀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모르지만, 일단 술이 너무 향기로워서 유혹을 참기 어려웠다. 판등과 산응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술잔을 싹 비웠다. 우선 술부터 마신 뒤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묵용청양이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자 판등과 산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묵용청양은 질색하는 그들을 나무랐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데 너희들은 뭐가 두려워서 빼는 거야?”

판등과 산응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안 형이 날 찢어 죽일 거예요.”

“이런 겁쟁이들!”

묵용청양이 말했다.

“사건만 해결되면 영안은 오히려 우리에게 고마워할 거야. 도대체 뭐가 두렵다는 거야?”

“지난번에 대장이 그 방법을 제안했을 때 안 형이 얼마나 화를 냈는데… 진짜 그걸 하겠다고요?”

묵용청양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게 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야! 황상께서 명을 내리셨잖아. 한 달 안에 사건을 해결하라고 하셨으니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어. 만약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항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무시무시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걸? 내가 너희를 겁주는 게 아니야. 황제는 영안보다 훨씬 무섭다고!”

산응이 물었다.

“대장이 황상을 어떻게 알아요?”

“당연히 영안한테 들었지.”

묵용청양은 얼굴색도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영안이 그랬어. 황제는 정말 흉포하고 잔인하다고. 황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고. 가볍게는 태형에 처하고 무겁게 처벌할 땐 목을 친다더라! 게다가 시시비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벌을 내린대.”

산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뜻은 황상께서 혼군이란 말이에요?”

묵용청양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난 그런 말 안 했어. 네가 한 말이야.”

“대장이 그랬잖아요. 황상께서 시시비비도 가리지 않는다고…….”

“어쨌든 나는 혼군이라고 말하진 않았어.”

“대장, 억지 좀 그만 부리세요. 분명 대장이 황상을…….”

판등이 그들의 말장난에 끼어들었다.

“지금 이걸 논쟁할 때가 아니잖아. 빨리 대장을 설득해야지! 안 형은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인데 우리까지 번거롭게 할 수 없어.”

“이게 어째서 번거롭게 하는 거야?”

묵용청양은 불만스럽다는 듯 판등을 노려봤다.

“우리는 영안을 위해 근심을 덜어 주려는 거야.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면 황상이 영안에게 어떤 중벌을 내릴지 몰라. 영안을 위해서라도 다시 생각해 봐!”

그녀가 뭐라고 말하든 판등과 산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기만 할 뿐, 더 이상 그녀의 의견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들은 배불리 먹고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지만, 묵용청양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남은 술과 안주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히 그녀의 계획은 완벽한데, 왜 저들은 동의하지 않는 거지? 하지만, 그녀는 쉽게 단념하지 않았다.

이튿날,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귀중한 장신구를 모두 떼어냈다. 그리고 전당포에 가서 반쯤 낡은 옷 두 벌을 구해 작은 보따리 하나를 메고 통녕성 서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계획을 이미 다 짰다. 일척홍이 성 서쪽에서 범행을 벌이는 이상, 그녀는 어린 과부의 신분으로 작은 방을 하나 얻었다. 사냥감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어린 과부 분장을 하기에 그런대로 괜찮았다. 낡은 옷과 얼굴에서는 근심이 가득한 슬픔이 드러났다. 대외적으로, 그녀는 남편과 통녕에 사는 친척에게 의탁하러 왔는데 오던 도중에 남편이 병에 걸려 죽고, 그녀만 겨우 통녕에 도착했다는 설정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친척도 만나지 못해 객잔을 전전하다가 더는 버틸 수 없어서 우선 작은 방을 얻었다고 했다.

통녕성 서쪽 지역은 인구도 많고 유동성이 높았다. 누군가 떠나면 또 누군가 나타났다. 그래서 늘 빈집이 있기 마련이었고, 묵용청양은 쉽게 작은 방 한 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방을 보여 주던 노파는 선심을 쓰며 그녀에게 알려 주었다.

“밤에 잠을 잘 때는 물건으로 문을 받치고 자는 게 좋아요. 요즘 이 동네는 안전하지 않아요. 일척홍이라는 도둑놈이 나타났으니 조심해야 해요.”

묵용청양은 노파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속삭였다.

‘그가 와야 좋은 거예요. 저는 일척홍을 잡으러 왔어요.’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객잔으로 돌아왔다.

마침 판등과 산응은 그녀가 사라진 걸 알고서 미치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순간 일척홍이 그녀를 납치해 간 줄 알았지만, 무사히 돌아온 그녀를 보고 우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들은 잔뜩 화가 난 상태로 그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대장, 나가면 나간다고 한마디 해 주셔야죠.”

“맞아요. 점원에게 한마디 남겼으면 얼마나 좋아요? 우리가 걱정하지 않도록.”

묵용청양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일척홍이 날 잡아갔을까 봐 걱정했어? 설마 농담이지? 내가 영안은 못 이겨도 설마 일척홍을 못 이길 것 같아?”

판등은 그제야 묵용청양의 차림새가 수상한 걸 알아차렸다. 그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대장, 이게 무슨 꼴이에요?”

“어린 과부 분장이야.”

묵용청양은 양팔을 벌리고 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어때? 그럴싸해?”

판등과 산응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어젯밤에 그렇게 많이 얘기했는데 모두 소 귀에 경 읽기였어요? 왜 그렇게 고집이 세고 사람 말을 안 들어요?”

묵용청양은 이왕 이렇게 된 거 턱을 치켜들고 그들에게 다 털어놓았다.

“방도 이미 다 빌렸어. 통녕성 서쪽에 있어. 일척홍은 서쪽에서 범행을 저지르니까. 나는 거기서 그를 기다릴 거야. 아직 아무런 성과도 없으니까 영안에게는 말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시켰다고 이를 거야.”

그녀와 한참을 대치한 끝에 판등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계획인데요?”

“그루터기에서 토끼가 오기를 기다리는 거지. 난 거기서 며칠간 지낼 테니까 너희 둘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면 돼. 일척홍이 나타나면 우리 셋이 힘을 합쳐서 그자를 잡는 거야. 그러면 다 해결되는 거잖아?”

산응이 말했다.

“대장,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쉽게 잡히면 그건 일척홍이 아니라고요.”

판등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알았어요. 정 그렇게 하고 싶다면 저희가 대장 계획대로 움직일게요. 단, 이번 일은 안 형에게 보고해야 해요.”

“안 돼! 영안이 알면 분명히 못 하게 막을 거야. 영안 때문에 망칠 순 없어.”

묵용청양이 성질을 부리며 반문했다.

“나도 환경문 사람인데, 왜 나만 일을 못 하게 하는 거야? 내가 여자라서? 내가 남자보다 못한 게 뭔데?”

그녀가 한바탕 토로하자 판등과 산응은 차마 대꾸하지 못했다. 그녀는 보통 남자보다 훨씬 강했다.

판등과 산응은 몰래 속삭였다.

“됐어. 이렇게 하자. 어차피 우리 둘이 잘 살피면 별일은 없을 거야. 하루나 이틀이 지나도 일척홍이 나타나지 않으면 대장도 시들해지겠지.”

산응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렇게 묵용청양은 통녕성 서쪽 골목에서 생활했고, 판등과 산응은 그 집 근처를 지켰다.

하지만 이틀 밤이 지나도록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고, 일척홍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묵용청양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판등과 산응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일척홍이 눈치챈 것 같아.”

산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그럴 리 없어요. 우리가 궁중의 암위에는 비할 바 못 되지만, 작정하고 숨으면 절대 들키지 않아요.”

묵용청양은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초저녁에는 여기에 오지 마. 만에 하나 일척홍에게 들키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거야. 야심한 밤에 살그머니 다시 와.”

“그런데 일척홍이 초저녁에 나타나면 어떻게 해요?”

“야심한 밤이야말로 사람이 가장 깊이 잠든 때지. 일척홍이 강호 사람이라면 이걸 모를 리가 없어. 경솔한 행동으로 놀라 도망가게 하지 말고, 오늘은 밤늦게 와. 만약 일척홍이 일찍 오면 내가 방법을 동원해서 그를 잡아 둘게. 그럼 너희들이 와서 곧바로 잡아가는 거야.”

판등과 산응은 서로 상의한 끝에 한번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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