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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080)화 (1,080/1,192)

제1080화

전가가 고용한 호위는 위무권관威武拳館의 권법사拳法師였다. 위무권관은 사평에서 가장 큰 권법관으로, 관장 허세강許世強은 덕이 높고 문하에 제자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들이 막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이얏 하는 기합소리가 들렸다.

대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회색 훈련복을 입은 제자들이 방진을 형성한 채 사부의 구령에 맞춰 일제히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묵용청양은 이런 곳을 제일 좋아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방을 둘러보느라 앞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어떤 사람과 세게 부딪칠 뻔했다. 다행히도 그가 마침 그녀를 부축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주먹을 들어 올리며 공수했다.

“누추한 이곳을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묵용청양은 그 사람을 유심히 살폈다. 키가 크고 용모가 수려하며 온화한 미소를 가진 청년이라 단번에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신이 허 관장이세요?”

그녀는 약간 의아했다.

“이렇게 젊은데?”

청년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 관장은 저의 아버지이시고, 제 이름은 허문헌許文軒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다양한 업무는 제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판등과 산응은 공수하며 안부를 묻고 찾아온 목적을 설명했다.

허문헌은 권법 수련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전가에 고용되었던 호위는 바로 저들입니다. 키가 큰 사내가 유철劉鐵이고 작은 사내가 양광승楊廣勝이지요. 사건이 벌어진 후, 전가에서 저들을 내보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가서 두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곧 유철과 양광승이 다가왔다.

판등이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대답하는 말에 허점이 없었고 표정 또한 자연스러웠다.

객잔으로 돌아온 뒤에도 판등은 흉악범 일척홍이 새로 나타난 범죄자이며 현지인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단시간 내에 피해자들의 사정을 파악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범인은 이 지역 출신으로 피해자들과 다 아는 사이일 거라는 추측이었다. 다만 이 네 집안은 가난한 집도 있었고 부유한 집도 있었다. 그들은 서로 알지 못했고 왕래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서로 다른 계층의 네 집안과 왕래할 수 있었을까?

다들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튿날 오전, 판등, 산응과 함께 현부를 나선 묵용청양은 시끄러운 악기 소리가 들리자 발걸음을 멈췄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자, 길 건너편에 한 줄로 늘어선 혼인 행렬이 보였다. 새빨간 꽃가마와 곁에서 꽃가지를 흔들며 걸어가는 화동도 보였다. 행렬 앞쪽에는 길모를 쓴 신랑이 커다란 말을 타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다. 행렬 일행 중 누군가 거리에 혼인 축하 사탕을 뿌렸고, 아이들과 여인들이 앞다투어 사탕을 주웠다.

묵용청양은 꽃가마를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가마가 가볍게 흔들렸고, 꽃가마에 앉아 있는 새색시가 보였다. 새색시가 머리에 쓴 붉은 덮개를 발견한 순간, 청양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였다.

“알아냈어!”

그녀가 판등을 잡아당기자 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뭘 알아냈는데 이렇게 아프게 하세요.”

산응이 물었다.

“얼른 말해 보세요. 뭘 알아냈어요?”

묵용청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혼례용 면사포가 바로 일 척짜리 붉은 천이야! 일척홍은 바로 면사포였어.”

산응은 어리둥절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일척홍이 왜 매번 범행을 저지르고 붉은 천을 남겼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 붉은 천은 바로 혼례용 면사포였어. 크기가 면사포와 비슷해. 일척홍은 분명 혼사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 거야. 그것 때문에 가슴에 상처를 입고 심사가 뒤틀렸어. 그래서 사람을 죽이고 분풀이를 하는 거야.”

말을 마치자마자 묵용청양은 기대에 찬 얼굴로 판등과 산응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추측이 그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랐지만, 환경문의 고수 두 명은 키득거릴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묵용청양이 물었다.

“왜 웃어? 말 좀 해 봐! 내 추론이 어때?”

“별로예요.”

산응이 말했다.

“화본을 너무 많이 보셨어요. 가슴에 상처를 입는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많나요? 이번 사건은 순전히 악인이 나쁜 짓을 저지른 겁니다. 너무 깊게 상상을 했어요.”

“판등은 어떻게 생각해?”

판등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새로운 추론을 하는 건 좋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건 상상력에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증거를 찾아야 해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범인을 법대로 처벌할 수 있어요.”

옆에서 걸어가던 행인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일척홍을 조사하고 계시오? 서둘러야 할 거요. 방금 보셨소? 방금 지나간 혼례 행렬은 일척홍이 두려워서 서둘러 딸을 시집보내는 거요. 안타깝게도 아리따운 꽃 한 송이가 소똥에 꽂혔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오. 일척홍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홀아비 품에 안기는 게 나을 테니까.”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곤 모두 침묵에 빠졌다.

* * *

묵용청양은 자신의 관점을 고수했다. 그녀는 일척홍이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연쇄 살인범으로 변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최근 한 달 사이에 사평현 성내에서 혼례를 치른 집들을 조사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판등과 산응은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결국 함께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 차례 조사한 결과, 한 달 사이에 모두 열두 가구가 혼례를 치렀으며 집집마다 조사해 보아도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신혼인 부부도 사이가 화목했고, 고부간의 갈등도 없었다.

두 번이나 자기 생각이 틀리자 묵용청양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판등은 일척홍의 무술 실력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호위를 고용한 전가 저택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미향을 사용하는 것도 강호 사람들과 비슷했다. 이렇게 보면, 산응의 추론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현지인의 범행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산응은 일척홍이 강호의 고수이고 상습범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계속 고수했다.

바로 이때, 통녕에서 강간 살인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건 일척홍이 지금 통녕에 있다는 증거로, 세 사람은 모든 걸 내려놓고 단숨에 통녕으로 달려갔다.

* * *

영안은 매우 초조했다. 통녕에 온 지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단서를 얼마 찾지 못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척홍이 그의 코앞에서 또 범행을 저지르다니. 이건 분명 도발이었다.

답답할수록 그의 표정은 더욱더 냉정해졌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으면 온몸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와 도무지 다가갈 수 없었다. 그는 곁눈으로 판등 일행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았다. 그의 시선이 가녀린 신형에게 꽂히자 그의 안색은 더욱더 안 좋아졌다.

“왜 따라왔어?”

그는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임안성에 있으라고 했잖아!”

묵용청양은 순간 그가 조금 무서워져 코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그게… 그러니까…….”

영안이 고함을 쳤다.

“똑바로 말해!”

“할 일도 없는데, 뭐 어때?”

묵용청양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뭐 도와줄 게 있는지 보러 왔어.”

“넌 일을 망치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야.”

영안이 판등에게 명했다.

“저 애를 다시 데려다 줘!”

“난 안 돌아갈 거야!”

묵용청양은 그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읍하며 말했다.

“부문주, 남아서 도울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영안은 얼른 그녀를 일으켰다.

“나한테 패했으니 약속을 지켜야지. 잊었어?”

“네가 이기는 건 당연한 거잖아.”

묵용청양은 새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부문주이고, 나는 단지 정원 외 수습일 뿐이잖아. 네가 나한테 지면, 네 체면이 뭐가 되겠어?”

“…….”

그는 묵용청양이 생떼를 부릴 때는 체면을 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걸 깜빡했다. 아무리 욕해도 쫓을 수 없고, 때리자니 또 손댈 엄두가 나지 않는 이 웬수는 영안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차라리 그녀를 투명 인간 취급하고 상대하지 않는 게 더 나았다.

묵용청양은 그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감히 그에게 더 다가가지 못했다.

원래는 판등과 산응은 통녕 현부에 머물려고 했지만, 묵용청양은 굳이 객잔에 머물자고 고집을 부렸다. 자신이 자꾸 영안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 그의 기분이 더 상해서 그녀를 임안으로 돌려보내려 할지도 몰랐다.

영안도 차라리 그녀를 보지 않는 게 마음이 편했다. 다만 판등과 산응에게 그녀를 잘 주시하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환경문의 일원들은 사건에 대해 토론을 진행했다.

영안은 얼마 전에 발생한 사건 때문에 계속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전의 몇 건과 비교해 볼 때, 이번 사건은 많이 달랐다. 죽은 피해자는 이전의 사건처럼 아가씨가 아니라 어린 과부였다. 혼인을 한 여인에게도 손을 뻗으니, 백성들은 더욱더 공포에 떨었다.

게다가 황제가 준 기한은 한 달이었다. 벌써 보름이나 지났는데, 남은 보름 동안 또 누가 일척홍에게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범행을 저지른 후, 일척홍은 통녕현에 남아 있을까? 아니면 벌써 떠났을까? 설마 사평으로 돌아갔나?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갔을까?

그는 어찌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척홍의 키가 작은지 아니면 큰지, 뚱뚱한지 아니면 말랐는지, 중년 남자인지 아니면 젊은 남자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통녕과 사평은 임안으로 향하려면 필히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매일 이곳을 왕래하는 상인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일척홍이 현지인인지 아니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범행을 저지르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영안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모두 침묵을 지켰다. 기한도 짧고 실마리도 적었다. 일척홍을 본 사람은 모두 살인 멸구를 당했다. 이번 사건은 확실히 조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고요함이 내려앉은 가운데 묵용청양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사평에서 네 건의 사건이 발생했고, 통녕에서 지금까지 세 건이 발생했어. 내 생각에는 일척홍이 아직도 통녕에 있을 것 같아. 그는 네 번째 범행을 저지르고 이곳을 떠날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영안이 물었다.

“어떤 사람은 그런 강박증 같은 게 있잖아. 사평에서 네 건을 했으니, 통녕에서도 네 건을 하고 그다음 장소에도 네 건을 하고… 이런 식으로 규칙을 만드는 거지…….”

영안은 히죽거리며 웃더니 그녀에게 반문했다.

“일척홍이 강박증이란 말이야? 그럼 예전에는 출가하지 않은 처녀를 죽였는데 이번에는 왜 과부를 죽였지?”

묵용청양은 대답하지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쨌든 난 그놈이 통녕에서 또 범행을 저지를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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