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1078)화 (1,078/1,192)

제1078화

묵용청양은 의심스러운 듯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때를 틈타서 영안은 재빨리 소마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다행히 네가 빨리 반응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한바탕 싸움을 벌일 뻔했어.”

소마가 말했다.

“안 형, 정말 사건이 있어요. 일척홍一尺紅이라고 불리는 강간범이 있는데, 사평四平에서 벌써 범죄를 네 건이나 저질렀어요. 사평현 현부縣府는 걱정이 태산이에요. 마침 제가 그곳을 지나던 참에 이 일에 관해 들었는데, 벌써 며칠이나 되었다고 해요. 다만 일척홍을 잡으러 갔는데 갑자기 기척도 없이 사라져서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일척홍이라고?”

영안은 세 글자를 천천히 읊조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힘없는 여인을 괴롭히는 무뢰한을 제일 경멸했다. 이건 대사건까지는 아니지만, 그가 알게 된 이상…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묵용청양이 판등과 몇 마디 담소를 나누던 중,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영안이 나왔다.

“사건이다, 다 들어와.”

그의 말을 듣자마자 다들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영안은 묵용청양의 출입을 허하지 않았다.

“넌 아니야. 넌 네 할 일이나 하러 가.”

“왜?”

묵용청양은 의아한 듯 그를 쳐다봤다.

“나도 환경문 사람이야.”

“넌 여자라서 불편해.”

묵용청양은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내가 여자임을 인정하는 거야? 여자가 왜 불편해? 난 널 무시하지 않는데, 넌 날 무시하는 거야?”

“장난하는 게 아니라, 정말 불편해.”

“불편한 이유를 대봐.”

“강간범 사건이야. 네가 봐도 불편하지 않겠어?”

묵용청양은 그의 팔을 힘껏 뿌리치며 말했다.

“불편할 것도 많다. 내가 제일 용서할 수 없는 게 여자를 괴롭히는 망나니야! 나는 이 사건에 무조건 참여할 거야!”

그녀가 와락 달려가 탁자 한쪽을 점령한 것을 보고, 영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방으로 들어왔다. 이미 들어온 그녀를 끌어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놈의 신분이 무엇인지 그는 좀처럼 그녀에게 강압적으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없다 치고 소마에게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라고 했다.

소마가 설명했다.

“대략 닷새 전쯤, 사평을 지나는데 누군가 관아에 고발하는 걸 보게 됐어요. 안식구가 강간을 당한 채 살해되었다고 했어요. 이건 사평현에서 벌어진 네 번째 강간 살인 사건이었고, 범행 수법도 같았어요. 모두 사람을 죽인 후, 일 척짜리 붉은 천을 여자의 얼굴에 덮어 놓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일척홍이라고 불렀지요.

일 척짜리 붉은 천 말고 현장에 다른 실마리는 전혀 없었어요. 그전까지 사평에서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기에 모두 일척홍이 사평에서만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혹 다른 곳을 다니며 사건을 벌이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판등이 물었다.

“신고된 건 네 건이 전부야?”

소마가 대답했다.

“신고된 건 네 건뿐인데… 신고를 안 한 사건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소제갈이 물었다.

“연쇄 범행인 만큼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겁니다. 다만 일척홍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네요. 아직 사평에 있을까요? 아니면 벌써 도망갔을까요?”

영안이 물었다.

“죽은 여자들에게 공통된 특징은 없어?”

소마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네 명의 여자들은 모두 열다섯에서 열일곱 살 정도로 혼인하지 않은 여인일 뿐 아니라 정혼도 한 적 없다는 것. 거기다 용모가 수려한 것 말고는 다른 공통된 특징은 없어요.”

영안이 말했다.

“현재는 정보가 너무 없어서 일척홍을 잡는 건 무리야. 아랫사람을 풀어서 상황을 좀 더 파악한 뒤에 다시 의논하자.”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묵용청양이 말했다.

“나도 내보내 줘.”

영안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네가 가서 뭘 할 수 있겠어?”

묵용청양이 당당하게 말했다.

“피해자들과 비슷한 조건의 여자를 미끼로 삼으면 일척홍을 유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녀는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바로 적임자야.”

순간 화가 치민 영안은 벌떡 일어나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

“무슨 헛수작이야! 한쪽에 찌그러져 있어. 넌 입을 열 자격도 없어!”

갑자기 폭발한 영안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랐다. 그러나 묵용청양이 그를 무서워할 턱이 있겠는가? 그녀도 똑같이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왜 고함을 지르고 난리야! 너 때문에 다들 깜짝 놀랐잖아! 내 의견이 뭐 잘못됐어? 다들 말해 봐! 괜찮지 않아? 산응, 내 의견이 어때?”

호명된 산응은 불안한 듯 영안을 힐끗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안 형, 청양이 말한 방법도 그럴듯하긴 한데…….”

영안의 섬뜩한 시선이 매섭게 꽂히자 그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비록 일리는 있지만, 역시 안 될 거 같아. 미끼가 되는 건 너무 위험해. 만약 잘못해서 일을 망치면 청양은 죽은 목숨이야.”

묵용청양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탁자를 한 번 더 내리쳤다.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거 같아? 그동안 한 무술 수련은 헛수고가 아니었다고! 일척홍이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영안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다시 말할 필요 없어. 이 일은 상의할 여지도 없으니까.”

“이렇게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게 어디 있어!”

“내가 부문주이니까 내가 결정해.”

“그래도 내가…….”

묵용청양은 말을 뚝 그치고 입술을 쭉 내밀었다. 마치 그 모습이 거위 같았다.

침묵하던 영안이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으면 사건 수사에 참여하게 해 줄게.”

멍텅구리 거위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건 네가 직접 말한 거야! 두말하지 않기! 말한 거 꼭 지켜!”

고개를 끄덕인 영안은 소매를 걷으며 밖으로 나갔다.

“뒤뜰에서 기다리지.”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따라나오려는 걸 보고 말했다.

“너희들은 오지 마. 대장의 체면은 세워 줘야지?”

그 말에 다들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오직 소마만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영안과 묵용청양이 사라지자마자 물었다.

“청양이 그렇게 대단해? 안 형도 못 당할 만큼?”

판등이 설명했다.

“대장은 청양의 별호야.”

영안은 나무 밑에 서서 묵용청양에게 턱을 치켜들었다.

“덤벼.”

누가 못 덤빌 줄 알고? 자세를 취한 묵용청양은 매섭게 주먹을 뻗었다.

영안은 슬쩍 피하더니 몸을 휙 돌려서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고, 그녀는 그의 품으로 딸려갔다. 그는 그녀의 팔을 잡은 채 목덜미를 압박했다.

“항복하시지?”

묵용청양은 승복하지 않았다.

“내가 잠깐 방심했을 뿐이야. 다시 해!”

영안은 그녀를 밀어내더니 다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다시 덤벼.”

묵용청양은 수법을 바꾸었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뻗어 영안의 허리띠를 잡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포고를 잘했는데, 영안도 한때 그녀의 포고 기술에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영안이 자신보다 키가 크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그녀는 그를 땅에 내동댕이치기는커녕 오히려 나무 기둥으로 밀쳐졌고 양손도 뒤로 당겨져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항복?”

“불복!”

이어서 묵용청양은 또 다른 수단을 썼다. 그녀의 아버지가 가르친 것과 가동이 가르친 것, 궁중 사부가 가르친 것, 영가군에서 배운 것 등등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다. 심지어 여러 야비한 수단까지 다 사용했지만, 결과는 영안에게 붙잡혀 담벼락에 짓눌리거나 아니면 나무 기둥에 밀쳐지는 것이었다. 방법은 달라도 결과는 똑같았다.

결국, 기진맥진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뜰을 떠났다.

* * *

인명 사건은 절대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일척홍은 연속해서 범행을 저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녕通寧에서도 강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심지어 두 건이 발생했는데, 이틀 동안 연달아 일어났기에 통녕현 인심은 흉흉해졌다.

사평과 통녕의 현부에서는 임안성으로 상주서를 올렸고 환경문에서 사건 해결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황제는 영안에게 한 달 안에 사건을 해결하라는 명을 내렸다.

소마가 황명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가져오자 영안은 사람을 풀어서 정보를 수집했다. 사평과 통녕은 임안성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그는 일척홍이 혹시라도 임안성에 와서 범행을 저지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만약 일척홍이 임안성까지 와 범행을 저지른다면 환경문뿐만 아니라 황제의 체면도 구기는 셈이었다.

그는 판등과 산응에게 사평으로 가라고 명했고 자신은 소제갈과 소마를 데리고 통녕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묵용청양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공주 전하라면, 비무에서 진 게 부끄러워서라도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수하들에게 임무를 분배했고, 자신은 수하들을 데리고 먼저 출발했다.

확실히 묵용청양은 영안 앞에 나서는 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녀를 따돌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녀는 몰래 판등과 산응의 뒤를 밟아서 사평으로 갔다.

하지만 환경문의 고수인 판등과 산응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를 리 있겠는가. 한참 길을 떠나던 그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대장, 얼른 나와요.”

묵용청양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나무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더니 헤헤거리며 웃었다.

“내가 뒤따라오는 거 알았어?”

판등이 말했다.

“대장, 그냥 돌아가세요. 이번 일은 안 형이 대장을 제외시켰잖아요.”

“자기가 뭔데 날 제외시켜?”

묵용청양은 기분 나쁘다는 듯 투덜거렸다.

“나도 환경문 일원인데 무슨 근거로 나만 따돌리는데?”

“사건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투입될 필요는 없어요. 소어도 얌전히 관아에서 대기하잖아요. 대장은 돌아가서 소어랑 있어요.”

“아, 됐어!”

묵용청양은 질색하며 말했다.

“소어는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하잖아. 같이 있으면 난 답답해 죽을 거야.”

“하지만 안 형이 한 명령이잖아요. 우리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괜찮아. 영안이 처벌을 내리면 다 나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너희 둘은 내가 따라오는 줄 전혀 몰랐다고 말해!”

산응은 황당해하며 물었다.

“이렇게 대놓고 따라다니는데 우리가 모를 수 있겠어요? 이것도 모르면 환경문 사람이 아니죠!”

“그럼, 내가 생떼를 써서 할 수 없었다고 말해. 아님 내가 너희 둘을 죽기 살기로 따라다녀서 도저히 따돌릴 수 없었다고 말해.”

대장, 자기 자신의 능력을 그리 높이 평가해도 되는 거예요? 두 사람은 말없이 생각을 삼켰다.

“영안은 내가 잘 알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면 그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거야.”

판등과 산응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그녀를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솔직히 영안도 청양을 꺾지 못하는데 그들이 무슨 재주로 그녀를 상대하겠는가? 게다가 두 사람과 함께 있는 게 청양에게는 더 안전할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사평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