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0화
네 사람은 그렇게 주루를 찾아갔다.
영안은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목이 조금 탔다.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좀처럼 말을 많이 했다. 특히나 묵용청양이 그의 말에 집중할 땐 왠지 모르게 기세가 등등해져서는 점점 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술을 좋아하는 소제갈은 자리에 앉자마자 점원을 불렀다.
“여기, 좋은 고량주 두 주전자만 주게.”
묵용청양이 말했다.
“고량주가 뭐가 맛있다고. 옥란춘으로 주게.”
소제갈이 민망한 듯 말했다.
“대장, 옥란춘이 얼마나 비싼데요! 더군다나 우린 인원이 많아 한 병으로는 부족할 거라고요.”
묵용청양이 호탕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오늘 내가 사는 거니까 맘껏 마시라고.”
판등이 놀란 얼굴로 묵용청양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장네 집… 진짜 부자구나!”
“당연하지. 내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
영안이 묵용청양을 흘깃거리며 말했다.
“괜히 청양 주머니 사정 생각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건 마음껏 시켜.”
판등이 사양하지 않고 점원에게 물었다.
“상어 지느러미도 있는가? 없으면 우린 다른 주루로 가겠네.”
점원은 눈이 휘어지도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땅을 뛰어다니는 것,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 뭐든 다 있지요. 손님들께서 원하시는 건 뭐든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판등은 사실 영안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만 치려고 했지, 그렇게 비싼 요리를 주문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에겐 그저 평범한 생선이나 고기면 충분했다.
그런데 묵용청양이 곧장 끼어들어 말했다.
“그럼 여기 대표 요리로 알아서 내오게. 우선 입가심용으로 상어 지느러미 요리 네 그릇부터 주고.”
판등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세상에, 역시 누가 부자 아니랄까 봐.”
그렇게 말하다가 그는 불현듯 의아해했다.
“한데 임안성에 황씨 성을 가진 땅 부자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묵용청양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워낙 남한테 드러내는 걸 싫어하셔서… 너넨 잘 모를 거야.”
그 말에 영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싫어하시지. 황제도 내려놓으시고 강남으로 숨어들어 가셨으니.’
요리는 금세 나왔다. 묵용청양이 술을 물처럼 마시기 시작하자 판등과 소제갈은 깜짝 놀랐다. 그제서야 두 사람은 그녀는 여인이 아니라던 영안의 말이 이해됐다.
그들은 술을 마시면서 양부의 사건을 이야기했다.
묵용청양은 아직도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영안, 전자가 차관에서 측간에 간다고 하고 나갔다는 건 어찌 알았어?”
영안이 대충 대꾸했다.
“가 대인한테 여쭤봤어.”
묵용청양은 더 의아했다.
“나도 가 대인한테 물어봤는데 그런 건 안 알려 줬단 말이야.”
“넌 전자가 아니라 양해생에 대해 물어봤잖아. 네가 물어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안 알려 주신 거지. 질문엔 기교가 있는 거야. 넌 아직 멀었어.”
묵용청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양부에서 던진 질문들도 전부 다 교묘하긴 했어. 그런데 난 네가 그들을 으르는 것 같던데. 네가 무섭게 위협하니까 그들이 자백하는 거지.”
“…다음엔 네가 그렇게 해 보시든가.”
소제갈이 설명했다.
“그건 으르는 게 아니라 병불염사兵不厭詐라고 하는 거예요. 전투에서는 속임수를 써도 된다는 거죠. 어떤 땐 명백한 증거를 찾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그런데 모든 실마리를 꿰어 연상하면 십중팔구 그자가 범인이죠. 안 형이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용의자의 표정과 속내를 꿰뚫어 보는 거예요.
전자만 해도 그래요. 그런 분위기에서 안 형에게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인데 전자는 제법 침착해 보였죠. 그건 그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분명 뭔가 찔리는 게 있다는 거죠. 그러다 자신의 손자국을 갖고 있다는 말에 당황하더군요. 양해생은 그자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그래서야 자멸한 셈이죠.”
묵용청양은 궁금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영안을 바라보았다.
“네가 사람의 속내를 잘 꿰뚫어 본다고? 그럼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맞혀 봐.”
영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난 사건의 경위에 따라 용의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거야. 무당이 아니거든?”
묵용청양은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다.
“만약 네가 알아맞혔다면 분명 기뻐했을 텐데.”
그녀의 말에 영안은 조금 궁금해졌다.
“무슨 생각하는데?”
묵용청양이 말했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 중이냐면…….”
그러다 그녀가 별안간 깜짝 놀라 소리쳤다.
“사금언!”
“…….”
묵용청양은 사금언을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니라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혼자 주루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점원을 부르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그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여기 있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사가 주루를 내버려 두고 왜 남의 주루에서 밥을 먹고 있는 걸까? 게다가 혼자 앉아 있는 게 꼭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결국 그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판등과 소제갈에게 말했다.
“친우를 만나서, 잠깐 인사 좀 하고 올게.”
그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판등과 소제갈은 묵용청양이 향하는 곳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금언의 얼굴은 기둥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영안에게 물었다.
“남자인 것 같은데요?”
영안이 말했다.
“남자가 아니라 남동생.”
“대장이 분명 친우라고 했는 걸요.”
“청양보다 어려. 친우 같은 남동생이야.”
판등과 소제갈은 또다시 질문을 건넸다.
“안 형, 대장은 어째 사내들이랑만 어울립니까? 여인인 친우는 없답니까?”
영안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여인이 아닌데 어찌 여인 친우가 있겠어?”
그건 영안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었기에 판등과 소제갈은 서로를 바라보고 웃을 뿐, 더는 묻지 않았다.
묵용청양은 조용히 사금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깜짝 놀란 사금언이 겅중 뛰었다. 하마터면 칼까지 뽑아 들 뻔했지만 그는 그녀를 보곤 곧장 기쁜 기색을 내비쳤다.
“청양,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
묵용청양이 영안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애들이랑 술 마시러 왔어. 네가 보이길래 잠깐 와 봤지. 가서 같이 마실래? 영안도 있어.”
사금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전 그냥 혼자 조용히 있겠습니다.”
묵용청양이 말했다.
“알겠어. 그럼 조용히 있어. 난 우선 저쪽에 있다가 이따가 다시…….”
그녀가 돌아가려 하자 사금언이 붙잡았다.
“가지 마세요. 혼자 마셔서 재미도 없는데 저랑 같이 있어요.”
이 모습을 지켜보던 판등이 입을 쩍 벌렸다.
“안 형, 저 남동생이라는 자 말이에요. 얼굴이 제법 반듯한데요? 둘이 사이도 좋아 보입니다.”
“평범하지, 뭐.”
“안 형, 대장이랑 소꿉동무라면서요. 그러면 저 남동생도 알겠네요?”
영안이 사금언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별로 안 친해.”
판등이 말했다.
“대장은 친우도 많네요. 저 남동생도 소꿉동무겠죠.”
영안은 반찬을 집어 먹으며 담담히 말했다.
“쟨 아니었어.”
사금언은 일고여덟 살 때쯤에야 임안에 왔는데 어찌 소꿉동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한편 사금언은 점원에게 수저 한 벌을 더 달라고 한 뒤, 묵용청양에게 술을 한 잔 따라 주었다.
“자, 여기요.”
묵용청양이 말했다.
“너희 집 주루에서 안 먹고 왜 여기서 혼자 술을 마셔?”
“여긴 절 아는 사람이 없으니 조용하잖습니까.”
묵용청양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걱정이 있는 것 같은데… 말해 봐. 무슨 일이야?”
사금언은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우물쭈물했지만 결국 한숨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용청양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왜, 뭔데? 꾸물대지 말고 어서 말해.”
어린 시절부터 묵용청양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던 사금언은 아직도 어머니인 사앵앵보다 더 그녀의 말을 잘 따랐다. 그런 그녀가 짜증을 내자 그는 결국 투덜거리며 말했다.
“저희 누이 때문에요.”
대혼 후, 묵용청양은 매일 아침 일찍 나와 밤늦게 들어갔기에 사봉봉과 묵용린 사이의 일은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물었다.
“봉봉이 왜?”
사실 사금언도 내막을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대혼 날 밤, 황제가 황후의 봉명궁이 아닌 귀비의 벽요궁을 찾았다는 사실을 들은 바 있었다. 이는 황후에게 있어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궁 안 사람들은 황제가 어떻게 황후를 업신여기고 다니는지 쑥덕거렸다. 머지않아 황후는 냉궁으로 쫓겨날지도 몰랐다.
사금언은 묵용린을 잘 알았기에, 남들이 떠드는 말이 그저 허무맹랑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누이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질 정도라 홀로 술을 마시며 마음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묵용청양은 그의 말을 듣고 한동안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황형이 어째서 봉봉을 그렇게 대할 수 있지? 안 되겠다. 내가 돌아가서 따져 물어야겠어.”
그녀가 제 일처럼 나서 주자 사금언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이렇게 절 도와주시니 어떻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널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다 억울해서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봉봉은 황후잖아. 황후한테는 황형도 최소한의 존중을 해 줘야 한다고. 어떻게 사소한 일로 황후를 벌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이 일은 내가 처리해 줄게.”
그러나 사금언은 그녀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어쨌든 황상이니 너무 충동적으로 말씀드리면 안 됩니다. 그러다 황상께서 누이마저 탓하시면 제 죄가 더 커집니다.”
“이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묵용청양은 불합리한 일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설령 상대가 묵용린이라 해도 바로 잡아야 할 일이라면 그의 앞에서 탁자를 내리칠 수도 있었다.
사금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버지께선 서북에 가시고, 누이는 궁에 가 있으며 혼자 계신 어머니는 늘 예민하십니다. 그 때문에 근심이 있어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청양 누이에게 털어놓으니 다행입니다.”
묵용청양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걱정하지 마. 넌 내 사람이니 내가 널 방치하는 일은 없어.”
사금언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간 고사리 같은 손을 보자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꾸했다.
“네.”
영안은 묵묵히 음식을 먹다가 판등이 히죽대는 소리에 묵용청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마치 건달처럼 사금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고 사금언은 고개를 숙인 채 새색시처럼 얼굴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