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5화
묵용청양은 마침내 유안례를 발견했다. 그는 휘어진 나무 옆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돌다리 위에 서 있었다. 청록색 장포에 네모난 두건을 쓰고, 넉넉한 옷으로 몸을 감싼 그는 매우 허약하고 초췌한 몰골로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미간에는 형용할 수 없는 애수를 품고 있는 듯했다. 묵용청양은 걱정스러운 듯 판등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저기 서 있는 건 아주 위험해. 방법을 찾아서 다른 곳에서 서 있게 해야 해.”
판등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우리는 지금 미행하고 있는 중이니 당분간 모습을 드러낼 수 없어요.”
묵용청양이 말했다.
“저자는 다섯째 이낭을 살해한 범인 같지 않아. 저 얼굴에 나타난 슬픔은 가장한 게 아닌 것 같아.”
판등이 말했다.
“대장, 주관적인 생각에 근거하여 한 사람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은 금기사항입니다. 우리가 사건을 처리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증거이므로 모든 것은 증거로 말해야 해요.”
묵용청양이 물었다.
“그것도 영안이 한 말이야?”
“이건 상식이죠. 그게 아니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뭘 하고 있겠어요? 증거를 찾고 있잖아요? 대장, 이런 학문은…….”
그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갑자기 풍덩 소리가 들려 눈을 돌리니 다리 위에 서 있던 유안례는 보이지 않고 수면 위에 파장이 그려져 있었다. 그가 얼른 다리 위로 뛰어가는데, 또 풍덩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물보라가 쳤다.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니 묵용청양이 보이지 않았다.
판등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막 강물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데, 묵용청양이 물 밖으로 솟아올라 그에게 손짓을 했다.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유안례의 목을 받친 채 그를 강가로 끌고 나왔다. 다리 위와 둔치에는 구경꾼들이 잔뜩 서 있었다.
“웬일이야, 강물에 투신한 사람이 있어?”
“남자가 강물에 뛰어들었는데, 어떤 아가씨가 그를 구했어.”
“아가씨가 강물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는 건 난생처음 보는군. 정말 대단한 여협이야.”
“누가 아니래? 분명 여협일 거야. 수영도 저렇게 잘하다니.”
“이봐! 좀 도와줘! 아가씨가 온몸이 다 젖었어. 누가 빨리 닦을 수 있는 수건이라도 가져와!”
판등이 강가로 달려왔을 때, 묵용청양과 유안례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기슭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는 인파를 헤집고 묵용청양에게 다가갔다.
“대장, 괜찮아요? 다친 데 없어요?”
묵용청양은 누군가 가 건넨 수건을 받아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대답했다.
“난 괜찮아. 이자가 괜찮은지 네가 좀 봐줘.”
판등은 좀 난감했다. 그는 허리를 숙인 채 유안례의 빰을 때렸다.
“이봐요, 설마 죽었어요?”
유안례는 강물에 빠지자마자 구조되어서 물을 두어 모금 마셨을 뿐, 의식은 또렷했다. 겨우 몸을 일으킨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어떤 구경꾼이 투덜거렸다.
“어찌 된 사람이… 구해 줬으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해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죽기로 작정했나 봅니다. 내버려 둬요.”
“아가씨가 마음씨가 참 좋군요. 빨리 옷이라도 갈아입어요. 감기 걸리지 않도록.”
판등이 말했다.
“대장, 우선 객잔이라도 찾아 들어가서 젖은 옷을 갈아입어야 해요.”
묵용청양은 손을 내저었다.
“귀찮게 그럴 필요 없어. 영안네 집이 여기서 가까우니까 거기로 가면 돼.”
판등은 서둘러 인파를 뚫었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영부 쪽으로 갔다.
영부의 문지기는 묵용청양을 볼 때마다 늘 당황했다. 저번에도 흠뻑 젖어서 들어오더니 이번에도 또 흠뻑 젖은 채였다. 그는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안으로 들어가 부인을 모셔 왔다.
기홍은 문지기의 고함 소리에 나왔다가 묵용청양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고, 조상님, 또 왜 이러십니까?”
묵용청양이 말했다.
“고고, 강물에 빠졌어요.”
판등은 영 부인임을 알아보고 서둘러 인사를 건넸다.
“대장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강물로 뛰어든 겁니다.”
기홍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계집종에게 뜨거운 물을 준비하라고 분부하고선 묵용청양을 데리고 곁방으로 향했다.
“아이고, 세상에! 사람을 구하러 강물에 뛰어 들다니요! 그러다 큰일 나십니다.”
묵용청양이 말했다.
“뭐가 무섭겠어요? 전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잘했잖아요. 고고도 알면서 그래요?”
기홍은 정말 화가 나서 얼굴을 무섭게 찡그리며 말했다.
“왜 다른 사람이 구하러 들어가지 않았냐고요!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요?”
판등은 기홍의 말을 듣고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묵용청양이 이미 뛰어내렸다. 그는 아가씨가 강물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이건 거의 본능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묵용청양은 깔끔하게 옷차림을 정리하고 나왔다. 기홍은 묵용청양의 머리카락을 대신 말려 주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다음부터는 제발 이러지 마세요. 고고가 놀라 죽을 지경이에요. 환경문에 들어가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지난번에 고고가 말했듯이 잘 지내셔야 합니다. 위험한 일은 하지 말고요. 영안에게 분명히 잘 돌봐 드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이게 잘 돌본 거랍니까? 기다려 보세요. 나중에 아이 아버지에게 말해서 혼내 주라고 해야겠어요…….”
묵용청양은 기홍이 적잖이 놀라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지금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고고, 배고파요. 맛있는 거 만들어 주세요.”
묵용청양은 기홍의 팔뚝을 껴안고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기홍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듯 그녀의 머리를 쿡 찌르며 나무랐다.
“정말 어쩔 도리가 없다니까요.”
그녀는 수건을 계집종에게 건네주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판등은 입을 열 수 있었다.
“대장, 영 부인만 놀라신 게 아니라, 나도 놀라서 죽는 줄 알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으니 지금쯤이면 대장 소문으로 시끄러울 거예요.”
묵용청양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누가 구하든 마찬가지지.”
“그래도 대장은 아가씨잖아요.”
판등은 툭 숙이며 탄식했다.
“대장이 그렇게 하면 같이 있던 내가 뭐가 되어요?”
묵용청양은 해맑게 웃었다.
“됐어, 별것 아니야. 마음에 두지 마! 이따가 또 가서 유안례를 찾아야지.”
판등은 하늘빛을 보더니 말했다.
“내일로 미룹시다. 유안례 일은 나중에나 다시 얘기해요.”
묵용청양은 반쯤 마른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고 장난치며 말했다.
“그래도 되지. 그럼 내일 다시 가야겠다.”
그녀의 검은 머리 위로 하얀 햇살이 내리쬐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목 뒤로는 아름다운 곡선이 이어지고, 도자기 같은 피부가 검은 머리칼과 대비되면서 더욱더 하얗게 빛났다.
순간 심장이 두근거린 판등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영안은 늘 묵용청양이 아가씨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녀는 분명 아가씨가 맞았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아가씨다. 그는 할 말을 억지로 찾았다.
“대장, 대장은 항렬이 정말 높은 것 같아요. 영 부인도 조상님이라고 부르시네요?”
묵용청양은 깔깔 거리며 웃었다.
“항렬이 높다고 한 건 거짓말이야. 사실 가 대인과 영 부인 모두 손윗사람인데, 내가 어려서부터 장난이 워낙 심하고 말썽을 많이 일으켜서 다들 날 조상이라고 부르는 거야.”
판등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렇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가 대인과 영 부인은 한 가문도 아닌데 왜 다 대장을 조상이라고 부르나 의아했거든요. 그런데 대장 부모님은 그런 대장을 그냥 내버려 두셨어요?”
“애들을 돌보는 데엔 많은 심력이 소모되지.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셔서 내게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셨어.”
“그럼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내가 좋으면 뭐든 해도 된다고 하셨어. 아버지가 다 책임지시겠다고.”
“…저도 그런 아버지가 갖고 싶네요.”
“그건 안 되지.”
묵용청양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천하에 단 한 분뿐인데.”
* * *
묵용청양이 강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했다는 소리를 듣고 모두들 감탄했다. 이제 그녀를 ‘대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다들 납득하는 부분이었다. 다만 영안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는 판등을 후원으로 끌고 가서 호되게 혼을 내 주었다.
판등은 영안이 성질부리는 걸 처음 보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영안은 한바탕 성질을 부리곤 그를 내보내려 손짓했다. 판등은 그의 안색이 조금 누그러지자 물었다.
“안 형, 형님은 청양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어찌 그리 걱정하는 겁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청양을 좋아하는 줄 알겠습니다.”
그 말에 영안의 안색이 또다시 어두워졌다. 그는 판등의 옷깃을 낚아채며 매섭게 말했다.
“네가 뭘 알아? 만에 하나 그 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린 다 죽는 거라고!”
그의 포악한 기세에 판등은 화들짝 놀라 더듬거리며 물었다.
“왜…왭니까?”
영안은 설명하기도 성가셨기에 그를 휙 밀치곤 자리를 떴다. 혼자 남은 판등은 의아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중얼거렸다.
“변명은! 분명 좋아하는 거면서 인정을 안 하네.”
그러고서 앞뜰로 돌아간 그를 묵용청양이 불렀다.
“판등, 우리 오늘 유안례한테 가기로 했잖아! 얼른 가자!”
판등이 대답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영안이 불쑥 끼어들었다.
“넌 오늘 나랑 가. 판등은 소제갈이랑 한 조야.”
묵용청양이 말했다.
“왜? 난 판등이랑 같이 다니는 게 좋은데.”
그러자 영안은 아무 말 없이 판등을 흘겼다. 그 사나운 눈초리에 판등은 서둘러 대꾸했다.
“대장, 오늘은 안 형이랑 가. 안 형을 따라다니면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잖아.”
영안은 뒷짐을 지고 정원을 나섰다. 묵용청양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엔 그의 뒤를 쫓았다.
바깥으로 나온 묵용청양은 영안에게 물었다.
“나랑 같이 다니는 거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같이 가자는 거야?”
영안은 앞만 보며 담담히 말했다.
“어제 같은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차라리 내가 같이 가는 게 더 나으니까.”
그 말에 묵용청양은 흐뭇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걱정돼?”
영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걱정돼. 판등이랑 애들도. 혹여나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목이 다 날아갈 테니까.”
영안의 말에 성이 난 묵용청양은 그를 힘껏 밀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영안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