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1054)화 (1,054/1,192)

제1054화

“맞아.”

묵용청양은 한 번에 인정했다.

“기홍 고고가 만드신 다과니까 이렇게 맛있지.”

영안은 너무 화가 나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너 지금 우리 어머니 다과로 내 수하들을 매수하는 거야?”

판등은 조금 불만스러운 듯 투털거렸다.

“안 형, 이게 숙모님께서 만드신 다과요?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있는데 어찌 숙모님의 다과를 맛보여 주지 않은 거예요?”

“맞아요.”

산응이 맞장구쳤다.

“안 형, 혼자 먹지만 말고 형제들 생각도 좀 하고 그러세요.”

“이건 네가 잘못한 거야.”

묵용청양은 당당하게 말했다.

“어렸을 때, 네가 내 수하일 때 내가 어떻게 했는지 잊었어? 맛있고 재미난 게 생기면 네 것을 빼놓지 않았잖아. 영안, 너는 너무 인색해. 구두쇠야.”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다른 수하들 역시 원망스럽다는 듯 그를 보더니 묵용청양을 따라갔다.

“…….”

잠시 후, 소제갈이 묵용청양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대장, 가 대인과 잘 아는 사이요?”

“응, 우리는 이웃이야.”

“안 형하고도 이웃이라고 했잖아요? 어찌 가 대인과도 이웃사촌이에요?”

“그러게?”

판등이 캐물었다.

“우리를 속이지 마세요. 가 대인과 안 형의 본가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잖아요. 중간에 대로가 가로 질러 있다고요.”

묵용청양은 진지하게 말했다.

“맞아, 그 대로가 바로 우리 집이야.”

수하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

“에이! 거짓말. 어떻게 대로 전체가 집이란 말이에요? 무슨 토착 땅 부자도 아니고.”

묵용청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우리 집이야. 우리 아버지가 바로 그 땅 부자지.”

“거짓말, 거짓말, 난 절대 안 속아…….”

“환경문에 있는 사람을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소리를 듣던 영안은 입가를 끌어올려 미소 지었다. 묵용청양이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유일하게 아는 사람은 바로 그였다. 대로 한 개는 고사하고 온 세상이 그녀 가문인 묵용가의 것이었다.

* * *

영안은 묵용청양이 환각을 쓰는 건 아닌지 의아했다. 환경문에 온 지 며칠밖에 안 되었는데, 말 몇 마디와 다과로 그의 형제들을 모두 매수했다. 그녀를 둘러싸고 매일 대장이라고 떠들어 대서 그의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사람을 뽑을 때, 저들은 엄선하여 뽑은 뛰어난 사내들이었다. 그런데 어찌 묵용청양 앞에 가서는 다과 몇 개에 홀딱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가장 화가 나는 건 그 다과가 그의 집에서 만든 것이란 사실이었다!

그는 탁자에 앉아서 묵용청양과 사내들이 마당에서 웃고 떠드는 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묵용청양이 오기 전, 이곳은 출입조차 소리 소문 없이 이루어지는 신비롭고 엄숙한 환경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온 이후, 마당에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이곳은 난장판이 된 듯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곳이 무슨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잡원大雜院인줄 알 것이다. 그는 걸어 나가서 그들에게 손짓을 했다.

“판등, 소제갈! 따라 오거라.”

그런데 묵용청양이 잽싸게 따라 나왔다.

“사건 조사하러 가는 거 아니야? 나도 가자.”

영안은 그녀를 데리고 갈 생각이 없기에 정색하고 말했다.

“문서 정리하라고 한 거, 다 했어?”

“정리 다 했어. 못 믿겠으면 가 봐.”

영안은 믿을 수 없었다.

“진짜?”

판등이 손을 들었다.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나랑 산응이 함께 정리했어요.”

“다음부터는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은 스스로 해결해. 한 번만 더 도와줄 사람을 찾으면 함께 벌을 받을 거다.”

판등이 투덜거렸다.

“안 형, 전에는 서로 도와야 한다고 늘 말했잖아요. 우리가 대장을 도와야지요!”

“맞아요.”

산응이 맞장구쳤다.

“안 형, 자꾸 대장이랑 싸우지 말아요. 어쨌든 대장은 아가씨잖아요?”

영안은 저 대장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곁눈으로 보니 묵용청양이 그에게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소제갈이 말했다.

“안 형, 청양도 가게 해 주세요. 우리 환경문에 들어왔으니 뭐라도 좀 배워야 하지 않겠어요?”

소어는 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꿋꿋하게 묵용청양 곁에 서는 것으로 지지를 표시했다. 영안은 잠시 침묵을 지킨 뒤, 말했다.

“너희들이 누구를 데리고 가든 알아서 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가 몸을 돌려 나가자 소제갈이 급히 따라나섰다. 판등이 묵용청양을 위로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대장, 날 따라와요. 안 형과 다른 사람들은 양부로 가고, 나와 대장은 가 대인에게 가면 되겠어요. 마침 도움이 필요하던 참이에요.”

묵용청양이 물었다.

“가 대인은 왜 찾아가는 거야?”

“사건 당일, 가 대인은 양해생과 차를 마셨잖아요? 그에게 어떤 상황이었는지 물어볼 거예요.”

“양해생을 의심하는 거야?”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기 전까지는 누구나 다 의심해야 해요.”

묵용청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어서 가자.”

판등이 설명했다.

“이건 내가 말한 게 아니라 안 형이 말한 거예요. 안 형은 때때로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나타난다고 했어요.”

묵용청양이 피식 웃었다.

“제법이네.”

“그럼요. 안 형은 사건을 잘 처리하기로 유명해요. 황상께서 상도 내리셨죠.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 젊은 나이에 환경문의 부문주가 될 수 있었겠어요? 하지만 예전에는 안 형이 뭐든 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단점도 있더라고요.”

묵용청양이 물었다.

“무슨 단점?”

“대장을 괴롭히잖아요.”

판등은 의아해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대장은 못 느꼈어요?”

묵용청양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영안은 나에게 잘해 주는 편이지. 그날 장대비가 내리니까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왔는걸.”

“잘해 주긴요!”

판등은 얼떨결에 사실대로 고백했다.

“그건 안 형이 미안해서 그런 거예요. 일부러 대장에게 거짓말을 해서 휘어진 나무로 보낸 거거든요. 원래 유안례는 절대 그곳을…….”

판등은 정신을 차리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조심스레 묵용청양을 바라보았다. 묵용청양은 하하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아하! 이제 알겠어.”

“…….”

대체 뭘 알았다는 거지?

* * *

가동의 집무실은 금궁의 가장 외곽에 있어서 황성皇城이라고 불렀다. 북문으로 들어가면 황제의 승덕전과 문루門樓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궁문을 지키던 보초병이 묵용청양을 알아보고 예를 취하려고 하다가 그녀의 눈짓을 보고 멈칫했다.

보초병은 그녀가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함부로 행동할 수 없어 더욱더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허리와 고개를 잔뜩 구부리며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판등은 우쭐해하며 묵용청양에게 자랑했다.

“보았어요? 환경문 사람이라고 하니까 완전 공손하게 우리를 대하는 거 말이에요.”

묵용청양은 활짝 웃었다.

“그래, 오죽하면 내가 환경문에 들어가고 싶어 했겠어?”

묵용청양은 잘 아는 사람처럼 판등을 데리고 당직실을 찾아갔다. 그곳에 있던 가동은 묵용청양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아이고, 조상님!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

판등은 가 대인이 정말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소녀에게도 아가씨가 아니라 조상님이라고 부르는 게 이렇게 자연스럽다니. 묵용청양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 대인, 저는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왔습니다. 여쭤볼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가동은 긴장감에 몸을 꼿꼿이 세웠다.

“무엇을 묻고 싶은 겁니까?”

묵용청양은 판등을 바라봤다.

“무엇을 물어봐야 해?”

이제야 판등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궁문을 지키는 보초병들은 그러려니 해도 가 대인이 이렇게까지 깍듯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가 대인은 이품 대원으로서 황제와도 친분이 두터웠다. 자신들은 품위조차 없고 나이도 어린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공손하지?

설마 환경문의 위상이 이품 대원조차 조심해야 할 정도로 높아졌단 말인가? 묵용청양이 판등을 살짝 밀치자 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가동에게 예를 취했다.

“사건 당일 양해생과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가동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그날, 우리 친구 몇 명이 함께 만나 새로운 찻잎을 품평하기로 했었네. 약속은 미시未時(오후 1시에서 3시 사이) 삼각三刻이었네. 양해생이 나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고, 우리는 신시까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네.

그런데 양해생의 하인이 달려와서 다섯째 이낭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양해생은 매우 슬퍼했지. 내가 옆에서 부축해 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네. 해서 내가 그와 함께 양부로 돌아갔지.

그는 다섯째 이낭의 시신을 보더니, 너무 슬퍼서 정신을 잃었네. 당시 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네. 나도 대충 훑어보니 무언가 이상했네. 그래서 영안을 찾아가서 도와 달라고 부탁한 게 전부일세.”

“그렇다면… 양해생은 다섯째 이낭에 대한 애정이 두터웠다는 겁니까?”

“그렇다네. 양해생은 다섯째 이낭을 아주 좋아해서 꼬박 일 년 동안 구애를 했고 겨우 혼인을 승낙 받았지. 비록 첩실을 들이는 거였지만, 꽤 성대한 술자리를 베풀었어. 본처를 얻듯이 다섯째 이낭 본가에 예단도 넉넉히 보내서 맞이했다고 들었네.

나중에 그 일로 양 부인과 양해생이 한바탕 다투었다고 하더군. 성혼 후에도 두 사람은 서로 금슬이 좋고 양해생이 모임에 갈 때면 항상 다섯째 이낭을 데리고 다녔지.”

판등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과 양해생이 차를 마시는 동안 양해생이 중간에 자리를 비운 적이 있습니까?”

“아니. 없었네.”

가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두 번이나 뒷간에 다녀왔지만, 그는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지. 계속 실내에만 앉아 있었네.”

묵용청양은 그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양해생에 대해 물어보고 있는데 대인께서 뒷간을 간 건 뭐 하러 말해요?”

가동이 말했다.

“그저 차를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도 뒷간에 가지 않았던 것에 탄복해서…….”

묵용청양이 대꾸했다.

“그게 무슨 탄복할 거리예요? 신장이 좋은가 보죠, 뭐!”

판등의 귀엔 왜 두 사람의 대화가 저리 이상하게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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