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2화
그는 묵용청양이 경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목을 매고 죽은 시신은 확실히 무서웠다. 그런데 저 원수는 성큼성큼 침대로 다가가더니, 허리를 숙인 채 시신의 목에 난 삭흔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마치 정말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것 같았다.
“…….”
어릴 때보다도 간이 더 커진 것 같았다. 죽은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판등은 헉 하고 소리를 냈다.
“아가씨는 정말 담력이 대단하네요.”
영안이 대꾸했다.
“아가씨 아니라니까.”
판등이 그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안 형, 청양이 아가씨가 아니면 뭔데요?”
그는 자신의 가슴을 볼록하게 그리며 되물었다.
“안 형, 이렇게 생긴 남자 본 적 있어요?”
영안은 그의 머리를 한 번 세게 때리며 소리쳤다.
“얼른 가서 일해!”
판등은 자기 머리를 비비며 중얼거렸다.
“자기가 아가씨가 아니라고 먼저 말해 놓고…….”
소제갈은 그를 째려보며 경고했다.
“앞으로 청양에 대한 말은 입에 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판등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두들겨 맞기 십상이니까.”
“…….”
죽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시신은 아직 부드러웠다. 목에는 아주 깊은 삭흔이 남아 있었는데, 짙은 보라색이었다. 그 외 외상은 없었다. 백색 비단 끈이 침대 옆에 걸쳐져 있었다. 관리는 상황을 설명했다.
“다섯째 이낭이십니다. 이걸로 들보에 목을 매다신 것 같습니다.”
영안이 고개를 드니 지붕에는 들보가 두 개였다. 하나는 높고 다른 하나는 조금 낮았다. 그가 물었다.
“어느 들보에 걸려 있었습니까?”
“낮은 들보입니다.”
그는 수놓은 낮은 걸상이 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이걸 밟고 올라간 겁니까?”
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다섯째 이낭이 목을 매단 후 넘어뜨린 것 같습니다.”
“누가 가장 먼저 발견했습니까?”
“다섯째 이낭의 계집종인데, 이름은 소란小蘭입니다.”
“그녀를 불러 주십시오. 당시 상황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관리가 알겠다고 대답하고 사람을 보내서 소란을 불러왔다. 겁에 질려 안색이 창백해진 소란은 문 앞에 서서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영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저런 게 아가씨들의 정상적인 반응이지.’
그는 고개를 돌리다가 묵용청양이 시신에 난 삭흔을 만지려고 손을 뻗는 걸 보고 얼른 제지했다.
“뭐 하는 거야!”
묵용청양이 중얼거렸다.
“색깔이 너무 진하잖아. 껍질이 벗겨진 건지 잘 모르겠어. 내가 한번 만져 볼게.”
영안은 할 말을 잃었다.
“네가 오작仵作(검시관)이야? 손대지 마! 안 들려?”
영안은 아예 그녀를 문 앞까지 끌고 갔다. 영안이 계집종에게 물었다.
“그 당시 본 것을 전부 다 한 번 더 말해 보십시오.”
계집종이 가슴을 움켜쥔 채 입을 열었다.
“나리께서 나가신 후, 다섯째 이낭께서는 한숨 더 주무시겠다고 하셔서 저는 방 안에 훈향을 피우고 장막을 내려드린 후에 방을 나갔습니다. 한 시진쯤 후에 다시 들어왔을 때, 이낭은 이미 들보에 매달려 계셨고, 저는 놀라서 급히 소리를 쳤습니다. 그 후에 관리께서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섯째 이낭을 내려놓았습니다.”
영안은 관리를 힐끗 쳐다보더니 물었다.
“소란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달려온 사람이 당신입니까?”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인께서 뒤뜰에 화초를 심고 싶다고 하셔서 땅을 갈려고 하인 두 명을 불렀습니다. 마침 문에 다다랐을 때 소란의 비명을 듣고 서둘러 달려왔습니다.”
영안은 다시 소란에게 물었다.
“다섯째 이낭께서 잠이 든 이후,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소란은 눈을 깜빡거리더니 대답했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저의 방에 있었습니다.”
관리가 귀퉁이에 있는 곁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란의 방은 저쪽입니다.”
영안이 다시 물었다.
“본인의 방에 있으면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까?”
소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들었습니다.”
“낮은 걸상이 넘어지는 소리가 작지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못 들은 게 확실합니까?”
소란은 우물쭈물하면서 대답했다.
“전 다섯째 이낭께서 쉬신다고 하여 침대에 기대 잠시 졸았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이때 판등과 소제갈도 다가와서 영안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묵용청양은 그 눈짓을 알아채지 못하고 소리 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자결이야? 아니면 타살?”
세 사람은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타살.”
관리와 소란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다섯째 이낭이 설마 살해당하셨단 말입니까?”
영안이 설명했다.
“맞습니다. 살해당한 겁니다. 시신은 볼 필요도 없습니다. 관에 넣으셔도 됩니다. 단,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 다시 와서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가 걸어 나가자 판등과 소제갈도 얼른 그를 따라갔다. 어안이 벙벙한 묵용청양은 방을 뒤돌아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타살로 보이지? 목 졸린 자국은 하나밖에 없고 별다른 외상도 없는데…….”
그녀는 영안을 좇아갔다.
“나한테 설명해 봐.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
영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사코 그녀에게만 알려 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묵용청양은 그에게 콧방귀를 뀌더니 고개를 돌려 소제갈과 판등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알려 줘!”
판등이 말했다.
“조급해할 것 없어요. 안 형이 조금 있다가 알려 줄 겁니다.”
과연, 대청으로 돌아온 영안은 조사 결과를 양해생에게 알려 줬다.
“다섯째 이낭께서는 살해당했습니다.”
양해생은 경악했다.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그녀를 살해했단 말입니까?”
영안이 말했다.
“아직 범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알 수 있는 건 다섯째 이낭께서는 두 번의 목 졸림이 있었기에 삭흔이 중간은 보라색이고 양옆에는 검푸른 멍이 든 것입니다. 그리고 잠을 자고 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신발을 신은 채 침대를 내려옵니다.
하지만, 다섯째 이낭의 신발은 가지런히 침대 옆에 놓여 있고, 양말만 신은 채 들보에 매달렸습니다. 이건 분명 누군가 먼저 목을 졸라 죽인 뒤에 들보에 매단 겁니다. 또한, 다섯째 이낭의 신장과 걸상의 높이를 계산하면 높은 들보가 더 편했을 겁니다. 그런데 발견했을 때, 이낭은 낮은 들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상태이지요.”
묵용청양은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하는 영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기억 속 영안이 아닌 것 같았다. 이제 더는 어린 영안이 아닌 다 큰 청년이었다. 그녀는 왠지 나이 든 모친과 같이 가슴이 벅차는 것이 느껴졌다. 이 자식, 출세했구나!
영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묵용청양의 눈빛이 무언가 수상했지만 정확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 원수에 대한 그의 경험으로 보건대 분명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묵용청양이 배시시 웃으며 다가왔다.
“영안.”
영안은 잔뜩 경계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왜? 무슨 일인데?”
“네가 사건 해결하는 법을 누구한테 배웠는지 알고 싶어.”
“그걸 알아서 뭘 하려고?”
“네 사부는 대단하신 것 같아. 나도 그 사람에게 배우고 싶어.”
영안은 코웃음을 쳤다.
“불가능해.”
“왜?”
묵용청양이 소리쳤다.
“그렇게 인색하게 굴지 마! 예전에 내 사부도 널 가르쳐 줬잖아.”
영안은 눈알을 부라렸다. 그는 그녀의 사부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모두 그녀가 억지로 끌고 간 것이었다.
“사부께서는 절대 여인을 가르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린 묵용청양이 기가 죽은 채 돌아가려는데, 영안이 그녀를 불렀다.
“황청양, 따뜻한 차 한 잔 타 줘.”
묵양청양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영안, 나한테 차를 타오라고? 너 내가 누군지 알잖아?”
영안은 양손을 늘어뜨리고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누구시더라?”
“나는…….”
묵양청양이 곁눈으로 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이들이 그들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영안은 눈썹을 찌푸렸다.
“네가 누군데?”
묵용청양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누구든 난 너한테 차를 타 주진 않을 거야!”
영안은 느릿느릿 다시 물었다.
“세 가지 약속, 벌써 잊었어?”
묵용청양은 잠시 침묵하더니 홱 하고 몸을 돌렸다. 잠시 후, 차 한 잔을 들고 온 그녀는 말했다.
“부문주, 차 한 잔 드십시오.”
그녀가 이렇게 순순히 차를 타오다니! 영안은 오히려 뭔가 수상했다. 그는 찻잔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가 먼저 한 모금 마셔 봐.”
한 모금이 뭐라고! 묵용청양은 연거푸 세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멈춰서 혀를 내둘렀다.
“역시 차는 우전룡정雨前龍井이 최고지.”
그녀는 그에게 찻잔을 건넸다.
“이제 안심이 되지?”
영안의 시선이 그녀의 촉촉한 입술에 머물렀다.
“한 잔 더 가져와.”
묵용청양이 투덜거렸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내가 부문주니까. 여기에서는 내가 대장이야.”
“대장이 뭐가 대단한데?
묵용청양이 소리쳤다.
“나도 할 수 있어!”
영안은 검지손가락 하나를 세워 양옆으로 흔들었다.
“여기에서는 안 돼. 잔말 말고 차나 타 와.”
묵용청양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기분이 나쁘면 그의 입가가 저절로 올라갔다. 판등은 그의 행동이 눈에 거슬려서 다가와 말했다.
“안 형, 왜 이렇게 청양을 못살게 구는 거예요? 그래도 어쨌든 아가씨잖아요?”
영안이 물었다.
“네가 보기에 저 녀석의 어떤 점이 아가씨 같으냐?”
“…….”
생김새 말고는 그도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묵용청양이 차 한 잔을 들고 오더니 아무 말 없이 영안에게 건넸다. 찻잔을 받아든 영안은 역시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
“안에 무엇을 넣었지?”
“찻잎.”
“그리고?”
“다른 건 없어.”
묵용청양이 비웃었다.
“마실 용기도 없으면서! 다음부터 나한테 차 심부름은 시키지 마.”
판등이 말했다.
“안 형, 왜 이렇게 수상하게 구시죠? 청양이 설마 그런 사람이겠어요?”
영안은 찻잔을 코밑에 두고 냄새를 맡았다. 향긋한 차향만 나고 별다른 이상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제야 마음 놓고 차 한 모금 들이켰는데 묵용청양이 깔깔거리며 말했다.
“난 찻잔 안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어. 다만, 찻잔 가장자리를 혀로 핥았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