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1화
깜짝 놀란 귀마마는 얼른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바삐 말했다.
“내가 스스로 먹겠네. 내가 하겠네.”
금천아는 비수를 든 채 귀마마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사나운 기세에 귀마마의 손은 더욱더 심하게 떨렸고, 겨우 양고기 몇 점을 칼에서 뽑아낼 수 있었다. 사봉봉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 식으면 맛이 없어요.”
귀마마는 양고기를 입안에 쑤셔 넣었다. 어디 맛을 음미할 여유가 있겠는가? 그녀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새로운 황후는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과연, 사가상점의 어린 주인장이 함부로 할 수 있는 만만한 사람일 리가 있겠는가? 황제와 황후의 싸움에 괜히 끼어들지 말아야겠다는 각오가 섰다.
* * *
처음 환경문에 들어선 묵용청양은 이리저리 둘러보다 금세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묵용청양은 햇빛을 받기 위해 계단에 앉아 있었다. 아무렇게나 묶은 새까만 머리, 삐뚤빼뚤 걷어 올린 겉옷 소매, 다리에 찬 각반, 손에 든 강아지풀. 영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공주인 걸 누가 믿겠는가? 그가 다가가자 묵용청양이 판등板凳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왜 다들 당신을 판등이라고 불러요?”
“별명이죠. 환경문 사람들은 별명이 다 있어요.”
묵용청양이 말했다.
“그럼 나도 하나 정해야겠네요.”
영안이 한마디 거들었다.
“네 별명은 이미 있잖아?”
묵용청양은 어리둥절했다.
“내가 별명이 있다고?”
“귀견수鬼見愁(귀신조차 꺼림).”
묵용청양이 펄쩍 뛰며 그를 때리려 했지만 영안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날렵하게 몸을 피하고 그녀의 손을 붙잡고 밀어 버렸다. 묵용청양은 힘없이 바닥에 미끌어졌다. 영안은 짜증난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몇 년이 지나도 발전이라곤 전혀 없네.”
그 장면을 본 판등이 묵용청양의 편을 들었다.
“안 형, 어떻게 여인한테 손찌검을 해요?”
영안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 애는 여인이 아니다.”
그 말에 판등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훑어봤다.
“분명히 아가씨인데…….”
“눈을 제대로 닦고 봐라. 겉모습에 속지 말고.”
묵용청양이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이봐, 영안. 예전에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그런데 내가 너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고 이리 대하다니.”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배은망덕한 거 아니야? 너 때문에 가슴이 아프구나.”
영안은 얼굴이 좀 붉어졌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하지 마. 무슨 네 사람이니 내 사람이니… 그런 일은 전혀 없었으니까.”
“하늘에 맹세할 수 있어? 어렸을 때 항상 내 옆에 붙어 다녔잖아. 근데 내 사람이 아니었다고?”
“…….”
판등은 얼굴이 붉어진 채 잔뜩 화가 난 영안의 얼굴을 보더니 물었다.
“안 형, 정말 그랬어요?”
영안은 한 마디로 제 감정을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묵용청양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질질 끌고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황상의 말씀 잊었어? 너의 신분을 폭로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
묵용청양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래서 안 드러냈잖아!”
“네가 어릴 적 일을 꺼내면 사람들이 다 알아챌 수 있다고.”
“왜?”
묵용청양이 다시 물었다.
“설마 너… 나 말고 어렸을 때 다른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
영안이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옆에 사람이 없었던 걸 네가 모른단 말이야?”
묵용청양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하긴, 넌 그때 나랑 노는 게 좋아서 다른 친구를 사귀기 싫어했잖아.”
“…….”
영안은 그녀의 머리 위에 마대를 씌워서 한바탕 매타작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에 저렇게 뻔뻔한 얼굴로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연거푸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화를 가라앉혔다.
“지금 너는 나한테 세 가지를 약속해야 해.”
“왜 그래야 하는데?”
“내가 환경문의 부문주副門主이고, 너는 정원 외의 수습 관원이니까.”
묵용청양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무슨 약속인데? 한번 말해 봐.”
“첫째, 신상을 폭로하지 않는다. 둘째, 어린 시절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셋째, 내 말을 잘 듣는다. 만약 약속을 어길 거라면, 다시 돌아가. 환경문에 제멋대로인 사람은 용납할 수 없어.”
묵용청양이 손가락을 꼽다가 가만히 미간을 찌푸렸다.
“앞에 두 가지는 괜찮은데, 세 번째는…….”
예전에는 영안이 그녀의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하자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했다. 영안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됐다. 넌 공주 마마나 하러 가라.”
“에이!”
묵용청양은 얼른 그를 붙들었다.
“알았어. 가능한 한 그렇게 할게.”
“가능한 한이 아니라 꼭 그렇게 해야 돼!”
묵용청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영안은 벽에 쳐져 있는 거미줄을 보더니 말했다.
“새로 왔으니 우선 일부터 배워야지. 마당에 있는 거미줄을 전부 치워.”
묵용청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보고 거미줄을 치우라고?”
“싫어?”
영안은 콧방귀를 뀌더니 발길을 돌렸다.
“싫으면 가라.”
묵용청양은 이를 악물고 그를 따라갔다.
“싫지 않아. 겨우 거미줄이잖아.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그녀는 나무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부러뜨리더니 벽면을 따라 휘두르며 지나갔다. 그녀가 제게 굴복하다니! 영안이 얼마나 통쾌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어서 영안은 묵용청양에게 마당을 깨끗이 치우고, 화초에 물을 주라고 했으며, 문과 창문을 닦고, 탁자와 의자를 옮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당에 의자를 들고 나와 편히 앉아 그녀를 감독했다.
환경문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다 모두 젊은 남자들만 모여 있었는데 영안이 웬 아가씨를 구박하며 부려 먹자 모두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일을 도왔다.
영안이 말했다.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다들 그렇게 한가해?”
산응山鷹은 성미가 급해서 곧바로 영안에게 대거리를 했다.
“안 형, 아가씨를 이렇게 괴롭히다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판등도 한마디 했다.
“맞아요, 아까도 아가씨를 땅바닥에 밀쳤잖아요.”
소제갈小諸葛도 말했다.
“안 형, 이건 형님이 잘못한 거예요.”
“…….”
원래 말이 없는 소어小魚는 가만히 청양의 일을 도와주었다.
“…….”
묵용청양은 그를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일부러 궂은일을 찾아 했다.
원래 영안은 묵용청양에게 힘든 일을 시켜 포기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자신만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었고, 귀견수는 환경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웃고 떠들며 더 쉽게 동료가 되어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뜰에는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묵용청양은 뒷짐을 지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모두를 칭찬하고 다녔다.
“와! 산응, 너 정말 깨끗하게 했구나. 티끌 하나 묻지 않았어.”
“판등, 너 진짜 대단해. 문짝을 이렇게 깨끗하게 닦다니… 사람이 다 비칠 정도잖아.”
“야! 소어, 넌 키는 작은데, 힘이 장사네! 대단해. 진짜 대단해!”
“제갈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모두 총명한 사람인가? 좋은 방법인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방법은 떠오르지 않던데!”
그녀의 칭찬에 모두들 더욱 힘을 내 일을 했다. 그 덕에 환경문 안팎이 깨끗해졌다.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던 영안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건 너무 익숙한 광경이었다. 저자가 또… 제 수하를 거두려는 건가……. 바로 그때, 가동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묵용청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고 세상에, 우리 조상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청소를 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묵용청양을 바라봤다. 왜 가동이 그녀를 조상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묵용청양은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 내가 항렬이 좀 높아서…….”
“…….”
평소 청양 공주를 조상처럼 떠받들던 가동은 습관적으로 부르던 말이 나와 버린 것이다. 몇 명은 설명에도 의혹을 품었다. 대체 얼마나 항렬이 높아야 조상님이라 부르는 거지? 영안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가 숙부, 여긴 웬일이십니까?”
“아, 서둘러라. 사건이 생겼다. 나랑 같이 가자.”
영안이 말했다.
“환경문은 아무 사건이나 맡지 않습니다.”
“그걸 내가 모르겠냐?”
가동이 말을 이었다.
“내 친구의 사건이야. 아까 같이 차를 마시다가 들었는데, 그의 첩이 목을 매 죽었대. 하지만 낌새가 심상치 않더구나. 그러니 나랑 같이 가서 한번 보자. 만약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면 죽은 여인이 너무 억울하잖아?”
“그런 사건은 관아에서도 조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친구한테 네가 와서 봐줄 거라고 이미 큰소리를 쳤단 말이다. 만약 진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면 그 집에서도 빨리 시신을 수습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이 숙부를 한번 도와주는 셈 치고.”
영안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 보겠습니다.”
사건을 조사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묵용청양은 제가 대장인 것처럼 즉각 모두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들 동작 그만! 나랑 같이 가자. 사건을 조사하러 간다.”
“…….”
가동은 작은 목소리로 영안에게 물었다.
“또 청양의 수하로 들어간 것이냐?”
영안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묵용청양에게 말했다.
“우리는 사건을 수사하러 갈 테니 너는 남아. 네가 와서 무슨 도움이 된다고……. 판등, 소제갈은 나를 따라가고 다른 사람은 남거라.”
묵용청양은 투덜거렸다.
“온종일 일했는데 왜 나는 못 가?”
“내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거다. 내 명령을 거역하는 것인가?”
묵용청양은 영안에게 통하지 않자 가동에게 다가가서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가 대인, 저 좀 데려가 줘요.”
가동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어 자동적으로 대답이 나왔다.
“그래. 문제없지.”
대답한 순간 그는 자신이 또 입을 잘못 놀렸다는 걸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과연 영안의 안색이 안 좋았다. 그는 멋쩍게 웃었다.
“상관없지 않으냐? 견학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영안은 그럴싸한 가동의 말에 마음이 동해서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해서야 사건이 일어난 곳이 양해생楊海生의 저택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양해생은 임안성에서 유명한 거부였다. 사가보다는 못하지만,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선한 일을 즐겨 했기에 백성들이 칭송했고, 각 계층에 친구가 많았다.
관리가 그들의 도착을 알렸는지 양해생이 대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는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슬픔이 컸는지 걷는 것도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가동은 관리인에게 영안 일행을 현장으로 안내하라고 했고, 자신은 남아서 양해생을 위로했다.
첩은 생전에 후원 우측 곁채에 묵고 있었다. 아마도 사람이 죽었기 때문일까? 걸어오는 동안 하인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관리가 문을 열자 묵용청양이 뛰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영안이 더 빨리 그녀를 붙잡았다.
“정말 들어가려고?”
묵용청양은 어리둥절했다.
“문 앞까지 다 왔는데, 왜 안 들어가?”
영안은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래, 마음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