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0화
황제의 마상풍에 대한 소문은 역시 묵용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감히 황제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소문을 퍼뜨리다니! 누구 짓인지 정말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 암암리에 사람을 보내 조사했더니, 그 소문은 다름 아닌 봉명궁에서 나온 것이었다.
듣자 하니, 그날 밤의 일이 봉명궁까지 전해졌고, 그 이야기가 봉명궁에서 다시 나왔을 땐 ‘마상풍’이라는 세 글자가 더해졌다고 했다. 묵용린은 다시 한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봉명궁으로 달려갔다.
이미 몸을 최대한 사리며 행동하고 있던 사봉봉은 왜 자꾸 그가 자신을 괴롭히는지 알 수 없었다. 비록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황제의 분노로 봐서 꽤나 귀찮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건 예상할 수 있었다. 묵용린은 아랫사람을 모두 쫓아내고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물었다.
“사봉봉, 당신이 말했소? 짐이 대혼날 밤에 마상풍을 앓았다고?”
사봉봉은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
“황상, 그게 아니란 말입니까?”
감히 그런 걸 되묻다니… 얼굴이 얼마나 두꺼운 여자란 말인가? 묵용린은 더욱더 화가 나서 한 번 더 탁자를 내리쳤다.
“당연히 아니오!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사봉봉은 말했다.
“신첩은 헛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황상께서는 그날 밤 귀비궁으로 간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이오?”
“관계를 하던 중에 갑자기 발병한 게 아닙니까?”
“아니오! 짐은 옷도 벗지 않았소.”
사봉봉은 깜짝 놀랐다.
“옷도 벗지 않았는데 병이 났단 말입니까?”
묵용린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황상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병이 났단 말입니까?”
묵용린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왜 이런 우매한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짐은 그저 배가 아팠을 뿐이오.”
“단순히 배가 아팠다면 왜 태의를 부르지 않았습니까?”
“짐이 태의를 부르든지 말든지 그건 황후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오.”
“분명 신첩은 관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첩은 이런 일을 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황실의 궁정비화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묵용린은 무력감을 느꼈다.
“짐이 이미 말했잖소. 그런 게 아니라고.”
사봉봉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물었다.
“황상께서는 대혼을 치르기 전에 관계를 해 보신 적이 없었습니까?”
묵용린은 경악한 채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사봉봉, 어떻게 짐에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소?”
사봉봉은 아주 진지한 어조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예법에 의하면 황상께서 잠룡인 시절 이쪽 방면의 가르침을 받으셨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태상황과 태후께서 일찍 강남으로 떠나시는 바람에 이 부분을 놓치신 듯합니다. 그러니 이건 황상의 잘못이 아닙니다. 앞으로 그런 기회는 많이 있을 것이니 황상께서는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
사봉봉, 지금 그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긴 하는 것이란 말인가…….
묵용린은 사봉봉의 말에 기가 차서 다시 자신의 궁전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방 안에 두 시진 동안이나 멍하니 앉아 있다가 마침내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황후가 되어 예절조차 모르니 정기 마마精奇嬷嬷에게 제대로 한번 가르치라고 해야겠다.
그는 가장 엄한 정기 마마를 골라서 그녀에게 금패도 하사했다. 금패를 보면 황제를 만난 것처럼 예를 취해야 했다. 황후도 금패 앞에서는 방자하게 굴 수 없었다.
이러한 황제의 뜻이 봉명궁에 전해졌지만, 사봉봉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묵용린이 화를 내며 옷자락을 뿌리치고 가 버렸을 때, 그녀는 귀찮은 일이 생길 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상풍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게 맞지만, 누구라도 그 말을 들었다면 마상풍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옷도 벗지 못했는데 병이 도지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튿날, 날이 밝기도 전에 정기 마마가 봉명궁에 도착했다. 반듯하게 차려입은 의복, 한 올도 튀어나오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바짝 빗은 머리카락, 네모난 얼굴, 높은 광대뼈, 매서운 눈을 가진 정기 마마였다.
궁인들은 모두 그녀를 귀마마贵嬷嬷라고 불렀다. 사람을 바라볼 때 위엄이 느껴질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녀들은 모두 정기 마마를 두려워했다. 경화도 당연히 겁을 내며 말했다.
“귀마마, 너무 일찍 오신 것 아닙니까? 황후 마마께서는 아직 기침하지 않으셨습니다.”
귀마마는 손에 든 금패를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궁중의 예법이니라. 스승이 오지 않을 때만, 제자가 침대에 누워 있을 수 있다.”
금패를 본 경화는 사봉봉을 깨우는 수밖에 없었다. 온화한 성격의 사봉봉은 정기 마마가 이른 시각에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궁녀들에게 환복과 세수를 시중들게 하며 금천아에게 명했다.
“먼저 나가서 접대해 줘. 마마를 절대로 홀대하지 말고.”
방 안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귀마마의 눈에 한 마리 소처럼 건장한 궁녀가 보였다. 그리고 세상에나! 그녀의 손에는 무려 비수가 들려 있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탓에 실내에 켜져 있던 등불은 비수를 더욱 번뜩이게 보였다.
게다가 섬뜩한 궁녀의 표정까지 더해지자 독하다는 귀마마의 가슴까지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차분해지기 위해 손에 있는 금패를 더욱 꽉 쥐었다.
궁녀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것 같았다. 궁녀의 어깨가 어찌나 넓은지 뒤에 있던 등불까지 다 가릴 정도였다.
귀마마는 깜짝 놀랐다. 궁 안에 있는 궁녀들은 모두 자신 앞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는데… 이 궁녀는 대체 누구길래 이리 위세를 떠느냔 말이다. 다만… 몸싸움이 일어난다면 자신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양옆을 둘러보았다. 방금까지 서 있던 다른 궁녀들이 모두 사라진 뒤였다. 그녀는 당황한 듯 키가 큰 금천아를 바라보았다.
“너는 누구냐? 뭘 어쩔 셈이냐?”
금천아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놀란 귀마마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수를 손가락 사이에서 빙빙 돌렸다. 섬뜩하게 번쩍이는 차가운 빛에 귀마마는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사봉봉이 나왔다. 귀마마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게 예를 취했다.
“소인, 황후 마마를 뵈옵니다.”
사봉봉은 누구에게나 웃는 얼굴로 대했다.
“너무 예를 차릴 필요 없습니다.”
귀마마는 황후의 기선을 제압할 생각에 손에 쥔 금패를 내보였다.
“마마, 소인이 황명을 받들어 황후 마마께 예법을 가르치러 왔습니다. 앞으로 묘시卯時(오전 5시에서 7시)에 예법 교육을 시작할 것이니 마마께서는 일찍 일어나시어 미리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사봉봉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귀마마는 금패를 품속에 넣고 말했다.
“이제 소인이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황상께서 말씀하시길, 마마께서 예를 취하는 자세가 바르지 않다고 하셨으니 그것부터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소인이 먼저 시범을 보일 터이니…….”
그때 뒤에 있던 경옥이 다급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귀마마, 황후 마마께서는 아직 아침 식사도 못 드셨습니다. 일단 식사부터 한 뒤에…….”
귀마마는 경옥을 째려봤다.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본 마마가 말을 하는데 네가 참견할 깜냥이 되느냐? 당장 뺨을 치거라!”
얼굴을 붉힌 경옥이 머뭇거리며 손을 올리자 사봉봉이 그녀의 팔을 잡으며 담담히 웃었다.
“정기 마마가 황후의 사람을 벌하다니… 궁중에 이런 예법은 없지 않나요?”
늘상 누군가를 훈계하던 귀마마는 저도 모르게 말이 급하게 나간 것 같았다. 황후의 눈앞에서 황후의 사람을 감히 훈계할 자격은 그녀에게 없었다. 그녀는 즉시 허리를 굽히며 사죄했다.
“소인이 잠시 말실수를 했습니다. 황후 마마께 용서를 구합니다.”
사봉봉은 매우 관대하게 말했다.
“되었습니다. 별일 아닌데요. 어서 시작하세요.”
귀마마는 멋쩍은 듯 웃으며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황후는 옆에서 예법을 배우고, 경화와 경옥은 다른 쪽에 아침 식사를 차렸다. 귀마마가 슬쩍 식탁을 보니 아주 어린 젖양을 구운 요리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놀랐다. 아침 식사에 양 한 마리라니… 황후 마마의 식성이 대단하시군.
그다음 광경에 그녀는 아연실색했다. 소처럼 건장한 궁녀가 비수를 들고 양고기 앞에서 칼춤을 추고 있었다. 비수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번뜩이는 섬광에 그녀는 눈앞이 어지러웠다.
고소한 냄새가 곧바로 실내를 가득 채웠다. 궁녀의 칼춤이 끝내자 식탁 위에 있던 양은 전부 발골되어 뼈대만 남아 있었다.
양고기를 발라낸 궁녀는 사나운 눈빛으로 귀마마를 바라보았다. 깜짝 놀란 귀마마는 얼른 눈길을 거두었다. 그녀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데 저쪽에서 또 무언가 튀어나왔다. 이번엔 소갈비였다. 그 궁녀는 다시 커다란 칼을 꺼내더니……. 꽝, 꽝, 꽝!
궁녀는 갈비뼈를 내리칠 때마다 귀마마를 바라보았다. 귀마마는 심장이 떨려서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사람을 잘 다루는 숙련된 정기 마마이지만, 그건 다 기술적인 일이었다. 어디 이렇게 난폭하고 흉악하게…….
“귀마마.”
사봉봉이 그녀를 불렀다.
“본궁이 잘 따라 하고 있습니까?”
귀마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다음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갈비뼈 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꽝!
심장이 철렁 내려앉자 그녀가 결국 꼬리를 내렸다.
“황후 마마, 우선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교육을 이어서 하겠습니다.”
사봉봉이 웃었다.
“본궁은 마마가 하라는 대로 따를게요.”
황후는 그곳에 앉아서 태연자약하게 아침을 먹기 시작했고, 세 궁녀는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귀마마가 옆에서 멍하니 서 있자 사봉봉이 말했다.
“귀마마도 수고 많으셨으니 같이 먹을까요?”
귀마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후 마마, 감사합니다. 소인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수고라니 당치 않습니다.”
사봉봉이 웃으며 말했다.
“본궁의 호의를 거절하지 마세요. 앞으로 볼 날이 많은데요. 금천아, 양고기를 귀마마께도 드려.”
구운 양고기 냄새를 맡은 귀마마도 군침이 돌았다. 기왕에 황후 마마께서 양고기를 하사하신다니 그녀는 감사히 받아먹으면 된다. 그런데 작은 접시에 고기를 담아줄 거라고 생각했건만… 금천아는 날카로운 칼로 고기를 푹 꽂아 그녀의 입에 갖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