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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046)화 (1,046/1,192)

제1046화

눈시울을 붉힌 사금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또 딸을 바라보며 당부했다.

“봉봉, 너는 용감하고 굳센 아가씨야. 아비는 항상 그런 너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단다. 그저 금궁에 장사하러 간다고 생각하거라. 모든 일은 시작이 어렵단다.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밀고 나가는 용기를 발휘하거라. 이 아비는 네가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이 아비의 뜻을 알겠느냐?”

이번 혼인은 바로 거래였다. 황제는 천하의 가장 영예로운 황후의 지위로 사가상점의 재력을 사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사봉봉이 이해할 거라고 믿었다. 사봉봉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이해했어요. 안심하세요. 제가 장사도 잘하고 어머니와 금언도 잘 돌볼 거예요.”

사장풍은 마지막으로 사앵앵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서북 역참에도 우리가 투자한 지분이 있으니 내가 가서 잘 살펴보겠소. 다른 장사는 할 줄 모르지만, 역참은 내가 경험이 있으니 안심하시오.”

사앵앵은 웃으며 그의 팔을 툭툭 쳤다.

“불안할 게 뭐 있겠어요. 오직 한 가지… 역참을 지나다니는 여자들이 많으니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요. 그녀들이 당신을 납치해서 도망가지 못하게.”

그녀의 말을 듣고 다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분위기는 그다지 침울하지 않았다. 사장풍은 조금 곤혹스러웠다.

“아이들 앞에서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단 말이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죠. 하지만 그녀들은 어떤지 모르잖아요. 여자들이란…….”

사앵앵은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뒷말을 삼켰다. 하필 사금언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어머니, 그곳 여자들이 왜요? 설마 대단한 신통력이라도 있어요?”

사장풍이 그를 째려봤다.

“어린 네가 그런 걸 왜 물어보느냐?”

사금언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제가 뭐가 어려요? 벌써 관리로 일하고 있잖아요.”

낙천적인 사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금세 힘을 얻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용기를 내어 밀어붙여야 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사흘이 지나고 대혼을 치르는 날이 밝았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고 햇살이 밝았다. 백성들은 대로 양쪽에 서서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이따금 서로 쑥덕거렸다. 황제가 대혼을 치르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기에 모두 구경을 나온 것이다.

“왔다. 왔어. 꽃가마가 왔다!”

그 소리에 모두 동쪽을 바라보았다. 길 끝에서 의장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꽃가마가 아니라 봉여鳳輿라고 불렸다. 명황색 가마에 사방에는 붉고 아름다운 꽃구슬이 드리워져 있고, 장막 위에는 금봉황이 수놓아져 있었다. 가마 꼭대기에는 금빛 수술이 드리워져 있는데, 가마가 흔들릴 때마다 마치 시냇물이 햇빛을 반사하듯 반짝거렸다. 가마의 기둥에는 구슬을 입에 물고 있는 봉황 머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봉여를 바라본 사람들은 모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꽃가마는 황제가 장가갈 때만 볼 수 있었다.

사봉봉은 봉여가 집 앞에 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녀는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봤다. 열일곱 살이면 시집을 가야 할 나이이긴 하지만, 어쩌다가 황제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을까? 그녀는 자신이 묵용린과 혼인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궁에서 나온 희낭이 그녀에게 화장을 해 주었다. 얼굴에는 두껍게 분을 발랐고, 뺨에는 화사하게 연지를 발랐다. 눈 화장을 하자 눈매가 더욱 반짝였다. 희낭은 그녀의 입이 작은 게 불만이었는지, 입가에 연지를 덧발라서 쥐를 잡아먹은 것 같은 붉은 입술을 완성했다.

사봉봉은 모든 새색시의 화장이 다 이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묵용린은 그녀의 관계는… 한마디로 형용할 수 없었다.

서로를 미워하는 이상 그녀가 어떻게 분장하든 그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사앵앵은 사봉봉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희낭에게 물었다.

“꼭 이렇게 화장을 해야 합니까?”

희낭은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황후의 성혼은 남들과 다릅니다. 더 엄숙해야 합니다.”

사앵앵은 짤막하게 그러하냐고 대꾸했다. 맨얼굴도 충분히 엄숙한 것을… 자신의 예쁜 딸을 이렇게 꾸며 놓다니 한바탕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한편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렇게 궁에 들어가서 어린 황제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두 모녀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마음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녀들이 웃자 희낭은 무언가 찔렸는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황후에게 이런 화장을 한 것은 그녀가 허가 사람들에게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허가 사람은 황후가 추한 모습으로 궁에 들어가길 원했다.

황제가 황후의 기괴한 모습에 입맛을 잃으면, 화촉에 불이 켜진 신방은 어쩌면 허설령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봉봉과 사 부인이 그 얼굴을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고 웃을 줄이야……. 이때, 대문 입구에서 폭죽 소리가 나자 사앵앵이 말했다.

“봉여가 왔나 보구나.”

그녀는 사봉봉를 보며 한쪽 눈을 깜빡이며 속에서 올라오는 씁쓸함을 억지로 삼켰다.

“우리 딸, 네 아버지의 말씀을 명심하고 장사를 하러 간다고 생각하거라.”

사봉봉은 일어나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저 이번 장사를 아주 잘 해낼 거예요.”

희낭은 어리둥절했다. 황후마마, 성혼을 하러 가시는 건데, 무슨 장사를 하신다는 겁니까?

허 부인은 정말이지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었다. 묵용린은 사봉봉의 외모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녀와 화촉을 밝히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했다. 다만 사봉봉이 계단을 올라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허옇게 뜬 얼굴에 까맣게 칠한 눈가, 붉게 그린 커다란 입, 대낮에 잘못 튀어나온 처녀 귀신같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씩 옆으로 비켜서서 거리를 벌렸다.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봉봉은 그의 얼굴에 드러난 경악에 속으로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앞을 똑바로 바라본 채 대전 안으로 걸어갔다.

예법에 따라 황제는 붉은 양탄자 위에서 황후를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나란히 대전으로 올라간 황제와 황후는 여러 이들이 올리는 하례를 받는다. 그런데 뒤에서 보면 앞에 펼쳐진 광경이 좀 기괴했다. 마치 황제와 황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숨어 있는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모두 곰곰이 생각했다. 역시 황제가 황후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그녀와 가까이 걷는 것조차 원치 않는구나. 황후의 용모를 보고 다들 황제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누가 저렇게 추한 아내 얻기를 원하겠는가.

대전에 들어선 사봉봉은 명황색의 넓은 테두리를 두른 포단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황후의 보책과 금인을 받았다. 이내 예부 사승司丞이 낭송하는 황후에 대한 찬사를 들었다. 다음으로 대례가 이어졌다.

사승이 열심히 안내를 했지만, 황제와 황후는 전혀 서로 교감하지 않았고,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각자 자기 세상에 빠져 있는 듯 기괴한 느낌이 드는 혼례식이었다. 사승은 답답한 분위기에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그는 두 분이 도대체 어쩌려고 이러시는지 알 수 없었다.

사봉봉도 무척 힘들었다. 머리 위에 쓴 봉황관은 너무 무거웠고, 혼례복도 겹겹이 몸을 감싸고 있어서 답답했다. 날씨는 아직 그렇게 무덥지는 않았지만, 대전 안을 밝히는 화촉과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공기가 탁했다. 그녀가 흘린 땀 때문에 혼례복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빨리 끝나서 혼자만의 고요함을 되찾고 싶을 뿐이었다.

저녁이 되자 그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봉명궁에 들어왔다. 그녀가 첫 번째 한 일은 금천아에게 봉황관을 벗겨 달라고 한 것이다. 희낭이 옆에서 말렸다.

“마마, 그러시면 안 됩니다. 황제께서 다시 와서 합환주를 드시려고 하실 텐데…….”

사봉봉은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며 말했다.

“황제께서는 안 오실 거예요. 얼른 벗겨 줘요.”

“설마요. 예법에 따라…….”

금천아가 참지 못하고 희낭을 밀쳤다.

“마마께서 벗기라고 하시면 벗기는 거지, 뭔 말이 이렇게 많아요?”

덩치가 좋은 금천아에게 살짝 밀리자 희낭은 몇 걸음이나 튕겨 나갔다.

“어, 어찌 이리…….”

이리 기고만장하단 말인가……. 금천아가 그녀를 째려보자, 희낭는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궁중에서 지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추세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금천아는 한눈에 봐도 척을 져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황후라는 든든한 뒷배도 있었다.

금천아를 측근 시녀로 함께 보내는 건 사앵앵의 의견이었다. 사앵앵은 지략 측면에서 후궁 여인들 모두 사봉봉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믿었지만, 육탄전에선 아니었다. 만일 힘을 써야 할 때가 온다면 그땐 금천아를 내보내야 했다.

금천아 외에도 봉명궁에는 황후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궁녀 두 명 더 있었다. 한 명은 경옥瓊玉이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경화瓊花라고 했다. 황후를 측근에서 모시는 궁녀 중 기민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들은 곧장 금천아를 도와 사봉봉의 옷을 벗기고 황후 마마의 목욕을 도왔다.

사봉봉은 욕조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더니 반쯤 씻다가 잠들어 버렸다. 잠든 황후를 깨끗하게 씻긴 경옥과 경화가 사봉봉을 깨우려고 하자 금천아가 커다란 목욕 수건으로 황후를 감싸 안아 들고 침전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무언가 좀 이상했다…….

* * *

묵용린은 계획대로 허설령의 궁전으로 향했다. 그는 약간 기대가 되었다.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니 오늘 밤에는 분명 물 흐르듯 일이 진행될 것이다. 허설령은 비록 귀비가 되었지만, 황후와 함께 입궁할 자격은 없었다. 대혼의 절차가 모두 끝난 저녁이 되어서야 서화문을 통해 들어와 황제가 친히 하사한 벽요궁碧瑤宮으로 바로 들어갔다.

비록 귀비가 되었지만, 허설령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녀는 줄곧 자신이 황후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억울한 심정을 어찌 형용할 수 있겠는가? 아주 좋은 패를 완성하려는 찰나, 누군가 그 패를 가로채 갔고 본인은 썩은 패를 든 기분이었다. 그 달갑지 않은 아쉬움은 그녀 가슴에 미칠 듯 사무쳤다.

그러나 밖에서 전해지는 말에 그녀는 반색하며 밖을 바라봤다. 오늘 밤은 영락없이 독수공방해야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황제가 왔다. 얼른 문 앞에 가서 무릎을 꿇으려고 하는 그녀를 황제가 손수 일으켰다.

“애비愛妃, 그렇게 예를 차릴 필요 없소.”

애비라는 호칭에 허설령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방금까지 느꼈던 불쾌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묵용린을 바라보았다.

“황상, 어찌 이리 오셨습니까?”

“오늘은 짐과 애비가 혼인한 날이 아니오. 짐이 당연히 와야 하지 않겠소?”

허설령은 더욱더 기뻤다. 신혼 밤, 황제가 황후궁에 가지 않고 그녀에게 왔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건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황후보다 우위를 선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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