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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043)화 (1,043/1,192)

제1043화

증거가 생겼으니 묵용린은 곧장 사장풍을 잡아들였다. 흉악한 금군들이 사부로 들이닥치자 모든 이들이 놀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금군 우두머리는 사장풍이 군주를 기만한 죄를 저질렀으니 황상의 어명으로 추포한다며 그를 붙잡아 갔다.

사앵앵이 그들을 막아서려 했지만 오히려 금군들에게 밀쳐져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사봉봉은 서둘러 그녀를 일으켰다. 사앵앵이 또다시 다가와 막으려고 하자 사장풍이 그녀에게 호통쳤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기다리시오. 내가 돌아오거든 그때 다시 얘기합시다.”

돌아올 수는 있단 말인가? 군주를 기만한 죄는 죽을죄이거늘! 사장풍이 붙잡혀가자 사앵앵은 딸을 껴안고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사봉봉은 어머니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녀의 눈시울도 붉게 물들며 물빛이 반짝였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무슨 일로 잡혀간 것인지는 두 사람 모두 훤히 알고 있었다. 분명 사장풍이 나 감령을 찾아간 걸 황제가 알게 된 것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군주를 기만했다 하겠는가?

사봉봉은 곧장 아하를 보내 사장풍이 대리시 감옥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른 곳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써서 잘 보살펴 달라며 부탁이라도 해 보겠지만, 하필이면 대리시라니.

더구나 황제가 직접 추포하라 명했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쓴다고 해도 소용없을 터였다. 지금으로서는 내일 사금언이 궁으로 돌아오면 그때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두 모녀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자 사금언이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사금언도 축 처진 채 근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사앵앵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사금언은 오늘 아침 발령을 명받아 조만간 서북 군영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사장풍이 잡혀가자마자 사금언이 서북으로 발령을 가야 한다니. 남은 두 모녀를 처리하는 건 분명 더 쉬운 일일 것이다. 사금언은 사장풍이 붙잡혀 간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황상께 찾아가 볼게요. 다 제 생각이었다고… 아버지랑은 상관없다고… 절 잡아가라고 말씀드릴게요.”

사봉봉이 말했다.

“황상께서 바보도 아니고 네 말을 믿어 주실 것 같아? 게다가 황상께선 원래도 우리 집을 탐탁지 않게 여기셨어. 어머니와 부인께서 오랜 벗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우리에게 칼을 대셨을 거라고.”

사금언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어떡해? 내가 서북으로 파견 가는 건 걱정할 거 없어. 어렸을 적 자란 곳이니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아버지가 옥에 갇히셨는데 내가 어떻게 마음을 놔?”

사앵앵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황상을 찾아가야겠다. 사가 상호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네 아버지를 구해야지.”

사봉봉이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다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그러니 제가 가야 해요. 사가 상호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세월을 보냈는데…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없어요. 제가 황상과 얘기해 볼게요.”

“황상은 예전부터 널 마음에 안 들어 하셨잖니. 널 보고 더 화를 내시면 어떡하려고? 이 어미는…….”

“황상이 절 황후로 들이겠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차피 언젠간 만나야 해요.”

사봉봉은 담담한 얼굴로 결연하게 말했다. 사앵앵은 그녀의 모습에 까닭 없이 마음이 놓였다. 그간 그들은 무수히 많은 풍파를 이겨 내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겉으로 보기엔 그녀가 사봉봉을 이끄는 것 같지만, 사실 사봉봉은 그녀보다 더 침착했다. 그녀가 망설일 때마다 사봉봉이 단칼에 결정을 내려 주기도 했다.

사봉봉은 황상皇商이라 궁을 드나들 수 있는 요패가 있었다. 황제를 모시는 사희와 서로 아는 사이였기에 그에게 황제를 뵙고 싶다는 말을 전해 달라 했다. 하지만 황제는 단칼에 거절했다. 사봉봉은 계단 아래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얼굴도 보지 않을 만큼 그녀를 싫어하시겠다!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은 지도 몇 년이 지났지만, 사봉봉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어릴 적 자주 입궁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그녀 역시 마음이 설렜다. 궁녀들과 태감들도 그녀를 보면 예를 갖춰 사씨 아가씨라 불러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소는 똑같아도 전부 낯선 이들이었다. 오가는 사람도 낯선 얼굴이었고 그녀의 기분도 예전과는 달랐다.

묵용린이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니 그녀가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쉽게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한 끝에 묵용청양의 요대궁으로 향했다.

사장풍이 잡혀간 일은 벌써 파다하게 퍼졌다. 사안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황후를 정하는 어전 조서가 내려오자마자 국구가 될 사람이 대리시로 끌려 들어간 것은 누가 봐도 위중한 일이었다. 보아하니 사봉봉이 황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조차 묘연헸다.

묵용청양도 이 소식을 듣고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봉봉이 먼저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사봉봉에게 정확한 사정을 물었다.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사봉봉은 앞뒤 사정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 정황을 들은 묵용청양은 기분이 나빴다.

“봉봉, 우리 황형이 그렇게 싫었어요? 비록 황명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면 황형의 체면이 뭐가 되겠어요? 한 나라 군왕의 체면은 하늘보다 높아요. 이번엔 봉봉이 잘못한 거예요.”

사봉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잘못했어요.”

“나에게 솔직하게 말해 봐요. 황형에게 시집가는 게 싫어요?”

사봉봉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황상이 두려워요.”

“두려워할 게 뭐 있어요? 설마 봉봉을 잡아먹겠어요?”

묵용청양은 의아하다는 듯 덧붙였다.

“우리 황형은 평소에 좀 엄숙하지만… 마음씨는 좋아요. 오래 알고 지내면 봉봉도 느낄 거예요.”

사봉봉은 이런 대화가 좀 불편했다. 그녀가 입궁한 이유는 아버지를 구하는 것이었다.

“전하,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그러니 전하께서 제발 저의 아버지를 좀…….”

묵용청양이 말했다.

“사 장군을 구하고 싶은 건 알아요. 안심하세요. 제가 꼭 도와 드릴게요. 다만 아직은 황형이 화가 나 있는 상태니, 황형의 심기를 먼저 살펴봐야겠어요. 화가 좀 풀리면 제가 용서를 구해 볼게요.”

사봉봉은 말했다.

“사실 제가 오늘 입궁한 건 황상을 만나 뵙고 싶기 때문인데, 황상께서 만나 주지 않으세요. 그래서 전하께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봉봉이 황형의 체면을 구겼으니, 당연히 만나 주지 않겠죠. 조금 더 기다려야…….”

사봉봉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옥은 사람이 머물 만한 곳이 아니에요. 가능한 한 아버지를 빨리 나오게 하고 싶어요. 저희 어머니는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세요. 먹지도 잠을 이루지도 못하세요.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하면 어머니가 충동적으로 행동하실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그러면 상황을 수습하기가 더욱더 어렵게 될 거예요. 전하, 황상을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세요. 제가 황상께 잘못을 빌고 어떤 처벌을 내리시든 달게 받겠어요.”

묵용청양은 턱을 긁적거렸다.

“알았어요. 꼭 그렇게 하겠다면 한번 시도해 볼게요.”

그녀는 눈알을 굴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해 봐요…….”

묵용청양은 목소리를 낮추어 사봉봉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그녀의 계획을 들은 사봉봉은 눈빛을 반짝였다.

“제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아요.”

묵용청양은 자신의 종복인 소덕자小德子를 데려오게 한 후,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를 속삭였다. 소덕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받들러 갔다.

소덕자가 떠나자마자 묵용청양은 사봉봉을 데리고 승덕전으로 향했다. 사희四喜는 멀리서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사가 아가씨는 담력이 대단하네. 황상께서 만나 주지 않으시니 바로 공주 전하를 찾아가? 오늘 사가 아가씨까지 붙잡혀 부녀가 나란히 하옥될지도 모르겠군.’

그는 급히 마중 나와 묵용청양에게 예를 취했고, 사봉봉을 보며 난처한 듯 말했다.

“사가 아가씨, 전하를 모셔 와도 소용없습니다. 황상께서는 아가씨를 만나 주지 않으실 겁니다. 소인을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오.”

묵용청양은 눈빛을 번뜩였다.

“내가 와도 소용없다니? 누가 그래요?”

사희는 감히 그녀의 성미를 건드릴 수 없어서 웃으며 말했다.

“소인의 뜻은… 황상께서 지금 진노하고 계신데… 이럴 때 들어가시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

묵용청양은 정색하고 말했다.

“비켜서요. 기름은 무슨! 우리는 불을 끄러 왔어요.”

사희는 사면초가였다. 감히 귀신보다 무섭다는 청양 공주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녀들을 들어가게 해 황제를 더 진노하게 할 순 없었다.

묵용청양은 말없이 그를 뚫어지라 바라보기만 했다. 어찌나 눈을 부릅뜬 건지 묵용청양의 눈이 다 아파 왔다. 사희는 그녀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곧 그녀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자 그는 섬뜩한 마음에 한 걸음 물러섰다. 묵용청양은 얼른 사봉봉을 끌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말했다.

“봤어요? 이런 걸 위엄이라고 하죠.”

“…….”

위엄 따윈 전혀 보지 못했고, 그녀의 눈동자가 곧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만 보였지만 사봉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재 입구까지 도착했는데, 그녀들은 또 가로막혔다. 이번에는 영십칠이었는데, 그는 육친도 몰라보고 황제의 말만 듣는다는 사람이었다. 묵용청양은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조금 답답했다.

“어떻게 영가 사람들은 다 이렇죠? 영 대인도 그렇고 영안도 그렇고, 하나같이 돌 같아선. 정말 보기 싫어요.”

영십칠은 똑바로 서서 그녀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다. 묵용청양은 고개를 돌려 사봉봉을 바라봤다.

“들어가서 아무 말 말고 먼저 무릎부터 꿇어요.”

영십칠은 공주가 자신을 공기 취급하는 것이 좀 우스웠다. 그가 여기 있는 한, 그녀들은 절대 들어갈 수 없었다.

‘공주 전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십니다.’

그러나 그가 오히려 묵용청양을 과소평가했다. 이 물건은 한 번도 상식에 맞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그의 팔을 꼭 껴안으며 사봉봉에게 속삭였다.

“어서 들어가요.”

영십칠은 물론이고 사봉봉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청양이 이런 방법을 쓸 줄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린 그녀는 얼른 문발을 걷어 올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영십칠은 고개를 숙이고 청양 공주에게 붙잡힌 팔을 내려다보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그녀는 남녀가 유별한 것도 모른단 말인가? 자신의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지 가늠이 안 가는 것인가? 사람들과 이리 함부로 접촉하다니… 거기에 어전에서 추태를 보이는 게 어떤 죄인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묵용청양은 재빨리 팔을 풀었다. 그녀는 턱을 치켜들고 콧방귀를 뀌더니 사봉봉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그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똑같이 얼어붙은 사희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사희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입을 봉하는 동작을 하며 자신은 함구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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