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6화
두 시종은 남류청의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상전의 말을 따랐다. 그들이 다시 두말없이 몽둥이를 내리치기 시작하자 삭만은 황후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황후가 눈짓하자 그녀의 시종 둘이 몽둥이를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남류청의 시종들은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온몸을 비틀며 싸우기 시작했다. 쌍방의 하인들이 모두 자기 상전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나섰고,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다.
일순간 우열을 가리지 못하자, 옆에 서 있던 시종들까지 가세했다. 하나둘 싸움에 가담하게 되면서 결국 패싸움이 일어났고, 곧 형방은 온통 싸우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탁려는 혹시 남류청이 다칠까 두려워 벽 구석으로 그녀를 밀고 그 앞을 막아섰다.
그때, 갑자기 입구에서 호통이 들려왔다.
“다들 멈추거라!”
마치 천둥소리와 같은 그 호통에 싸우고 있던 이들은 그대로 털썩 무릎 꿇었다.
형방으로 들어온 황제는 남류청이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곤,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봤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황후는 모든 일을 사실대로 설명했다. 하지만 너무 분한 나머지 숨을 헐떡였고 급기야는 무릎까지 꿇었다.
“폐하, 부디 신첩이 당한 모욕과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황제는 황후를 일으켜 세웠다.
“황후는 잘못이 없는데 어찌 무릎을 꿇는 것이오?”
그는 침음을 삼켰다.
“시녀가 덕을 잃으면 황후에게는 훈계할 권리가 있소. 그건 나무랄 수 없지. 형방에 들어가면 각자의 명대로 정해지는 것. 팔자가 센 놈은 살아서 나갈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죽기도 하지. 물론…….”
그는 황후를 위로하는 듯하더니, 순간 그녀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덕마는 귀비의 사람이니 형을 집행할 때, 정도를 지켜야 했소. 귀비가 저자를 처벌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는 피범벅이 된 삭만의 등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귀비의 처벌이 좀 지나쳤군. 이번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거라.”
말을 마친 그는 남류청의 손을 잡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류청은 황제의 손을 뿌리쳤다.
“신첩은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자가 덕만을 죽였으니, 신첩은 저자를 죽일 것입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거절을 당했기에 황제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남류청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그는 그걸로 그녀를 꾸짖는 대신 조용히 말했다.
“이 정도 했으면 되었다. 적당히 하거라. 괜한 소란 피우지 말고.”
“폐하께서 신첩을 때려죽이시든지, 신첩이 저자를 때려죽이든지… 폐하께서 선택하십시오.”
“…….”
그는 남류청이 정색하며 그리 말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는 하겠다고 결심한 일은 반드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황제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귀비가 원하는 대로 하라.”
“폐하!”
황후가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지만 황제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남류청을 데리고 떠났다.
* * *
황후는 덕마를 때려죽였다. 아마도 남류청에게 본때를 보여 주려고 한 것 같았지만, 남류청은 가만히 참기만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는 심지어 황제의 체면마저 신경 쓰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황제가 남 귀비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았고, 남 귀비는 뜻대로 삭만의 목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황후와 남 귀비의 대치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남류청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도 삭만이 단지 형을 집행한 아랫사람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덕마를 진짜로 죽인 사람은 바로 황후였다. 그녀는 지금껏 상대가 나를 범하지 않으면 나도 상대를 범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그런데 황후가 덕마를 죽였으니, 그 값을 톡톡히 받아내야 한다.
진전이 죽었을 때, 그녀는 슬픔을 마음속 깊이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덕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그녀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단지 아랫사람일 뿐인데, 귀비 마마께서 어찌하여 혈육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녀는 며칠 사이에 가만히 지켜볼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하게 되었다. 눈두덩은 푹 꺼졌고, 안색은 창백해졌으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황제는 너무 수척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게 마음이 아파, 죽 그릇을 손수 내밀며 조심스럽게 권했다.
“이렇게 먹지 않으면 어찌하느냐? 며칠 만에 이렇게 살이 빠지다니……. 안심하거라. 짐이 덕마를 위해 후하게 장례를 치러 주겠다. 그녀의 가족도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게 할 것이다.”
그를 바라보던 남류청이 차갑게 말했다.
“그녀의 가족이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덕마가 살아 돌아오길 원합니다.”
황제는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대체 무슨 고생이냐?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으니 단념하거라.”
“단념할 수가 없습니다.”
“짐이 덕마를 닮은 시녀를 찾아오라고 하마.”
“아무리 닮아도 그건 덕마가 아닙니다.”
황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시녀일 뿐인데, 어찌 이러느냐? 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구나.”
“폐하에겐 덕마가 시녀로 보이시겠지만, 제 눈에는…….”
남류청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여동생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어리숙한 여동생을 보호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덕마를 지키지 못했다니. 그녀는 스스로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 말에 화가 난 황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귀한 귀비가 한낱 비천한 시녀를 여동생으로 삼았다니, 이게 무슨 우스갯소리란 말인가?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러면 안 된다. 말해 보거라. 어쩌고 싶은 것이냐? 짐이 다 들어주마.”
남류청은 그를 바라보지 않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황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 말에 황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곤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건 안 된다.”
그러자 남류청은 눈을 치켜뜨고 반문했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제 말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셨잖습니까. 다 거짓이었습니까?”
“짐이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느냐? 황후의 지위를 제외하고 뭐든 너에게 줄 수 있다고.”
“폐하께서는 신첩을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뭐든 신첩의 말을 들어주시겠다고 하셨으면서, 왜 신첩은 황후가 될 수 없습니까?”
“덕을 잃지 않은 황후를 함부로 폐위할 수 없다. 이는 황실의 규율이다.”
남류청이 냉소를 지었다.
“폐하께서 자꾸 규율을 말씀하시는데, 귀비인 신첩이 계속 전정에서 지내고 있는 건 규율에 맞습니까? 폐하께서 궁비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했던 총애를 신첩이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건 규율에 맞는 겁니까?”
말문이 막힌 황제는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류청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과연 황제의 사랑은 믿을 수 없었다. 황제가 아무리 그녀를 좋아해도, 그녀를 위해 나라의 근간을 흔들진 않을 것이다. 황후는 단순히 황후의 지위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황후의 뒤에는 백 년을 이어 온 엄청난 가문이 있었다. 복잡하게 뒤얽힌 권력 관계는 단숨에 해결할 수 없었다. 조정이 안정되어야 천하가 비로소 평안할 수 있는데, 만약 황후를 건드리면 조정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황제가 날마다 수많은 일을 처리하며 고된 하루를 보내는 건 모두 천하의 안정을 위해서인데 어찌 황후를 건드리겠는가.
남류청은 그런 황제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푹 빠진 것 같으면서도 한 번도 그녀 때문에 이성을 잃은 적은 없었다.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결과를 원하는 황제는 결코 지금의 황후를 폐위하지 않을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는 그녀를 강제로 곁에 둔 것처럼, 그것이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하고 말 터였다. 누구라도 그를 흔들 수 없다.
저녁이 되자 황제가 다시 찾아왔다.
“짐도 네가 기분이 안 좋다는 걸 안다. 며칠 뒤에 시간이 나면 짐이 데리고 나가서 기분 전환을 시켜 주마.”
남류청은 힘없이 탁자에 기대 말했다.
“폐하, 신첩이 이런 꼴로 어디를 갈 수 있겠습니까?”
황제는 그녀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탁려가 들고 있던 죽 그릇을 받아 들며 침착하게 말했다.
“짐이 애원하마. 이 죽 그릇을 비우고, 다른 것을 요구한다면 무엇이든 들어주마.”
남류청은 지금까지 황제를 위협하고자 단식한 게 아니라 정말 식욕이 없던 것이었지만 애써 죽 그릇을 받으려 했다. 황제는 그녀의 손을 피하며 말했다.
“입 벌리거라. 짐이 먹여 주마.”
남류청이 말했다.
“아닙니다. 신첩이 혼자 먹을 수 있습니다.”
황제는 눈을 치켜떴다.
“짐이 보기에 그릇을 들 힘도 없을 것 같다.”
그러고선 죽을 한 숟가락 떠서 그녀의 입가에 가져갔다. 결국 남류청이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죽을 받아먹자 비로소 잔뜩 찌푸려져 있던 황제의 미간이 펴졌다.
금세 죽 그릇이 바닥을 보이자 황제가 말했다.
“이제 요구해 봐라. 뭐든 좋다. 뭘 원하느냐?”
남류청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첩은 폐하께서 화아를 태자로 책봉하시길 원합니다.”
“…….”
황제가 난처해하자 남류청은 빙긋 웃었다.
“폐하께서 신첩을 또 속이실 줄 알았습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고 하시니, 신첩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너도 알고 있지 않으냐? 태자와 황후는 하나인데, 태자를 폐위하는 것과 황후를 폐위하는 게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당연히 차이가 있지요.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황후를 폐위하시거나, 아니면 태자를 폐위하시거나. 폐하께서 선택하십시오.”
다시 화가 치민 황제는 죽 그릇을 탁자 위에 내던지며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 여인은 열 명의 언관보다 더 다루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조정에서 정무를 볼 때도 이 정도로 심력을 소모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남류청이 스스로 화를 좀 삭일 수 있도록 혼자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하면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의 생각과 달리 남 귀비는 사흘이 멀다 하고 황후에게 달려가 문제를 일으켰다.
하루는 황후의 도자기를 몇 병 깨뜨렸고, 그 다음 날은 황후에게 한바탕 폭언을 퍼부었다. 또 그 다음 날은 황후더러 폐위될 거라고 위협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총애를 등에 업고 교만하게 구는 총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