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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020)화 (1,020/1,192)

제1020화

황제는 점심에는 신하들을 초대했고 저녁에는 비빈들과 식사했다. 남류청은 무거운 배를 내밀고 황제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황제의 왼쪽에는 온화하고 고귀한 황후가 앉아 있었다. 지난번에 황제에게 호되게 혼쭐난 이후로 황후 역시 행동을 삼갔다. 아마도 그 후로 지금의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고 치부한 모양이었다.

후비들도 그녀를 보면 여전히 비위를 맞췄고, 황제도 매우 자상하게 행동했다. 수시로 반찬을 집어 주고, 추위와 안부를 물으며 매우 세심하게 보살펴 주었다.

그런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불만을 사고, 그녀에게 오히려 폐를 끼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그는 다정하게 엄지로 그녀의 입가에 묻은 국물까지 닦아 주었다. 황후의 입가는 딱딱하게 굳어졌다.

황제는 이미 점심에 술을 한바탕 마셨지만 후비들이 주는 것도 마셔야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손을 내저으며 더 이상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한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다른 손은 탁자 밑으로 내려 남류청과 깍지를 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꽉 잡은 손은 절대 놓지 않았다.

황제가 그녀를 잡아당기자, 깍지 낀 두 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황제는 그런 후비들의 여러 표정들을 즐기는 듯했다. 그는 그녀를 향한 분노의 시선이 아직 모자란다고 생각했는지, 아예 깍지 낀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수행이 깊지 않은 비들은 나지막이 소리를 질렀다.

황제는 껄껄 웃으며 그녀를 끌어안고 성큼성큼 떠나갔고, 그곳에 남은 후비들은 황후를 힐끔거렸다.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나무라듯 말했다.

“폐하, 그러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신첩을 더 미워할 게 아닙니까?”

“그러면 뭐 어떠하냐?”

황제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짐은 그녀들에게 알린 것이다. 짐이 너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속으로 원망했다. 그가 아무리 그녀를 좋아하면 무엇 하나? 여전히 이 황궁에 잡아 둘 것이고, 황제는 제왕다운 냉혹함을 만천하에 보여 줄 것이다.

이날 황제는 기분이 매우 좋은 것 같았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는 그의 흥취가 더욱 고조되었다. 그의 열정에 겁을 먹은 남류청은 그에게 경고했다.

“폐하, 신첩은 홑몸이 아닙니다.”

황제는 씩씩거리면서 그녀를 옆으로 눕히고 뒤에서 비집고 들어가며 속삭였다.

“짐이 태의에게 다 물어봤다. 이제는 괜찮다고 하는구나.”

그녀의 몸은 훨씬 풍만해졌다. 그는 그녀의 허리춤에 있는 살을 꼬집으며 이를 악물고 그녀에게 엄포를 놓았다.

“다시 홀쭉해지는 건 허락하지 않겠다.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거라. 짐은 이렇게 살집이 있는 게 더 좋구나.”

흥분이 고점을 찍었을 때, 황제는 그녀의 얼굴을 억지로 잡아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짐이 좋으냐?”

그녀의 눈빛은 이미 흐릿했지만, 검붉은 작은 입술은 한 마디 토해냈다.

“좋아요.”

그는 뒤에 듣기 싫은 말이 따라 나올까 봐 두려운 듯, 즉시 입맞춤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자신에 대한 처벌은 아무리 기다려도 내려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매일 먹는 음식까지 눈여겨볼 만큼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사실 황제가 독을 넣지 않을 거라는 건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합리적이면서도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될 징벌을 내릴 것이다. 진전과 황후에게 한 것처럼.

그녀는 진전을 떠올리곤 했다. 그는 그녀 앞에서 마치 백지장과 같았기에, 그녀는 그의 모든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진전이 자신을 사랑하고, 또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순된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킨 그의 심정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전의 마음속에 그녀와 황제 중 누가 더 중요한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항상 진전에게 장난을 쳤었다. 그가 얼굴을 붉히고 쩔쩔매는 것을 보면 너무 즐거워서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그녀가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탁려가 말했다.

“마마, 밖은 상당히 추운데 어디를 가십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복도를 좀 걷고 싶구나. 덕마가 곁에 있으면 되니까 너는 따라오지 말아라.”

침전을 나와 복도를 지나면 바로 황제의 서재가 나왔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입구를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덕마에게 따라오지 말라며 손짓하고 조용히 걸어갔다.

덕마는 그녀가 황제에게 장난을 치려나 싶어서 입을 가리고 그곳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남류청이 문을 밀고 들어가려는데, 황제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없어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찾을 사람을 보내지 않았느냐?”

그러자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누군가 대답했다.

“원래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그런데 진 대인께서 뭔가 눈치를 챘는지, 처음에는 협조적으로 행동하시다가 나중엔 미처 손쓸 틈도 없이 공격을 하시곤 도망치셨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다시 찾아라. 시체든 사람이든 무조건 찾아오라.”

퍽 놀랄 만한 소리였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물러났다. 덕마가 물었다.

“마마, 왜 안 들어가십니까?”

그녀는 대답했다.

“폐하를 방해하면 안 되니 그냥 돌아가야겠다.”

그녀는 내심 은근히 기뻤다. 없어졌다는 건 곧 진전이 도망갔음을 의미했다. 노심초사했던 그녀의 마음이 마침내 조금 가라앉았다. 그녀는 더 이상 초조해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자신에게도 처벌이 내려지길 기다렸다. 진전이 나타나길 기대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일단 나타나면 그건 다시 황제의 손에 잡혔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징벌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는 아이를 낳았다. 예상했던 날보다 빠른, 이듬해 유월의 일이었다.

초원에 나가 있던 황제는 궁으로 돌아와 사내아이를 보았다. 그는 아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그녀에게 말했다.

“너를 닮았구나.”

그녀는 힘겨운 웃음을 지었다.

“폐하를 닮지 않았습니까?”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들며 말했다.

“아직 어려서 모르겠구나.”

그녀는 오히려 속으로 통쾌했다. 그녀는 그의 작은 반응도 능숙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가볍게 눈썹을 들어 올리는 건 그의 마음이 상처를 받았다는 뜻이었다.

“폐하, 기쁘십니까?”

그녀가 또 물었다. 황제는 시선을 그녀에게 옮기며 대답했다.

“당연히 기쁘지.”

그녀는 다시 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황제는 잠시 그녀와 눈을 마주치더니 입을 열었다.

“네 아들인데 짐이 어찌 싫어하겠느냐?”

그녀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의 아들이 아니라 네가 낳은 아들이란 그의 대답은 예전에 그가 했었던, 너의 아이란 말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는 줄곧 그날의 일을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고, 그의 가슴에 박힌 가시를 내버려 두었다.

황제는 그녀의 손을 가슴에 품고 갓 태어난 아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이젠 가기 싫겠구나. 그렇지?”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이제 보니, 이것이 바로 그녀에게 내리는 처벌이었다. 남원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가혹한 징벌이다.

그는 참을성 있게 그녀가 출산할 때까지 기다렸고, 아이를 그녀의 발을 묶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제 그녀는 그의 곁에 영원히 묶이게 된 것이다. 곤청롱, 역시 수를 두는 실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신첩의 부군과 아이가 모두 여기 있는데… 신첩이 어딜 가겠습니까?”

* * *

어린 황자가 태어난 지 백 일 가까이 되었을 때, 진전이 돌아왔다. 그는 마치 춘륜에서 패륜이까지 걸어온 것 같았다. 남루한 옷차림과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얼굴에는 상처가 나 있었고 다리도 절뚝거렸다. 궁문을 지키는 사람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그를 입궁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소식을 들은 황제는 직접 마중을 나왔다. 남류청도 황제의 옆에 서서 진전이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슬픔도 연민도 없었고 노여움은 더더욱 없었다.

황제는 곁눈으로 그녀를 두 번이나 힐끔거리다가 앞으로 나갔다. 진전은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하려 했다. 황제는 얼른 그를 일으켜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왔으니 되었다.”

진전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청량하지 않았다. 그는 잔뜩 쉰 목소리로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소신에게 그래도 돌아오라고 하시기에… 소신, 돌아왔습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네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는 좌우에 명했다.

“진 대인을 데리고 가서 씻기고 환복시키거라. 저녁에는 짐이 진 대인과 술을 거하게 한잔해야겠다.”

진전은 남류청에게 예를 취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그를 모르는 사람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황제는 자리를 뜨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돌아왔으니 짐은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나.”

“그러게요.”

남류청이 웃으며 말했다.

“진 대인이 실종된 후, 폐하께서는 제대로 드시지도, 주무시지도 못했잖습니까. 이제야 편안히 주무실 수 있겠군요.”

황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짐이 기억하기에, 귀비는 예전에 진 대인을 좋아하지 않았었지? 왜, 그가 무사히 돌아와서 기분이 나쁜 것이냐?”

그녀가 가볍게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신첩의 기분이 좋거나 나쁠 게 뭐 있겠습니까?”

그녀는 이내 소매를 홱 뿌리치더니 자리를 떠났다. 황제는 그녀가 성질부리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틀 후, 어린 황자의 백일잔치였다. 황제는 황자에게 정식 성명을 하사했다. 곤청화昆清華였다.

연회 석상에서 남류청은 진전을 다시 만났다. 그는 막 돌아왔을 때보다 한결 나아진 모습이었다. 은색 연갑으로 갈아입고 꼿꼿하게 세운 신형에 뛰어난 기상이 돋보였다. 단지 지팡이를 하나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연고를 발라서 막 전쟁터에서 돌아온 노장과도 같았다.

그녀가 아이를 안고 나오자 진전의 눈길이 아이에게 닿았다. 그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다 다시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가슴이 찡해져 일부러 아이를 안고 진전을 지나쳐서 황제의 곁으로 걸어갔다.

황제가 아이를 건네받아 자애로운 얼굴로 입맞춤을 하더니 다시 들어서 신하들에게 보였다. 신하들이 함성을 질렀다.

“몽달의 작은 파도! 작은 파도!”

하늘을 뒤흔드는 함성 속에서 남류청은 진전도 열렬히 고함을 지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마도 가장 진심 어린 함성을 쏟아내는 사람은 바로 진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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