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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016)화 (1,016/1,192)

제1016화

“폐하는 아기가 좋으세요?”

남류청이 물었다.

“당연히 좋지.”

황제가 그녀를 어루만지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황자면 더 좋으시겠어요, 아님 공주?”

그녀가 다시 물었다. 잠시 생각한 황제가 말했다.

“짐은 공주면 좋겠구나. 너처럼 예쁜 공주.”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황자면 안 되나요? 황자야말로 큰일을 할 사람인데 말이에요.”

“짐에게는 이미 아들이 넷이나 있으니 딸을 갖고 싶구나.”

그러면서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공주라면 짐이 모든 사랑을 다 줄 것이다.”

“아니라면요?”

그녀는 한사코 그와 반대로 이야기했다.

“너의 아이라면 다 좋다.”

황제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사이에 아이가 하나뿐이겠느냐? 시간이 지나다 보면 황자와 공주 모두 생길 것이다.”

남류청은 그를 살짝 때렸다.

“폐하는 절 뭘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곤청롱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몽달에서 남자가 여인에게 사랑을 표하는 방법은 바로 아이를 갖게 해 주는 것이다.”

남류청은 그를 흘겨보고는 무시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전정으로 거처를 옮긴 뒤로 남류청은 진전을 볼 기회가 많아졌다. 그는 늘 궁전 주변에 있었고, 때때로 황제와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번은 남류청이 들어가니 황제가 그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녀는 금군 통령이 궁정의 안전을 지킬 뿐만 아니라 황제와 바둑도 둬야 하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진전은 어색하게 예를 차리고 자리를 비켜 주려 했다. 남류청은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 대인은 왜 나만 보면 피하나요? 본궁이 사람이라도 잡아먹나요?”

황제가 웃으며 물었다.

“왜, 진 대인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는가?”

그는 곧 지난번 일이 떠올라 별스럽지 않게 말했다.

“얼마나 오래 지난 일인데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어. 이번에는 짐도 같이 있었는데, 무례하게 굴지 않았으니 괜히 트집 잡지 말거라. 그러다 진 대인이 놀라겠어.”

“진 대인, 본궁이 당신을 잡아먹나요?”

남류청이 물었다.

고개를 든 진전의 눈에 빛이 반짝하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황제는 진전이 곤란해하는 것을 보고 손을 저었다.

“그만 가 보거라. 이 판은 이대로 두었다 나중에 계속하지.”

진전이 공수를 하고 나갔다. 황제는 남류청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왜 그렇게 진전을 괴롭히는 것이야?”

남류청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어지러운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요 며칠 진전은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다른 사람은 알아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회임 소식이 들린 후 그의 마음은 불이 난 것처럼 밤낮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길에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고 무슨 일을 해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와 꼭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전정에서 머물고 있는 그녀 주위엔 늘 눈과 귀가 있어 감히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 불길은 계속 타오르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사고를 칠까 두려웠다.

하릴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작은 숲에 와 있었다. 한낮의 숲은 평범했다. 비단 같은 달빛은 없고 햇빛만 쓸쓸하고 스산하게 비췄다.

그는 나무 아래 서서 남류청이 춤을 추던 곳을 바라봤다. 그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의 놀라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그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 * *

며칠 후면 황후의 생일이었다. 수방에서 특별히 예복에 수놓을 문양들을 가져와 황후에게 고르게 했다. 어제오늘 기분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수를 고르는 걸로 기분을 풀어 보려는데 마침 은월이 들어왔다. 은월은 지난번 매를 맞고 한참을 요양하다 다시 돌아와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 잘 왔다. 이 중에 어떤 것이 좋을지 좀 보렴. 본궁은 고르다 보니 눈이 어지럽구나.”

황후가 말했다. 어려서부터 황후를 따랐던 은월은 황후의 취향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뭔가를 정할 때 큰 도움이 되곤 했다. 은월은 두 개를 골라 말했다.

“마마, 이 두 가지가 독특하고 색도 잘 어울리니 이걸로 하십시오.”

황후는 먼저 고른 것들과 함께 따로 놔두고 자세히 보더니 웃었다.

“역시 네가 잘 고르는구나. 이걸로 하지.”

수방 사람이 떠나자 은월이 황후의 귀에 몇 마디 속삭였다. 황후는 몹시 놀란 얼굴로 손을 저어 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정말이냐?”

은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틀릴 수가 없습니다. 날이 어두워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때는 여름이었고 남 귀비는 남원의 옷을 입고 있었으니 잘못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남자가 떠날 때 보초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는데 진 대인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했습니다.”

황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의 일을 어째서 이제야 이야기한다는 말이냐?”

“남 귀비는 폐하의 총애를 받는 사람인데 누가 감히 함부로 혀를 놀리겠습니까? 이것도 그들이 소인에게 잘못을 했기에 대신 공을 세우려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이 죄를 벗고자 본궁과 남 귀비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중상모략하는 것 아니냐?”

“소인이 거듭 물어봤지만 분명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바로 서쪽에 있는 작은 숲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남 귀비와 진 대인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그들도 모른다고 합니다.”

황후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어떻게 진 대인이 그럴 수 있지? 그는 밀회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는데?”

“마마, 남 귀비 같은 여우한테 폐하께서도 당해 내지 못하시는데 진 대인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드디어 저희가 그 여우의 약점을 잡았습니다. 만약 남 귀비와 진 대인이 사통私通을 했다면 배 속에 있는 아이도 누구의 아이일지 모를 일입니다.”

황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서둘러서는 안 될 일이다. 신중하게 계획을 해서 폐하가…….”

그녀는 살짝 한숨을 쉬며 단호하게 말했다.

“폐하께 의심만 심으면 된다. 세상에 어느 남자가 자기 여인이 다른 사람과 정이 통하는 것을 용납한다는 말이냐. 게다가 폐하처럼 자존심 강한 사람이 어찌. 이번에야말로, 본궁은 남류청을 없애야겠다.”

* * *

황제는 붓으로 상주서에 글을 써 내려갔다. 사적나는 얼른 상주서를 받아 한편에 말려 두었다. 그는 상주서를 받아들 때마다 황제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했다. 황제도 그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곁눈으로 보더니 물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사적나가 얼른 허리를 숙이고 대답했다.

“폐하, 이틀 후면 황후 마마의 생신입니다. 폐하께서…….”

황제가 붓을 잠시 멈추더니 대답했다.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잊을 뻔했구나. 곳간에서 옥 불상을 골라 황후에게 선물로 주거라.”

“폐하, 그날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사적나가 물었다.

“네가 직접 가지고 가거라. 짐이 너무 바빠 올 수 없다고…….”

“폐하. 이달 보름날에도 황후 마마를 찾지 않으셨고 지난달에도 가지 않으셨습니다. 황후 마마가 별말씀은 없으시지만 그래도 마음 쓰고 계실 겁니다. 폐하께서도 이번 기회에 황후 마마를 찾으셔서 두 분 관계를 회복하시면 귀비 마마께서도 좋을 것입니다.”

사적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제가 한참 동안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짐도 알고 있다.”

그는 붓을 내려놓고 남류청을 보러 갔다. 그녀를 옆에 두고 잘 돌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배는 여전히 아이를 가진 기색이 없어 황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매일 태의가 진맥을 해서 태아가 잘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이지 저 납작한 배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류청은 푹신한 의자에 기대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른한 얼굴에 잔머리 몇 가닥이 흩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흘깃 쳐다볼 뿐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황제가 민망한 듯 웃었다.

“이 궁궐을 통틀어서 짐을 보고 인사도 하지 않는 것은 너밖에 없을 것이다.”

남류청이 잔뜩 귀찮은 티를 내면서 일어섰다.

“신첩, 폐하께 문안드리옵니다.”

황제가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아니다, 아니야. 그런 예는 일체 면해 준다 짐이 말하지 않았더냐. 아이도 가졌는데 매사에 조심해야지.”

남류청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폐하께서 제가 인사도 없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짐이 그냥 한 말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거냐. 짐은 너에게 인사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는 남류청이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보자 곧 말을 멈췄다.

“됐다. 얼굴 찌푸리지 말거라. 짐도 그만하겠다.”

남류청이 피식 웃었다.

“누가 들으면 폐하가 저를 겁낸다고 오해하겠어요.”

“짐은 네가 겁난다.”

황제는 그녀 곁에 앉아 손을 잡았다.

“아이를 가졌으니 혹여나 네 기분을 상하게 할까 걱정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시녀가 와서 황후 마마가 왔다고 알렸다. 황제는 사적나의 말이 떠올랐다.

“황후를 안으로 모셔라.”

황후가 들어왔다. 그녀는 황제와 남류청이 한 의자에 바짝 붙어 앉아 손까지 잡고 있는 모습이 못마땅했지만 평온한 얼굴로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황제가 다가가서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이틀 후면 황후의 탄일인데 짐과 귀비도 가서 축하주를 한잔 해야지. 괜찮겠소, 황후?”

황후가 웃었다.

“신첩이 이렇게 온 것도 바로 폐하와 귀비를 자리에 모시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신첩이 부끄러워 말씀을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는데 폐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됩니다.”

황제는 그녀의 말에 가시가 돋쳐 있다는 걸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황후는 후궁의 다른 여자들과 달랐다. 그녀는 그의 정실이었다. 두 달이 지나도록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것은 그의 잘못이니 아무래도 미안한 마음이 있어 그는 웃었다.

“황후의 탄일은 짐이 기억하고 있소. 벌써 선물도 준비해 두었소.”

황후는 조신하게 웃으며 남류청을 힐끔 봤다.

“귀비도 몸이 괜찮으면 와서 같이 즐기시게.”

남류청은 황후의 속셈을 알 수 없었지만 입 발린 소리에 그녀도 웃으며 대응했다.

“황후 마마께서 직접 불러 주시니 황공합니다. 꼭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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