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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1010)화 (1,010/1,192)

제1010화

명령을 받은 태의들은 상자를 들고 와 죽은 남 귀인의 발을 치료했다. 남류청의 몸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지만 죽고, 곪은 피부를 정리하자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황제는 옆에 앉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녀가 갑자기 눈을 뜰 거라고 믿는 것처럼 남류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황제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태의들은 잔뜩 겁에 질린 채 처치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니 태의는 자연히 그녀의 감각은 살피지 않고 그저 조금이라도 상처를 깨끗하게 만들 생각뿐이었다.

작은 칼로 곪은 부위를 조심스럽게 발라내다 멀쩡한 곳을 건드려 피가 솟구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신의 몸이 베이기라도 한 것처럼 황제의 숨소리가 커졌다. 태의는 불안한 마음에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황제의 싸늘한 눈과 마주하곤 황급히 두 손 모아 사죄했다.

“폐하, 소신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우선 상처를 마저 치료해라. 조심하지 않으면 배로 벌할 것이다.”

태의는 그제야 남 귀인이 죽었든 살았든 황제의 눈엔 여전히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모두들 정신을 바짝 차리곤 민첩하게 상처를 깨끗이 정리한 뒤 붕대의 매듭을 나비 모양으로 묶기까지 했다.

궁전에 미풍이 불자 얇은 붕대는 바람을 따라 흔들렸고, 조그마한 나비 매듭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나풀거렸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는 황제의 눈빛이 조금씩 흐려졌다. 그때 사적나가 조심스레 들어왔다.

“폐하, 시간이 늦었습니다. 아직 저녁 어선을 들지 않으셨습니다. 소인이 편전에 어선을 준비 시켰습니다.”

황제는 남류청의 차가운 얼굴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짐은 생각이 없다.”

“폐하, 몸을 챙기셔야 남 귀인의 후사를 준비하실 수 있습니다. 폐하의 옥체가 제일 중요하니 한술이라도 드십시오.”

그러나 황제에게 밥 생각이 있을 리가. 그는 아직도 남류청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잘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제대로 혼내 주고 싶어 그녀를 찾지 않았었다. 거기다 그녀의 능력도 보고 싶었다. 그의 눈앞에서도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죽는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것도 그녀의 계략 같았다. 죽음을 가장해 그의 경계심을 풀고 비로소 그를 떠나는 것이다.

사적나가 아무리 권해도 황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듭 권하자 그는 짜증을 내며 모두를 물렸다. 그의 마음속에는 후회뿐이었다. 만약 그녀의 죽음이 이토록 자신을 괴롭게 할 줄 알았더라면 그녀에게 그렇게 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에게는 비현실적인 희망이 있었다. 남류청은 남원의 공주였고, 남원 사람은 무술巫術에 능하니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서양전은 불을 때지 않아 굉장히 추웠다. 황제가 추울까 걱정된 사적나는 얼른 사람들을 시켜 방에 큰 화로를 들여 불을 때도록 했다. 하지만 이미 굳기 시작한 황제의 몸은 춥다는 감각까지 잊은 듯했다.

황제는 그저 방 안이 따뜻해지니 어쩐지 남류청을 어루만지는 촉감도 한결 덜 차갑고 부드러워지는 듯해서 그의 마음속엔 다시금 희미한 희망이 떠올랐다.

그는 시녀들에게 깨끗한 물을 가져오게 했다. 고귀한 황제가 처음으로 여인의 몸을 닦아 주었다. 그는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닦아냈다.

그는 여지껏 그녀의 몸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어둑어둑한 촛불 아래에서 어둠이 올 때까지 뒤엉켰었다. 불을 환히 밝힌 지금, 그의 눈엔 그녀의 몸이 담겨 있었지만 이상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직 그녀의 아름다운 웃음과 부드러움만 기억날 뿐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그녀를 닦아 주면서 그는 슬프고 괴롭고, 또 찢어지게 가슴이 아팠다.

그 뒤에 그는 남류청에게 몽달 옷을 입혔다. 겨울이 오고 있는데 계속 남원 옷을 입고 있으면 추울 것이다. 옷을 입히고 나서야 그는 뒤늦게 그녀가 이미 죽었으니 추운 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 남원 옷이 보기 좋을 것 같아 다시 갈아입힐까 싶었지만 곧 그만두었다. 죽었다 하더라도 그녀가 추운 것은 싫었다.

그날 밤 그는 서양전에 머물렀다. 시종들이 몰려와 그에게 쉬길 권했지만 그는 화를 낼 뿐이었다. 황제가 화를 내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궁전 문 앞에는 진전이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싸라기눈이 마치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듯, 사각사각 그의 모자 위로 쌓이고 있었다.

사적나는 소매에 양손을 찔러 넣고 하늘을 올려 보았다.

“날씨도 변덕스럽기는……. 이제 겨우 시월인데 눈이 내리다니?”

사적나가 진전을 향해 말했다.

“진 대인, 폐하와 함께 자라셨으니 그 정이 남다르지 않습니까? 모쪼록 폐하께서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들어가서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진전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서 있었다.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들어가서 보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황제의 반응 또한 상당히 의외였다. 남류청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는다고 한들 기껏해야 관이나 내려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황제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와 지금까지 있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자리를 지킨 것도 모자라, 태의를 불러 발을 치료하게 하고 몸까지 닦아 주었다.

이 모든 것은 황제가 아직 남류청을 잊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황제는 그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 * *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난 황제는 먼저 남류청의 얼굴을 보러 갔다. 그녀의 얼굴은 어제보다 조금 더 굳어 있었다. 방을 살펴보니 시종이 언제 가지고 나갔는지, 화로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사적나에게 말했다.

“안이 추우니 원래대로 화로를 가져다 놔라. 방에 불도 때고.”

사적나는 곧장 분부를 받들었다. 황제가 늦지 않게 일어나기에 드디어 정신이 돌아온 줄 알았건만… 죽은 사람을 위해 화로를 가져다주라니. 아무래도 아직 마음의 병이 낫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황제는 전정에서 정무를 볼 때도 오히려 평소보다 집중해서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것저것 상세하게 물었다. 때문에 아무도 그가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미간에 피곤한 기색이 있는 걸로 미루어 보아, 잠을 잘 자지 못한 거라 여겼다.

황제는 정무를 마친 뒤 대신 몇 명을 서재로 불러 의논하였고, 이는 정오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사적나는 얼른 어선을 준비시켰다. 황제는 별말 없이 식사를 마친 뒤, 어선방에서 보낸 보양탕도 한 그릇 마셨다. 곁에서 조심스럽게 황제를 관찰하던 사적나는 드디어 그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마디 했다.

“짐은 남 귀인을 보러 가야겠다.”

그 말에 사적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한참 동안 보고 왔으면서 또 뭘 보겠다는 것인가? 남 귀인이 아무리 아름답게 생겼다고 해도 이제는 죽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벌써 입관까지 마쳤으니 이제 황제는 더더욱 그녀를 보러 가선 안 됐다. 그는 황급히 황제를 막아섰다.

“폐하, 폐하께서는 이미 남 귀인께 온 마음을 다하셨습니다. 남 귀인도 저 아래에서 폐하께 감사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일은 황후 마마께서 처리하게 두시고 폐하는 더 이상 염려하지 마십…….”

황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사적나는 하는 수 없이 서양전에 있는 황후에게 시종을 보냈다.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얼른 관을 닫아야 한다고 알리기 위해 지름길로 보낸 것이다.

서양전 근처에 이르렀을 때, 황제는 시끌시끌한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속도를 높여 궁 문 두 개를 지나고 보니, 서양전 문짝엔 상을 알리는 흰색 띠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모두 흰 옷으로 갈아입은 하인들은 제 할 일을 하는 중이었다. 황제를 본 하인들은 하던 걸 멈추고 예를 올렸다.

황제는 그들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궁 안에는 이미 제단과 오색 과일, 다과를 비롯해 흰 초와 향로, 백릉구, 그리고 각종 법기가 놓여 있었다. 게다가 사람 키보다 큰 오색 깃발도 세워진 상태였다.

전각 안에서 승려 몇 명이 경문을 외고 있는 게 뚜렷하게 들렸다.

황제는 흰 장막으로 시선을 돌렸다. 관의 윤곽이 비쳐 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한 황제는 장막을 걷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금빛 녹나무 관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황제는 관에 비친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관 뚜껑을 두드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관을 닫으라고 했느냐?”

그가 들어오자 장막 뒤에 있던 사람들은 무릎을 꿇었다. 관리는 전전긍긍하며 대답했다.

“폐하께 아뢰옵니다, 황후 마마이십니다.”

“아주 잘했군. 열어라.”

황제의 말에 모두 크게 놀랐다.

“폐하, 이미 뚜껑을 덮었습니다. 다시 열면 부정 탑니다.”

황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남류청이 그 안에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렇게 교활한 사람이 어떻게 저 관에 누워 있단 말인가?

“열어라!”

그가 매섭게 소리쳤다.

“폐하!”

황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 귀인이 평안을 찾도록 해 주십시오.”

황제는 관 뚜껑에 손을 갖다 대고 다시 말했다.

“이 관을 열어라!”

차갑고 무서운 목소리에 누구도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시종 몇이 일어나 힘을 모아 관 뚜껑을 밀었다. 황후가 창백해진 얼굴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꾹 참고 있는 기색이었다.

“폐하,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다니요. 아랫것들이 비웃을까 걱정되지도 않으십니까? 군주의 체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황제는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황후는 짐의 일에 신경 쓰지 마시오.”

황후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소매를 걷고 충언을 하려다 말았다. 어쨌든 그가 사랑하는 남류청은 이미 죽었다. 황제가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언젠간 그녀의 죽음을 인정해야 하는 날이 오겠지.

관 뚜껑이 열리자 황제는 남류청을 안아 들곤 방으로 들어가 침상에 눕혔다. 그리곤 자꾸만 옆에서 왈가왈부하는 이들을 모두 물렸다.

서양전은 또다시 적막해졌다. 황제는 침상 곁 둥근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관을 여는 건 불길한 일이 맞았지만 그는 자꾸만 단념할 수 없었다. 관을 열자 그 안엔 남류청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창백한 얼굴에 뻣뻣하게 굳은 몸, 숨결 없는 코 그대로였다.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미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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