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6화
그는 화살을 세 발 연달아 쐈으나 한 발도 명중하지 못했다. 매는 계속 포위망 안에 있었지만, 하늘도 점점 어두워졌고 목숨은 살려 주라는 남류청의 부탁 때문에 조준은 쉽지 않았다.
곤청롱은 조급해졌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맞혀야지, 잘못하다간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될 터. 그는 남류청이 실망하는 모습은 원치 않았기에 또다시 화살을 쏴야 했다. 그는 말에서 내려 하늘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그는 한참이 지나도 매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그의 활도 매를 따라 움직였다. 그는 온정신을 궤도에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화살이 쏘아졌다. 화살은 구름까지 뚫을 기세로 맹렬히 날아갔다. 결국 긴 화살은 매의 몸에 정확히 꽂혔고, 매는 몇 차례 몸부림치다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시위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고 달려가서 매를 구경했다.
어느새 장막이 내리듯 어둠이 밀려와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빛까지 모두 가려 버렸다.
곤청롱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남류청이 있어야 할 곳이 텅 비어 있었다. 그녀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혹시나 그녀가 매를 구경하려 앞으로 달려간 건 아닐까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그는 불길한 기운에 휩싸여 목청껏 소리쳤다.
“남 귀인은 어디 있느냐?”
그의 말에 다들 흠칫 놀라 남류청이 있던 곳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역시 남류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곤청롱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했다.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당장 찾거라. 살아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야 하고, 설령 죽었다 한들 시신이라도 찾아와야 한다!”
황제가 진노하자 모든 이들은 황급히 대열을 갖추어 남 귀인을 찾기 시작했다.
밤의 장막이 드리운 초원은 광활하고도 고요했다. 달은 구름에 숨어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밤하늘엔 그저 드문드문 박혀 있는 별 몇 개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어둠 너머로 인영이 아른거리며, 마치 북을 치는 듯한 말발굽 소리가 멀리멀리 퍼졌다.
곤청롱은 우두커니 서서 무표정하게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진전은 그에게서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쩐지 주변마저 더욱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진전은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다.
“폐하…….”
“진전.”
그러나 곤청롱은 냉랭하게 말했다.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 있는가?”
진전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없습니다.”
* * *
일은 생각보다 더 술술 풀렸다. 시위 대열 맨 끝에 합류한 남류청은 빠르게 내달렸다. 그녀는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다. 날이 어두워진 탓에 모든 게 흐릿했다.
바람이 연신 휙휙 소리가 날 만큼 세차게 불었다. 그녀의 옷자락도 끊임없이 펄럭이는 와중에, 이따금 모자가 시야를 가리곤 했다. 그녀가 몇 번이나 모자를 고쳐 썼을까? 점차 그녀는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이 도망쳐야 할 방향을 확인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는 고삐를 당겨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 리를 달렸다. 더 이상 뒤따라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곤 서서히 속도를 늦췄다.
주변은 온통 어두컴컴했다. 이따금 달빛이 잠깐 비쳤지만, 곧 다시 어두워지길 반복했다.
그녀는 별안간 말을 멈춰 세우고 잠시 가만히 초원을 바라보았다. 마치 바다처럼 드넓은 이곳에서 그녀는 작고 고독한 존재에 불과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슬픔이 턱 아래까지 차올랐다. 부모님을 여읜 것도 모자라 아마 여동생까지 중독된 상태일 터. 이 세상엔 이제 그녀뿐이었다. 이역만리에서 홀로 고향까지 돌아갈 수 있을까?
몽달의 황궁에 있었을 땐 늘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신념이 확고했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탓일까, 아니면 깊은 밤이 너무 적막해서일까.
그녀는 잠시 밤하늘을 넋놓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고삐를 흔들며 달려갔다. 이 세상에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있다면 그건 그녀 자신일 터.
그러나 얼마 못 가 그녀는 멈췄다. 별이 방향을 알려 주고 있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끝없는 어둠 속에 무언가 숨어 있는 듯했다. 그녀는 주변을 잔뜩 경계했다. 여전히 거세게 부는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남류청은 말에서 내려 바닥에 엎드렸다. 지면에서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녀는 황급히 말에 올라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그림자들이 유령처럼 나타나 하나둘 그녀를 에워쌌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고삐를 꽉 움켜쥐곤 묵묵히 주변을 훑었다. 그러나 한 남자가 대열 앞으로 나오더니, 뚫고 나갈 곳을 찾으려는 그녀를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비아냥거렸다.
“이리 오랜 시간 도망쳤는데 고작 이 리 밖이라니. 남류청, 짐이 생각했던 것보다 아둔하구나.”
그를 보자마자 꼿꼿했던 남류청은 순간 비틀거렸다. 분명 철저히 계획을 세웠는데……. 여전히 그의 손아귀 안에 있었고, 더는 도망칠 수 없었다.
곤청롱은 말에서 내렸다. 겉보기엔 평온했지만, 남류청은 그의 눈에 어린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의 성향은 매우 유사했다. 분노하면 할수록 더욱 침착해지는 성격까지도 닮았을 만큼.
그가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남류청의 심장은 누군가 마구 때리고 있기라도 한 듯 요동쳤다.
그는 힘껏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엄청난 충격에 남류청은 넘어졌지만, 그녀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버텼다. 뺨이 부풀어 오르고 금세 입안에 피비린내가 퍼지더니, 선홍빛 피가 입가를 따라 흘러내렸다.
곤청롱은 그녀의 손을 짓밟으며, 허리를 굽혀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리 사서 고생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냐? 초원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자가 남은 길은 어찌 가려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발에 힘을 실었다. 남류청의 이마에 땀이 다 맺힐 지경이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엔 분노도, 두려움도 담겨 있지 않았다.
곤청롱은 그 눈빛에 화가 나, 그녀의 손을 더욱더 세게 짓눌렀다. 그녀가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그러자 그는 흠칫 발을 뗐다. 보드라운 그녀의 손이 뼈가 으스러진 것처럼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그 모습에 그는 무언가 이상한 감정을 느꼈지만 그래도 여기서 그칠 순 없었다. 노여움은 사그라들지 않고 여전히 모든 걸 불태울 듯 이글거렸다. 그는 꼿꼿이 서서 명을 내렸다.
“깨우거라.”
한 시위가 허리춤에서 양피 술 주머니를 꺼내더니 그대로 남류청의 얼굴에 술을 끼얹었다. 안 그래도 쌀쌀한데 거기에 차가운 술까지 더해지니, 그녀는 몸서리치며 정신을 차렸다. 곤청롱은 뒷짐을 진 채 제왕다운 위엄을 드러내며 말했다.
“계획은 훌륭했다. 빈틈도 없었지. 하지만, 네가 혼자서 준비할 수는 없었을 터. 말해 보거라. 공모자가 누구냐?”
남류청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공모자가 있긴 했습니다. 한데 그자의 모습을 잊었으니 제가 한번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조금 의외였다. 곤청롱은 그녀가 당연히 부인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이리 손쉽게 인정해 버리다니. 그녀의 속셈은 알 길이 없었다. 남류청은 겨우 몸을 일으켜 앉더니, 시위를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정말로 패거리를 찾고 있기라도 한 듯 몹시 신중한 표정이었다. 곤청롱은 아무 말 없이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진전은 남류청의 시선이 제게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를 잠시 보더니 시선을 옮겼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진전은 알고 있었다. 남류청이 일부러 핑계를 대 가며 자신에게 전언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 사이를 들키지만 않으면 기회는 또다시 올 거라는 눈빛이었다.
방금 남류청이 황제에게 잡혔을 때 그는 참지 못해 먼저 앞으로 나설 뻔했다. 황제가 남류청의 손을 밟았을 때는 온몸의 피가 머리까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그는 그녀의 짐을 떠맡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 봤자 목숨만 헛되이 버릴 뿐, 그녀를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곤청롱을 제법 잘 알고 있었다. 배반은 황제가 절대 용인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였다.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니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곤청롱은 인내심을 갖고 남류청이 주변을 살피길 기다리다 물었다.
“찾았느냐?”
“여긴 없습니다.”
남류청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여긴 없지만, 다른 무리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곤청롱은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시간을 끌다 공모자가 도와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냐?”
그러자 남류청이 눈망울을 반짝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폐하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지요.”
그녀의 눈은 별보다 더 반짝였다. 곤청롱은 그 눈을 보고 있기 싫어, 시선을 돌렸다.
한참 뒤, 그는 입을 열었다.
“남류청, 네 공모자가 누구든 넌 도망칠 수 없다. 짐이 널 보내 줘야만 갈 수 있으니 망상은 접거라.”
“어떻게 해야 폐하께서 절 보내 주실 건데요?”
곤청롱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네가 죽으면. 그러면 짐이 네 시신은 보내 주라고 하마.”
남류청도 그가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줄곧 패를 숨긴 것이었다. 곤청롱이 그녀를 막으려 할까 봐.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결국엔 도망칠 수 없었다. 곤청롱은 잠시 침묵하더니 남류청을 일으켰다. 그리곤 마대를 던지듯 그녀를 말에 태운 뒤, 시위에게 포박하라고 명했다.
“환궁한다.”
남류청은 봇짐처럼 말 등에 실렸다. 말이 빠르게 달리자 그녀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머리와 다리를 축 늘어뜨린 그녀의 모습은 시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모습에 진전은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그로선 그저 그녀가 실려 가는 걸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남류청은 오장육부가 뒤틀려 구토할 것 같았다. 이러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밧줄은 생각보다 더 탄탄하게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 어지러웠다. 바람이 칼처럼 그녀의 얼굴을 스쳤고, 이미 마비된 지 오래인 손과 발은 개미가 살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괴롭다 한들 어찌하겠는가. 그녀는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보잘것없었지만, 그 미소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한 차례 더 정신을 잃어, 혼절한 채 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