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992)화 (992/1,192)

제992화

황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서 얼른 호통을 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허튼소리인가! 누가 귀인의 목숨을 노린단 말인가?”

남류청는 입가를 끌어올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신첩이 그동안 총애를 독차지했다고 질투했습니다. 하지만, 신첩의 목숨은 폐하의 것입니다. 폐하께서 신첩을 죽으라 하지 않으셨는데, 신첩이 어찌 감히 죽을 수 있겠습니까? 황후 마마…….”

황후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전 보림은 약을 먹으면 증상이 완화될 거라고 했다. 죄질이 목숨을 거둘 만큼 악독하지 않아서 그저 남류청을 붙잡아 한바탕 혼쭐만 내줄 생각이었다. 그걸로 그동안 쌓인 울분을 해소하고 황제의 반응까지 살펴보려 했다.

만약 황제가 와서 남류청을 구하지 않으면 앞으로 후궁은 모두 평안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황제가 사람을 보낸다면 그의 마음속에 정말로 남류청이 있다는 증거였다. 눈엣가시는 조만간 제거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안심하게. 아무도 남 귀인의 목숨을 노리지 않으니.”

황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일은 본궁이 끝까지 파헤쳐서 죄인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 마음을 편히 가지고 몸조리만 하시게나.”

남류청은 힘들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신첩, 황후 마마께 감사드립니다.”

그녀가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지켜보던 황후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 버렸다. 황후가 가자마자 덕마는 울기 시작했다.

“마마, 누가 이렇게 독한 마음을 먹고 음식에 독을 넣었는지…….”

탁려는 팔꿈치로 그녀를 툭 하고 쳤다.

“왜 울어? 아무도 독은 넣지 않았어. 마마께서는 조용히 쉬셔야 하니까. 시끄럽게 하지 마.”

덕마는 잠시 어리둥절해서 눈물을 닦았다.

“아무도 독을 넣지 않았는데, 전 보림과 마마는 왜 이런 거지? 태의가 중독되었다고 말했잖아!”

“음식은 우리 두 사람의 손만 거쳤어. 네가 말해 봐! 독이 있겠어?”

탁려가 한심하다는 듯 덕마를 째려봤다.

“전 보림이 왜 구토와 설사를 하는지는 전 보림 자신만이 알 거야. 그리고 우리 마마께서는.”

탁려가 남류청을 바라보니 그녀는 씩 웃고 있었다. 조금도 아픈 것 같지 않은 모습에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마, 조금 전 그 방법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소인은 정말 아프신 줄 알고…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탁려는 양칫물을 떠서 남류청에게 건넸다.

“마마, 어떻게 태의까지 속이셨습니까?”

물잔을 받아 든 남류청은 입을 헹궈낸 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보잘것없는 작은 재주지.”

남원 사람들은 독약을 제조하고 사용하는 것에 뛰어났다. 남원 황실에도 독을 제조하는 고수가 적지 않았고, 그중에서도 그녀는 최고였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일로 그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늘 밖에 하늘이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 남현속은 사람을 찾아 그녀의 명문命門(경혈經穴 가운데 하나)을 막는 독을 제조하게 했고, 그로 인해 그녀는 고충을 키울 방법이 막혔다. 그렇지 않았다면 곤청롱 따위가 그녀를 붙잡아 둘 수 있었을까? 덕마는 옆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남류청을 멍하니 바라봤다.

“마마, 그럼 중독되신 건 아니죠? 그런데 태의가 준 해독환을 드셨는데 그건 혹시…….”

“그런 건 상관없다.”

남류청이 말했다.

“곤장을 맞는 것보다 차라리 중독이 더 낫지.”

탁려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마마, 황후 마마께서 오늘 일을 알아보시면 진실을 알게 되실 수 있습니다. 마마께서 황후 마마를 속인 걸 알게 되시면, 어쩌면…….”

남류청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건 딱 잡아떼고 인정 안 하면 돼. 독을 썼든 어쨌든 난 중독된 사람이잖아. 태의가 증언해 줄 거야.”

* * *

역시 황후는 뭔가 수상한 점을 느꼈다. 만약 누군가 남류청을 음해하려고 했다면 그녀까지 중독시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녀가 혐의를 벗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았는가?

황후는 바보가 아니었다. 다른 후궁들의 작은 수작에 그녀는 모른 척 눈감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남류청까지 중독되었으니 일이 복잡하게 꼬였다.

남류청의 말이 옳았다. 그녀들 모두의 목숨은 황제의 것이니, 황제가 죽지 말라고 하면 아무도 감히 죽을 수 없었다. 비록 후궁이 암투를 벌이는 수법은 수없이 많지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황후는 혹시 남류청이 스스로 꾸민 고육지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앞에서 남류청이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뇌리를 스치는 그녀의 표정을 떠올리며 그게 연기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궁비들이 황후에게 문안을 드리러 왔다. 황후는 그녀들에게 이 일에 대해 물었다. 궁비들은 모두 의아해하며 좌우를 두리번거릴 뿐 이실직고하는 이는 없었다.

황제는 후궁의 일에 상관하지 않았지만, 후궁에서 발생한 일은 모두 보고 받았다. 사적이 이번 일을 보고했을 때, 황제는 고개를 숙인 채 계속 글씨를 쓰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뜻밖의 반응이었다.

황제와 남류청 사이에 있었던 일은 그가 모두 직접 보았다. 애당초 남류청을 지극히 총애하기에 그는 황제가 남류청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남일인 양 무덤덤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정은 남아 있을 텐데…….

“폐하.”

그가 가볍게 황제를 불렀다. 황제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한참 후에 붓을 내려놓은 그는 상주문을 집어 들어 먹물을 말린 후 입을 열었다.

“사람이 죽지 않았으면 되었다. 게다가 황후가 조사를 한다고 하지 않느냐? 사소한 일로 짐을 성가시게 하지 말거라.”

사적은 알겠다고 응수하며 슬그머니 한쪽으로 물러나서 침묵했다.

황제는 또 한 권의 상주문을 펼쳤다. 아마도 그 상주문이 특별히 난처한 내용이었는지, 황제는 한참이 지나도 비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의 인상이 안 좋아지더니 결국 붓에 묻은 먹물이 종이 위에 떨어졌다.

얼른 상황을 파악한 사적은 수건을 가져와서 도우려 했지만, 황제가 수건을 가져갔다. 그는 상주문에 떨어진 먹물을 수건으로 살짝 눌렀다. 금방 먹물 자국이 흐려졌고 아래에 가려졌던 글씨가 드러났다.

황제는 평소와 같은 안색으로 다시 붓을 들었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게 비답을 내렸다. 금방 여러 권의 상주문을 처리하더니 그제야 사적에게 명을 내렸다.

“치방值房으로 보내거라.”

사적은 응수하고 비답을 내린 상주문을 들고 군기치방軍機值房으로 갔다. 황제는 일어나 천천히 문을 나섰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힘껏 미간을 문질렀다.

* * *

남류청이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덕마와 탁려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마께서 이렇게 오래 앓으셨는데, 폐하께서는 어째서 한 번도 오시지 않는 걸까? 어쩜 남자들은 한 번 변하면 이렇게 달라지지? 정말 서운해!”

탁려가 웃으며 말했다.

“마마가 중독이라는 건 거짓이잖아. 폐하께서는 만물을 꿰뚫어 보시니 분명 금세 알아차릴 거야. 내 생각에는 안 오시는 게 차라리 더 나아.”

덕마가 말했다.

“정말이든 가짜든 폐하께서 위로의 말씀을 좀 해 주셔야지. 다들 마마께서 어전에 계실 때 지극한 총애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난 잘 모르겠어.”

탁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 지금 마마를 대신해서 불평하는 거야? 차라리 폐하께 직접 가서 한번 왕림하시라고 청을 넣지? 혹시 모르잖아?”

덕마는 탁려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서 그녀를 툭 쳤다.

“내가 어찌 마마를 대신할 수 있겠어? 비꼬는 말 좀 하지 마!”

남류청의 비뚤어진 입가에는 소리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다시 안쪽으로 돌아누웠다. 후궁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다 되었지만, 두 시녀를 데려오려고 그를 찾을 때를 제외하곤 그녀는 곤청롱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가 다시는 사소한 일로 방해하지 말라고 말했고, 그녀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곤청롱은 계속 그녀와 장난을 쳤다. 그녀에게 푹 빠진 척 연기했다. 사실 남자는 좋아하는 척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본능이었다. 사랑을 할 때는 대개 자기 목숨이라도 내어 줄 듯하지만, 일단 침대가 아닌 곳에서는 겉치레만 남게 된다.

그녀가 화가 나는 건 그와 헛되이 한 달가량이나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허리가 아픈 것 같았다. 그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바라지 말고 다른 길을 궁리해야 했다.

저녁 무렵, 탁려와 덕마는 어린 시녀를 데리고 들어와서 밥을 차렸다. 음식 냄새를 맡고 일어난 남류청이 장막을 걷어 올리려고 하자 탁려가 들어와 그녀를 붙들었다.

“마마, 배고프시지요? 천천히 일어나십시오. 조금 어지러울 겁니다.”

서양전에는 황후의 사람들이 있었다. 남류청의 거짓이 들통나면 안 되니 그녀는 계속 허약한 환자 역할을 해야 했다.

탁려는 남류청을 부축했다. 미인은 한 가닥의 가벼운 연기처럼 나약해 보였고, 가슴을 움켜쥐고 눈살을 찌푸리니 보는 사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생겼다.

다행히 그 사람들은 음식을 차려 놓기만 하고 곧장 나갔다. 덕마는 문을 닫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남류청은 표정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왜 표정이 그 모양이야? 누가 널 건드렸니?”

덕마는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음식을 건넸다. 그러자 남류청이 탁려에게 물었다.

“얘가 왜 이러는 거니?”

탁려가 입을 열었다.

“마마를 대신해서 화가 났습니다. 폐하께서 방금 화 귀인을 전정으로 부르셨어요. 아마 오늘 밤에 시침하실 것 같습니다.”

남류청이 짧게 응수하더니 젓가락으로 덕마의 손을 쿡쿡 찔렀다.

“이런 일로 기분이 나쁘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래? 후궁에 이렇게 많은 여인이 있는데?”

덕마는 괴로운 듯 말했다.

“소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마마께서 이렇게 예쁘게 생기셨는데 폐하께서는 왜 마음에 두지 않으시는 거죠?”

“왜냐하면.”

남류청은 양간 볶음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눈깔이 삐었거든.”

덕마는 크게 놀라 아연실색했고, 탁려는 몰래 웃음을 참았다. 남류청도 입을 가린 채 낄낄거렸다. 덕마는 탁려와 남류청을 번갈아 보다 금세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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