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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991)화 (991/1,192)

제991화

황제는 그녀가 이렇게 빨리 다시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소 생각지 못한 기쁨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는 웃으며 물었다.

“웬일이냐? 들어서자마자 무릎을 꿇다니… 짐에게 요구할 일이 있는 것이냐?”

“폐하, 예전에 신첩을 시중들던 두 시녀를 돌려 주십시오.”

황제가 말했다.

“이런 사소한 일은 황후한테 얘기하면 된단다. 설마 황후가 두 시녀를 너한테 보내 주지 않겠다고 했느냐?”

“황후 마마께 부탁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황제는 사실 이미 상황을 짐작했다. 분명 황후에게 거절당했기 때문에 그를 찾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까짓 일로 그를 방해하다니……. 그녀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듯했다. 그녀를 꾸짖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걸 보니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마음을 바꾸었다.

“일어나거라.”

황제가 말했다.

“짐이 그 두 시녀를 서양전에 보내 주겠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사소한 일로 짐의 정무를 방해하면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남류청은 허리를 숙여 이마를 바닥에 조아렸다.

“폐하, 성은이 망극합니다. 신첩, 앞으로는 함부로 폐하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황제는 그녀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약간의 억울함이나 불만의 기색을 찾으려 했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야생 고양이가 온순한 집고양이로 변하자 오히려 그가 적응하기 어려웠다.

* * *

남류청은 남 귀인이 되어 서양전에 살게 되었고, 덕마와 탁려도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그 일 때문에 황후는 남류청이 총애를 빌미로 안하무인으로 군다고 진노를 쏟아 냈다. 후궁에 들어오자마자 황후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곧바로 황제에게 청하다니.

그리하여 이튿날 아침, 황후는 문안 인사를 드리러 온 비빈들 앞에서 남류청을 질책했다. 그녀는 남류청이 예전처럼 고집을 부리고 황후에게 말대꾸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더 좋은 핑계거리가 생겨 남류청를 처벌하기 쉬웠다.

하지만, 황후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남류청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엷은 옷으로 감싸져 있는 그녀의 가녀린 몸,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드러난 곡선이 그녀를 더욱 애처로워 보이게 만들었다.

황후는 갑자기 흥이 깨졌다. 그녀는 세가 출신으로서 후궁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평소에도 자신의 신분과 격조를 매우 중시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훈계를 하는 게 마치 소 귀에 경 읽기 같고, 권세 있는 자들이 약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황후는 괜한 트집을 잡는다는 오명을 원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손을 흔들어 그녀를 일어나게 했다. 남류청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지위가 비교적 낮은 궁비이기에 주위에도 모두 그녀와 비슷한 지위의 궁비들이 앉아 있었다.

교양은 당연히 황후보다 못했기에 말투도 경박했다.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을 지껄이는데, 곁에 서 있던 덕마와 탁려도 화가 나서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남류청은 이상할 정도로 잠잠했다. 마치 저들이 욕하는 사람이 그녀가 아닌 것처럼.

비빈들이 해산할 때, 황후는 그녀가 급하게 문턱을 넘는 것을 보고 분명 또 황제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거라 생각했다. 황후는 어린 시종에게 그녀의 뒤를 따라가 보라고 명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남류청은 전정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서양전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 며칠 동안 남류청은 매일 아침 문안하러 오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시간에는 대문도 열지 않았다.

더욱더 이상한 것은 황제도 그녀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류청이 후궁에 들어온 뒤로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싹둑 잘라 낸 듯 끊어졌다. 한 달 남짓 고무로 붙인 듯 죽고 못 살던 사이라는 게 마치 모두의 착각이었다는 듯 말이다.

모두가 한참을 관찰한 결과, 마침내 남류청이 총애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총에서 실총에 이르기까지 불과 하룻밤의 일처럼 짧았다. 황제의 박정함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좋아할 때는 하늘까지 추켜올리지만, 마음이 떠나면 진흙탕에 버려지고 만다.

하지만, 남류청이 황제와 함께 지내던 한 달 남짓은 후궁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박혀 있어 그 분노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들은 남몰래 남류청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논의를 펼쳤다.

하루는 전 보림寶林이 서양전 대문을 들어섰다. 그녀는 남류청과 친해지고 싶은 듯 형님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예를 갖췄다. 그녀는 다른 자매들이 그녀의 지위가 약해 항상 못살게 군다고 했다. 그녀는 궁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온갖 시련을 겪었다며 속상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눈시울까지 붉혔다.

남류청은 시녀에게 차를 올리라고 하고 손님과 함께 수다를 떨었고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전 보림이 말을 멈췄을 때는 이미 식사 시간이 된 상태였다. 찾아온 손님은 식사 시간에 내쫓는 건 예의가 아니기에 남류청은 할 수 없이 전 보림을 식사에 초대했다. 전 보림은 당연히 뛸 듯 기뻐했고, 그녀의 손을 잡고 여러 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이좋게 식사를 함께했고 밥을 다 먹고 난 뒤, 전 보림은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에도 전 보림은 꼭 자기 처소에 놀러 오라고 당부했다. 손님이 떠나자 덕마가 말했다.

“전 보림은 성격이 나약해서 괴롭힘을 당하는 게 사실입니다. 마마와 친해지기를 원하는 건 진심일 겁니다. 이제 마마께서도 대화를 나눌 상대가 생겼으니 외롭지 않을 겁니다.”

남류청이 말했다.

“나에겐 너희들이 있잖아. 내가 언제 외로웠던 적이 있었니?”

하지만 탁려의 생각은 달랐다.

“황후 마마께서 마마를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전 보림이 먼저 다가와 호의를 베푸는 게 이상합니다. 그녀는 감히 황후 마마를 대적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남류청은 웃으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런 건 그만 말하고, 난 졸려서 좀 쉬어야겠어.”

그녀는 덕마와 탁려의 시중을 받으며 안방으로 들어가 낮잠을 잤다. 얼마쯤 잤을까? 깨어 보니 황후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우르르 몰려왔다. 무리에는 시녀뿐만 아니라 태의와 시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덕마와 탁려는 그 위세에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남류청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그들을 맞아 예를 취했다.

“전부 뒤지거라.”

몇 명의 시종들이 그녀의 침실을 뒤지자 가루가 든 작은 병이 나왔다. 태의가 살펴본 결과 그 가루는 독이 있어서 음식에 섞으면 토하고 설사를 했고, 양을 많이 쓰면 목숨도 위태롭게 할 수 있었다. 황후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남류청의 뺨을 내리쳤다.

“전 보림은 자네에게 호의로 다가갔는데 이렇게 해코지를 하다니! 지금 그녀는 앓아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네. 구토와 설사가 멈추지 않아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단 말일세. 이제 만족하는가? 도대체 무슨 원한이 그렇게 깊었기에 이런 짓을 벌인 것인가?”

남류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마와 탁려는 엎드려서 온몸을 떨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황후 마마, 억울합니다. 그 음식들은 저희 마마께서도 함께 드셨는데, 마마께서는 아무 일 없었는데, 어찌…….”

황후는 덕마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억울하다? 지금 증거물도 압수했는데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전 보림은 여기서 식사를 하고 돌아가서 발작을 일으켰다. 독극물까지 찾았는데 억울하긴 뭐가 억울하다는 것이야?”

남류청은 얼굴을 가린 채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후궁은 과연 시시비비가 많은 곳이었다. 다만 그녀를 해치려면 이것보다는 더 고명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정도 수준으로 감히 그녀를 모함하려 하다니.

그녀는 계속 배를 누른 채 천천히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황후는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붓다가 그녀가 쓰러지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뭐 하는 거죠?”

남류청은 배를 끌어안고 대굴대굴 굴렀다.

“마마, 배가 너무 아픕니다.”

황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다른 사람에게 독을 먹여 놓고 본인이 배가 아프다니! 이 무슨 우스운 꼴이란 말인가?”

남류청은 마치 반박할 힘도 없는 듯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자 두 시녀는 당황한 듯 그녀에게 달려갔다.

“마마, 왜 이러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마마…….”

남류청은 창백한 얼굴로 이를 악물고 벌벌 떨고 있었다. 덕마는 황후에게 빌었다.

“황후 마마, 저희 마마께서 많이 아파하십니다. 제발 태의의 진맥을 받게 해주세요. 마마, 제발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황후는 남류청을 냉소적으로 바라봤다.

“여기서 이렇게 아픈 척 해봐도 아무 소용없네. 태의가 진맥하기만 하면 거짓이 바로 드러날 텐데.”

황후는 즉시 태의에게 진맥하라고 명했다. 태의는 남류청의 눈꺼풀을 들춰 보고 혀를 내밀어 보게 했다. 태의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황후에게 아뢰었다.

“황후 마마, 남 귀인도 확실히 중독된 증상이 있습니다.”

황후는 깜짝 놀랐다.

“꼼꼼하게 검사한 것 맞소?”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류청은 와락 하고 구토를 했다. 태의는 다시 한번 꼼꼼히 검사했다.

“황후 마마께 아룁니다. 남 귀인과 전 보림의 중독 증세는 매우 유사하며, 아마도 같은 종류의 독에 중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탁려는 이 기회를 틈타 울부짖었다.

“분명 누군가가 모함하는 것입니다. 황후 마마, 저희 마마의 억울함을 꼭 풀어 주십시오.”

황후가 태의에게 되물었다.

“위독한 것이오?”

태의가 대답했다.

“남 귀인의 증상이 전 보림보다 더 심각합니다. 아마도 독을 더 많이 섭취한 것 같습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황후가 화를 내며 말했다.

“한데도 뭘 더 기다리는 것이오? 빨리 사람부터 구하지 않고!”

사실 황후가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은 증거와 증인을 잡기 위해서였다. 황후가 위독한 사람을 앞에 두고 구하지 않는다면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다.

태의는 사람들에게 남류청을 침대로 옮기라고 한 후, 은침을 꺼내 그녀에게 침을 놓았다. 또한, 해독환을 물에 녹여 마시게 했다. 그리고 남류청이 먹을 탕약을 처방해서 시녀에게 태의소로 가져가서 얼른 탕약을 지으라고 전했다.

의식을 잃었던 남류청은 해독환을 먹자 천천히 의식을 되찾았다. 깨어나 눈을 뜬 그녀는 힘없이 황후를 바라보았다.

“황후 마마, 마마께서 신첩을 싫어하신다는 걸 신첩도 압니다. 또한 후궁에는 신첩을 싫어하여 신첩의 목숨을 위협하는 이들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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