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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983)화 (983/1,192)

제983화

사적은 응수한 후, 친히 나가서 명령을 전달했다. 황제의 명이니 황후도 그의 체면을 봐주지 않을 리 없었다. 남가 여인은 목숨을 건진 셈이다.

황제의 뜻이 형장에 전해졌을 때, 남류청은 거의 숨이 넘어 가는 중이었다.

“잠깐, 목숨을 거두지 말라는 황명이오.”

다급한 목소리에 시종의 몽둥이가 허공에서 멈췄다. 만약 조금만 더 늦게 왔다면 긴 형틀에 누워 있는 것은 시체였을 것이다.

황후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황제는 그녀의 체면을 챙기며 이런 작은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남류청이 이미 황제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황제가 그녀의 체면을 깎았지만, 그녀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비록 부부였지만, 동시에 군신 관계이기도 했다. 그녀는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 * *

남류청이 깨어났을 때, 눈앞에 보이는 건 익숙한 천정이 아니라 둥근 꽃문양의 장막이었다. 등을 맞았기 때문에 반드시 엎드려 있어야 했다. 그녀의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녀가 팔을 들어 올리자 상처가 당겨져 숨이 막힐 정도였다. 바깥에 있던 시녀는 즉시 장막을 걷고 들어왔다.

“아가씨, 깨셨습니까? 물을 드릴까요?”

남류청이 말했다.

“배고파. 밥을 먹고 싶어.”

덕마와 탁려는 조금 놀랐다. 매를 맞고 기절했던 사람이 울기는커녕 배가 고프다며 밥을 달라고 하다니. 등에는 상처가 가득했으나 남류청은 아무 일 없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탁려는 즉시 나가서 음식을 챙겨 왔다. 덕마는 수건으로 그녀의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등에 난 상처를 다시 한번 살펴보며 조용히 물었다.

“아가씨, 아프지 않으십니까?”

남류청은 대답했다.

“생각보다 덜 아픈데?”

그녀가 겪은 아픔에 비하면 이런 정도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덕마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닦아 주었다.

“아가씨는 참 강인하시네요. 전 혹시나…….”

그녀는 말끝을 흐리고 웃으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남류청은 물었다.

“혹시나 뭐?”

덕마는 쑥스러운 듯 입술을 오물거렸다.

“다들 아가씨가 남원의 공주라고 하더라고요. 공주는 금지옥엽이잖아요. 어찌 안 아프시겠어요.”

남류청은 담담하게 말했다.

“죽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는 편안한 자세로 바꿨다.

“나에게 무슨 약을 바른 거지? 시원하네.”

덕마가 대답했다.

“태의가 살펴보고 갔습니다. 아가씨께 옥기고玉肌膏를 발랐습니다. 울혈을 없애고 살이 돋아나는 데는 옥기고가 가장 좋습니다. 게다가 통증을 완화하기도 합니다. 황상께서 하사하신 거라고 들었습니다.”

덕마가 황제를 언급하는 것을 듣고도 남류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저만 들릴 정도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도박이 성공했다. 과연 황제는 그녀가 그렇게 죽는 걸 아쉬워했다. 덕마는 아직도 재잘거렸다.

“오늘 소인은 정말 놀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다행히 폐하께서 구해 주신 덕분에 아가씨는 화를 면하신 겁니다. 처소를 나서기 전에 소인이 아가씨께 뭐라고 당부했습니까? 황후 마마께는 무례하게 굴지 마시라고 알려 드렸지 않습니까? 어쩌다 이렇게 밉보이셨습니까?

폐하께서 만일 손을 쓰지 않으셨다면, 아가씨는 오늘 맞아 죽었을 겁니다. 소인도 아가씨께서 고귀한 출신임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예전과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아가씨께서는…….”

남류청은 그녀의 말을 끊지 않다가 음식 냄새가 나자 고개를 들었다.

“일어나서 밥 먹게 부축하거라.”

덕마는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앉을 수 없으십니다. 소인이 먹여 드리겠습니다.”

“괜찮아. 앉을 수 없으면 서서 먹을 수 있어. 서서 먹어야 많이 먹을 수 있어.”

덕마는 결국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무릎으로 기어서 침대 가장자리로 간 남류청은 한쪽 다리를 뻗어 신발을 신고, 덕마의 어깨에 기대어 다른 한쪽 다리는 질질 끌고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섰다.

탁려는 상을 그녀의 앞에 가져갔다. 아직 상처가 심하기 때문에 그녀가 준비한 것은 모두 담백한 음식이었고, 약간의 기름기가 있는 것은 고깃국뿐이었다. 남류청는 고깃국을 먹어 치우더니 물었다.

“더 있어?”

탁려와 덕마는 놀라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탁려가 머뭇거리며 빈 그릇을 받아 들고 나가서 고깃국을 한 그릇 더 가져왔다.

남류청은 밥을 다 먹고 나서 방 안을 몇 걸음 걸었다. 약효가 떨어졌는지 통증이 점점 심해져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침대로 돌아와 누웠고, 통증에 시달리다 잠이 들었다.

황제가 그녀의 처소를 찾았을 때, 실내에는 아랫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곧장 침대 쪽으로 다가가서 장막을 걷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류청은 침대에 엎드린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황제는 얇은 이불을 들춰 그녀의 옷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분명히 장막 안이 어두웠는데도 그는 백설처럼 하얗게 빛나는 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백옥처럼 매끈한 피부 위에 혈흔이 가득했다. 어떤 곳은 이미 딱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비록 근육과 뼈를 다치지는 않았지만, 살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맞았으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만약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면 상처가 터지고 염증이 생겨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상처를 가볍게 건드렸다. 여인에게 반응이 없는 게 진짜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황제는 허리를 굽히고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봤다. 그녀의 잠든 얼굴은 아름답고 평온해서 방금 형벌을 받은 사람 같지 않았다. 호흡은 일정하고 얕았으며, 옅은 향기가 났다. 아무리 맡아 보아도 무슨 향인지 알 수 없었다.

황제는 가만히 장막에서 빠져나오자 덕마가 들어왔다. 황제를 보고 깜짝 놀란 그녀는 다급히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고, 황제는 손을 내저으며 일어나라고 명했다. 황제가 물었다.

“돌아온 뒤로 저리 계속 자는 것이냐?”

덕마는 사실대로 고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아가씨는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프시다고 하시여 식사를 하셨습니다. 식사를 하신 후, 방 안을 좀 거닐다가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황제는 좀 놀랐다.

“침대를 내려왔었다?”

“네, 소인이 아가씨께 직접 먹여 드리겠다고 했지만 아가씨께서는 서서 스스로 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먹성은 좋은 것 같더냐?”

덕마는 머뭇거리며 답했다.

“좋으신 것 같습니다. 아가씨는 고깃국 한 그릇을 마시고 모자라고 하시며 더 달라고 하셨습니다.”

황제는 실소를 터뜨렸다.

“일어나서 밥도 먹고 먹성도 좋은 걸 보니 덜 맞은 것이로구나.”

말을 마친 황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뒷짐을 지고 자리를 떠났다.

* * *

상처를 돌보는 동안 평온하고 조용한 나날이 흘러갔다. 아무도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남류청은 그 시간이 너무도 지루했다. 분명 그날 밤… 그녀의 방을 찾아온 황제가 직접 옷도 벗기고 상처를 만지작거리기까지 했는데 어째서 진전이 없는 거지?

그녀는 백 번을 생각해도 의아했다. 긴 의자에 앉아서 석양을 구경하던 그녀는 문득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몽달 황제는 그녀가 상상했던 것처럼 무모하고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독하게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조급하면 실수하기 쉬운데, 그녀는 더 이상 실수를 만회할 시간이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속셈을 깊이 숨기고, 황제의 앞에 나타나려고 노력하지 않고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단지 작은 뜰 안에서 얌전히 상처 치료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그녀가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 그녀를 괴롭히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존재는 황후에게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것이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당사자만이 그 가시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상처가 거의 다 나아갈 즈음, 지난번처럼 춤을 추러 오라는 황후의 두 번째 명이 내려왔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이었지만, 남류청만은 지난번과 달랐다. 그녀는 예전의 도도한 태도를 바꾸고 공손하게 황후에게 예를 올렸다. 황후가 작은 흠집도 찾아내지 못하도록 그녀는 널리 알려진 공작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가 겨우 두 걸음 췄을 뿐인데 황후는 춤을 멈추게 했다. 황후는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남원 여인들은 맨발로 춤을 춘다고 하던데… 왜 신발을 신고 추는 것이냐?”

그녀는 화단이 있는 길 위에 서 있었다. 발밑에는 전부 자갈이 깔려 있어서 신발을 신지 않으면 발바닥이 까질 것이다. 하지만 남류청은 두말하지 않고 허리를 숙이고 신발을 벗었다. 백옥처럼 영롱한 발을 모습을 드러냈다. 황후가 또 말을 이었다.

“돌 위에서 추면 발을 다칠 것이니 풀밭에서 춤을 추도록 하라.”

남류청은 도대체 황후가 무슨 꿍꿍이인지 의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풀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후는 그녀에게 춤출 자리를 지시했다.

“한 발 더 물러나거라. 한 발짝 더, 그래, 거기. 장소가 그리 넓진 않지만 나무 상자 안에서도 춤을 췄다고 하니, 괜찮겠지?”

남류청이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삼면이 낮은 관목으로 둘러싸여 오목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딱 나무 상자 크기였다. 관목의 가지와 잎이 그녀의 발 옆을 간지럽게 스쳐서 속에서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도무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황후 마마께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다니. 이건 황제의 귀에 들어가도 자신이 한 게 아니니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황후를 향해 예를 취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낮이 가까운 금빛 햇살 속에서 아름다운 사람이 즐겁고 경쾌하게 춤을 췄다.

가느다란 팔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봉긋한 가슴도 따라 올라갔다. 등 뒤로 앙상하게 드러난 두 개의 견갑골,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는 가늘고 긴 목, 머리를 꼿꼿하게 들고 눈을 감은 그녀는 마치 날렵한 공작과 같았다.

음악은 없었지만, 남류청의 입에서 기이한 가락이 흘러나왔다. 가락은 때로는 높고 때로는 낮게 읊조리듯 이어졌다. 화살에서 활시위를 벗어나는 듯,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듯, 가락과 춤이 조화로워 모든 사람이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먼 나무 아래에 서 있던 곤청롱도 넋을 잃었다. 궁중의 대소사는 모두 그의 귀로 전해졌다. 단지 그가 관여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황후가 또 남류청을 불렀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좀 언짢았던 그는 마침 별일이 없었기에 후궁으로 발걸음을 옮긴 참이었다.

그때, 찬란한 햇빛을 받은 여인이 금빛으로 빛나는 걸 발견했다. 이따금 바람이 불면 나뭇잎 때문에 그녀의 몸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때때로 아른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곤청롱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의 발로 옮겨졌다. 작고 하얀 발목 여기저기에 가느다란 핏자국이 가득했다. 심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선명한 핏자국이 지난번 등에 난 상처를 떠올리게 했다.

곤청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손가락을 비비던 그는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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