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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932)화 (931/1,192)

제932화

의기양양해진 수행원이 당차게 말했다.

“몽달인들은 말을 볼 줄 모르지만 전 잘 압니다. 이건 남쪽에서 올라온 조랑말인데, 크기는 작아도 인내력은 다른 말보다 훌륭하지요. 며칠 밤낮을 꼬박 타고 다녀도 문제 없습니다.”

묵용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은 산길도 잘 걷지요. 아무리 가파른 산도 잘 오를 것입니다. 걸음도 안정적이고, 쉽게 멈춰 서는 법도 없지요. 게다가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습니다. 만약 먼 길을 가셔야 한다면 이 말만큼 좋은 게 없을 겁니다.”

곤청락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수행원은 그저 수박 겉핥기로만 아는데, 황 주인장은 정말 견식이 넓구려.”

묵용감이 겸손하게 대답했다.

“장사꾼은 각지를 다 돌아다녀야 하니 그저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아는 것뿐이지요.”

그가 영십일에게 눈짓을 보냈다.

“아직도 저 형제에게 고삐를 넘기지 않고 무엇 하느냐?”

영십일은 무표정으로 곤청락의 수행원에게 고삐를 넘겼다. 수행원은 활짝 웃는 낯으로 고삐를 받아들었다.

“고맙습니다, 황 주인장.”

곤청락은 묵용감에 대한 인상이 퍽 좋았기에 그와 친우가 되고 싶었다.

“이 말은 황 주인장에게 산 걸로 치고 원래 값의 세 배를 더 얹어 주겠네.”

묵용감이 어찌 그리 할 수 있을까.

“육 전하, 부디 그런 말씀 마십시오. 평소엔 전하를 뵙고 싶어도 뵐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오늘 전하께 말을 드리게 된 것만으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그가 돈을 받으려 하지 않자 곤청락이 미안해했다. 그는 대신 묵용감에게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다. 묵용감도 사양하지 않고 그를 따라나섰다.

곤청락은 평소 대접할 일이 있으면 동래순을 자주 이용했다. 그곳엔 그를 위한 별실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별실은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흘렀다.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탁자와 의자에선 은은한 향기가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원이 잘 구워진 어린 양 한 마리를 들고 오더니 접시에 내려놓았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게 빛이 날 정도였다. 점원은 칼을 들고 고기를 썰더니 반투명한 살점을 접시에 놓았다. 매미 날개처럼 얇고 살짝 말린 게 꼭 꽃송이 같았다.

곤청락은 얼마 전 백천범을 데리고 이곳에서 식사를 한 일이 떠올랐다. 대화가 잘 통하던 자였는데… 태자가 그의 친우를 빼앗아갔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그는 살짝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점원이 할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는 술을 들이켰다. 화를 억누르려 술을 들이켰는데 오히려 화가 더 거세질지 누가 알았겠는가. 묵용감은 그의 안색을 살피며 담담히 물었다.

“전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말씀해 보시지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곤청락은 아무 말 없이 연거푸 술을 들이키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닐세. 말하자면 너무 기네.”

묵용감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혹 태자 전하 때문이십니까?”

곤청락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와 태자의 불화는 패륜이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듯하군.”

묵용감은 직접 곤청락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주며 웃었다.

“전 육황자 전하와 태자 전하의 불화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다들 육황자 전하께선 호탕한 분이라고 말하더군요. 의롭고 따뜻한 마음으로 친우를 대하신다며 다들 전하를 우러러봅니다.”

그 말에 곤청락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본 전하의 됨됨이는 백성들도 다 알지. 태자는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니 본 전하가 언제 한번 제대로 도리를 깨우치게 할 걸세.”

묵용감은 밀가루 피에 양고기와 야채를 올려놓으며 웃었다.

“보아하니 태자께서 전하께 미움을 단단히 사셨나 봅니다.”

곤청락이 코웃음을 쳤다.

“근래 일만 봐도 그렇다네. 동월에서 온 벗을 막 사귀어서 양 잡기 대회에 데려갔는데 태자가 멋대로 내 벗을 동궁에 데려갔다네. 대체 국법이 있긴 하단 말인가? 어찌 이리 제멋대로 굴 수 있단 말인가?”

영십구는 황자란 자가 자신의 나라에서 국법을 탓하니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가 입술을 움찔거리자 영십일이 날 선 눈빛을 보냈다. 그 덕에 웃음이 싹 가셨다. 반면 묵용감은 가슴이 요동쳤다. 그가 말하는 벗이 백천범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연한 척 양고기를 씹어 삼킨 뒤에 입을 열었다.

“태자께서도 그리 탐내시는 걸 보니 참 특출난 분이신가 봅니다.”

“암, 그렇고말고.”

곤청락이 말했다.

“내 벗은 여러 나라를 여행해서 식견이 넓다네. 그자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묵용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재미있지요.”

곤청락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황 주인장도 내 벗을 아는가?”

“모릅니다.”

묵용감이 말했다.

“전하의 설명을 들으니 분명 재미있는 분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저 또한 만나 뵙고 싶군요.”

곤청락이 말했다.

“두고 보게. 며칠 뒤에 본 전하가 전 선생을 동궁에서 데리고 나올 것이네. 태자라고 날 어찌하겠는가?”

묵용감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해 주신다면야 정말 감사하지요.”

곤청락은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황 주인장이 어째서 고마운가?”

묵용감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후에 전하께서 절 또 불러 주신다면 저 또한 식견 넓은 전 선생을 뵐 수 있지 않겠습니까?”

* * *

신수가 불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성 외곽의 어느 집에서 머리가 둘 달린 쌍두양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소식은 곧장 떠들썩하게 퍼졌다. 몽달인들은 부처와 모든 신령뿐만 아니라 요괴도 믿었기에 쌍두괴雙頭怪만큼은 극도로 꺼렸다. 천지를 집어삼키는 요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수마저 불타 버렸으니……. 불길한 징조가 쌓이자 민심이 금세 흉흉해졌다.

몽달 황제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차를 마시던 황제는 손을 흠칫 떠는 바람에 찻잔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찻잔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쨍그랑 소리에 시종들은 무릎을 꿇은 채 숨소리도 함부로 내지 못했다. 난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소리쳤다.

“폐하, 불길한 징조입니다.”

황제는 서늘한 표정을 하고선 대전 천장에 채색된 그림을 바라보았다. 신선이 구름을 밟은 채 오색 띠를 휘날리는 그림이었다. 신선은 평온한 얼굴로 멀지 않은 곳에 그려진 머리 둘 달린 뱀을 바라보고 있었다. 뱀은 혀를 내민 채 천병天兵들의 올가미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다른 그림의 신선은 뱀을 향해 입에서 맹렬한 불을 내뿜고 있었다.

황제는 엄지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옥석의 차가운 감촉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혀 주었다. 쌍두괴는 흉조라서 모든 이들의 멸시를 받는 법. 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명했다.

“태자를 불러오너라.”

어전 총관 오특민은 직접 명을 받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자가 황제를 찾아왔다. 황제는 다른 이들을 물린 채 한참토록 입을 열지 않았다. 태자가 조심스레 그의 안색을 살폈다.

“부황께서 소자를 부르신 연유가 혹 그 쌍두괴로 태어난 양 때문입니까?”

황제가 천장에 있던 시선을 태자에게 옮겼다.

“넌 이 일을 어찌 보느냐?”

태자가 잠시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쌍두양이 태어난 건 흉조이지만, 우리 몽달은 더할 나위 없이 태평하지 않습니까. 쌍두양 한 마리 때문에 사달이 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자가 사람을 보내 그 괴물을 죽이고 법회를 열어 다시는 그 괴물이 환생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황제는 조금 얼이 나간 표정으로 손가락 안에서 반지를 빙빙 돌렸다.

“죽이면 괜찮아질 것 같더냐?”

태자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부황께서는 무얼 걱정하시는 겁니까?”

“신수가 불에 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쌍두괴가 나타났다.”

황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설마 몽달의 수명이 다한 것이란 말인가?”

태자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부황!”

황제가 손을 내저었다.

“만약 하늘의 뜻이 아니라면 분명 누군가 손을 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잡귀들의 농락은 하늘의 뜻보다 더 막기 어려운 법이지.”

태자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부황께서는 누가 배후에서 손을 썼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황제가 물었다.

“그날 사냥터의 자객 사건은 가닥이 잡혔느냐?”

태자가 두 눈을 드리운 채 입을 열었다.

“소자가 무능하여 자객이 두 명이라는 것만 알아냈습니다. 한 사람은 열넷째를 공격했고 다른 한 사람은 백성들이 안으로 난입하도록 울타리를 넘어뜨렸습니다. 혼란한 틈을 타 빠져나갈 작정이었던 것이지요. 관중석에 있던 이들이 워낙 많아서 아직 조사 중입니다.”

황제가 탄식을 내뱉었다.

“하면 신수가 불에 탄 것은, 누가 방화를 한 것이냐? 저절로 불이 난 것이냐? 조사는 해 보았느냐?”

태자는 고개를 더 아래로 숙였다.

“그것 또한… 조사 중입니다.”

황제가 불만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평소엔 일을 잘 처리하더니, 이번엔 어찌 된 것이냐? 한 가지도 제대로 밝혀낸 것이 없고. 이번 쌍두괴 사건은 상림군에게 맡기겠다. 해막도海莫圖라면 무슨 방도를 찾겠지.”

황제에게 꾸중을 들은 태자는 아무 말 없이 물러났다.

태자가 근심에 잠긴 얼굴로 돌아오자 백천범이 물었다.

“전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곤청각은 존귀한 태자로서 황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자신의 발아래에 두고 있었다. 평소에는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 놓는 법이 없었지만 그는 까닭 없이 자신의 근심을 털어 놓고 싶었다. 전 선생에겐 신비로운 힘이라도 있는 것인지 자꾸만 기대게 되었다.

다른 이들의 마음을 잘 다독여 주는 백천범은 그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넸다.

“겨우 며칠이나 지났다고… 황제 폐하께서도 성격이 참 급하시군요.”

태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신하로서 군주의 근심을 나누는 것이 본분이지만, 과인이 무능하여 부황의 근심을 덜지 못한 것이네.”

백천범이 말했다.

“요즘 계속해서 사고가 생기니 황제 폐하의 심기가 불편하신 듯합니다. 폐하께 화를 가라앉힐 수 있도록 좋은 음식을 드리면 조금은 나아질 거예요.”

태자는 조금 우스웠다. 백천범의 말을 듣고 있으면 황제가 맛있는 음식만 먹으면 모든 게 해결될 일인 것처럼 들렸다. 그의 근심은 황제의 꾸지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일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그는 골치가 아팠다.

백천범은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넋을 놓았다.

“전하, 방금 교외에서 쌍두양이 나타났다고 하셨죠?”

태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불길한 징조일세.”

“전 쌍두양을 본 적이 없는데. 한번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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