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927)화 (926/1,192)

제927화

“지금 마마는 어디에 있나?”

“십오가 그러는데… 마마를 태운 마차가 궁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태자의 동궁에 계실 것 같습니다.”

묵용감은 미간을 다시 찌푸렸다. 몽달 태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녀를 동궁에 데리고 갔을까?

그가 일어나서 서성거렸다.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그는 하루도 그녀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지금도 그녀가 패륜이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당장 그녀를 찾아갈 수 없었다. 곳곳에 눈과 귀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위험을 무릅쓸 수 있지만, 백천범까지 위험에 노출시킬 순 없었다. 그녀는 그가 애지중지 아끼는 유일한 존재였다.

이리저리 생각해 보니 당분간은 도원곡 주인에게 백천범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 게 나았다. 어쩌면 동궁에 있는 것이 그녀에게 좀 더 안전할 것이다. 백천범은 다른 재주는 없지만, 목숨을 지키는 재주는 천하제일일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남장을 하고 있고 또 옆에 영십삼이 있으니 저들도 그녀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있다는 걸 떠올리면 샘이 나서 참기 힘들었다.

영십일은 깜짝 놀랐다.

“목표를 잘못 찾았다니요? 십사황자가 아니었습니까?”

“아니다.”

묵용감이 말했다.

“동쪽은 고귀함을 뜻하지. 동쪽에 있는 자라는 건 몽달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직 그의 왕좌만 정확한 동쪽 방향으로 놓을 수 있지. 이름에 동자가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영십일은 그의 말속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다시 물었다.

“노야께서는 일찍부터 동쪽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계셨습니까?”

묵용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그들의 뜻대로 하고 싶지 않았지. 한 나라의 군주를 해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함부로 시도해서는 안 되지. 난 저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영십일은 눈웃음을 쳤다.

“잘난 척하다가 노야한테 혼쭐이 났으니 저들도 노야의 무서움을 알았을 겁니다.”

묵용감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해독제 걱정은 하지 말거라. 내가 못 알아맞힌 거라고 발뺌했으니. 게다가 미리 물어봤는데도 자기들이 모른 척 시치미를 뗐으니 우리를 탓할 수 없다. 어쨌든 임무가 끝났으니 해독제를 가져와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영십일이 감격에 겨워 우물거렸다.

“노비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노야, 제 목숨은…….”

묵용감은 손을 내저었다.

“네 목숨은 네 여인과 아이에게 쓰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보다 그들에게 더 필요할 것이다.”

내성적인 영십일은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마음속에서 황제는 올려다볼 수 없는 고귀한 사람으로, 성내지 않아도 위엄이 있어서 두려운 존재였다. 황제의 온정은 오직 황후 마마만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황제가 자신도 똑같이 존중해 주다니! 가슴이 벅차올라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 * *

방 관리는 도원곡 주인에게 모든 일을 낱낱이 보고했다. 묵용감이 사광후에게 한 말까지 전부 전했다.

“주인, 정말 그가 천선지인입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목표를 잘못 판단한 겁니까?”

금빛 가면을 쓴 도원곡 주인은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가볍게 웃었다.

“그가 정말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하느냐?”

방 관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의 뜻은……,”

“그는 아주 똑똑해서 동쪽에 있는 자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이미 알고 있지. 다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게 만들고 반응을 떠보려는 것일 뿐이다.”

방 관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이 해독제는…….”

“가져다 주거라.”

도원곡 주인이 말했다.

“이 연극에서 주인공은 그자다. 그자가 안 하겠다고 하면 어디 가서 천선지인을 구하겠느냐?”

그는 잠시 멈칫한 뒤, 눈빛을 반짝였다.

“그들을 모두 움직여라. 양 잡기 대회보다 훨씬 재미있는 연극이 펼쳐질 것이다.”

방 관리는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 * *

이튿날 아침, 태자는 백천범을 초대해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궁중의 아침 식사는 당연히 궁 밖의 음식보다 훨씬 정교했다. 탁자 위에는 알록달록한 식탁보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금은 그릇이 가득했다. 소유酥油 전병, 양고기 찐빵, 치즈, 마유馬油떡, 탕아편湯兒片, 은색 큰 주전자에 가득 담겨 있는 건 새하얀 우유차였다.

맛있는 향기가 풍겨 오니 백천범은 진정하려 심호흡을 했다. 태자는 그런 그녀를 보고 웃으며 청했다.

“선생, 어서 드시게.”

백천범도 사양하지 않고 양고기 찐빵을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태자는 육황자와 달리 말수가 적어서 조용했다. 백천범은 사냥터에 있었던 일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괜한 의심을 살까 봐 말을 아꼈다. 한참을 생각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제 사냥터에서 멋진 대결을 보였던 어린 무도인이 전하의 장남이라고요?”

“그렇네.”

태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네.”

“전하께서는 아이가 몇 명이세요?”

“둘이네.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매지.”

“오, 저는 셋이에요. 아들 둘, 딸 하나.”

태자는 깜짝 놀라 쳐다봤다.

“선생에게 아이가 있는가?”

백천범은 두 손을 벌린 채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저에게 아이가 없다고 생각하셨어요?”

태자는 실소를 터뜨렸다.

“선생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면, 가정에 구속되는 걸 싫어할 거라 생각했네.”

“아뇨, 저는 아이를 아주 좋아해요. 그리고 저 대신 비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아내도 있죠.”

“…….”

이렇게 문약하게 생긴 걸 보면, 분명 비바람을 막아 줘야 하는 용맹한 아내가 필요할 것이다.

“선생이 여행을 떠나오면 집안의 모든 것을 부인에게 맡기시겠군. 부인께서 현명하고 유능하시겠네.”

“네, 맞아요. 우리 아내는 정말 유능하셔요.”

이 화제를 말하다 보니 마음이 조마조마해 더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전하, 어제 육황자 전하께서 밖에서 소란을 피우셨는데, 뭔가 오해가 있었는지요?”

태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와 본궁은 예전부터 불화가 있네. 내가 선생을 강점하려는 줄 알고 와서 행패를 부린 것이네.”

태자가 강점强占이라는 단어를 쓰자 우유차를 한 모금 마시던 백천범은 하마터면 찻물을 뿜을 뻔했다.

“허허허… 저는 남자에… 나이도 적지 않고… 아이까지 셋이나 있는데 강점이라니……. 그런데 육황자께서는 왜 전하와 불화를 일으키시는 거죠?”

태자는 웃으며 말했다.

“나와 그는 어머니가 다르니, 당연히 사이가 좋지 않네.”

“하지만 그래도 태자께서는 육황자의 맏형이잖아요. 당연히 존중해야죠.”

“본궁은 맏형이 아니네. 난 다섯째로, 앞에 네 명의 형님이 계셨네. 하지만 모두 돌아가셔서 본궁이 태자가 된 것이네.”

백천범은 깜짝 올랐다.

“네 명의 형님들이 모두… 어머니께서 상심이 크셨겠군요.”

“그들의 어머니도 이제는 안 계시네.”

태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본궁의 어머니도 돌아가셨네.”

백천범은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듣자 하니,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앞의 네 명의 황자와 그들의 어머니까지 모두 돌아가셨다? 어떻게 전부 다 돌아가실 수 있는 거지? 한참 뒤, 그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전하, 그분들은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태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백천범은 멋쩍은 듯 웃었다.

“불편하면 말씀할 필요 없어요. 제가 좀 이것저것 물어보는 걸 좋아해요.”

“…….”

잠시 후, 그는 입을 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여서 형님과 그들의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잘 모르겠네. 단지 나의 어머니는 목을 매다신 것만 알고 있네.”

그는 지붕 위의 들보를 가리켰다.

“저기 들보에 목을 매달아 돌아가셨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말했다. 표정에선 어떤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백천범은 생각했다. 아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기에 이리 건조하게 말하는 것이리라. 그녀는 문득 여제가 떠올랐다. 만약 여제가 죽는다면, 그녀도 태자처럼 반응할 것 같았다. 그때, 시종이 들어와서 한 발만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어떤 물건을 머리 위로 올렸다.

“전하, 이게 어제 사냥터에 왔던 사람들 명단입니다. 살펴보시지요.”

태자는 명단을 가져와 자세히 살펴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백천범은 목을 길게 빼고 명단을 슬쩍 바라보았다. 태자는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선생, 이 일에 흥미가 있으신가?”

백천범이 말했다.

“어제 그 사람이 사냥터에서 날아들어 오는 걸 저도 보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전하께서 자객을 추리는 걸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 자객을 직접 보셨단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백천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보았어요.”

“왜 어제는 말하지 않았는가?”

“어제는 소인이 경황이 없어서 생각나지 않았어요.”

“…….”

“하지만 자객이 복면을 써서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상관없네. 명첩에는 어차피 초상화가 없으니, 선생이 봐도 상대를 특정할 수 없을 것이네.”

이번에는 그녀의 말문이 막혔다.

* * *

묵용감은 탁자로 돌아와 앉으며 물었다.

“황후는 패륜이에 몇 명이나 데리고 들어왔다더냐?”

“십오의 말로는 그들 말고도 정예병 이백 명이 입성해서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필요하면 금방 모을 수 있답니다. 그 외에도 정예병 삼백 명이 각 성문 밖 숲에 흩어져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묵용감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건 조천명이 안배한 것인가?”

영십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십오는 전부 마마의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마마께서는 성안에 허 장군의 첩자가 있지만, 나라에 안위가 걸려 있는 일이니 방심할 수 없다면서 그들과의 연락도 끊으셨습니다.”

묵용감는 칭찬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했군.”

그가 만일 광명정대하게 몽달에 사신을 보냈다면 몽달 황제는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몰래 몽달에 잠입한 걸 알게 되면 죽음뿐이다. 게다가 몽달 황제는 한사코 자신이 죽였다는 걸 부인할 것이다. 백천범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조심하는 것이다.

“십오, 십육과는 연락을 유지하되, 만남은 자제하거라. 그들의 존재를 알리지 않아야 한다. 일단 해독제을 받고 상황을 보자.”

영십일이 말했다.

“우리가 오늘 임무를 완수했는데… 저들은 언제 해독제를 주나요?”

묵용감은 한쪽 입가를 당기며 냉소를 지었다.

“사 관리가 그러는데 목표물을 잘못 찾았다고 하더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