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7화
잠시 고민하던 백천범은 손을 흔들어 점원을 불렀다. 그녀가 은자 부스러기 몇 조각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 주자 점원이 물었다.
“객관께서는 누구한테 거시겠습니까?”
백천범은 웃으며 말했다.
“내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뭘 좀 물어보려고 해요. 제 친척 하나가 노름판에서 돈을 잃고 제 성질에 못 이겨 싸움을 벌였다가 관아에 잡혀갔어요. 우리는 타향 사람이라 여기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관아에 사람이 잡혀가면 보통 어디 가둬 두나요?”
점원은 손안에 있는 은자 부스러기를 바라보더니 소매를 툭 털었다. 은자 조각들은 곧장 팔을 타고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는 능수능란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객관님, 사람을 제대로 찾아오셨군요. 패륜이 성내에 제가 모르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 성안에 사람을 가둘 수 있는 장소는 두 곳입니다. 한 곳은 도사옥都司獄, 속칭 큰 감옥이라고 부르죠. 다른 한 곳은 상림옥上林獄, 속칭 작은 감옥이라고 부릅니다.”
여기까지 말한 점원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큰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모두 중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입니다. 예를 들면, 멸문한 조정의 명관이나, 살인범, 또는 대단한 도적 등등. 그리고 작은 감옥은요.”
점원은 피식 웃었다.
“시정잡배나 닭이나 개를 훔친 자 그리고 싸움꾼들이나 가두는 곳입니다. 객관께서 찾는 친척은 십중팔구 작은 감옥에 있을 겁니다.”
“그럼, 형님! 말씀하신 두 곳은 어디에 위치해 있나요? 그리고 어떻게 찾아가나요?”
“도사옥은 도사아문 바로 옆인데, 그곳은 철옹성이라 쉽사리 들어가지 못합니다. 싸움 같은 사소한 일로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작은 감옥에 가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곳은 찾기 아주 쉽습니다. 이곳 다루에서 나가서 우회전한 후, 대로를 따라 골목을 세 개 건너고 좌회전하면 상림아문이 있습니다. 그 옆이 바로 상림옥입니다.”
점원은 헤헤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그곳에 가려면 은자를 넉넉히 가져가세요. 돈만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객관님의 친척에겐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한 백천범은 찻값을 남겨 두고 그곳을 나왔다.
백천범의 손에는 패륜이 성의 방위 지도가 있어서 다루 점원이 그녀를 속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밤중에 영십삼과 십오 그리고 십육은 야행복을 입고 각각 도사옥과 상림옥에 가서 탐문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묵용감은커녕 동월 백성은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영십삼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황상께서는 아예 패륜이에 오지 않은 것 아닙니까?”
백천범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지금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이곳으로 올 거 같아요.”
영십삼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마, 소인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백천범이 말했다.
“만약 몽달군이 황상을 잡았다면 결국 패륜이로 보낼 거예요. 만약 몽달군이 아니더라도 황상을 잡은 이들은 몽달을 불리하게 만들려고 결국 패륜이로 보낼 거예요.”
영십삼은 다시 질문했다.
“마마, 허 장군이 이곳 패륜이에 우리 군을 심어 두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그들을 이용하지 않으시는지요? 우리에게 유용한 소식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백천범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사람들은 이곳 패륜이에 너무 오랫동안 잠복해 있었으니 모두 믿을 만한 자들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요. 허 장군이 내게 준 명단들은 아마도 그의 정예병은 아닐 거예요. 만약 소문이 새어 나가서 동월의 황제가 북쪽 국경에서 실종된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주변 열국들이 어떻게 행동하겠어요?
남원뿐만 아니라, 북제, 서하, 그리고 몽달까지 모든 곳에서 전운이 감돌 거예요. 태자는 아무래도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요. 그러니 정말 중대한 사안입니다. 조심 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요.”
영십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황후 마마가 줄곧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마마가 패륜이에 오겠다고 했을 때 그는 속으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황후 마마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훨씬 야무지고 주도면밀했다.
“마마,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소식을 알아봐야죠.”
백천범이 말했다.
“아무리 우리끼리 있어도 저를 마마라 부르지 마세요. 지금 우리는 패륜이에 있잖아요. 벽 건너편에도 듣는 귀가 있어요. 누군가가 듣기라도 하면 일을 망쳐요. 이후로 저를…….”
그녀가 약간 머뭇거리다 말했다.
“저를 선생이라고 불러주세요.”
학관에도 여선생이 있어서 그리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영십삼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후, 며칠 동안 백천범은 영십삼을 데리고 다루, 식당을 다니며 먹고 마시는 척하면서 소식을 알아보았다. 그러다 양 잡기 대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육황자와 태자가 화목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또한 조정에서 말을 징집하느라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긴, 말 목장에서는 얼마나 고생하며 말을 키웠을까. 비바람 속에서도 겨우 버텨 살을 찌워 좋은 값에 팔려고 하는데… 조정에서 가져가겠다고 하면 누가 그걸 기쁘게 듣겠는가? 백천범은 일부러 다루 점원에게 물었다.
“조정이 말을 징집해서 무얼 한다는 거예요? 설마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예요?”
점원이 큰 주전자로 그녀에게 우유차를 따라 주며 말했다.
“전쟁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 됩니다. 동월과 전쟁을 하는 동안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까? 겨우 몇 년 살 만해졌는데. 다시 전쟁을 일으키는 건 절대 안 됩니다.”
누군가 말을 이었다.
“안심하시오. 조정에는 전쟁을 할 돈이 없소. 듣자 하니 국고가 텅 비었다고 하오.”
“그의 말이 맞소.”
또 어떤 사람이 말을 이었다.
“와도성에 많은 군대가 주둔해 있는데 병사들의 급료는커녕 군량도 모자란 지경이오. 그러니 병사들이 시도 때도 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백성들의 식량을 빼앗아 온다고 하오. 하지만, 그것도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
먹을 게 없으면 말을 죽인다고 하오. 병사들을 굶겨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말도 없으면 조정에 보고하는 수밖에. 그런데 조정도 무슨 별다른 수가 있겠소? 결국 백성들을 착취해야 하지 않겠소?”
백천범은 그제야 몽달군이 일 년 내내 북쪽 국경에 사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군량과 병사들의 급료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보니, 몽달의 황제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근원은 결국 궁중에 있소. 난비蘭妃가 황제를 미혹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아비와 오라비가 어찌 그리 빨리 높은 자리를 차지했겠소?
그 죽일 놈의 두 부자가 백성들을 억압하고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고 있소. 그들 부자를 고소하는 상소문이 궁중으로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지 아시오? 하지만 난비의 베갯머리송사 때문에 황제는 그들의 죄를 눈감아 주었소. 징마령도 그들 부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요. 이러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백성들은 태자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오.”
“맞아요.”
또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그들 부자를 끌어내려야 우리 백성의 살림살이가 한결 나아질 거예요.”
“쉿.”
한 종업원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속삭였다.
“상림군이 옵니다.”
쥐 죽은 듯 조용해진 다루 안으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모든 사람의 얼굴을 훑어봤다. 이를 본 사람들은 이내 목을 움츠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도 상림군 두령은 한 사람을 지목하더니 고압적으로 몰아붙였다.
“넌 뭐 하는 놈이냐? 도적놈 꼬락서니를 한 걸 보니 분명 좋은 놈은 아니구나! 우리와 함께 아문으로 가야겠다.”
즉시 허리를 굽히고 아부하는 미소를 지은 그 사람은 품에서 동전 한 뭉치를 꺼내 두령의 손에 쥐여 주었다.
“군관 나리, 소인은 좋은 사람입니다. 성실하게 본분을 지키고 나쁜 짓은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군관 나리께서 잘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두령은 손안에 든 동전 뭉치의 무게를 가늠하며 그를 곁눈질로 바라봤다.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소인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동전 한 뭉치를 더 꺼내 두령의 손에 쥐여 주며 속삭였다.
“군관 나리, 이게 진짜 가진 전부입니다. 제발…….”
두령은 그제야 거드름을 피우며 그를 위아래로 살폈다.
“머리는 있는 놈이군. 그만 앉거라.”
그 사람이 어찌 감히 앉을 수 있겠는가? 그는 허리를 깊게 굽힌 채 상림군 두령이 다른 곳으로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멀어지자 그가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
“저게 인간이야? 정말 강도 떼가 따로 없군!”
백천범도 병사들이 함부로 날뛰는 걸 보고 분개했다.
“저들이 저리 날뛰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죠?”
옆 탁자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나리께서는 타향에서 오셨군요. 잘 모르시겠지만, 저 병사들은 모두 상림군입니다. 황성을 호위하는 군대이지만, 사실 하는 짓은 강도들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저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붙잡아 가지요.
돈이 있으면 피할 수 있지만, 저들에게 줄 돈이 없으면 상림옥에 갇히게 됩니다. 집안사람들이 큰돈을 지불해야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도 늦게 가면 돌려받는 게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백천범이 말했다.
“천자의 발치에서 국법이 아무 소용없다는 말인가요?”
“상림군은 좌대사 대인의 관할입니다. 좌대사 대인은 성이 해海씨인데, 궁중에서 가장 총애를 받는 난비의 오라버니입니다. 출세하기 전에 그는 시정잡배였고, 좌대사 대인이 된 후에는 예전에 함께 어울려 다니던 무뢰배들을 모두 상림군에 집어넣어서 군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불량배가 모두 그에게 의탁했고, 지금의 상림군은 더 이상 옛날의 상림군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업신여기며 억압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아무리 분노가 치밀어도 상고할 곳이 없으니 순순히 돈을 주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에휴, 백성의 삶만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동월의 태평성대에 익숙해져 있던 백천범은 몽달이 이런 상황에 빠져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 몽달과 대적하려 하면 지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