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4화
영십일과 영십구는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 앉았다가 그들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묵용감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방금 내가 방 관리와 나눈 말은 다들 들었겠지. 누가 가겠느냐?”
영십일과 영십구는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 이 추잡한 일은 그들이 떠맡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건 너희도 잘 알겠지?”
두 시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황상은 황후 마마를 제외하고 그 어떤 여인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누가 가고 싶으냐?”
두 사람 모두 가고 싶지 않았다. 두 젊은 청년의 얼굴에는 거부감이 가득 묻어났다. 적을 죽이라는 명에는 필사적으로 나서겠지만, 예쁜 여인과 함께 동침하라니. 이런 일에는 둘 다 소질이 없었다. 정말인지 생각만으로도… 무서웠다. 영십구가 먼저 의견을 말했다.
“십일 형님을 보내시지요. 곧 서른이 아닙니까. 전 아직 어리니 장유유서를 지켜야지요. 아우로서 마땅히 형님께 양보하겠습니다.”
영십일이 얼굴을 붉혔다.
“난 네 양보 따윈 필요 없다. 여인을 향한 마음을 접은 지 오래다. 네가 가거라. 스물이 넘었으니 너도 그리 어리지 않다. 일찍 혼인했다면 애도 있을 나이야.”
“십일 형님, 서른이면 한창일 때가 아닙니까. 어렵사리 온 기회에다 노야께서 정하신 일 아닙니까. 뭘 그리 겁내십니까?”
“그런 게 아니라, 난…….”
“십일.”
묵용감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십구 말도 일리가 일다. 장유유서 아니더냐. 너도 곧 서른인데 이런 일도 해 봐야지. 나중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영십일의 얼굴과 귀가 새빨개졌다.
“노야, 전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습니다. 전 그런…….”
“사내대장부가 어찌 그리 미적거리느냐.”
묵용감이 아예 못을 박았다.
“네가 가거라.”
영십일은 안색이 붉어졌다 창백해지기를 반복했다. 꼭 요괴 굴에 들어가는 것처럼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묵용감은 직접 그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긴장하지 말거라. 사내들은 굳이 배우지 않아도 금방 터득하는 법이다. 게다가 넌 무술 실력이 좋지 않으냐? 설마 여인 하나 어쩌지 못할까.”
영십일은 떨리는 손으로 잔을 들고 천천히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러다 술을 마시듯 고개를 젖히고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미적거렸다간 황상과 영십구가 자신을 깔볼 것이다. 황상 말처럼 무술 실력이 좋은 그가 설마 여인 하나 어찌 못하겠는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향했다. 문을 나서기 전, 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황제와 영십구가 기대감에 찬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비장한 마음이 든 영십일은 앞만 바라보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젖혔던 문발이 떨어지며 그가 모습을 감추자 영십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노야, 십일 형이 할 수 있을까요?”
묵용감이 의아하다는 듯 영십구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못한단 말이냐? 설마 십일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아뇨.”
영십구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소인 생각에는 십일 형이 여인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십일 형이 잠도 자지 못하고 그 여인에게 쫓겨 다니지 않았습니까?”
묵용감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왜 그 애를 보냈는지 아느냐?”
“장유유서 때문이지요.”
묵용감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저 핑계일 뿐이다. 그 여인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하더구나. 그 정도라면 마음이 쉽게 동할 수 있다.”
영십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십일 형이 벌써 그 여인에게 마음을 품었단 말씀입니까? 만난 지 고작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걸요. 너무 짧지 않습니까?”
“어떤 이들은 날마다 같이 있는데도 상대의 마음에 들지 못한다. 또 어떤 이들은 첫눈에 반하기도 하지. 연정은 함께한 시간이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다.”
영십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야, 설레는 건 어떤 기분입니까?”
묵용감이 웃으며 대꾸했다.
“바보 같긴, 이런 일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언젠간 너에게 설레는 날이 오거든 그때 깨달을 것이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너도 준비는 되었겠지?”
영십구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준비 말씀이십니까?”
묵용감이 말했다.
“세상에 방 관리처럼 이리 무지막지한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냐. 기어이 우리에게 여인을 밀어 넣다니. 말로는 성의라고 하지만,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난 저자가 우리에게 무언갈 얻어 내려는 것 같구나. 만약 십일에게서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면 두 번째 여인을 데려올 것이다. 그땐, 네가 나서야 한다.”
“…….”
방에서 나온 세 여인은 여전히 회랑에 서 있었다. 영십일이 묵용감의 방에서 나오자 그에게 보내졌던 여인이 곧장 다가왔다.
지붕 위의 등불은 이미 꺼진 뒤였다. 어두운 회랑에는 황피지가 싸여 있는 등롱 두 개가 걸려 있었다. 등롱에서 뿜어져 나오는 옅은 노란빛이 사방을 어둡게 비추었다. 영십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인을 바라보며 어금니를 악물고 함께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온 영십일은 문을 걸어 잠갔다. 여인은 침대에 서서 그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결정하셨으니 또 도망치시면 안 돼요. 옷부터 벗고 어서 이리 오세요.”
그녀의 직설적인 말에 그의 용기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가 웅얼거리며 대꾸했다.
“무얼 그리 급하게… 우선 얘기부터 나눕시다.”
여인이 침대 가에 앉아 대꾸했다.
“할 말이 있으시거든 침대에서 해요.”
그녀가 대담하게 굴수록 영십일은 더 긴장되었다. 탁자 옆에 앉은 그는 물을 한 잔 따라 꼴깍꼴깍 마신 뒤, 여인에게도 한 잔 따라 주었다.
“물 좀 드시오.”
여인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 안 마셔요.”
영십일은 민망한 마음에 괜히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오?”
“월아.”
“월아, 이름이 정말 좋소.”
그가 별안간 눈을 반짝였다.
“동월 사람이오?”
“네.”
“이곳은 동월의 경내요? 아니면 몽달이오?”
“모릅니다.”
“붙잡혀서 이곳에 오게 된 것이오?”
그를 빤히 바라보던 월아는 별안간 성을 냈다.
“잘 거예요? 말 거예요?”
영십일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자… 잘 것이오.”
“잘 거면 이리 오세요.”
영십일은 이 일을 임무로 여기기로 했다. 황제의 명이라면 그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일을 완수해야 했다. 분명 비장한 마음으로 왔지만 어여쁜 여인을 보자 영십일의 발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이런 자신을 비웃었다. 그저 여인과 함께 자는 것뿐인데… 어찌 죽으러 가는 것보다 더 용기가 나지 않는단 말인가. 날마다 기루에 다니는 사내들은 대체 어찌 하는 것이란 말인가? 월아는 그를 보며 더 짜증을 냈다.
“꾸물대지 말고 어서 와요.”
영십일은 마음을 굳게 먹고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왔소. 어쩔 것이오?”
월아가 말했다.
“제가 일일이 알려 줘야 해요? 옷부터 벗으세요.”
영십일은 손을 허리에 가져갔지만, 옷을 벗진 못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여인인데, 그런 말 좀 안 하면 안 되겠소?”
월아가 그를 위아래로 훑더니 별안간 코웃음을 쳤다.
“알겠어요. 몇 살이에요?”
“곧 서른이요.”
“이번이 처음이죠?”
영십일은 곧 불이 붙을 듯 얼굴이 빨개졌다. 나이도 많은데 아직 경험 한 번 없으니 분명 비웃을 테지.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괜찮아요.”
월아가 말했다.
“저도 처음이거든요.”
영십일은 조금 뜻밖이었다. 기루의 기녀처럼 손님들을 접대하는 여인인 줄 알았는데, 그녀도 처음이라고 한다. 그의 가슴은 더 쿵쿵 뛰었다. 그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냥 관둡시다. 여인의 순결을 괜히 망가뜨리지 말고.”
월아가 냉소를 지었다.
“지금껏 절 잘 먹이고 잘 길러 준 게 당신 같은 상갑 등급인 사내와 자게 하기 위함 아니겠어요?”
영십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렇게 캐물으실 거 없어요.”
월아가 말했다.
“우리 둘 다 처음인 데다 제 용모는 아주 훌륭하고, 당신도 나쁘지 않죠. 특히 몸이 좋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함께하더라도 서로 손해 볼 거 없어요. 떠나고 싶다면 빨리 해치워요. 그저…….”
그녀는 여기까지만 말하더니 손을 뻗어 그의 요대를 풀었다. 영십일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계속 고민했다. 상갑 등급인 사내의 시중을 들기 위해 길러졌다니? 대체 저들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월아가 그의 장포를 벗겼다. 정신을 차린 그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으나 월아도 더는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힘껏 그를 끌어당긴 그녀는 거칠게 장막을 내렸다.
탁자 위의 촛불은 홀로 조용히 타올랐다. 심지가 가볍게 흔들리며 은은한 불빛이 넘실거렸다. 이따금 불꽃을 일으키더니 또다시 가만히 타올랐다. 조용한 방 안. 벽에 붙은 침대가 별안간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 *
이날 밤, 영십일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 경험 없는 여인과 잠자리를 했다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졌다.
초는 진즉 꺼진 뒤였기에 방 안은 어두웠다. 어둠에 눈이 적응한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곡선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일을 다시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에게는 정말이지 혼란스러운 과정이었다. 어찌 일을 끝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그녀의 몸 위에서 내려올 때, 두 사람 모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동시에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뭐랄까… 앞으로 이 월아라는 여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오묘한 사이가 될 것만 같았다.
사실은 그저 느낌에 불과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란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의 비밀이 밝혀지면 붙잡힌 이들을 전부 풀어 줄 것이고 그는 황제를 따라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러면 그녀와도 남남이 될 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또 조금은 서글픈 기분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 가닥 집고 가볍게 매만졌다.
한참 넋을 놓고 있는데, 마침 월아가 몸을 뒤척였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고 굳어 버렸다. 그때 그녀가 몸을 돌리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팽팽히 잡아당겨졌다. 어둠 속에서 ‘아야’ 하고 월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사실 너무 어두워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에게 눈을 부릅뜨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에게 사납게 대했다. 심지어 그가 그녀의 위에 있을 때에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덕분에 그는 계속 가슴을 졸여야 했다. 설마 자신이 그녀를 아프게 한 건 아닌지… 안절부절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에서 팽팽하게 조여져 있던 현이 끊어지는가 싶더니 그 뒤에는…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