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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97)화 (896/1,192)

제897화

한 시진 후에도 백천범은 나무 아래에 가만히 서서 그를 기다렸다. 포 부참장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다가왔다.

“전 부참장은 누구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나?”

백천범은 자신의 초조함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황상을 기다리고 있어요.”

“듣자 하니 황상께서는 부참장에게 찐빵을 사 주러 갔다고 들었네. 읍내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데 이 시간이라면 이미 돌아오셨어야 하지 않는가? 황상께서 돌아오시지 않는 건 어쩌면 누군가한테 걸려든 게 아닐지.”

그는 비아냥거리며 백천범을 흘겨봤다. 부참장이 되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황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다니. 황상께서는 심심한 행군길에 그를 이용해 피로를 푼 것 뿐인데. 그것 가지고 자신이 뭐라도 된 양 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백천범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는 멋쩍었는지 또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게. 조 장군이 이미 사람을 보내서 마중을 나갔으니, 곧 돌아오실 거네.”

그가 한창 떠들 때 길 끝에서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백천범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즉시 뛰어갔다. 그녀가 도착했을 땐 이미 조천명이 그들을 막은 후였다. 말을 타고 달려온 자는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군님, 큰… 큰일 났습니다. 황상, 황상께서 몽달군에게 잡혀갔습니다!”

서둘러 달려온 백천범은 그의 말을 듣고 비틀거렸다. 하마터면 땅바닥에 쓰러질 뻔했는데, 다행히 조천명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전 부참장, 괜찮습니까?”

“전 괜찮아요.”

백천범은 다급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빨리 말해 봐요!”

소식을 전한 병사는 서둘러 왔기에 숨결이 고르지 못했다.

“장군께서 소… 소인을 보내 황상을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소… 소인이 읍내에 도… 도착했는데… 온 사방이 난장판이었습니다. 누군가 가게 문 앞에 앉아서 크게 울… 울고 있었습니다. 소… 소인은 얼른 찐빵 가게를 찾아갔는데… 가게 안에 있는 영… 영감이 저를 붙들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몽달군이 와서 사람들을 잡아갔다고요.”

백천범이 다시 물었다.

“확실하게 물어본 거예요? 끌려간 사람 중에 정말 황상이 계시대요?”

“확실히 물어봤습니다.”

병사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그제야 말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전부 물어봤습니다. 그들이 그랬습니다! 모두 잡혀갔다고요! 게다가 소인이 찐빵 가게에서 이걸 발견했습니다.”

병사는 품에서 향낭 하나를 꺼냈다. 그건 묵용감이 출정할 때 백천범이 준 향낭이었다. 그 향낭을 받아 든 백천범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빤히 살펴봤다. 조천명이 물었다.

“전 부참장, 이게 황상께서 가지고 다니던 물건이 맞습니까?”

백천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녀는 향낭을 손아귀에 꼭 쥐고 뒤돌아 막사 안으로 향했다. 조천명이 그녀를 뒤쫓아 오며 말했다.

“전 부참장…….”

백천범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제가 지금은 좀 혼란스러워서 좀 조용히 있고 싶어요. 조금 있다가 장군을 찾을 테니 그때 상의해요.”

조천명은 할 수 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황제가 없어진 건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큰일이었기에 그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행히도 황후가 함께 있으니 적어도 의논할 사람은 있는 셈이었다. 한창 넋을 놓고 있는데 포 부참장이 다가와서 따졌다.

“전 부참장 너무 나대는 거 아닙니까? 어찌 저자가 장군과 상의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군영에 황상께서 안 계시면 장군이 대장이시죠.”

조천명은 그를 노려보았다.

“무엄하다! 저분은 황… 황상께서 신임하시는 분이다.”

포 부참장은 난데없이 쏟아진 꾸지람에 콧등을 긁적이며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백천범이 막사 안에 들어간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나오지 않았다. 영십삼은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슬그머니 문발을 젖히고 안을 훔쳐보니 놀랍게도 황후는 책상에 앉아서 느긋하게 대추를 먹고 있었다.

하! 황후 마마께서는 마음이 참으로 넓으시구나! 황상이 잡혀갔는데도 대추나 드시고 계시다니!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황제와 황후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가 없었다. 설마 너무 슬퍼서 정신이 나간 건 아니겠지? 황제가 잡혀가니 그도 마음이 조급했다.

그러나 몽달군이 사람을 잡아간 것은 분명 죽이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황제께서는 무공이 뛰어나고, 또 십일과 십구가 함께 있으니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황후 마마께서 정신이 혼미해지신다면……. 황상께서 돌아오셨을 때 제 목이 날아갈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헛기침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마.”

백천범은 고개를 들어 그를 힐끔 보더니 대추 몇 알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대추 좀 먹어 봐요. 맛있어요.”

“…마마.”

백천범은 손사래를 쳤다.

“앞으로 곁에 사람이 있든 없든 저를 꼭 전 부참장이라고 부르세요.”

묵용감이 있을 땐 상관없었지만, 그가 없는 지금은 달랐다. 온통 남자들뿐인 군영에 혼자 있다니! 이런 상황에 신분이 들통나면 여러 불편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녀는 그런 상황에 빠지고 싶지 않았고, 더욱이 묵용감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영십삼은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 부참장.”

백천범은 그가 대추를 먹지 않는 걸 발견했다.

“먹어요. 왜 안 먹어요? 이건 황상께서 직접 딴 대추예요. 다른 사람은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어요.”

이렇게 담담한 말투라니! 영십삼은 정말이지 황후 마마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공손히 말했다.

“황상을 많이 걱정하시는 것 소인도 잘 압니다. 하지만… 황상께서는 하늘이 내린 길하신 분 아닙니까? 분명 아무 일도 없이 돌아오실 거라 믿습니다.”

백천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은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녀는 대추 세 알을 집어 들더니 지도 위의 세 곳에 각각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십삼, 제가 표시한 곳은 바로 우리가 주둔한 곳과 어제 사람들이 잡혀간 마을. 그리고 오늘 황상이 납치된 읍내예요. 맞죠?”

영십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는 황후가 무엇을 하려는 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군사를 배치하고 전쟁을 하려는 건가?

“가서 조 장군과 군관들을 불러오세요. 그들과 상의해 봐야겠어요.”

영십삼은 알겠다고 답하며 즉시 명을 전하러 나갔다.

잠시 뒤 조천명은 참장과 부참장 몇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조천명은 들어오며 예를 취했지만, 뒤따라오는 이들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들은 전범과 계급이 동등하거나 벼슬이 더 높은데 어째서 먼저 예를 갖춰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조 장군이 먼저 예를 갖췄으니 다들 대충 공수한 손을 올려 모양만 취했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손을 휘젓는 전 부참장을 보고 황당해했다. 백천범은 곧장 조천명에게 물었다.

“조 장군, 지금 황상의 행방이 묘연하니, 관군은 당연히 장군의 지휘를 따를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조천명은 황송해하며 급하게 일어나 손사래를 쳤다.

“당치도 않으십니다. 전 부참장은 황상께서 믿으시는 분이니 아무래도…….”

“조 장군.”

백천범은 정색하며 말했다.

“장군이 부수이시고 저는 일개 부참장일 뿐입니다. 어찌 제가 장군을 뛰어넘을 수 있겠습니까?”

조천명은 그녀가 암시하는 바를 알아차렸지만, 상대는 어쨌든 황후였다. 그는 혹여 불경을 범할까 두려울 뿐이었다. 하지만 너무 공손하게 굴었다간 다른 이들의 의심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는 허리를 곧게 펴며 말했다.

“황상께서는 근처에서 실종되셨으니 본 장군이 땅을 모두 뒤집어서 황상을 모셔 오겠습니다. 나라에는 한 시도 군주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일이 밖에 알려지면 천하가 혼란에 빠질 겁니다. 조정의 기강이 불안해지며 이웃 나라들이 기회를 노릴 것입니다.”

“맞습니다.”

진 참장이 입을 열었다.

“황상을 찾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어서 병력을 배치해 사방을 수색하고, 설사 용담호혈의 위험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가서 황상을 구해 와야 합니다.”

포 부참장은 호기롭게 말했다.

“안 되면 개전을 할 수도 있소. 몽달의 도성 패륜이를 포위 공격하면 풀어 주지 않겠소?”

백천범이 그를 힐끔 째려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머리 좀 써서 생각해 보세요. 무슨 일이든 다 싸워서 해결할 참이에요?”

포 부참장은 화를 내며 반박했다.

“그럼, 전 부참장은 뾰족한 수가 있소?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백천범은 지형도 위에 놓인 대추 세 알을 가리켰다.

“여러분, 이것 좀 보세요. 여기 세 곳이 아주 가깝지 않습니까?”

포 부참장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상관인데?”

“우리 병력 만 명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적은 병력은 아니죠. 몽달군이 사람을 잡아갈 때, 우리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어요. 근처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들이 사람을 잡아간 이유가 뭘까요? 왜 마을을 습격하고 또 읍내도 침입한 걸까요? 도대체 왜?”

조천명은 미간을 찌푸렸다. 황제가 붙잡혀 간 일에 신경 쓰느라 그것까지 생각지 못했다. 지금 백천범의 분석을 들어 보니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전 부참장은 몽달군이 일부러 우리를 노리고 달려왔다고 생각합니까?”

포 부참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를 노리고 왔다면 왜 몽달군은 직접 우리와 싸우지 않고 백성들을 잡아간단 말입니까? 그들을 데려가 무얼 하려고?”

백천범이 대답했다.

“백성을 붙잡아간 것은 우리가 몽달군과 전투를 벌이도록 압박하기 위해서입니다.”

포 부참장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뭔 말이오? 저들은 몽달군이 아니오? 왜…….”

조천명은 눈앞이 번뜩였다.

“저들은 몽달군이 아니다! 저들은 동월과 몽달이 전쟁을 하길 원하고 있어!”

포 부참장은 경악했다.

“황상을 잡아간 게 몽달군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럼 저들은 대체 누구입니까?”

백천범은 굳은 표정으로 서늘한 눈빛을 빛냈다.

“상대방이 몽달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음모라는 건 분명합니다. 어쨌든 상대가 누구든… 우리는 저들을 붙잡아 황상을 구해 낼 것입니다.”

진 참장이 물었다.

“그럼 전 부참장의 뜻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겠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몽달과 싸우면 저들의 함정에 걸려들게 될 것입니다.”

“그럼, 황상은… 구하러 가지 않겠다는 건가?”

“황상은 당연히 구하러 가야죠. 단, 은밀히 움직일 겁니다. 제 생각에 저들은 동월의 황제를 잡아간 줄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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