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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95)화 (894/1,192)

제895화

이튿날, 묵용감은 백천범을 데리고 부근의 읍으로 갔다. 이곳의 읍내는 규모가 아주 작았고, 두 개의 산 사이에 형성된 저지대였다. 대로가 저지대 중앙을 뚫고 지나가고 대로 양쪽에 나지막한 집들이 가득 차 있었다. 모두 누런 흙벽돌로 지은 집으로 네모반듯한 것이 비록 누추하지만, 오히려 단정해 보였다.

여긴 원래 읍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주변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점차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누군간 이곳에 집을 지어 이사 오는 이들이 생겼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곳에 작은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은 비록 작지만, 이곳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대장간과 도장塗裝 가게, 비단 가게, 관구棺柩 가게, 약방, 음식점, 찻집, 찐빵 가게 등등.

가게는 모두 열려 있었지만, 간판이 없었다. 담벼락에 작은 나무판자를 달아서 간단하게 몇 글자를 새겼을 뿐이었다. 깃발을 꽂은 곳도 있었지만, 색은 이미 희미해져 있었다. 그래도 깃발 위에 적힌 글자는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도시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시끌벅적한 편이었다.

백천범은 찐빵 가게 앞에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뜨끈뜨끈한 찐빵이 희고 부드러워 보여서 그녀는 참지 못하고 군침을 흘렸다. 묵용감이 물었다.

“먹겠소?”

백천범이 말했다.

“우리 점심으로 찐빵을 먹어요.”

묵용감은 영십삼을 보며 턱을 까딱거렸다.

“어서 가서 사 오너라.”

그는 백천범을 끌어와 천막 안에 앉혔다.

“바람이 많이 부니 여기서 먹고 갑시다.”

이곳은 도성과 달랐다. 점원도 불친절했고 가게도 허름했다. 점원은 손님이 온 걸 보고 기름진 행주를 가져와 대충 탁자를 닦았다. 그걸 본 묵용감은 눈살을 찌푸렸다. 곧 가져올 찐빵도 그다지 맛이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빈곤한 산간벽지에 음식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그런데 탁자 위에 올라온 찐빵을 한 입 베어 문 백천범은 눈빛을 반짝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맛이 꽤 괜찮은 듯 보였다. 묵용감은 피식 웃음이 삐져나왔다. 구중궁궐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지만 자신의 아내는 여전히 감정을 속이지 않고 드러냈다. 좋으면 웃고, 싫으면 화내고, 맛있는 걸 먹으면 좋아하고,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하지 않았다.

“정말 맛있네요.”

그녀는 실눈을 뜨고 배시시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한번 드셔 보세요.”

묵용감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의 권유에 한 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 물렁물렁한 편은 아니었지만, 한입에 물어뜯으니 꽤 씹는 맛이 좋았다. 안에 있는 속도 맛있었다. 행군할 때 먹는 식사보다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어서 그도 사양하지 않고 마구 먹기 시작했다.

그들은 찐빵을 왕창 샀다. 가게 주인장이 일손을 놓고 와 그들에게 인사했다. 묵용감은 그 틈에 곰에 대한 일을 물었다.

주인장은 키가 작고 약간 뚱뚱한 사람인데, 두꺼운 옷까지 입고 있어 동그란 탁자 옆으로 공이 박혀 있는 모양새처럼 보였다. 손님이 곰에 관해 물어보자 그는 잘 만났다는 듯이 끊임없이 말을 쏟아 냈다. 내용은 묵용감이 다른 동네에서 알아본 것과 비슷했다.

읍내에서도 사람이 실종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주인장은 사람이 없어진 적은 있지만, 곰이 잡아간 게 아니라 여자가 외간 남자랑 도망간 거라고 말했다.

읍내에 난 길은 적사성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오가는 행상이 많았다. 그래서 가난을 견디지 못한 일부 여자들이 종종 외지 남자를 따라 도망간다는 것이다. 그런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희한한 일도 아니라고 말했다.

주인장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더욱더 흥분했다. 남자들끼리 있으니 음담패설도 가리지 않았다. 두 명의 시위는 눈살을 찌푸리며 하마터면 칼을 뽑을 뻔했지만, 묵용감이 눈짓을 주어 그들을 막았다. 그는 주인장의 말을 끊고, 백천범을 끌고 자리를 떠났다.

읍내가 너무 작고 대로가 하나뿐이어서 이쪽 끝에서 저 끝까지 왕복해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정말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두 사람이 대장간에서 담금질하는 사람을 구경하다가 잠시 후에는 도장 가게에서 함에 옻칠하는 것을 구경했다. 비단 가게에서는 비단을 만져봤다. 결국 백천범이 입을 열었다.

“이제 돌아가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살핀 묵용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돌아갑시다.”

누가 알았겠는가? 주둔지로 돌아가자마자 조천명이 뛰어와 굳은 표정으로 황제에게 고했다.

“황상,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앞에 있는 마을에 몽달군이 쳐들어와서 사람들을 잡아갔다고 합니다.”

백천범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라고요? 뭘 잡아갔어요? 사람을 잡아갔어요?”

“예, 열 명 정도 잡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식량과 가축도 가져갔다고 합니다.”

안색이 어두워진 묵용감이 책상 위 지형도를 보며 물었다.

“어느 마을인가?”

조천명이 자세히 지형도를 살피다가 그중 한 곳을 가리켰다.

“바로 여기입니다.”

눈썹을 일그러뜨린 묵용감은 백천범을 바라봤다.

“우리가 어젯밤에 유숙했던 마을이오.”

백천범은 서둘러 연갑을 입었다.

“뭘 더 꾸물거려요? 어서 가 봐야죠.”

그녀는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서 곧장 날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묵용감이 조천명에게 물었다.

“추격병을 보내지 않았는가?”

“진 참장이 병사들을 데리고 갔지만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몽달 놈들이 이곳 산림을 잘 아는 듯 숲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라져 버렸습니다.”

“몽달군이 확실한가?”

“분명 몽달군의 옷차림이었습니다.”

“진 참장은 어디 있는가?”

“아직 산속에서 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

묵용감은 백천범이 급히 나가려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같이 갑시다. 짐도 가 봐야겠소.”

몽달군이 근처에 있기에 이번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는 시위를 대동할 뿐만 아니라 한 개의 소대를 데리고 갔다. 백천범은 말 위에서 애간장을 태웠다. 두아네 집에는 별일이 없는지 걱정이 가득했다.

마을에 도착하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자 울음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어떤 사람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잡혀간 사람들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제만 해도 평화로운 산골 마을이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백천범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 말에서 내려 자세히 살펴보니 두아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묵용감과 진 참장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아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다. 안뜰이 썰렁한데 대문까지 열려 있었다.

그녀가 두 번이나 불렀지만,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막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두아 할아버지가 입구에 나타났다. 그녀를 보자마자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미 늦었소. 다들 잡혀갔네!”

백천범이 얼른 그를 부축했다.

“누가 잡혀갔어요?”

“아들, 며느리 그리고 어린 손녀까지 다 잡아갔어!”

두아 할아버지는 그녀 앞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흘렸다.

“천 번이나 칼에 맞을 죽을 놈의 몽달 병사들이… 썩을 놈들… 늙은 두 식구만 남겨 두면 어떻게 살라고…….”

백천범이 다급히 물었다.

“두아 할머니는요?”

“방 안에 누워 있소. 살기 힘들지 싶소.”

백천범은 깜짝 놀라 안으로 들어갔다. 혼수상태에 빠진 두아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머리에 면포를 감았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

“두아 할머니는 왜 이렇게 되셨어요?”

“몽달 병사가 와서 사람을 잡아가는데, 그걸 막다가 벽으로 떠밀려서 머리를 부딪쳤소.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소.”

두아 할아버지는 눈물을 훔치며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빨리 죽어야지. 이제는 정말 못 살겠소.”

혈육과 헤어지는 아픔은 백천범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 아픔은 심장을 찢고 폐부를 찌르는 듯하며 가슴 깊은 곳에 새겨져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만든다. 그녀는 두아 할아버지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반드시 두아네 세 식구를 구해 올 거예요.”

두아 할아버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제야 그녀의 옷차림이 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비통함 속에서도 의아함을 가지고 물었다.

“부인, 차림새가 어째서…….”

“어제는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는 상인이 아니라 군인이에요. 바로 적사성에서 일어난 몽달군 납치 사건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을에 이런 재앙이 일어나다니… 우리 대군이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영감님께서는 두아 할머니를 잘 돌보면서 기다리세요. 아무 데도 가지 마시고 여기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세요.”

“아이고! 생명을 살리는 보살이셨군. 우리 아이들을 구해 주신다면 매일매일 건강히 오래 살라고 장생을 기원하겠소.”

두아 할아버지는 그녀를 향해 무릎을 꿇으려고 하다가 백천범에게 붙잡혔다.

“아이고, 영감님 저에게 이러지 마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말하기도 부끄럽네요. 대군이 바로 부근에 있었는데 몽달군이 이런 짓을 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게 오히려 송구합니다.”

두아 할아버지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흐느끼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백천범도 미안한 마음에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훔쳤다. 입구에 그림자가 있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어 보니 묵용감이었다. 그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곳에 얼마나 서 있었을까?

묵용감이 백천범의 어깨를 감싸 안더니 두아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우리 부인이 하는 말 들으시었소? 짐이 그들을 구해 올 거요. 모두가 무사히 돌아올 거요.”

두아 할아버지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운 와중에도 묵용감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가 자신을 분명……. 몸을 덜덜 떨며 무릎을 꿇으려는데, 묵용감이 그를 붙잡았다.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소. 두아 할머니를 잘 돌보시오.”

그는 백천범을 데리고 나와서 대나무 숲 옆에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 세상에 비참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면 눈물이 마를 날이 있겠소?”

백천범이 붉어진 눈시울로 말했다.

“황상, 꼭 저들을 구해 주세요.”

“짐이 꼭 약속하오.”

그가 그녀의 차가운 두 손을 꼭 쥐고 비벼서 따뜻하게 했다.

“당장은 일이 많아져서 당신을 돌볼 겨를이 없소. 내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당신은 자신을 잘 돌봐야 하오.”

백천범은 억지로 짜낸 웃음을 지었다.

“저란 사람을 아직도 모르세요? 어디에 있든지 제 자신은 잘 챙겨요.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저에게도 할 일을 알려 주세요.”

묵용감은 그녀를 째려봤다.

“할 일이라니! 이런 일들은 다 사내들이 할 일이요. 당신은 참여하지 마시오. 자신을 잘 지키고 몸조심하는 게 나를 도와주는 것이오.”

“너무 저를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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