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893)화 (892/1,192)

제893화

잠시 후, 백천범도 잠에서 깨어 눈을 깜박거렸다. 길게 구부러진 속눈썹이 나비 날개처럼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 아직도 묵용감 위에서 자고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이참! 얼른 몸을 움직여요. 온몸이 굳어서 쥐가 나겠어요.”

묵용감은 가만히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쥐만 났겠소? 하룻밤 내내 깔고 있었으니 좀 주물러 주시오.”

백천범은 서둘러 그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감히 힘을 주지 못하고 살며시 주물렀다.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기를 여러 번, 개미들이 살을 파먹는 것 같은 고통은 덜해졌지만, 저릿저릿한 느낌은 강해졌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몸속에 흐르는 혈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급하게 그녀의 손을 잡아 눌렀다.

“이제 되었소. 내가 혼자 하리다.”

백천범은 그의 얼굴이 붉어지자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당신도 더워요?”

묵용감은 급히 그녀의 손을 피해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바닥에 몇 번 발을 동동 구르고 나서야 감각이 되돌아왔다.

“어서 일어나시오. 난 먼저 나가겠소.”

그는 문을 열고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백천범은 어처구니없어서 침대에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리가 저리다면서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아나지?”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하므로 그녀도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백천범은 굵고 검은 눈썹을 그리고 점을 찍은 후, 묵용감을 따라나섰다.

농가의 아침밥은 매우 간소했다. 장아찌와 찐빵. 시고 매운 장아찌를 하나 입에 넣고 뜨끈뜨끈한 찐빵을 다음으로 베어 물었다. 백천범은 맛있게 아침을 즐기며 묵용감과 두아 할아버지의 잡담을 들었다. 묵용감은 백천범 입가에 묻은 양념을 쓱 닦더니 두아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어제 이 근처 산에서 곰이 내려온다고 하던데… 정말이오?”

두아 할아버지는 찐빵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 얘길 꺼내자면, 늙은이가 노야께 알려 드릴 말이 있소. 우리 동네 곰은 절대 보통 짐승이 아니라오. 해마다 대설로 산길이 막히기 전,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족족 잡아가오. 소와 양 같은 가축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먹는다오. 노야께서는 곰을 만나면 꼭 몸을 숨겨야 하오.”

백천범은 깜짝 놀랐다.

“사람을 먹는다고요?”

두아 할아버지가 말했다.

“배고프니까 당연히 아무거나 먹기 마련이지요. 사람이든 가축이든 가리지 않소.”

“이 근처에서도 곰에게 먹힌 사람이 있어요?”

“있소. 거의 매년 곰에게 잡아먹힌 자가 나온다오.”

두아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이 곰은 정말 이상합니다. 주로 여자나 아이를 잡아먹지 남자를 잡아먹는 건 드물어요.”

백천범이 물었다.

“곰이 사람을 가려 먹어요?”

두아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여자와 아이는 저항할 힘이 없지만, 남자는 힘도 세고 싸울 줄 알지요. 똑똑한 곰이 사람을 고를 줄 아는 겁니다.”

아무런 말이 없던 묵용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곰은 보통 겨울이 되면 겨울잠을 자는데, 가끔 중간에 깨기도 하지. 대설이 내려 산길이 막히면 먹을 것을 찾지 못해 산에서 내려오기도 하는데, 여기에 사는 곰들은 왜 모두 대설이 내려 산길이 막히기 전에 내려오는 거지?”

두아 할아버지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상하긴 하오. 내가 이곳에서 몇 십 년을 살았는데, 예전에는 이 일대에 곰이 나타난 적이 없었소. 하지만 어디서 나왔는지 겨울만 되면 내려와 사달을 만드는 거요. 그 후에 우리는 날이 어두워지면 쉽게 외출을 할 수 없었소.”

묵용감이 물었다.

“누군가 본 적이 있소?”

두아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곰을 본 사람은 모두 곰 배 속으로 들어간 것 같소.”

그는 한참 동안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작년에 이웃 마을에 어떤 여인이 친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곰을 만났소. 날이 저물 때였는데, 곰에게 어깨를 얻어맞고 소리를 질렀지. 그녀의 남편이 쇠붙이를 들고 쫓아갔지만 이미 신발 한 짝만 남은 후였고, 곰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지.”

“그래서 곰을 직접 본 사람이 없소?”

두아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곰은 항상 밤에 나오는데… 거무칙칙해서 봐도 잘 보이지 않소.”

* * *

주둔지로 돌아온 묵용감은 조천명에게 부근의 지형도를 가져오라고 명한 뒤, 홀로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를 등진 백천범은 다른 쪽에 앉아서 무언갈 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그는 그녀의 등 뒤로 걸어갔다. 그녀는 칼로 나뭇가지를 깎고 있었다.

“이걸 깎아서 뭘 할 생각이오?”

백천범은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조금 있다가 사람을 불러서 함정을 몇 군데 만들어요. 곰을 잡을 수 있나 한번 보려고요. 자꾸 산에서 내려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게 해야죠.”

묵용감은 웃음을 터뜨렸다.

“오, 황후 마마께서 천하를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군.”

백천범은 그를 힐끗 노려보았다.

“괜한 아부 떨지 마세요. 황상도 좀 있다가 직접 가려는 거죠?”

묵용감은 그녀가 들고 있던 칼을 빼앗았다.

“이럴 필요 없소. 함정을 만들지 않아도 되오. 짐은 산에서 내려오는 게 곰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백천범은 깜짝 놀랐다.

“곰이 아니라고요? 그럼 그게 뭐죠? 설마 호랑이?”

묵용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짐도 아직은 모르겠소. 하지만… 곰이 아닌 것 같소.”

그는 그녀 옆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북쪽 국경의 곰은 겨울이 되면 동굴을 찾아 겨울잠을 자고, 따뜻한 봄이 되면 깨어나오. 겨울잠을 자는 도중 일어나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기도 하지만, 쉽게 인간을 해치지는 못하오.

이곳에 있는 곰이 수상한 이유는 대설이 내려 산을 덮기 전에 마을로 내려온다는 거요. 곰은 잡식 동물이라 풀잎이나 줄기를 주로 먹기 때문에 먹이가 있는 한, 산을 쉽게 내려가지 않는 습성이 있소. 이건 곰의 습성에 맞지 않는 일이오. 더군다나 곰이 사람을 잡아먹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오.”

“황상께서는 무엇이 의심스럽나요?”

“짐은 이번 일이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하오.”

묵용감은 일어나 책상에 펼쳐져 있는 지형도를 가리켰다.

“여기 근처에 있는 몇몇 마을들을 짐이 직접 가 봐야겠소.”

“좋아요. 저도 황상과 함께 갈게요.”

백천범은 칼을 거두어 장화에 꽂고, 또 소매 안에 표창을 숨겼다. 채찍을 허리에 감고도 모자랐는지 검 한 자루를 더 챙겼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강호를 떠도는 협녀 같았다. 묵용감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허리에 있는 채찍과 검을 모두 풀어냈다.

“우리는 마을에 들어가는 거지, 산에 올라가는 게 아니오. 곰은 만나지 않을 것이니 긴장하지 마시오.”

백천범이 말했다.

“저는 지금 부참장으로서 황제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묵용감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영십삼이 그 말을 들었다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를 것이오.”

백천범도 자신이 좀 거들먹거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헤헤 웃으며 그를 따라나섰다.

조천명은 황제가 행군을 서두르지 않고 자꾸만 인근 마을로 내려가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황제는 황후 마마와 낭만적인 여행을 즐기고 싶은 듯 보였다. 한데 한겨울 허허벌판일 뿐인데 무슨 볼거리가 있겠는가?

황제는 다섯 명의 시위만 대동한 채 길을 떠났다. 여전히 두 명은 시종으로 위장하고 세 명은 암위로 몰래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말을 타고 한 마을로 들어갔다.

낯선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은 긴장한 채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말을 탄 사람에게서 귀티가 흐르자 감히 그들을 포위할 수도 없었다.

묵용감은 민가 한 곳을 들러 물 한 잔을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몇 마디 하지도 않고 하산한 곰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물었다.

이곳의 마을 주민도 두아 할아버지와 마찬가지였다. 그 곰을 아주 무서워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해마다 곰에게 어깨를 얻어맞는 사람이 생기는데, 주로 여자와 아이들이 많고, 장년 남자도 몇 명 된다고 했다.

마을 주민은 묵용감에게 밤에 출몰하는 곰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만약 무언가 어깨를 만지면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고 했다. 곰은 사람을 홀려 그대로 산으로 데려가 잡아먹어 버린다고도 했다. 묵용감이 물었다.

“매년 곰이 나타나 화를 입는데, 왜 관아에 신고하지 않은 것이오? 관병들이 산에 올라가서 곰을 죽이면 되지 않소?”

마을 사람들이 대답했다.

“관아에서 사람을 산에 올려 보낸 적이 있었소. 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곰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소. 이 근방이 수백 리나 되는데, 삼림까지 우거지니 곰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했소. 곰을 찾을 수 없으니 관아에서도 별수가 없겠지. 그 때문에 겨울만 되면 주민들이 화를 입었소.”

“이 근처 마을은 다 봉변을 당했소?”

“전부 그런 봉변을 당했소. 어느 곳 하나 빠지지 않았소. 해마다 이런 식이니 집안의 여인이나 아이들은 밖에 나가지 않고, 혼자 있지도 않소. 혼자 있으면 영락없이 잡아먹히기 마련이었소.”

끝없이 이어진 산봉우리를 바라보던 묵용감이 물었다.

“인근에 있는 마을이 전부 봉변을 당한 걸 보면 이곳에 곰이 꽤 많은가 보오.”

“몇 마리는 되는 것 같소.”

마을 사람이 말을 이었다.

“어느 해 겨울에는 세 마을에서 모두 같은 날에 사람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소.”

“그것도 대설이 산을 덮기 전에 내려온 것이었소?”

“맞소. 모두 대설이 내려 산길이 막히기 전이었소. 대설이 산을 덮으면 마을은 안전해진다오. 사람은 고사하고 가축도 잃어버린 적이 없소.”

묵용감이 물었다.

“가축과 사람이 동시에 사라진 적도 있었소?”

마을 주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묵용감이 말했다.

“곰 한 마리가 그 많은 걸 가지고 산에 갈 방법은 없지 않겠소?”

마을 주민은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동무가 함께 내려왔나? 어쨌든 일을 분담해서 했을지도 모르잖소.”

백천범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곰이 분업도 할 줄 알다니, 사람보다 똑똑하네요?”

묵용감이 또 물었다.

“곰을 본 사람이 있소?”

마을 사람들은 전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곰을 본 사람은 모두 곰의 배 속에 들어갔지.”

“아무도 곰을 본 적이 없는데, 왜 다들 곰이 사람을 잡아갔다고 하는 것이오?”

마을 주민은 어리둥절했다.

“그럼, 곰 말고 누가 사람을 잡아갈 수 있단 말이오? 이런 소문은 수십 년이나 있었소. 내가 어릴 때도 있었소. 틀림없이 곰이 그랬을 거요.”

“…….”

이제 보니 무작정 곰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람만 없어지면 무조건 곰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