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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92)화 (891/1,192)

제892화

묵용감은 씩 웃으며 옆으로 몸을 피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장난은 평소 백천범이 더 많이 했다. 그는 가끔 흥이 나면 이렇게 부인을 놀라게 했다. 허리를 낮추고 수건을 든 그는 그녀의 등을 닦아 주었다.

“놀랄 게 뭐 있소? 나 말고 누가 있겠소?”

백천범은 여전히 욕통 가장자리에 엎드린 채 투덜거렸다.

“당신은 걸을 때 소리도 나지 않아요. 설마 고양이띠 아니에요?”

묵용감은 손을 물속에 집어 넣어 그녀의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

“당신이 날 몇 번이나 놀라게 했는지 한번 세어 보시오. 아마 셀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백천범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료한 궁중 생활 속에 그를 놀리는 재미라도 있어야 했다. 나이는 들었지만, 심성은 여전히 예전과 같았다. 그런 즐거움은 오로지 그들만의 것이었다.

“전 이제 다 씻었어요. 당신도 따뜻한 물에 몸을 좀 담그세요. 개운하고 좋아요.”

백천범은 흠뻑 젖은 몸으로 욕통에서 일어났다.

“화덕에서 불도 끓이고 있으니 제가 대신 가져올게요.”

묵용감은 재빨리 그녀의 몸을 닦아 주고 윗옷과 겉옷, 면장포까지 하나씩 입혀 주었다. 또 그는 마른 수건을 가져와 머리카락을 닦아 주었다. 그는 이렇게 그 많은 세월 동안 그녀를 청양처럼 보살폈다. 마치 큰딸과 작은딸, 이렇게 딸이 두 명인 것처럼. 그녀들 모두 그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였다.

“나는 상관하지 말고 어서 화덕 곁에 가서 앉으시오. 머리카락을 빨리 말려야 감기에 걸리지 않소.”

백천범이 젖은 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말했다.

“저도 당신 등을 닦아 드릴게요.”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그도 바랐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 걸 알았다. 그는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소. 당신 자신만 잘 돌보면 되오.”

백천범이 화덕 곁으로 오자 두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부인!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었군요.”

두아 할머니도 혼탁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끌끌 혀를 차며 칭찬했다.

“역시 도성에 사는 위인이구나. 저 얼굴 좀 보거라. 두부보다 더 연하구나!”

두아도 소리쳤다.

“이모는 선녀야!”

두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갑자기 집안이 밝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도성에서 온 부인은 정말 놀랍도록 매혹적인 자태를 뽐냈다. 그들은 감히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백천범은 그들의 칭찬에 조금 쑥스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반면 묵용감은 매우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아내를 칭찬하는 게 그렇게 듣기 좋았다.

“부인이 나를 따라다니느라 고생이 많았소. 계속 노숙을 했으니 집에 있을 때와 몸 상태가 같겠소?”

그의 말은 집에 있을 때가 훨씬 더 예뻤다는 뜻이었다. 두아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이 본 사람 중 그녀의 용모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이것보다 더 예쁘다면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그녀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묵용감은 백천범의 머리카락을 세심하게 정리하더니 물풀처럼 어깨에 펼쳐 놓았다. 상식적으로, 백천범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모습을 뭇사람에게 보이는 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묵용감에겐 체면보단 백천범의 건강이 훨씬 더 중요했다. 궁 밖에 나와 있으니 불편한 게 많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병이 나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노부부는 손녀를 데리고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남은 두아의 양친은 화덕 곁에 함께 앉아 있었다. 묵용감은 마른 나뭇가지를 들고 화덕 안 불더미 속에서 울퉁불퉁한 흙덩이를 끄집어냈다. 그 흙덩이가 뜨거운지 그는 손을 바꿔가며 덩어리를 굴렸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백천범은 이미 기쁜 듯 소리를 질렀다.

“고구마다!”

묵용감은 씩 웃었다.

“당신이 이걸 좋아하는 걸 알고 일부러 구운 거요.”

구오지존인 황제가 고구마를 양손으로 굴리며 식히다니. 영십삼은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입을 열었다.

“노야, 노비가 하겠습니다.”

묵용감은 괜찮다는 듯 양손으로 고구마를 더 굴리더니 조심스레 껍질을 벗겨 백천범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어디 맛있나 먹어 보시오.”

백천범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한입 물었다. 달콤한 향기에 식감이 부드럽고 찰기가 있었다.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맛을 음미하며 감탄했다.

“맛있어요!”

그녀가 기뻐하자 그는 만족한 듯 보였다. 그는 고구마를 그녀의 손에 건네주고는 직접 데워진 물을 들고 씻으러 들어갔다. 머리를 풀어헤친 백천범이 즐겁게 고구마를 먹자 두아 어머니는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부인, 노야께서 참 다정하게 대해 주시네요. 세상에 이렇게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부군을 칭찬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백천범도 절대 겸손을 떨지 않았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 부군은 하늘 아래 제일 다정한 분이랍니다.”

두아 어머니는 자기 남편을 힐끔 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께서는 저와는 달리… 복덩이를 주우셨군요.”

두아 아버지가 미간을 찡그렸다.

“먹고 싶은 게요? 그럼 말을 하지. 고구마 한 개가 뭐 대수라고. 나도 줄 수 있소.”

두아 어머니가 반박했다.

“부인께서 언제 고구마를 달라고 하신 적 있나요? 노야께선 어찌 알고 고구마를 구워 주셨을까요?”

두아 아버지가 결국 투덜거렸다.

“내가 당신 배 속에 있는 벌레도 아니고, 당신도 고구마가 먹고 싶은지 내 어찌 아오? 더군다나… 고구마가 뭐 귀한 거라고? 벽 모퉁이에 무더기로 쌓여 있잖소? 평상시에는 잘 먹지도 않으면서?”

두아 어머니는 화가 나 그대로 몸을 돌려 소리쳤다.

“어이구, 도무지 말이 안 통해!”

백천범은 어린 부부가 말다툼하는 것을 보곤 웃음을 터뜨렸다.

“제 부군이 다정한 게 부러우세요? 전 오히려 두 분이 말다툼하는 게 부러워요. 제 부군은 다 저한테 져 줘서 말다툼할 일이 없어요. 사실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요. 부부가 사는 데에 백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죠. 모두들 각자 자신만의 비방이 있어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 없어요. 자신만 잘 알면 되죠.”

두아 어머니는 대접이 소홀할까 봐 시집올 때 새로 해온 이부자리를 백천범에게 내주었다. 새빨간 이불은 불빛 아래서 더욱더 밝게 빛났다. 그녀는 겸연쩍게 웃었다.

“부인, 눈에 차지는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이건 제가 시집올 때 가져와서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입니다.”

백천범이 말했다.

“이걸 내주시면 너무 죄송스럽잖아요. 이건 놔두었다가 나중에 쓰세요. 우린 잠자리를 따지지 않아요. 깔 것만 있으면 돼요.”

하지만 두아 어머니는 끝내 신혼 이부자리를 그들에게 깔아 주고 등잔만 남긴 채 방을 나가 버렸다. 백천범은 매끄럽고 차가운 이불을 만져보며 웃었다.

“정말 신혼 이부자리네요. 우리가 성혼하던 그날 밤에도 이런 붉은 이불은 덮어 보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그 일을 어찌 잊을까. 그때 그는 성혼하는 것 자체를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연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자기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몰래 들어온 백천범이 마침 그의 옆자리에 잠들었고 그는 아침이 되어서야 희고 보드라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게 첫 만남이 평생이 되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럼 오늘로 보충하는 셈 칩시다.”

이부자리는 새것이지만, 침대는 군영에서 쓰는 것보다 더 딱딱했다. 묵용감은 백천범을 품에 안아 자기 다리 위에 눕히며 나지막이 말했다.

“침대가 너무 딱딱하오. 내 몸 위에서 자는 좋겠소.”

백천범은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절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어렸을 때는 책상 위에서 잤어요. 이게 뭐 어때서요?”

“그건 어릴 적이잖소.”

묵용감은 그녀의 입가에 쪼듯 입을 맞췄다.

“지금 당신은 나의 귀염둥이요. 그때와 다르지 않소.”

백천범은 그의 달콤한 말에 가슴이 떨려서 조금 부끄러웠다.

“부부가 된 지 그렇게 오래됐는데 아직도 귀염둥이라니요. 남들이 알까 봐 두렵네요.”

묵용감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나의 귀염둥이요. 내가 평생 당신의 응석을 받아 줄 거요.”

“그래도 제가 당신을 누르는데 어찌 편히 잠을 잘 수 있겠어요?”

묵용감은 그녀의 팔을 들어 무게를 가늠했다.

“당신은 내 갑옷보다 가벼우니 전혀 문제없소.”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꽉 안은 그는 그제야 눈을 감았다.

“어서 주무시오. 내일 또 길을 재촉해야 하오.”

백천범도 순순히 그의 품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어쨌든 그가 잠이 들면 더는 그녀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남자의 품은 큰 난로처럼 이글이글 타올랐다. 백천범은 너무 더워서 눈이 떠졌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지경이었다. 그녀가 비몽사몽한 상태로 반쯤 눈을 뜨자,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상황이었다.

귓가에는 묵용감이 가볍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품에 꼭 가둔 채 그의 몸으로 그녀를 받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아당겼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시 힘껏 당겼지만 그는 여전히 깨지 않았다. 오히려 본능적으로 팔을 더 꽉 조였다. 그녀는 그렇다고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분명히 잠이 든 상태인데 어떻게 이렇게 꽉 껴안을 수 있지? 그녀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무 더워요.”

그는 음, 하고 신음하더니 어둠 속에서 팔을 들어 그녀의 등을 어루만졌다. 과연, 손바닥에 땀방울이 느껴지자 다시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그는 잠이 덜 깬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추운 날, 어째서 땀을 흘리는 거요?”

백천범은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몸부림쳤다.

“당신이 난로처럼 뜨거워서 나를 덥게 만들잖아요.”

묵용감이 나지막한 신음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막 움직이지 마시오. 당신을 맛보지 못한 지 너무 오래되었단 말이오.”

백천범은 순간 얼굴을 붉히며 그의 허리를 꼬집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린 묵용감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 어두컴컴해서 어디에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손을 풀어 그녀가 몸을 돌릴 수 있게 했지만 팔다리는 여전히 그녀를 받치고 있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희미하게 개가 짖는 소리도 들렸다. 묵용감은 눈을 뜨고 여전히 그의 품에 안겨 있는 백천범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이십 년 된 자신의 아내였다. 그의 눈에 그녀는 여전히 그 당시의 계집아이로 보였다. 아무리 바라봐도 부족했다.

밤새 그녀에게 인간 방석이 되어 주었더니 하반신은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는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개미가 살을 갉아먹는 듯한 통증을 기쁜 마음으로 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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