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0화
백천범도 그의 연극에 맞춰 주며 두 손을 내밀었다. 묵용감의 손이 펼쳐지자 손바닥 안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화들짝 놀란 백천범은 가까이 다가가 그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뭔데요?”
묵용감이 손바닥을 완전히 펼치자 검은색을 띠는 자그마한 벌레가 보였다. 그녀가 기쁨에 젖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반딧불이네요!”
그녀는 손가락을 펼쳐 반딧불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벌레도 천천히 그녀의 손바닥 위를 기어올랐다. 조금 간지러웠지만,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것이야말로 궁에서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이건 반딧불이가 아니오.”
묵용감은 백천범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설명했다.
“이건 추예자秋蚋子라 불리는 벌레요. 한번 자세히 보시오. 꼬리가 아니라 날개에서 불을 내고 있소. 이곳 북쪽에만 있는 벌레라오. 늦가을이었다면 더 많았을 텐데, 지금은 초겨울이라 찾아보기 힘들구려.”
백천범이 벌레를 자세히 관찰했다.
“어째서 날지 않는 거예요?”
“당신의 손 온도가 따뜻해서 날지 않는 것이오.”
백천범은 한동안 벌레를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공중으로 휙 날려 주었다. 벌레는 날개를 펼치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가느다란 빛이 허공에서 호선을 그리더니 숲속으로 사라졌다. 묵용감이 날아가는 벌레를 보며 물었다.
“어찌 놔 준 것이오?”
“계속 데리고 있지 못할 테니까요. 그럴 바엔 빨리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요. 다시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려면 힘들 테니까요.”
묵용감이 실소를 터뜨렸다.
“벌레 한 마리한테 그리 마음을 쓴단 말이오?”
백천범이 그의 팔을 감싸며 아리따운 미소를 지었다.
“벌레가 아니라 황상께서 따 준 별이잖아요.”
“하면 짐에게 어찌 고마움을 표할 것이오?”
백천범은 발끝을 세우고 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리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하다니! 묵용감은 그녀의 보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드넓은 천지에 달과 별이 총총히 떠 있는 밤, 주변엔 오직 부부 두 사람뿐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부인과 시도해 본 적 없지만, 분명 특별한 느낌일 것이다.
그는 그녀를 감싸 안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서로가 서로를 열렬히 탐하는데 별안간 무언가 바닥에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바닥을 바라보니 한 병사가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병사의 얼굴은 충격과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별안간 벌벌 떨리는 손으로 허공을 마구 더듬기 시작했다.
“전 눈이 멀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말을 마친 그는 절뚝거리며 앞으로 달려갔다. 잠시 놀란 얼굴로 병사를 바라보던 부부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녀가 황제의 총신이라는 헛소문이 이젠 사실로 확인된 셈이었다.
* * *
몽달이 왜 동월 백성을 납치했는지 묵용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태자의 의견에 동의했다. 납치했으니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죽이지 않는다면 그들을 데리고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 설마 남원처럼 인구가 없어서 동월 사람을 끌고 간 건 아니겠지?
몽달과 남원은 완전히 달랐다. 남원은 산림도 많고 물산도 풍부하지만, 인구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몽달은 넓은 초원과 광활한 사막이 있어서 토지는 척박하지만, 인구는 오히려 밀집되어 있어서 아까 생각한 가설은 성립하지 않았다.
몽달이 단순하게 식량이나 재물을 빼앗아 갔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들은 식량을 빼앗아 가면서 사람들까지 끌고 갔다. 머리가 깨질 정도로 고민을 해도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없었다.
원래는 군사로 성을 포위한 후 백성들을 풀어 주라고 압박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민할수록 그들을 압박하는 것보다 그들의 음모를 밝히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위해 그는 조천명을 포함한 참장과 부참장들을 불러 의논하고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진 참장이 말했다.
“황상, 몽달이 동월 백성을 잡아간 것은 우리 동월을 도발하기 위함입니다.”
황제가 말했다.
“기왕에 도발을 할 것이라면 왜 바로 죽이지 않고 끌고 간 것인가?”
조천명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황상, 몽달이 우리 백성을 잡아갔다면 그들을 인력으로 삼아 거대한 공사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노동력을 위해서라면 청장년을 잡아가야지. 왜 부인과 아이들까지 다 잡아갔느냐?”
황제의 말에 다들 깊이 생각에 잠겼다.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노동력을 취하려는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을 끌고 갔단 말인가? 도대체 뭘 하려고? 포 부참장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무엇을 위해 백성들을 잡아갔든 반드시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백천범이 그를 힐끗 째려봤다.
“그래서 지금 저들의 목적을 논하고 있잖아요?”
포 부참장이 몹시 화가 났지만,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비록 직위는 같지만 저자는 황제가 총애하는 측근이었다. 밉보여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멋쩍은 듯 코를 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제가 백천범을 보고 물었다.
“전 부참장, 무슨 의견이라도 있는 것인가?”
백천범은 굵게 그린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황상, 우리 동월 백성을 잡아간 것이 정말 몽달군이 맞나요?”
그녀의 말을 듣고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북쪽 국경은 몽달과 맞닿아 있었다. 몽달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황제는 대단히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전 부참장은 어찌 그런 질문을 하는가? 첫째, 몽달과 동월 국경에서 벌어진 일이고 둘째, 국경에 주둔하는 병사라면 다들 몽달군의 옷차림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착각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가 몽달의 군대를 사칭했다면요?”
백천범이 말했다.
“몽달 복장을 한 사람이 반드시 몽달인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몽달인으로 사칭해서 우리 동월 백성을 잡아간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왜냐하면…….”
백천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그들도 남원처럼 인구가 부족해서 주변국의 사람을 잡아가 자신의 백성으로 삼는 겁니다.”
백천범이 말을 마치자 황제는 하하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 부참장은 생각이 참 기발하군. 지금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인가?”
황제가 앞장서서 웃자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웃었다. 백천범에게 핀잔을 들었던 포 부참장은 순간 입을 잘못 놀렸다.
“전 부참장, 도대체 머리라는 게 있는 거요? 이 주변에 몽달 말고 다른 나라가 어디 있다는 것이오?”
황제는 순간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 누구한테 머리가 없다고 하는 것이냐?”
포 부참장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칼처럼 날카로운 두 눈동자가 자신을 꿰뚫을 것 같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
“송구합니다. 신이 머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총신寵臣은 황제의 마음속에 대단한 비중을 가지고 있구나. 그에 대한 험담은 한마디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지 않는가! 황제가 아내를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소문은 거짓이 틀림없군.’
* * *
이날 야영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서 고생하는 아내가 안쓰러웠던 묵용감은 그녀가 가까운 농가에서 피로를 풀길 바랐다. 묵용감은 연갑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백천범과 함께 상인으로 변장하고, 두 명의 시위만 시종으로 분장시켰다.
영십삼은 결사반대했다. 황제와 황후가 행차하는데 시위를 두 명만 데리고 나가다니…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영 대인이 자신을 쪼개서 땔감으로 쓰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농촌 사람을 놀라게 할까 봐 사람을 적게 데려가려 했다. 만일 그들을 두려워해서 집 안에 들이지 않는다면, 계획한 일을 망칠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나머지 세 명의 시위는 암위暗衛로 돌렸다. 비밀리에 호위하는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황제와 황후의 호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마을은 크지 않았지만, 가옥들이 모두 네모반듯한 것이 임안성 교외의 농가와는 크게 달랐다. 벽체는 황토색으로 발랐고, 지붕은 검은색 기와를 올렸으며 처마는 비각도 없이 평평했다.
묵용감를 특별히 넉넉해 보이는 한 집을 골랐다. 처마 밑에 훈제 고기가 두 덩어리나 달린 것을 보니 먹을 것이 풍부하고 다른 집보다 형편이 나아 보였다. 대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영십삼은 문 앞에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계시오?”
집안에서 그들을 발견한 여자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문을 닫아 버렸다. 영십삼이 다시 문을 두드리려 했으나 백천범이 막아섰다.
“뒤로 물러서세요. 제가 말하겠어요.”
그녀는 가볍게 대문을 두드렸다.
“아주머니, 겁내지 마세요. 우리는 지나가던 장사꾼입니다. 물 한 잔 얻어 마시려고 합니다.”
하지만 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어떤 작은 인기척도 바깥에 서 있는 고수 세 사람의 귀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집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은 문틈을 보려 엎드려 있고, 어떤 사람은 창가에 숨어서 그들을 훔쳐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묵용감이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은 바로 이렇게 농촌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봐서였다. 그런데 고작 네 명으로도 이들은 허둥지둥거리다니! 그는 영십삼과 영십구를 째려봤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영구가 가르친 제자들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매서운 눈빛만큼은 영구와 똑 닮아 있었다. 그는 헛기침하더니 두 시위에게 명했다.
“그렇게 무표정하게 있으니 사람들이 놀라지 않느냐? 모두 웃는 얼굴을 하거라.”
영십삼과 영십구는 서로 눈을 마주하더니 어색하게 입을 옆으로 찢었다. 거기에 매서운 눈빛이 더해지자 더욱 섬뜩해 보였다. 묵용감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되었다. 그렇게 웃으면 더더욱 대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백천범이 샘물처럼 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주머니, 대문 열어 주세요. 겁내지 마세요. 저희 나쁜 사람 아니에요.”
집 안에 있던 사람이 반신반의하며 문틈에 엎드려 한참을 바라보았다. 웬 어린 사내가 수려하게 웃는 걸 보니 친근하게 느껴졌다. 젊은 부인이 문틈으로 물었다.
“당신들 정말 지나가는 상인들입니까?”
“그럼요. 우리는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아낙네는 또 물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자인 것 같은데, 왜…….”
백천범은 뒤를 가리켰다.
“부군과 함께 나왔는데, 남자로 분장하는 게 다니기 편해서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아낙네는 마음을 놓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다시 두 명의 시위를 보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 두 사람은 절대 장사꾼처럼 보이지 않았다. 백천범은 재빨리 해명했다.
“저들은 우리 시종이에요. 말도 잘 안 하고 잘 웃지도 않아요. 좀 양해해 주세요.”
아낙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