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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77)화 (876/1,192)

제877화

한통이 덧붙였다.

“몽달은 전조前朝 때부터 여러 차례 우리 국경을 침범했습니다. 십육 년 전에 백 장군이 몽달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 저들은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몽달군은 마을을 기습하고 우리와는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들은 습격이 끝나자마자 돌아가 버립니다. 우리 동월은 국경선이 길고 지형이 특이하며, 관제에 불리하게 작은 도시가 분산되어 있어서 몽달군이 이를 노리는 듯합니다.

이번에 백 장군이 귀경하여 업무 보고를 할 때, 아마 이 일을 상주할 것이니 그때 해결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합니다. 비록 동월 군대가 강하고 몽달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우리는 드러나 있고 저들은 어둠 속에서 노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저들의 횡포가 계속된다면 북녘의 백성들은 항상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묵용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짐도 잘 생각해 봐야겠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물러가게.”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폐를 내려왔다. 그가 대전을 나서자 태자는 그제야 뒷짐을 지고 나이답지 않은 얼굴을 한 채 잽싸게 그의 뒤를 쫓았다.

“부황.”

묵용감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태자, 무슨 일이냐?”

“부황, 소자는 이번 일을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몽달이 우리 동월군과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는 건 병력과 무기가 우리 동월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기습 공격을 허용하는 것보다 차라리 우리가 먼저 쳐들어가서 전투를 벌이면 저들의 원기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몽달은 두려움에 헛된 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묵용감은 태자의 발언은 좀 뜻밖이라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자고? 짐은 태자가 몽달을 멸망시켜 버리자고 할 줄 알았는데?”

그는 묵용린을 주시했다. 하지만 태자는 침착하게 말했다.

“부황께선 소자에게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전쟁을 일으키지 말고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을 아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군인이지만 또한 부황의 백성이라고요. 일단 전쟁을 일으키면 천하는 혼란에 빠지죠. 생명을 도탄에 빠뜨리고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명군의 짓이 아니며 폭력을 폭력으로 상대하는 건 더더욱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소자는 군대를 대거 진격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하지만 전쟁에 뛰어난 장수가 정예 병사를 데리고 가서 몽달 외곽의 군대를 우회하여 몽달 도성 패륜이貝倫爾로 곧바로 진격한다면 어떨까요? 병사들을 성 아래까지 몰고 가서 몽달 황제를 압박하고 평화 조약을 맺을 수 있다면 변경의 상황은 개선될 것입니다.”

묵용감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태자의 말이 맞다. 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누구를 출전시키겠느냐?”

묵용린이 대답했다.

“백 장군은 몽달과 싸운 경험이 있으니 밀지를 보내십시오. 도중에 북쪽 국경으로 돌아가 병력을 재배치하고 몽달을 공격하면 어떻겠습니까?”

묵용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 장군이 북녘에 머무른 지 이미 수년이나 된단다. 그의 노고가 많으니 이번에 불러오면 짐은 다시 보내지 않을 작정이다. 그를 도성에 남겨 노후를 편히 보내게 할 것이다.”

묵용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외숙부께서는 아직 정정하신데 어찌 벌써 노년을 편히 보내라고 하십니까?”

“언젠가는 늙을 것이 아니냐?”

묵용감이 말했다.

“북녘 땅은 척박한 곳이 아니더냐. 선비의 풍모를 지녔던 장수가 곰보 얼굴이 되었더구나. 지난번에 귀경했을 때, 네 모후가 그를 보더니 마음 아파했다. 이번에 아예 돌아오라고 할 것이다.”

묵용린은 속으로 그 조치에 대해 그다지 찬성하지 않았다. 부황은 여전히 마음이 약했다. 모후가 마음 쓰는 사람에게 부황은 모질지 못했다. 북쪽 국경을 지키는 것이 뭐 어쨌다는 것인가? 그건 조정을 위해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럴 거면 대체 호국대장군은 뭐 하러 임명했단 말인가?

지난번에 그도 백장간을 만났다. 북쪽은 일조량이 강해서 햇볕에 피부가 타기도 하지만, 얼굴에 반점을 많이 남기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얕은 구덩이가 생겼다. 예전의 잘생긴 외모와는 좀 다르지만, 무장이 잘생기기만 하면 뭘 하겠는가? 잘생겼다고 적을 더 잘 물리칠 수도 없는데. 그는 오히려 그 반점들이 백장간에게 웅장한 위엄을 더해 주었다고 생각했다.

묵용감은 말을 마치고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묵용린은 얼른 쫓아갔다.

“부황께서 백 장군을 반대하시니, 혹시 생각하시는 다른 적임자가 있으십니까?”

묵용감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

“한 명 있지만, 일이 성사되기는 좀 어렵겠구나.”

묵용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누구입니까? 왜 성사가 안 됩니까? 조정에서 그를 중용하려고 하는데, 감히 핑계를 대며 회피하다니요!”

묵용감은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핑계를 대며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일은 네 모후가 허락해야 가능하단다.”

묵용린은 어리둥절했다. 모후는 한 번도 국정에 간섭한 적이 없으셨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녀의 동의가 꼭 있어야 한단 말인가? 묵용린이 멍하니 서 있는 사이 묵용감은 앞으로 걸어 나갔다. 부황의 위풍당당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부황이 말한 건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가!

* * *

묵용감이 친정親征(임금이 몸소 나아가 정벌함)을 나가는 일에 대해 백천범은 동의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물었다.

“조정에 그렇게 많은 무장들이 있는데 꼭 황상께서 다녀와야 해요?”

의자에 앉아 있던 묵용감은 찻잔 뚜껑으로 찻잎을 걷어 냈다. 도자기가 서로 부딪히며 가벼운 소리를 냈고, 그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가득했다.

“무장 출신인 짐이 십수 년 동안 황제 노릇을 하면서 너무 편안한 삶을 살지 않았소? 이제 손이 근질근질하오.”

“이번 전쟁은 위험한가요?”

“그럴 리가 있겠소?”

묵용감은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짐이 젊은 시절에 몽달과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소. 그곳 지형을 이미 알고 있고 패륜이에도 들어가 본 적이 있소. 저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 게다가 이번 전투는 저들에게 경고하는 것뿐이니 그리 위험하진 않소.”

“황상께서 떠나시면 반년이 걸릴 것 아니에요?”

백천범이 물었다.

“조정은 어쩌고요?”

“태자가 국정을 도운 지 이미 삼 년이 되었으니, 충분히 혼자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소. 지난번에 짐이 남원에 갔을 때에도 그는 국정을 아주 잘 운영했소. 짐이 돌아와서 들은 건 모두 칭찬 일색이었지. 지금의 린아는 그 당시보다 더 성장했소. 짐이 지금 황위에서 물러나더라도 그가 대통을 이어받는 것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백천범은 그에게 몸을 기댔다.

“황상, 저를 데리고 가시렵니까?”

묵용감은 찻잔을 내려놓고 아내를 품에 안았다.

“나는 전투를 하러 가는 거요. 산수를 유람하는 것도 아닌데 따라가서 뭘 어쩌려고? 궁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시오. 금방 다녀오겠소. 응?”

그는 그녀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한참 그의 품에 기대어 있던 백천범은 그제야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묵용감은 그제야 안심하고는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우리 범아, 착하지.”

* * *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친히 출정한다는 소식에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문무관원들은 전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문관은 당연히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규율을 내세우며 반대했다.

“천금을 가진 집안의 아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고, 백금을 가진 집안의 아들은 말을 타지 않으며, 성주는 위험을 자초하고 요행을 바라지 않는 법입니다. 한데 폐하께서 친정을 하신다니요. 창칼에는 눈이 없으니, 혹시라도 옥체를 다치신다면 강산과 사직은 어찌하며 또 백성들은 어떻게 하란 말씀이십니까?”

무관들은 문관들처럼 유식한 말로 설득할 수 없었다. 그저 왼쪽 가슴을 두드리며 황제를 대신하여 출정하겠다고 아우성을 칠뿐이었다. 동월엔 사람이 많은데 황제가 친정을 하다니! 적국에서 동월에 인재가 없다고 생각할 거라며 반대했다. 문무백관들 앞에 무릎을 꿇은 태자는 냉랭한 얼굴로 간청했다.

“부황, 소자도 부황의 친정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여러 대신들의 말씀도 옳지만, 부황은 나라의 주인이십니다. 어찌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십니까? 부황의 평안함이 곧 만백성의 복입니다.

게다가 조정에는 이렇게 용맹한 장군들이 많으니 몽달과 같은 좀도둑들은 누구라도 상대할 수 있습니다. 부황께서 친정을 하신다면 몽달은 동월에서 자신들에게 보낼 장병이 없어서 황제가 직접 왔다고 비웃을 것이 아닙니까?”

묵용감은 문무백관들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지만 그가 결정한 일을 번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냉랭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짐은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

그러자 아래에서 슬피 울부짖는 소리가 울렸다.

“폐하, 안 됩니다!”

“황상, 제발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백성을 생각하시고 황후 마마를 생각해 주시지요.”

누군가 백천범을 언급하자 묵용감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옥좌 손잡이를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다들 그 입 다물라! 한 번만 더 시끄럽게 떠들면 태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그 한마디에 시끌벅적하던 소리가 뚝 그쳤다. 성품이 온화해진 황제만 봤기에 모두들 이전에 황제가 천하를 뒤흔들었던 살신이었다는 걸 잊고 살았다.

그는 황제처럼 단정히 앉아 있었지만 얼굴은 무표정했고 눈동자에선 한기가 내뿜어져 나왔다. 하늘도 놀랄 위엄에 뭇 신하들이 모두 고개를 떨궜다.

몇몇 신하들은 한마디 더 하려고 입술을 우물거렸지만 도저히 겁이 나 입을 열지 못했다. 태자 역시 시선을 떨구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번 조정 회의는 군신이 모두 불쾌한 기분으로 끝마쳤다. 태자는 비록 황제의 의중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모후가 결코 승낙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마음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모후께서 고개를 끄덕이신 게 분명했다.

그는 황제가 남서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승덕전 안으로 몸을 던졌다. 때마침 차를 들고 오던 월규가 그와 부딪힐 뻔하자 몸을 휘청거렸다. 누군지 확인하지 않고 월규가 욕을 하려는데 묵용린이 입을 열었다.

“규 고고, 조심하시게.”

월규는 묵용린임을 알아차리고 급히 찡그린 얼굴을 펴고 웃었다.

“전하, 어찌 이리 서두르십니까? 무슨 일 있으십니까?”

묵용린이 물었다.

“어마마마 안에 계신가?”

“네, 계십니다.”

곧장 안으로 들어가는 묵용린을 보고 월규는 가만히 서 있었다. 늘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태자였는데.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태자와 황후 마마의 대화를 방해할 수 없었기에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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