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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74)화 (873/1,192)

제874화

며칠 지나지 않아 위 장로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청을 남제화가 윤허했단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는 급히 서재로 달려갔다.

“폐하, 정말 위 장로를 보내실 거예요?”

남제화가 말했다.

“위 장로가 사임을 표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짐이 두 달 더 있으라고 했소. 이제 기한이 다 되었으니 그를 고향으로 보내 줘야지.”

“폐하께서는 위 장로를 조금도 의심치 않으세요?”

“뭘 의심한단 말이오?”

위지불이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가 첩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요. 애당초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황상을 도운 게 이상하잖아요? 제가 보기에… 지난번 자객이 입궁한 일은 십중팔구 그와 관계가 있을 거예요.”

“만약 진짜 첩자라면 위 장로가 왜 떠나려 하겠소?”

“그건…….”

위지불이가 눈썹을 찡그리며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그가 떠나는 건 거짓말일지 몰라요.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요.”

“조정이 무슨 장터인 줄 아시오?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다고 가게? 그리고 위 장로가 첩자라면 누구의 첩자란 말이오?”

“당연히 나머지 네 장로의 후손이죠.”

“위 장로가 청 장로와 화 장로를 죽이고 그 후손들을 위해 잠복을 했다?”

남제화는 코웃음을 쳤다.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면 그럴 리는 없소.”

위지불이는 남제화의 비웃음에 약이 올랐다.

“그럼, 폐하가 말해 보세요. 위 장로가 왜 폐하를 도와주었는데요? 왜 청 장로와 화 장로에게 맞선 거냐고요?”

“그건, 위 장로가 똑똑하기 때문이오.”

남제화가 말했다.

“그는 일찍부터 용삼도의 충성이 짐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는 걸 알았고, 그에 병권이 짐의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지. 짐에게 병권이 있으면 자신들을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을 것이오.

그가 짐을 도와 준 건, 자기와 가족의 퇴로를 남겨 두기 위함이었소. 그러니 그가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건 짐에게 성의를 보이려는 의도지. 이런 와중에 짐이 굳이 그를 난처하게 할 이유가 없지 않소? 차라리 그냥 보내는 게 낫지. 세상에 총명한 자는 그리 많지 않소. 그가 죽으면 아까운 인재를 잃는 것이지. 차라리 남겨 두는 게 더 낫소.”

남제화의 말을 듣고 위지불이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퇴로를 위해 청 장로와 화 장로를 처리했다니, 너무 끔찍해요.”

“아니, 그건 인간의 본능이오.”

남제화는 그녀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겼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일 뿐이오. 그는 자기 생명뿐만 아니라 백여 명이 넘는 집안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거지. 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위 장로에겐 유일한 살길이었소. 청 장로와 화 장로가 권세를 다툴 때, 위 장로는 예리하게 위험을 느꼈고, 두 사람보다 똑똑했기에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을 거요.”

“그럼, 위 장로가 폐하의 신임을 얻은 셈인가요?”

“짐은 총명한 사람과 교류하길 원하오. 총명한 사람은 성가신 일을 벌이지 않지.”

위지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제화의 품에 털썩 걸터앉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행이에요.”

남제화는 웃으며 그녀의 허리춤에 있는 완도를 툭 쳤다.

“늘 완도를 차고 다니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한 것이오?”

위지불이는 왼쪽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난 저분 때문에 걱정이 돼요.”

그 방향은 지하 감옥이 있는 쪽이었다. 남제화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소. 짐이 벌써 그녀의 사람들을 처리하고 있으니. 곁의 패거리만 청소하면 그녀는 평범한 노파일 뿐이지.”

위지불이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그래도… 그분이 가만히 있을까요?”

남제화는 그녀를 끌어안고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은밀한 행동을 여제가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과연 그녀가 두고만 보고 있을까?

남제화는 오래지 않아 여제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있었다.

* * *

그날 밤, 위지불이는 젖은 머리를 늘어뜨린 채 화장대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남제화는 나이 들어 겨우 얻은 어린 아내를 매우 총애했다. 머리를 말리는 것처럼 작은 일도 그가 직접 해 주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는 마른 수건을 받아 들고 시녀에게 나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위지불이의 머리를 말려 주었다. 그는 머리를 닦으면서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오?”

“별거 아니에요.”

위지불이가 건성건성 대답했다.

“조금 피곤해서 얼른 자고 싶어요.”

“오늘 뭘 했길래?”

남제화가 물었다.

“또 따가운 햇살 아래서 궁내를 돌아다닌 것이오?”

황후의 행차에는 의장이 있었다. 궁녀가 그녀를 대신하여 오색 금테를 두른 큰 우산을 받쳐 들었다. 그 우산은 매우 넓어서 네 명의 궁녀가 받쳐야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위지불이는 느리게 걷는 궁녀들이 귀찮아서 황후의 의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이 따라다니는 것도 싫었다. 그녀는 혼인하기 전처럼 혼자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위지불이는 피곤한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남제화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시위통령이란 직위는 그저 놀라고 내린 것이니 너무 진지하게 여기지 마시오. 내일부터는 얌전히 궁 안에 있고 밖에 나가지 마시오. 햇살이 너무 강해 병이 날지도 모르오.”

머리를 맞은 위지불이는 고개를 들고 눈을 부릅떴다.

“왜 때려요?”

남제화는 그녀의 그런 행동에 깜짝 놀랐다. 그냥 가볍게 한번 친 건데 왜 이렇게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인 걸까? 그에게서 대답이 없자 위지불이가 매섭게 추궁했다.

“왜 때리냐고요?”

남제화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언제 때렸다고? 힘도 주지 않았는데.”

“그게 때린 거예요!”

위지불이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 벽 쪽으로 돌진해 자신의 칼을 꺼냈다. 번쩍거리는 칼을 뽑아 든 그녀는 남제화를 가리켰다.

“말해요. 왜 때렸어요?”

남제화는 그녀가 이유 없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여인들의 감정엔 기복이 많으니까 그는 다 포용할 수 있었다.

“좋아, 내가 잘못했소. 때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위지불이가 냉소를 짓더니 완도로 그를 찌르려 덤볐다. 처음엔 남제화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의 앞에서도 힘을 빼지 않자 바로 몸을 피했다. 그가 소리쳤다.

“불이,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위지불이는 공격이 먹히지 않자 손목을 꺾어 다시 그를 공격했다.

“누가 때리라고 했어요?”

뭔가 이상했다. 뭔가 제대로 잘못되었다. 그는 몸을 날려 손날로 그녀의 손목을 쳤다. 위지불이가 들고 있던 완도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위지불이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네가 감히 내 칼을 뺏어?”

여전히 성난 말투였지만, 남제화는 그녀의 눈빛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흐리멍덩하며 초점이 맞지 않았다. 그녀는 남제화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를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남제화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냉랭하게 말했다.

“끝까지 날 가만두지 않으시는군요.”

위지불이는 가만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때, 큰 기둥 뒤에서 누군가 돌아 나왔다. 화려한 옷자락을 땅에 끌며 나온 그녀의 표정에는 가련함이 가득했다.

“넌 과인이 낳은 피붙이란다. 과인은 차마 널 죽일 수 없구나 하지만, 네가 스스로 근맥筋脈을 끊는다면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마.”

남제화는 냉소를 머금었다.

“근맥이 끊어지면 짐은 폐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편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과인이 사람을 보내 너를 돌봐 줄 것이다. 너는 효자야. 비록 과인을 지하 감옥에 가두었지만, 과인을 푸대접하지는 않았지. 과인도 당연히 너를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짐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위지불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인형처럼 처박혀 있던 위지불이가 머리를 쳐들었다. 그녀는 순간 무슨 중대한 지령을 받은 것처럼 눈빛을 번뜩였다.

“불이더러 짐을 죽이라고 할 생각이십니까?”

남제화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불이가 짐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여제는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저 애의 무공이 너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있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 너의 목숨을 노릴 것이다. 그런데 넌 그녀를 다치게 하지 않겠지. 공격으로 수비를 상대하면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지.”

남제화는 침묵했다.

“불이에게 고충을 심은 건 그녀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그녀를 이용해서 짐을 죽이기 위함이었군요.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습니까?”

“화아.”

여제가 서글픈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먼저 이 어미에게 손을 대지 않았느냐? 네가 장로들을 해결하고 황권을 거머쥐었으니 그다음은 과인을 없애려 하겠지. 네가 암암리에 과인의 사람을 제거하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과인이 먼저 수를 쓰지 않는다면? 설마 헛되이 죽을 날만 기다리란 말이냐? 과인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단다.”

남제화는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십여 년 전의 옛일이 뇌리에 떠오르며 그때의 끔찍함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는 이렇게 몰인정한 여자가 왜 아이를 낳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식들을 이용할 생각으로 낳은 것인지도 몰랐다.

“짐은 태황과 다릅니다.”

남제화가 말했다.

“짐은 당신을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당신이 분수를 지켜 지하 감옥에 있었더라면… 짐도 당신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했을 겁니다.”

“그런 편안한 삶은 과인에게 무의미해! 죽는 것만 못하다고!”

“그럼 어떤 삶이 의미 있습니까?”

남제화는 그녀를 호되게 질책했다.

“피비린내 나는 피바람을 일으키며 또다시 남원을 곤경에 빠뜨릴 겁니까?”

“너는 과인을 이해하지 못해.”

여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었지.”

그녀는 위지불이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공격해.”

위지불이는 남제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칼을 돌려줘요.”

그녀는 이미 완전히 여제에게 통제된 듯했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눈은 흐리멍덩했다. 거기에 칼을 간절히 원하는 듯 그녀의 목소리엔 응석이 가득 묻어 있었다.

“나에게 줘요!”

남제화는 슬픈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마치 심장을 손으로 쥐어짜는 것 같았다. 그는 숨이 턱턱 막혔지만, 가볍게 그녀를 불렀다.

“불이.”

여제는 한쪽에 서서 그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위지불이가 저렇게 해서 자신의 칼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폐하, 어서 주세요.”

위지불이는 다급한 마음에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 탁자는 단음목으로 만들어져 돌보다도 단단했다. 남제화는 그녀의 주먹이 탁자 위를 치는 걸 주의 깊게 살폈다. 탁자에 부딪친 그녀의 손이 붉게 달아올랐다.

“빨리 줘요. 어서 줘……!”

그녀는 성격 나쁜 아이처럼 계속해서 탁자를 두드렸다. 그녀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칠 때마다 그의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여기 있다.”

그는 결국 칼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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