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872)화 (871/1,192)

제872화

동수여는 위지불이와 방 안에 잠시 앉아 있었다. 밖에서 길시가 되었다고 외치자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궁녀들이 몰려와서 위지불이를 부축했고, 다른 사람들은 위지불이에게 꽃잎을 뿌렸다.

위지불이는 신나는 곡조가 들려와 고개를 들어 보니, 앞쪽에는 한 무리의 시종이 남제화를 에워싼 채 다가오고 있었다. 바깥쪽에는 악사들과 무희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신부가 꽃가마를 타고 시집을 가는 동월의 풍습과 달리 남원의 혼례는 매우 시끌벅적하고 즐거웠다. 위지불이는 대열 속에 섞여 있는 부모님을 발견했다. 그들은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 없이 기분 좋게 그들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곡조가 갈수록 흥겨워지고 춤추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마침내 남제화까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위지불이의 앞까지 춤추며 다가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위지불이는 비록 춤을 출 줄은 몰랐지만, 남제화의 손을 잡고 즐거움에 겨워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오늘은 그녀의 혼례날이었다.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아무렇게 뛰어올라도 행복했다. 행렬이 대전에 도착하자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들은 새로운 부부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장엄하고 웅장한 대전이 환락의 바다가 되었다.

춤을 추고 난 뒤, 남제화와 위지불이는 단상에 나란히 앉았다. 사방이 온통 꽃과 채색 끈으로 꾸며져 있었다. 의자까지 꽃으로 가득했다. 위지불이는 꽃송이가 망가질까 봐 조심스럽게 앉았다.

단상 아래는 여전히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다양한 의상을 입고 각종 기이한 악기를 불어 대며 자기들끼리 질서 있게 구역을 정해 춤을 췄다. 악기 연주 소리는 조금 시끄러웠지만, 오늘처럼 경사가 있는 날 소란스럽게 즐기지 않으면 언제 이렇게 놀겠는가?

전당 양쪽에는 기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금색 비단 천을 깔아서 마치 금색 장룡 두 마리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술과 맛있는 요리가 끊임없이 상에 올라왔는데, 그것은 전부 초대에 응해 참석한 신하들과 귀빈들의 몫이었다.

즐거움은 전염되기 마련이다. 하객들은 넓은 마당으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고, 춤을 추다가 힘이 들면 자리로 돌아와 먹고 마셨다. 또한 잔을 들어 멀리 앉아 있는 황제에게 축하를 전했다. 다시 배불리 먹고 마셨으면 또 중앙으로 나가서 춤을 추었다. 끊임없이 꽃잎을 공중에 뿌렸고, 그것들은 팔랑팔랑 떨어져 보리수나무 마루가 알록달록하게 물들었다. 위지불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화려한 성찬이구나.’

그녀는 자신의 두 눈에 이 모두를 담을 수 없다고 느꼈다. 아름다운 아가씨들, 잘생긴 젊은이들, 화려한 옷들, 정교한 춤,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넘쳐흘렀다. 춤추고 날아오르는 듯 회전하는 저들의 옷자락은 마치 온갖 꽃이 꽃봉오리를 일제히 펼치는 것처럼 보였다.

남제화는 넋이 나간 위지불이를 보고 웃음 지었다.

“아름답소?”

“정말 아름다워요.”

위지불이는 진심으로 말했다.

“이렇게 시끌벅적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혼례식은 언제 하는 거예요?”

남제화가 말했다.

“이게 혼례식이오.”

위지불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우리는 뭘 할 필요는 없는 건가요? 머리 덮개를 젖히던지, 화롯불 위를 건너는 거는요? 천지와 부모에게 세 번 절하는 것도 필요가 없어요?”

“할 필요 없소. 우리는 그냥 앉아 있으면 되오.”

위지불이는 웃으며 말했다.

“동월 사람들이 혼인하는 것보다 훨씬 쉽네요.”

남제화가 말했다.

“첫날이니까 아직은 힘들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이런 가무가 이틀 동안 이어진다오.”

위지불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뭐, 공연을 보는 셈 치면 되죠. 평소에는 이런 놀라운 광경을 못 보잖아요.”

남제화는 가볍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힘들면 말해 주시오.”

“힘들진 않은데, 귀가 좀 아파요.”

남제화는 그녀의 귓불에 달려 있는 금장식을 손수 떼어냈다. 자그마한 귓불에 과연 깊은 자국이 남았다. 귀찌를 오래 착용하고 있자 아주 불편했다. 그는 마음이 아픈지 그녀의 귓불을 살살 문질렀다. 깜짝 놀란 위지불이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피했지만, 다행히 모두 가무를 보고 있어서 아무도 그들을 주시하지 않았다. 모두들 이 광경을 봤더라면 그녀는 부끄러워 땅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을 거다.

“이러지 마세요. 다들 보잖아요.”

그녀는 그를 슬쩍 노려보며 자기 손으로 다른 쪽 귀찌도 떼어냈다.

짙게 화장한 그녀는 오늘 아주 요염했다. 놀라고 화내는 그녀의 모습에 남제화는 심장이 두근거려서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많이 아프오?”

“이 정도 아픈 게 뭐 대수라고. 어머니가 저녁에야 더…….”

자신이 실언했다는 걸 깨달은 위지불이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얼른 입을 닫았다. 눈치 없는 남제화는 그걸 굳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저녁에 뭐라고? 뭐라 하였소?”

위지불이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남제화가 옷소매 밑에서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자 위지불이가 손을 쓱 빼며 그를 쏘아봤다.

“뭘 시치미를 떼고 그래요? 다 해 봤으면서!”

남제화는 그제야 그녀가 하려던 말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붉히며 멋쩍은 듯이 웃었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황당한 일을 한 적이 있지 않소? 설마 그걸 따지지는 않겠지?”

말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일 뿐, 위지불이도 그런 걸 따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남제화가 자신을 질투가 심한 여자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다른 곳을 바라보며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지막하게 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안심하시오. 아프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

위지불이는 쿵쾅거리는 심정을 가눌 길이 없어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아무 말도 못 들은 척했다.

힐끗 시선을 돌리니, 왼쪽에 따로 마련된 좌석에는 동월 황제와 황후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강한 기운을 내뿜는 묵용감은 함부로 말하거나 웃지도 않고 엄숙하게 앉아 있었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궁녀와 시종들도 자연스럽게 몸을 피했다.

반면, 백천범은 눈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들썩거렸다. 그녀는 몇 번이고 일어나 백성들과 함께 즐기려 했으나 묵용감에게 붙잡혔다. 그는 그녀가 사람들 사이에서 다칠까 봐 걱정이었다. 저 동월 황제는 기운이 강렬해서 누구에게나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웃음은 오직 황후 한 사람의 앞에서만 활짝 피어났다.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위지불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 황상께서는 황후 마마께 정말 잘해 주시네요.”

남제화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들을 보았다.

“확실히 그런 것 같소. 세상에 그처럼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지. 지금의 동월은 그가 닙닙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소.”

그는 씩 웃으며 그녀의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사실, 나도 그리 뒤처지진 않소. 그댈 위해 다시 힘을 내서 황권을 되찾지 않았소.”

위지불이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남제화가 그녈 위해 큰일을 해 주다니, 그건 그녀의 마음속에 오래 간직될 것이었다.

그날 하루 종일, 위지불이는 먹고 마시고 가무 공연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되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제야 자신이 오전에 한 말은 너무 일찍 한 말이란 걸 알아차렸다. 힘들지 않긴, 너무 힘들었다. 온몸에 걸친 무거운 금장식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관례에 따라 자세를 유지하며 단정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피곤이 몰려오자 위지불이는 결국 의자에 등을 기대앉아 긴장을 풀었다. 그러다 누군가 멀리 절을 하거나 잔을 드는 것을 보면 이내 단정히 앉아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축복을 받아들였다.

이런 시끌벅적한 성황은 한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위지불이가 힘들어하자 한 궁녀가 부축하러 왔다. 그녀도 사양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궁녀들은 서둘러 그녀의 몸에 걸친 금붙이들을 풀었고 목욕한 뒤 향기로운 몸을 침대에 눕혔다.

위지불이는 침대에 기대어 있다가 남제화가 돌아오기도 전에 잠이 들고 말았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그녀는 남자의 뜨거운 열정 때문에 잠에서 깨야 했다. 그녀는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다행히 남제화가 그녀를 무척 자상하게 대해 아픔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를 그녀를 껴안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불이, 나를 불러 보시오. 날 한 번 불러 봐 주시오.”

위지불이는 아직 잠에 취해 있었다. 비몽사몽 한 상태인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불렀다.

“폐하, 폐하…….”

두 번 불렀는데, 남제화는 말을 바꿨다.

“차라리… 부르지 않는 게 낫겠군.”

위지불이가 물었다.

“왜요?”

남제화가 투덜거렸다.

“그대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짐이 어떤 남자를 내리누르고 있는 것 같소.”

위지불이는 성을 내며 발길질을 했다.

“제가 싫다는 말이에요?”

남제화가 말했다.

“이런, 감히 부군을 죽이려 하다니! 부군이 어떻게 혼내나 잘 보시오.”

“흥, 누가 무서워한대요?”

어둠 속에서는 이따금 찰싹거리는 싸움 소리와 헐떡이는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 *

혼례식 마지막 날, 남제화와 위지불이는 꽃으로 꾸며진 마차를 타고 궁을 나와서 타곤성 시내를 행진하며 백성의 축복을 받았다. 마차는 크고 작은 꽃으로 덮여 있어서 화려하며 오색찬란했다.

타곤성의 백성들은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춤을 추고 노래했다. 각양각색의 백성들의 모습은 위지불이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 길 끝에서 저 길 끝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백성들은 춤추는 무리에 끼지 못한 채 건물 처마 밑에서 황제와 황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위지불이와 남제화도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열정적인 백성들의 반응에 위지불이는 감동했다. 비록 어떤 관원들은 남제화가 그녀를 황후로 세우는 것에 반대했지만, 남원 백성들은 그녀를 이렇게 환영하고 있었다. 이곳이 그녀의 모국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남제화와 함께 남원의 백성을 지키며 아름다운 나라를 수호할 것이다.

그렇게 혼례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추절이 찾아왔다. 또 한 번 궁 안팎으로 춤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위지불이는 남원이 정말 재미있는 나라라는 걸 발견했다. 경사스러운 날이 되면 가무가 빠지지 않는 게 전통이었다. 가무는 그들의 혼이었다.

위지불이는 남원에 온 이래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좋은 부군과 혼인하였고 부모님은 모두 곁에 있었다.

황후 마마께서는 그녀를 친자매처럼 대해 주셨다. 매일이 명절처럼 즐겁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침에 눈을 뜨면 웃고 싶고, 밤에 잠을 자다가도 웃는 일이 빈번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