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8화
동수여는 위지불이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두 사람이 작위를 하사받고, 황후를 만난 것. 또 남원에 오게 된 것까지 상세히 설명했다. 위지불이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럼… 아버지가 국공 나리가 되셨고, 어머니는 일품 고명에 봉해진 거예요? 우리 동월의 황후 마마께서 폐하의 친동생?”
그때 그녀가 남제화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동월에 그녀의 소식이 전해지면 자신의 부모님의 삶이 고달파질 것이라고! 그때 남제화는 제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말을 했었다. 그땐 그저 위로의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가 정말 해결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저택과 재산이 생겼고 더 이상 위지 가문에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 지위도 위지 가문의 가주보다 높아서 업신여김을 당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남자는 정말 하늘 아래서 가장 자상한 부군이었다.
“폐하는 만나 뵈었어요?”
“아직 못 뵈었다.”
동수여가 답했다.
“우리가 궁에 들어왔을 때, 폐하께서는 아침 일찍 조정에 가셨다고 들었다. 우리를 여기로 안내한 건 강 총관이었단다.”
“그럼 우리 황후 마마께서도 아직 폐하를 만나지 못하고 기다리고 계시겠네요?”
“그럴 리가.”
동수여가 말을 이었다.
“우리 동월 황상께서 황후 마마를 얼마나 아끼시는데! 황후 마마께서 먼 길을 오느라 피곤했으니 우선 낮잠부터 주무셔야 한다고 나중에 궁에 들어오신다고 하셨다. 나와 네 아버지는 너를 보려고 먼저 급하게 들어왔지.”
여기까지 말한 동수여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 황후 마마께서는 선녀처럼 아름다우시니, 황후 마마의 오라버니도 용모가 빠지지 않을 듯한데……. 불이, 이 어미에게 폐하의 용모가 어떠신지 말 좀 해 보거라.”
위지불이는 어머니가 다른 걱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머니, 뭘 그리 걱정하시는 거예요?”
동수여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걱정이겠느냐? 남원 황제가 둘째라면 서러울 인물인데 어찌 너 같은 녀석에게 반했을까 그게 의문인 것이지.”
“…….”
역시 우리 어머니네…….
* * *
편안한 마차에 앉아 먹을 것 다 먹고 잘 만큼 다 잤는데… 피곤할 리가 있겠는가? 백천범은 타곤성에 도착하자마자 남제화를 보고 싶었지만 묵용감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역관에서 낮잠을 자야 했다.
항상 정무로 바쁜 묵용감이 그녀를 따라 남원까지 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말을 거역하고 싶지 않았다. 얌전히 역관에서 낮잠을 잔 그녀를 상쾌한 기분으로 입궁했다.
황궁에 들어갈 때는 이미 사시巳時(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의 시간)였는데, 남제화가 막 회의를 마친 후였다. 소식을 듣고 그는 전각 입구에 서서 그들을 마중했다. 십여 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도 서로는 서로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백천범은 잠시 만감이 교차했다.
그녀는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바로 남제화의 품으로 달려들려고 했지만, 묵용감에게 붙잡혔다. 백천범을 끌어당겨 품에 안은 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남제화를 바라봤다. 남제화는 활짝 펼쳤던 두 팔은 천천히 내리고 웃으며 안으로 자리를 청했다.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황상, 안으로 드시지요.”
그는 옆으로 돌아서 묵용감과 백천범을 앞서 걷게 했다. 묵용감도 사양하지 않고 백천범을 한팔로 끌어안고 성큼성큼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동월에게 패한 패장으로 지금까지도 남원의 국경에는 동월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먼 길을 와 준 동월의 황제와 황후에게 남제화는 성의와 존경을 넘치도록 베푸는 게 당연했다. 백천범은 이런 인사치레와 거리감을 좋아하지 않아서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우리 남매가 모처럼 만났는데 규율 같은 건 잊고 편하게 대해 주세요.”
남제화는 웃으며 좋다고 말했지만, 알게 모르게 묵용감을 힐끔 쳐다봤다. 그가 차가운 표정으로 지존천신처럼 있는데… 어찌 편하게 대할 수 있을까? 백천범은 손가락으로 묵용감을 살짝 찔렀다.
“황상?”
“응?”
“좀 웃어 봐요. 그렇게 굳은 얼굴로 있지 말고요.”
묵용감은 가능한 한 양쪽 입꼬리를 위로 올리고 웃는 모습을 만들었다. 하지만 어색해 보이는 모습에 백천범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그의 손바닥을 살살 긁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렇게 있으면 오라버니가 겁을 먹겠어요.”
묵용감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황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배짱이 작지 않소.”
남제화는 총명한 사람이라 묵용감의 성질머리를 알고 있었다. 당연히 묵용감 앞에서는 겸손하면 겸손할수록 좋았다. 그는 가능한 한 말을 하지 않고 예의만 갖춘 미소만 지었다. 백천범은 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오면서 저한테 약속하신 거 기억하죠?”
묵용감은 못마땅한 듯 남제화에게 공수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당시 범아가 남원에서 탈출하는 것을 도와 줘서 감사하오.”
그가 탈출이라는 단어를 쓰자 남제화는 어색한 미소로 황급히 답례했다.
“닙닙은 제 친동생입니다. 당연히 도와야죠. 황상께서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 짐은 그저 인사치레로 한 소리지.”
묵용감이 말했다.
“애초에 당신이 범아를 남원으로 데려갔으니까.”
그가 이런 말을 꺼내자 결국 남제화는 곤혹스러웠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사실 제 잘못이었는데…….”
백천범은 분위기가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자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
“이미 십 년이나 된 일이에요. 더 이상 그 얘기는 하지 말아요. 아, 맞다. 오라버니, 올케 언니는 왜 안 보이나요? 어디 갔어요?”
남제화가 대답했다.
“불이의 부모님이 오셨으니 세 식구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해서 나도 괜히 찾아가 방해하지 않았지.”
백천범이 말했다.
“불이 아가씨와 부모님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으니 분명 밀린 말들이 많을 거예요. 하늘 아래에서 끊어낼 수 없는 유일한 것이 혈육의 정인데…….”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순간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세상 사람들은 끊을 수 없는 혈육의 정을 유독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잘라 버렸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묵용감은 바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범아, 폐하와 밀린 이야기나 나누시오. 난 밖에서 바람이나 쐬어야겠소.”
백천범은 그가 배려해 준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 안 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니 황상께서는 이곳저곳을 다니시다가 길을 잃지 않게 조심하세요.”
묵용감은 웃음을 터뜨렸다.
“황제가 길을 잃다니… 그게 무슨 우스갯소리란 말이요?”
그는 백천범의 어깨를 토닥거리더니 돌아서서 밖으로 나섰다. 묵용감이 대전의 문을 나서자 그제야 남제화는 백천범에게 다가갔다.
“닙닙아, 오라비한테 얼굴 좀 자세히 보여 다오.”
백천범은 일어나서 천천히 한 바퀴 돌더니 애교를 부리며 물었다.
“오라버니, 다 보셨어요?”
남제화는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아이를 셋이나 낳은 여인이었지만 세월은 그녀에게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여전히 그녀는 그의 기억 속에 있던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누이동생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말했다.
“오라비가 보기에 황상께서 닙닙이 너를 아주 잘 돌봐 주신 것 같구나. 너도 행복하게 사는 것 같고.”
백천범이 물었다.
“난 행복해요. 오라버니는요?”
남제화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오라비도 이제 행복을 만났단다.”
백천범도 남제화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자세히 보니, 오라버니에게 약간의 변화가 느껴졌다. 사실 십여 년 동안 그는 의욕 없는 삶을 살아왔다. 미간 주름에 새겨진 쓸쓸함은 아무리 활기를 되찾아도 완전히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씁쓸한 소감을 밝혔다.
“오라버니가 불이 아가씨를 조금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요.”
남제화가 대꾸했다.
“행복은 언제 찾아와도 늦지 않아. 하늘은 이미 이 오라비에게 복을 후하게 주셨단다.”
백천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행복은 찾아오기만 하면 늦지 않은 거예요.”
남매는 함께 앉아서 각자의 생활에 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자세히 나누었다. 남제화는 특히 묵용린을 그리워했다. 그가 이미 동궁에 입성했고 벌써 묵용감을 도와 정무를 살핀다는 말에 남제화는 무척 기뻐했다.
“린아는 정말 큰일을 할 사람이야. 미래에 그 녀석이 이룰 업적은 분명히 자신의 아버지를 뛰어넘을 거야.”
백천범은 반대로 한숨을 내쉬었다.
“린아는 이제 너무 많이 변해서 웃지도 않아요. 어릴 때가 더 나았다니까요.”
남제화는 놀리듯 말했다.
“닙닙아, 설마 린아가 더 크지 않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저는 그 아이가 평범한 아이처럼 자랐으면 좋겠어요. 장난도 치고 가끔 저에게 와서 응석도 부리면서 말이에요, 지금처럼 애어른이 아니라. 벌써 조정에서 그 아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남제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린아는 이미 보통 아이가 아니란다. 동궁의 주인인 태자 전하이시지. 그는 미래에 동월의 황위를 계승할 후계자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백천범은 슬픈 마음이 들었지만 그대로 생각을 넓게 가지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청양과 성아가 제 곁에 있어서 쓸쓸하진 않아요.”
남제화는 묵용청양과 묵용성을 본 적 없지만, 그들 남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어 했다. 백천범은 묵용청양이 얼마나 장난꾸러기인지 말했고, 또 묵용성이 얼마나 예의 바른 아이인지 말해 주었다. 이들 남매는 그녀의 삶에 활력을 주는 존재였기에 한 번 말문이 열리면 끊임없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들은 한참 동안 웃음꽃을 피웠다.
남제화는 흥미진진하게 들으며 이따금 웃음을 터뜨렸다. 백천범의 이야기가 다 끝나자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닙닙아, 혹 그분을 만나 보겠느냐?”
백천범은 차를 한 모금 입에 물고는 한참 동안이나 목으로 삼키지 못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어머니로서의 즐거움을 알았다. 몸으로 직접 낳은 피붙이는 아무리 예뻐하고 아껴주어도 부족했다. 그런데 어떻게 낳기만 하고 기르지도 않았으면서 또 상처를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차를 천천히 삼키자 입안에 쓴맛이 남았다. 한참 뒤에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만나는 것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