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865)화 (864/1,192)

제865화

일이 커지자 위지불이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남제화에게 물었다.

“폐하, 위 장로가 그렇게 많은 관원을 잡아들였는데, 조정의 질서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요?”

남제화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진 않을 거다. 모든 관원을 가둔 것도 아니잖느냐. 어차피 짐이 황권을 되찾으려면 남원의 관직도 한바탕 뒤집어야 한다. 그자들은 다섯 장로들에게 복종하니, 짐이 조만간 물갈이를 해야지.”

위지불이는 그래도 걱정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위 장로는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잖아요. 속내를 깊이 감추고 있어서 간파하기도 쉽지 않고, 딱히 허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폐하보다 훨씬 교활한 사람인데, 자신 있으세요? 정말 안 되겠다면…….”

그녀가 눈썹을 찌푸리며 망설였다. 남제화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우스워서 더 놀려주고 싶었다.

“정말 안 되겠으면 어찌하려고?”

위지불이가 허리춤의 단도를 만지작거리더니 결심을 굳힌 듯 단호하게 말했다.

“용삼도를 보낼게요.”

남제화가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그녀의 코끝을 꼬집었다.

“야만인이 따로 없구나. 무슨 일만 생기면 이리 무력으로 해결하려 하다니.”

위지불이가 당차게 말했다.

“전 골머리를 썩이며 계략을 쓰기 싫은 것뿐이라고요. 어차피 부하도 있는데요, 뭐.”

남제화가 말했다.

“위 장로는 짐을 도와 장애물을 없애 주었으니 짐도 마땅히 그자를 곁에 더 두어야 한다. 우선은 지켜보자꾸나. 아직 짐도 그자의 속내를 잘 모르겠으니까.”

* * *

다섯 장로 중 세 자리가 비었다. 용삼도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니 이제 위 장로만 남은 것이었다. 남제화는 위 장로가 엄청난 권력을 독식하기 위해 분명 자신의 사람으로 결원을 메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그는 일사분란하게 정무를 처리했다. 그는 매일 자신이 처리하는 공문을 필사하여 정전에 있는 황제에게 보여 주었고,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직접 찾아와 황제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황권을 장악한 장로가 아닌 충심이 가득한 노신老臣이 되었다.

남제화는 위 장로의 속내를 좀처럼 확신할 수 없었다. 위 장로가 화 장로와 청 장로를 제거한 건 대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또다시 날이 지나갔다. 칠흑 같은 밤, 화 장로는 옥사에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했다. 아침이 되어서야 발견된 탓에 몸은 이미 딱딱하게 굳은 후였다. 그렇게 기존의 다섯 장로 중 유일하게 위 장로만 남게 되었다.

소식을 접한 위 장로는 남제화 앞에 찾아와 무릎을 꿇더니 장로제를 폐지하고 군주가 권력을 잡을 것을 요구했다. 왕좌에 앉은 남제화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위 장로, 무슨 연유로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이오? 지금껏 장로들 덕분에 짐이 편히 살 수 있었소. 설마 장로도 짐이 부러워 이리 한가로운 삶을 살고 싶은 것이오?”

“폐하, 이제 다섯 장로 중 두 명만 남았습니다. 게다가 용 장로는 정사에 관여하지 않겠다 합니다. 신은 나이가 많아 이제는 힘이 부칩니다. 이러다 폐하의 신망을 저버릴까 두렵습니다.

당시엔 폐하께서 정치에 관심이 없으시어 저도 억지로 조정의 대권을 떠맡았습니다. 하지만… 이 천하는 분명 폐하의 천하입니다. 조정을 관리하는 것도 폐하께서 책임지셔야 할 일입니다. 폐하, 부디 황권을 되찾아 주시옵고, 신이 사직 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남제화가 말했다.

“위 장로, 그리 겸손해할 것 없소. 짐은 위 장로를 믿소. 다섯 장로가 모두 채워지면 조정은 다시 예전과 같을 것이오. 위 장로는 원로이니 짐이 장로의 수장으로 임명하겠소. 앞으로도 짐은 위 장로에게 의지할 것이오!”

위 장로는 그의 말에 곧장 바닥에 엎드려 큰소리로 외쳤다.

“폐하, 부디 그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노신은 우둔하여 그리 큰 중임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남씨 가문이 남원을 수백 년간 통치해 왔습니다. 폐하께서는 황족이시며 그 누구보다 슬기롭고 출중한 분이십니다. 폐하만이 이 천하를 진정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다시 황권을 잡으신다면, 만백성들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신은 폐하를 위해, 조정을 위해 충심으로 십여 년간 일하였습니다. 이제 늙어서 기력이 쇠퇴하였으니, 부디 청하옵건대 귀향하여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두 가지 뜻을 밝혔다. 첫째는 황제가 오랜 시간 자유롭게 지냈으니 이제는 중임을 감당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남에게 의지하는 황제가 아닌 황제다운 황제가 되라는 의미였다. 둘째로 자신은 그간 조정을 위해 소처럼 일했으니 이제 그만 여생을 편하게 보내고 싶다고 밝혔다.

남제화는 바닥에 엎드린 위 장로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감정에 북받쳐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모자라 눈가에 눈물까지 비쳤다. 남제화가 긴 탄식을 내뱉었다.

“되었소. 일어나시오, 위 장로. 장로 말대로 하겠소.”

위 장로는 기뻐하며 곧장 몸을 일으켰다. 남제화는 천천히 뒷말을 이었다.

“하지만…….”

위 장로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엉덩이를 쑥 내민 채 멈춰 서서 황당한 얼굴로 남제화를 바라보았다. 남제화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짐이 그간 조정을 신경 쓰지 않은 탓에 아직은 위 장로의 도움이 필요하오. 화 장로 사건에 많은 관원이 연루되어 있으니 당장 그 빈자리를 메워야 하지 않겠소? 이 일은 위 장로께서 도와주시오.”

위 장로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생각하더니 허리를 숙이며 매우 공손하게 대답했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노신이 저리 어수선한 조정을 폐하께 넘겨 드릴 수는 없지요. 이번 일은 노신에게 맡겨 주십시오. 노신이 인원과 관직을 정리하여 폐하께 다시 의견을 여쭙겠습니다.”

남제화도 예를 갖춰 대꾸했다.

“하면 위 장로께 부탁 좀 하리다.”

위 장로가 자리를 뜨자 위지불이가 근심에 잠긴 얼굴로 옆문에서 나왔다. 둥근 눈썹이 다 찡그려질 만큼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남제화가 조용히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이마를 찔렀다.

“또 뭘 그리 넋을 놓고 있는 게냐?”

위지불이가 막 손바닥으로 그를 내리치려 하는데, 강암룡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곧장 남제화의 어깨를 툭툭 털며 말했다.

“폐하, 옷이 어찌 이리 더러운 거예요?”

남제화는 웃음을 참고 그녀의 연기에 호응해 주었다.

“어디서 먼지가 묻었나 보구나.”

강암룡은 황제에게 보고를 마친 뒤, 다시 곧장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이제 황제 곁에 위지불이가 있으니 아무래도 그가 거치적거릴 터. 그는 늘 눈치껏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가 떠나자 위지불이가 물었다.

“폐하, 위 장로에게 일부러 관원을 뽑게 하신 거예요? 속내를 떠보려고요?”

“그래.”

남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고향에 돌아가겠다니. 너무 이상하지 않느냐. 짐도 시험해 봐야지.”

“만약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작은 걸 포기하려는 심산이라면, 폐하가 그 말씀만 하길 기다리고 있었을 거예요. 만약 자신의 사람들로만 인원을 채우면, 또다시 폐하를 허수아비로 만들지 않겠어요?”

“겁낼 게 뭐 있느냐?”

남제화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쨌든 네게 실력 좋은 부하도 있는 것을.”

위지불이가 시시덕거리며 말했다.

“예전에 제가 폐하를 지켜 드린다고 말했을 땐 제대로 주제 파악을 못 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병권이 제 손에 있으니 진짜 폐하를 지켜 드릴 수 있다고요.”

“맞다. 그러니 내 곁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말거라.”

남제화가 그녀의 손을 잡고 침전으로 향했다.

“낮에는 짐 곁을 수행하고, 밤에는 짐 곁에 함께 잠들고.”

위지불이가 눈을 희번덕이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폐하, 이제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사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 고민해야죠. 어찌 맨날 머릿속에 그리 추잡한 것들만 가득 차 있는 거예요!”

남제화는 괴로웠다. 그는 황제가 아니던가. 여인과 함께 잠드는 게 이리 어려울 일이란 말인가? 사실 기어이 넘지 못하는 산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위지불이를 너무 아꼈기에 자신이 함부로 그녀를 원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당장은 일이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지만, 정말 그날이 올 때까지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매일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그의 눈앞을 맴도니 그도 자꾸만 마음이 들떴다.

* * *

위 장로는 오랜 시간 남원에서 위세를 떨친 장로였다. 그는 남원의 여러 인재들을 제법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빠르게 관원 후보자 명단을 작성한 뒤 남제화에게 전해 주었다.

후보자들의 기록 문건을 꼼꼼히 살핀 결과 위 장로는 사리사욕 없이 매우 공정하게 후보자를 선출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추천한 목록에는 그의 가족, 제자, 학생 등이 한 명도 없었다. 괜스레 뒷말이 나올까 봐 신경 써서 고른 듯했다.

게다가 각자의 재능과 공석인 자리를 비교해 보니 하나같이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그 쓰임 또한 매우 적합했다. 위 장로는 대권을 독점하려거나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물러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관직에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체 왜 남제화를 도와 그의 장애물들을 정리해 준 걸까? 정말 군주에게 충심을 다하려는 마음에서?

남제화는 두꺼운 후보자 문건을 바라보며 침묵에 잠겼다. 잠시 뒤, 그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서렸다. 위 장로는 과연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었다.

팔월 초팔일은 길일이었다. 남제화는 금색 황포를 입고 보전寶殿 앞에 섰다.

보전은 남원 역대 황제가 정무를 보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남제화는 정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대전을 걸어 잠그고 장로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의사당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제 장로제가 폐지되었으니 그는 다시 보전을 열었다. 이는 지고지상의 황권이 마침내 그에게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제화 곁에 서 있던 위지불이는 감격에 젖어 나지막이 말했다.

“경하드립니다. 폐하!”

남제화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내가 보전에 들어서자마자 내릴 첫 성지가 무엇인지 아느냐?”

위지불이가 어찌 알겠는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남제화가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강암룡이 이미 가지고 있다.”

위지불이는 그의 시선을 따라 강암룡을 바라보았다. 강암룡의 손에는 정말 둘둘 말린 금색 비단이 들려 있었다. 비단은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그녀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황금이 많이 나는 나라라지만, 성지마저도 금으로 된 비단을 쓰다니! 정말 사치스럽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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