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왕비초장성 (863)화 (862/1,192)

제863화

오신전이 냉소를 지었다.

“청 대인께선 본관이 청막송을 무고한다 생각하십니까?”

“무고한지 아닌지는 오 대인께서 더 잘 알겠지요.”

“그리하다면 증인을 안으로 들이겠습니다.”

오신전이 낮은 음색으로 소리쳤다.

“이학옥을 들라 하라!”

바깥에 있던 호위가 이학옥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학옥은 그 당시 제방 건설을 담당하던 책임자였다. 제방이 터졌으니 그가 받을 죄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무릎을 꿇고 벌벌 떨었다.

“죄신 이학옥, 폐하를 뵙습니다.”

그는 몸을 살짝 옆으로 틀어 두 장로에게도 절했다.

“장로 대인을 뵙습니다.”

“이학옥.”

화 장로가 목청을 높였다.

“당시 제방을 건설할 때, 부적합한 모래와 자갈을 쓴 게 사실인가?”

이학옥이 어깨를 바들바들 떨며 납작 엎드려 대꾸했다.

“예.”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도 어찌 그런 자재를 썼단 말인가? 문제가 생길 거라고 예상치 못했단 말인가?”

“죄신, 해당 자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땐 매입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청막송이 죄신을 찾아와 강제로 그 자재를 사게 압박했습니다. 청막송은 청 장로의 아들인데 죄신이 어찌 미움을 사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요.

당시 청막송이 죄신에게 장담했었습니다. 그 모래와 자갈이 공부의 적합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수많은 농가에서 이 자재로 못을 막는 둑을 만들었는데 수십 년이 지나도 아무런 문제없었다고도 했습니다.”

“자네는 그 당시 공사의 책임자였네. 한데도 압력을 이기지 못해 부적합한 자재를 쓰다니. 그게 얼마나 큰 죄인지 아는가?”

이학옥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신,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아닙니다.”

청사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장로 대인, 이학옥은 암변곤에게 뇌물을 받고 그 자재를 사들인 것입니다. 청막송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저자는 청막송에게 자신의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입니다! 청막송을 들여 대질을 하게 해 주십시오.”

위 장로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들라 하라.”

두 명의 호위병이 청막송을 포위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이학옥과 달리 당당하고 느긋한 얼굴이었다. 누가 귀공자 아니랄까 봐, 귀티가 줄줄 흘렀다. 황제와 두 장로를 본 그는 규율에 맞게 예를 갖췄다. 딱히 공손해 보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백성들이 신처럼 우러러보는 황제가 사실은 허수아비일 뿐이고, 그의 권력이 자신의 부친보다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적장자이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부친의 작위를 계승하게 된다. 그러니 황제도 안중에 없을 수밖에. 화 장로가 질문을 건넸다.

“청막송, 자네를 부른 이유를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청막송은 경멸스럽다는 듯 이학옥을 바라보았다.

“제방이 무너진 것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이 일은 본 공자와 전혀 상관없습니다. 근거 없는 고발은 전부 다 이 대인의 중상모략입니다.”

두 장로는 순간 황당한 얼굴을 했다. 황제와 장로들 앞에서 청막송은 자신을 ‘본 공자’라고 칭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말투조차 대담했다. 내당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 장로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조용히 욕을 퍼부었다.

“멍청한 놈.”

남제화는 오히려 미소를 짓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청 공자가 말하는 근거 없는 고발이라는 건 무얼 가리키는가?”

청막송은 황제가 예를 갖춰주자 더욱 오만해져서는 뒷짐을 진 채 말했다.

“본 공자와 암변곤은 그저 인사나 하는 사이입니다. 어찌 그런 자를 위해 이 대인을 압박하겠습니까? 나 원 참, 가소롭기도 하지.”

“인사만 하는 사이인데, 청 공자는 어째서 암변곤을 도와 이 대인을 만난 것인가?”

청막송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겐 너무 쉬운 일이었으니까요.”

“청 공자는 암변곤의 자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가?”

“당연히 몰랐지요. 알았다면 본 공자도 이 일에 절대 끼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제화는 짤막하게 대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막송은 속으로 득의만만해 했다. 황제는 장로들에게 의지해 천하를 다스려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의 체면을 봐줄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다섯 장로는 한마음 한뜻이니, 이 일도 분명 눈감아 주고 대충 넘어갈 터.

그는 그저 이 자리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이 일 때문에 자신의 일이 방해를 받으면 큰 손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 일을 빠르게 해결할 극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폐하, 장로 대인.”

그가 공수를 하며 말했다.

“이 대인이 제가 암변곤을 위해 자신을 압박했다고 주장하니, 암변곤을 불러 대질을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화 장로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암변곤을 들라 하라!”

암변곤은 복스럽게 생긴 상인이었다. 뚱뚱한 체격에 피부는 까맸고, 납대대한 얼굴에 비해 눈은 조금 작았다. 옷은 번쩍이는 긴 장포를 입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곧장 안으로 들어와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 폐하를 뵙습니다.”

그가 몸을 돌려 두 장로에게도 인사를 올렸다.

“장로 대인을 뵙습니다.”

“암변곤.

화장로가 느긋하게 물었다.

“본인의 죄를 아는가?”

“알고 있습니다.”

암변곤이 납작 엎드려 퉁퉁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당시 저수지에 제방을 지을 때 소인이 청 공자와 내통하여 이 대인이 질 낮은 자재를 사도록 압박하였습니다. 결국 제방이 헐거웠던 나머지, 오늘날 이리 큰 화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말에 청막송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암변곤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함을 내질렀다.

“이런 간사한 상인 나부랭이가……! 어디서 중상모략을 하는 것이냐!”

오신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청 공자, 암변곤에게 대질을 하자고 한 건 공자가 아니오? 저자가 당시 공자와 내통을 하여 이 대인을 압박했다는데… 더 할 말이 있는 것이오?”

“그럴 리 없소.”

청막송은 새파랗게 질린 낯빛을 한 채 암변곤을 보고 눈을 부라렸다.

“무슨 짓을 꾸민 것이냐? 분명 이학옥이 네 돈을 받고 그 자재를 사들인 것인데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냐?”

“청 공자.”

암변곤이 쭈뼛대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냥 자백하시지요. 거짓을 고하면 부처님께서 노하십니다.”

청막송은 성을 참지 못하고 그를 발로 걷어찼다.

“이런 개자식, 입만 열면 헛소리를 해대면서 감히 부처를 들먹이다니…….”

위 장로가 헛기침을 하자 옆을 지키던 호위가 곧장 청막송을 자리에 앉혔다. 화 장로가 물었다.

“암변곤, 지금까지 한 말이 모두 사실인가?”

“전부 다 사실입니다. 한마디라도 거짓을 고했다면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폐하, 장로 대인.”

청사가가 급히 앞으로 나왔다.

“암변곤은 간사한 상인입니다. 저자의 말은 믿기 어렵습니다. 분명 이 대인에게 뇌물을 받고 청 공자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폐하, 장로 대인.”

오신전도 앞으로 나와 고했다.

“신에게 증인이 몇 명 더 있으니 모두의 증언을 들어주시옵소서.”

화 장로가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증인을 들라 하라!”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암변곤의 처였다. 그녀는 당시 암변곤이 청막송에게 부탁하여 이학옥이 자재를 사도록 압박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도 말해 주었다고 증언했다. 청막송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반박했다.

“이 여인은 암변곤과 한패이니 당연히 저자와 같은 말을 할 테지.”

두 장로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더니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다음 증인을 불렀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이학옥의 수행원이었다. 그는 당시 이학옥이 협박을 받고 근심하다 그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고 증언했다. 청막송이 청 장로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을 위협했다는 말을 꺼냈었다는 것이다. 청사가가 말했다.

“이 대인의 수행원이니 당연히 이 대인의 편을 들 것 아닙니까. 이런 식이면 청 공자의 수행원도 증언할 수 있지요.”

오신전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면 청 공자의 수행원을 들이지요.”

뒤이어 하얀색 반소매에 검은 바지를 입은 수행원이 들어왔다. 신분이 비천했던 그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곧장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그리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화 장로가 물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소인은 청 공자를 모시는 파룡巴龍이라고 합니다.”

“파룡, 공자 곁을 지킨 지 얼마나 되었지?”

“소인, 어릴 때부터 공자의 곁을 지켜서 올해로 열여섯 해가 되었습니다.”

“십 년 전 교외 저수지에 제방을 지었는데, 이 일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청 공자가 이 일에 관여했는가?”

“…….”

파룡은 잠시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예.”

“어찌 관여했는가?”

“암변곤이 모래와 자갈을 파는데, 이 대인에게 그 모래와 자갈을 사도록 공자께서 압박을 가하셨습니다. 그렇게 번 돈은 공자와 암변곤이 서로 반으로 나누었습니다.”

“이런 개자식……!”

청막송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에게 달려들어 발을 날렸지만, 대기하던 호위가 곧장 그의 팔을 뒤로 꺾어 꼼짝 못 하게 하는 바람에 파룡의 몸에 그의 발이 닿지 않았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 감히 날 팔아먹어? 누구냐, 누가 뒤에서 사주하는 거야?”

청막송이 마구 소리쳤다.

“당장 사실대로 불거라. 안 그럼 네 가죽을 벗겨 버릴 테니!”

파룡은 청막송을 두려워하는지 바닥에 웅크린 채 덜덜 떨며 말했다.

“고, 공자, 거짓말하지 마시어요. 거, 거짓을 고하면 부, 부처님께서…….”

“너도 부처님 얘기구나. 다 같이 입이라도 맞춘 것이냐?”

청막송은 분개하며 발버둥 치다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호위에게 호통쳤다.

“이거 놔라. 네 가죽도 벗겨 버리기 전에!”

“청 공자.”

줄곧 아무 말 없던 위 장로가 입을 열었다.

“어전에서 어찌 이리 무례하게 군단 말인가!”

그의 엄숙한 표정과 낮은 음성에 청막송은 마침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위 장로…….”

화 장로가 무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청 공자, 얌전히 기다리게. 누가 옳고 그른지는 폐하께서 다 알고 계실 거라고 믿네.”

위지불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슬쩍 남제화를 훑었다. 남제화는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화 장로, 짐은 그저 옆에서 듣고만 있었으니 이 일은 화 장로와 위 장로가 처리하시오.”

말을 마친 그는 위지불이에게 손짓했다.

“이리 오거라.”

위지불이는 그가 분부할 일이 있어 부르는 줄 알고 곧장 다가갔다. 남제화는 활짝 웃으며 찻잔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차를 마시며 천천히 지켜보거라. 아직 끝나려면 좀 더 남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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