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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왕비초장성 (854)화 (853/1,192)

제854화

앞마당에서 위지종화는 어린 세자를 데리고 나와서 황명을 받들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는 어리둥절했다. 오늘은 학 총관이 직접 나와 명을 전했기 때문이다. 위지종화의 뒤에 몰려든 사람들을 살피던 학평관은 큰 소리로 물었다.

“누가 위지하이십니까?”

위지종화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대총관, 누구를 찾으신다고요?”

“위지하입니다.”

위지종화는 그 이름을 들으며 얼떨떨했다. 가문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방계 친족들도 너무 많아서 순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옆에서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위지하는 위지불이의 아비입니다.”

위지종화는 불이라고 불리던 계집애는 기억이 났다. 위지 가문에서 유일하게 남원에 간 여자 자객이었다. 대총관이 방계 친족을 찾아서 뭘 하려는 걸까?

“대총관, 위지하를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

학평관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저희 불찰입니다. 처음부터 설명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오늘 교지는 황상께서 위지하 부부에게 내리신 겁니다. 위지 장군께서는 그분들을 모셔 오시지요.”

위지종화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서둘러 사람을 보내 위지하 부부를 청했다.

위지하 부부는 곧 도착했다. 당황한 그들은 자신들을 불러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위지종화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해 하던 참이었다.

“이분은 궁에서 나온 학 대총관이시네. 대총관께서 황명을 전하러 오셨네.”

학평관은 위지하를 정중히 대하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위지하 나리이십니까?”

“어이구, 나리라니 황송합니다.”

위지하는 손을 내저으며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소인이 바로 위지하입니다.”

학평관은 손짓하며 웃었다.

“위지하 나리와 부인께서는 황명을 받으십시오.”

동수여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황명을 받으란 말인가? 딴생각을 할 새도 없이 부부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학평관은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을 받들고 천운을 계승하여 황제가 명하노라. 위지하를 진국공鎭國公에 봉하고 위지 부인은 일품 고명부인誥命夫人에 봉하노라. 또한 국공부 한 채를 하사하노라.”

성지는 매우 짧았고, 말은 간결했다. 봉호를 내리고, 저택과 금은을 하사하는 것 외에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상한 성지는 난생처음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꿈을 꾸는 듯 눈만 깜빡였다. 위지하에게 그 어떤 공로나 권세, 관직까지 없다는 건 차치하더라도, 부부가 함께 봉호를 받는 건 아마 당대의 첫 사례였을 것이다.

위지하 부부는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공떡을 도저히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학평관은 웃으며 말했다.

“진국공과 부인은 뭘 하고 계십니까? 어서 성지를 받으십시오.”

위지하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대총관님, 혹시 잘못 아신 건 아니십니까? 소인은 벼슬도 없고, 공훈도 없습니다. 속된 말로 무공불수록無功不受祿이라고 하는데, 이건…….”

학평관은 성지를 말아 두 손으로 그에게 바쳤다.

“진국공께 드리는 것입니다. 성지를 받으셨으니, 이제 저희는 다시 궁으로 돌아가 복명해야 합니다.”

위지하는 떨리는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성지를 받들었다. 바들바들 떨고 있었지만, 그는 뭐라고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동수여는 땅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오늘 같은 일은 난생처음이라 정말 꿈만 같았다. 학평관은 위지하와 동수여를 부축해 일으켰다.

“국공 나리, 부인, 저희는 복명하러 환궁해야 합니다. 가능한 서둘러서 짐을 정리하십시오. 곧 국공 나리와 부인의 이사를 도울 사람들이 올 겁니다. 사실 짐을 다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저택에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위지하와 동수여는 꿈꾸는 것처럼 멍했다. 학평관이 멀어지자 위지종화가 허리를 깊게 숙이며 예를 취했다.

“국공 나리와 부인을 뵙습니다.”

위지하와 동수여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문의 우두머리가 그들에게 절을 하다니 어찌 받을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이 얼른 무릎을 꿇었다. 그들이 무릎을 꿇자 위지종화도 따라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새로 임명된 국공 나리였다. 작위도 그보다 더 높아서 절을 하지 않으면 예가 아니었다.

가문의 가장 큰 어른이 무릎을 꿇으니 다른 이들도 모두 무릎을 끓었다. 위지 가문에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 * *

녹음이 우거진 국공부엔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대문 앞에 서 있던 하인들은 주인을 보자 예를 갖추었다. 위지하 부부는 얼떨떨한 얼굴로 국공부를 둘러보았다. 꽃이 만발해 있는 정원과 화려한 내부. 위지하 부부는 정말이지 무척 아름다운 꿈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백성이었던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국공 나리와 일품 고명 부인이 되었다. 또 아름다운 저택과 수많은 하인들도 그들의 것이었다. 두 사람은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하인들은 두 사람 앞에서 저마다 예를 올렸다.

하인들의 인사가 끝나자 관리가 소개를 시작했다. 관리의 살가운 말에도 두 사람은 얼떨떨한 얼굴로 가만히 듣기만 했다. 아니, 실상 그의 말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관리는 장부를 가져와 집안의 재산을 보고했다. 농장과 별장이 있다는 말에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택과 하인도 모자라 농장과 별장이라니! 이 막대한 재산이 떨어진 곳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위지 가문의 사람으로서 세상 물정을 아예 모르진 않았으나 그들은 좀처럼 짐작할 수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도 이것들이 어떻게 제게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국공 나리, 황궁에 입궁하여 폐하께 인사를 올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폐하께서 국공 나리와 일품 고명 부인을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관리의 말에 두 사람의 눈은 더 휘둥그레졌다. 입궁해서 황상까지 만나야 한다고? 상상만 해도 장딴지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고민하기도 전에 궁에서 보낸 마차가 국공부에 도착했다. 위지하 부부는 서둘러 하인의 시중을 받아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들은 하인들에게 떠밀려 가마에 올라야 했다. 가마에 탄 두 사람의 마음도 함께 들뜨기 시작했다.

황궁이라니! 그곳은 가주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지금 두 사람이 가다니! 동수여의 등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갔다. 그녀가 위지하의 손을 잡자 위지하도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두 사람의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당신.”

동수여가 나지막이 말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랍니까?”

위지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상을 뵙고 나면 확실해지겠지.”

모든 일이 성지에서 비롯되었으니, 황제만이 그들에게 답을 알려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궁에 부른 사람은 황제가 아니라 황후였다.

위지문우가 세상을 떠난 날. 두 사람도 황후를 본 적 있었다. 그때 아름다운 황후의 미모에 한 번 놀라고, 그녀의 친절함과 진솔함에 또 한 번 놀랐었다. 그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황후는 눈이 빨개질 때까지 울었다. 그녀는 체통을 잃을까 걱정하지 않았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황후는 신하 한 명을 위해 가슴 아프게 울었다.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 신하를 위해 주는 마마가 또 있을까? 부부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황후께 예를 갖췄다. 백천범은 직접 그들을 자리에서 일으키더니 깍듯하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차를 내온 궁녀들이 조용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곳은 편전의 곁채였기에 정전처럼 넓지 않았다. 바닥에는 꽃무늬가 새겨진 귀한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그들과 가까이 앉은 황후의 치맛자락이 눈에 걸렸다. 높은 단상 위에 앉은 게 아니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앉아 주시다니! 위지하 부부는 긴장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여기에서는 국공과 부인 모두 예를 갖출 것 없어요.”

백천범이 웃으며 말했다.

“궁 안에서 만든 간식이에요. 맛이 제법 좋으니 좀 드셔 보세요.”

위지하는 눈을 내리깐 채 차마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그가 공손히 공수하며 말했다.

“마마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마마께서 이리 대해 주시니 소인이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황상께서도 어찌하여, 어찌하여 저희에게 이런 과분한 것들을 주시는지…….”

“국공, 부인. 긴장할 거 없어요. 오늘 두 분을 이렇게 오시라 한 건 궁금증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예요.”

백천범은 입을 열기가 조금 난감한 듯 잠시 말을 쉬었다. 원래 황제가 직접 나서겠다고 말했지만, 백천범은 자신이 나서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황제가 저들을 놀라게 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또 그녀가 직접 나서는 게 좀 더 성의 있어 보일 것 같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그녀의 목소리는 낭랑하면서도 부드러워서 스물이 갓 넘은 어린 처자의 목소리 같았다.

“황상께서 국공과 부인께 작위와 관저를 내리신 건… 제 오라버니께서 국공의 따님을 아내로 맞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위지하와 동수여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황후 마마는 두 눈이 가늘게 휠 만큼 활짝 웃고 있었다. 황후의 상냥하고 다정한 모습에 동수여가 대담하게 입을 열었다.

“마마, 방금 국구께서 저희 딸아이와 혼인하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네, 맞아요.”

“마마, 사실 저희 딸이 지금 집에 없습니다. 그 애는… 몇 달 전에 편지 한 통만 남기고 집을 떠났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댁의 천금께선 지금 저희 오라버니와 함께 있지요. 오라버니가 댁의 따님을 무척이나 좋아하여 제가 오라버니 대신 혼담을 꺼내려 두 분을 모셨습니다.”

말만으로도 황후에게 오라버니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부부의 의아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들은 그들 딸아이를 잘 알고 있었다. 위지불이는 경국지색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성질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 국구의 눈에 들었단 말인가?

게다가 듣자니 황후는 이웃 국가의 공주였다. 하면 국구도 동월인이 아닐 터. 딸아이의 인륜지대사인데, 물어볼 건 물어봐야 했다. 만약 국구가 불구자나 바보라면 아무리 황친이라 한들, 시집을 보낼 수 없었다. 위지하와 동수여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국구께서는 어디에 계신지요?”

백천범은 망설임 없이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제 오라버니는 남원에 있습니다. 남원의 황제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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