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1화
장로들은 그가 또 황후에 대한 일을 꺼내는 줄 알고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폐하, 말씀하시옵소서.”
“짐은 혁흑철 부족의 대군이 타곤성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밀보를 받았소.”
장로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혁흑철 부족이 무얼 하려고 그리한단 말인가?”
“저들이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짓을?”
“설마 공공연하게 반란을 일으키겠단 말인가?”
“나사 공주의 음모가 들통나니 아예 될 대로 되라는 심사인가?”
“…….”
놀라고 또 분노한 장로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오직 한 명의 장로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냉정한 눈으로 관망하고 있었다. 남제화는 그를 바라봤다.
“도 장로, 무슨 고견이라도 있으시오?”
도 장로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으시지 않았습니까? 어디서 그런 밀보를 받으셨습니까?”
그의 말투가 귀에 거슬린 위지불이는 곧바로 칼날 같은 눈빛을 보냈다. 그녀를 힐끔 쳐다본 남제화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안색은 굳어 있었다. 도 장로는 그녀의 시선을 본체만체했다. 장로로서 이미 십여 년의 세월을 보냈으니 어린 계집의 엄포가 두려울 리가 있겠는가? 그저 그녀와 말싸움을 하기 싫을 뿐이었다.
“파목 부족의 아포 족장이 짐에게 서신을 보냈소. 현 상황을 매우 염려해서 짐에게 인편으로 소식을 보낸 거요.”
화 장로가 물었다.
“폐하, 아포 족장은 뭘 원하는 겁니까?”
“아포 족장은 부족과 황실의 우호 관계가 유지되길 원하오. 혁흑철 부족의 야심은 이미 부족들 사이에서도 유명했소. 만약 혁흑철 부족이 남원 황실의 주인이 된다면 다른 부족들도 봉변을 당하게 될 것이라 했소. 아포 족장은 짐과 손을 잡고 혁흑철 부족을 대적하겠다는 뜻을 전해 왔소. 그는 하루빨리 남원에 평화가 찾아오길 원하고 있소.”
청 장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혁흑철 부족의 야심은 나사 공주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말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건 타곤성에 사는 백성입니다. 폐하, 저는 아포 족장과 연합하여 혁흑철 부족을 막는 것에 동의합니다.”
남원은 인구가 적어 전쟁을 가장 두려워했다. 청 장로가 의견을 표명하자 다른 세 명의 장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도 장로만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긴 채 남제화를 바라보았다. 남제화는 그의 시선을 받으며 온화하게 웃었다.
“도 장로께서는 왜 말씀이 없으시오?”
도 장로는 느린 어조로 조용히 말했다.
“소신은 아포 족장의 말 한마디만 믿고 남원 금위군을 출동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남제화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여부가 밝혀질 때쯤이면 혁흑철 부족 군대가 이미 성 밖에 도달할 거요. 도 장로께서는 어째서 혁흑철 부족을 두둔하는 것이오?”
도 장로가 반박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남제화가 말을 이었다.
“아, 짐이 깜빡했소. 도 장로께서는 혁흑철 부족과 관계가 좋지 않았소? 지난번에 나사 공주가 입궁한 후, 도 장로께서는 공주 직접 만나러 갔었지. 짐의 말이 틀렸소?”
도 장로의 안색이 순간 굳어졌다.
“폐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소신과 혁흑철 부족이 결탁했다고 의심하시는 겁니까?”
“도 장로가 혁흑철 부족과 결탁했는지 짐은 알 수 없소. 하지만,”
남제화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공교롭게도, 아포 족장의 밀서를 받기 이틀 전, 짐의 시위가 황궁 동편에서 전서구 한 마리를 사살했소. 그 전서구 다리에 걸린 쪽지에는 한 가지만 빼고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소. 당시에는 개의치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짐도 생각이 많아지는군. 여러 장로들의 생각은 어떻소?”
도 장로는 노발대발하며 큰소리로 호통쳤다.
“폐하, 이건 모함입니다!”
위지불이는 완도를 뽑아 들고 안으로 두어 걸음 들어가 고함을 질렀다.
“감히 폐하께 대들다니! 무례하다!”
다른 네 명의 장로들은 침묵한 채 도 장로를 바라보았다. 황제의 뜻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도 장로의 저택의 위치가 바로 황궁 동쪽이었다. 비록 그 전서구가 도 장로의 것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그 전서구가 그의 것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었다.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역모는 절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도 장로는 다른 네 장로의 안색을 살피며 냉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의 꿍꿍이에 속지 마시오. 폐하께서 혁흑철 부족이 반역을 도모했다고 말씀하시면 정말로 혁흑철 부족이 반역을 도모한 것이오? 누가 직접 확인이라도 했소?”
남제화는 침착하게 말했다.
“누가 직접 확인하길 기다렸다가는 혁흑철 부족의 대군이 이미 타곤성을 함락한 후일 것이오. 그땐 손을 쓰려 해도 이미 늦소.”
서로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하니 네 명의 장로들은 점점 안색이 어두워졌다. 남제화도 재촉하지 않고 그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수가 적은 옥玉 장로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도 장로께서 하신 말씀도 옳습니다. 지금은 아직 사실을 확인할 수 없으니 쉽게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는 병권을 장악한 장로로서 신망이 매우 높았다. 그가 입을 열자 다른 장로들도 동조했다.
“옥 장로의 말씀이 맞습니다. 혁흑철 부족이 정말 반란을 일으켰다 해도 며칠 안에 반드시 소식이 올 것이니, 분명히 밝혀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책을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남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에 장로들께서 그렇게 말하니 짐도 이견은 없소. 하지만.”
그는 도 장로를 한 번 바라봤다가 시선을 옥 장로에게 옮겼다.
“옥 장로, 의심스러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옥 장로는 잠시 침음을 삼키더니 답했다.
“관례에 따라, 도 장로는 궁 안에 남겨 두셔야 합니다.”
도 장로는 화가 나 펄쩍펄쩍 뛰었지만, 다른 장로들이 옥 장로의 말에 동의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금위군에 의해 압송되었다. 위지불이는 도 장로가 끌려가면서 욕설을 퍼붓는 걸 바라보았다. 그가 쏟아낸 말속에는 남제화에 대한 불경이 가득했다. 분을 못 이긴 위지불이는 자신이 땀을 닦았던 수건으로 도 장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렇게 군자에게 불경한 신하는 매질을 한바탕해야 한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남제화는 그녀를 말릴 새도 없었다. 그는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슴속에서 또 달달한 향기가 솟아올랐다. 그녀만이 유일하게 저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아닌가. 그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약간 감개무량했다.
도 장로는 화가 나서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지만, 꽉 틀어막은 수건은 빠지지 않았다. 얼굴이 돼지 간처럼 시뻘게졌고 흉악한 눈빛으로 위지불이를 그녀를 물어 죽이고 싶다는 듯이 노려봤다. 위지불이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목을 빳빳하게 쳐들었다.
“얌전하게 구시오!”
다른 장로들은 그걸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다섯 명의 장로가 한 몸처럼 움직였지만, 평소 도 장로의 횡포가 심한 게 사실이었기에 그가 고생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도 장로가 연행되어 간 후, 위지불이는 남제화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그녀는 작은 가슴을 쭉 펴고 기세 좋게 말했다.
“왜요? 제가 이렇게 독하게 구는 거 처음 봐서 그래요?”
남제화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잘했다. 독하게 안 하면 어떻게 나를 보호할 수 있겠느냐?”
그는 장난스레 말했지만 목소리는 제법 진지했다. 위지불이는 그가 한 말이 장난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자 위지불이가 물었다.
“혁흑철 부족이 진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해요?”
남제화가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진실을 누가 알겠느냐?”
위지불이가 또 물었다.
“도 장로가 진짜 혁흑철 부족과 내통하고 있어요?”
남제화는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
“짐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위지불이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를 흘기며 말했다.
“권력자들은 다들 여우띠예요!”
남제화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늙은 여우이고, 너는 어린 늑대가 아니냐? 그러니 천생연분이지 않느냐?”
“그래서 폐하께서는 도 장로를 먼저 처리하실 생각이세요?”
“그래.”
남제화도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도 장로는 불같은 성격을 숨기지 않지. 평소에도 다른 장로들과 마찰이 있었다. 게다가 그는 분명 혁흑철 부족과 친분이 두텁지. 도 장로부터 시작하는 게 적격이다.”
위지불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번째는 누구 차례죠?”
남제화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맞혀 보거라.”
“미워 죽겠어!”
위지불이는 습관적으로 그의 팔을 때렸고, 매를 맞은 남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두어 걸음 빨리 도망쳐 위지불이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위지불이는 그를 쫓아가며 말했다.
“폐하, 저는 아직도 좀 이해가 안 가요.”
“물어보거라. 짐은 너에게 조금도 숨기지 않을 것이다.”
“모두 폐하께서 안배하신 일인데, 왜 증거를 더 완벽하게 만들지 않았나요? 그 전서구가 도 장로의 것이라는 증거만 있으면 그 자리에서 죄를 확정할 수 있지 않나요?”
남제화는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장로들의 눈에는 짐이 그렇게 유능한 황제가 아니다. 짐은 문제만 던져 주고 저들이 스스로 증거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만약 짐이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조사하면 짐이 이미 저들과 각을 세우고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걸 보여 주게 되지. 그러면 저들은 경각심을 높이고 경계할 것이다. 짐은 약한 모습을 보여야 저들을 안심시킬 수 있단다.”
위지불이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저들이 도 장로를 포기할까요?”
남제화는 그녀의 손을 살짝 거머쥐었다.
“다섯 명의 장로가 본래는 하나였다. 처음에는 다섯 명이 진심으로 협력하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힘을 합쳤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에 틈이 생기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기 마련이다. 지금의 저들은 이미 예전의 장로들이 아니다.
그래도 옳고 그름 앞에서는 원칙이 있단다. 게다가 지금 남원 황실에서는 그들의 권력이 제일 큰데, 설마 권력을 포기하고 혁흑철 부족에게 빌붙겠느냐? 저들이 혁흑철 부족이 남원 황궁의 주인이 되는 걸 용납할 리가 없지.”